위기는 기회로 (1)
중년 커플은 미간을 찌푸린 채, 포차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먼저, 사장인 왕호를 위아래로 연신 훑어보더니, 이윽고 눈을 조리대 쪽으로 돌린다.
‘뭐지?’
왕호는 자신을 찌르는 따가운 시선에 조금은 의아했지만,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한참을 훑어보고 나서야 겨우 주문을 했다.
“여기 이슬 하나랑 쭈꾸미 볶음 하나!”
“예!”
조금은 예의 없는 주문이다. 하지만 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손님을 다 마주친다. 이정도야 가볍게 그러려니 한다.
요리는 빠른 속도로 끝났다.
“맛있게 드세요! 다 드시면 밥 볶아 드리겠습니다!”
환한 웃음도 빼먹지 않았다.
왕호는 조리대로 돌아와 중년 커플의 반응을 살폈다. 좋은 의미로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었기에, 조금은 더 눈길이 갔다.
그들은 왕호의 빠른 손에 한번 놀라고, 요리의 맛에 또 한 번 놀라는 눈치였다.
‘아무리 봐도 부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들은 사이가 아주 좋은 것도, 그렇다고 스스럼없는 사이도 아니었다.
사이가 아주 좋다면, 금실이 좋은 부부거나 불륜일 가능성이 큰데 그것도 아니고···
부부라고 하기에는 서로 조심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왕호는 더 이상 그들에게 관심을 둘 수 없었다. 손님들이 물밀 듯이 포차로 들어오고 있었다.
왕호는 상념을 떨치고는, 슬며시 웃었다.
오늘도 대박행진! 게다가 뜻하지 않던 광고 수익도 얻었다. 싱글벙글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왕호의 함박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꺄악!!! 이거 뭐야?! 저기요!!”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자, 포차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아까 그 중년 커플이다.
왕호 또한 식칼을 내려놓고는, 후다닥 달려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게 뭐예요? 머리카락이잖아요!”
아주머니는, 양념이 묻어 새빨개진 머리카락을 맨손으로 들어 올렸다.
왕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카락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거··· 내 머리카락 아닌 것 같은데······.’
길이가 자신의 것보다는 훨씬 작아 보인다.
왕호는 위생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꼼꼼하다. 오죽했으면, 머리카락 하나 들어갈까 봐 머리를 길러 묶었겠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면 실수로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
머리카락의 길이와 곱슬 정도가 자신의 것이 아니기도 했고, 지금은 감정 스킬 덕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바로 알 수 있다.
‘진상이네.’
결국, 이렇게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무언가를 수상하게 살피던 손님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갖다 드리겠습니다.”
왕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일단 고개를 숙였다.
왕호는 장사를 하는 사장의 입장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이렇게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고깝기는 해도,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란 걸 잘 안다.
아직까진 대한민국 사회가 그렇다. 진상과 싸워서는 가게에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이다 이게.
“아니, 사과만 하면 다야? 내 정신적 피해는 어쩔 건데!”
“네? 그럼 제가 서비스로 안주 하나 더 넣어드리겠습니다.”
“하, 안주 하나 줘서 입을 막으시겠다? 누가 보면 내가 일부러 이러는 줄 알겠네. 총각 장사 진짜 싸가지 없게 하네!”
빠직-
왕호의 이마에 힘줄 하나가 솟아올랐다.
이 아줌마··· 보통 진상이 아니다.
왕호는 장사를 시작한 두 달. 아니,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그 5년을 합쳐 무수한 진상들을 보아왔다.
보통 이물질을 억지로 넣어 클레임을 거는 진상들은, 새것을 가져다주거나 서비스를 더 넣어주면 해결된다. 심한 경우에는, 음식값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지간하면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이 아지매는 달랐다. 일부러 다른 손님들 들으라는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무래도 공짜 음식이나, 서비스가 목적이 아닌 듯싶었다.
“그럼 뭘 원하십니까?”
“뭐, 뭐?! 원하는 거? 와, 이제 완전히 나를 진상 거지 취급하네? 여기 위생이 개판이라고 지금 내가 알려주고 있잖아! 똑바로 장사하라고!”
위생?
왕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아주머니는 선을 넘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다.
위생. 왕호가 ‘가장’ ‘그 무엇보다도’ ‘제일’ 신경 쓰는 영역이다. 왕호도 더 이상은 참지 않는다. 왕호는 호구가 아니다. 왕호가 고개를 숙였던 이유는 손해 보는 것을 껴렸기 때문이다.
이 아주머니는 지금 가게의 위생에 흠집을 내려 한다. 이 부분은 진상과 싸워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게다가, 진상도 받아주는 정도가 있다.
정도가 넘으면, 레스토랑에서도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법적 조치까지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진상 카페 같은 곳에 호구 식당으로 낙인찍힌다. 본래 사람이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왕호의 목소리가 한층 무거워졌다.
“아주머니. 호의도 정도가 있습니다. 이 머리카락 아주머니 거 맞죠? 제 머리카락은 이렇게 짧지도 않고, 곱슬기가 있지도 않습니다. 가게 위생에 태클을 거는 것은 저도 참지 않습니다.”
“뭐야?! 지, 지금 내가 조작했다는 얘기야? 증거 있어? 이거 완전 생사람 잡는 가게구만! 이봐요들! 여기 사장이 이렇게나 경우가 없어요! 하, 이딴 곳에서는 술맛 떨어져서 도저히 술 못 마시겠네.”
“자신 있으십니까? 한 번 경찰에 신고하고 머리카락 국과수에 보내볼까요? 더 이상 말썽 피우지 마시고 당장 나가세요. 돈 안 받을 테니까.”
“이··· 이익!”
아주머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원래 팩트로 얻어맞을 때가 가장 아프다.
“너,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가만 안 둘 거야. 신고할 거야! 여기서 장사할 생각 접는 게 좋을 거야.”
아주머니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투덜거리며 포차를 빠져나갔다. 같이 온 아저씨도 급하게 외투를 챙겨 아지매의 뒤를 쫓았다.
진상 of 진상.
이 진상 아주머니는, 머리카락을 트집 잡아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공감해 줄 줄 알았다. 허나, 사람들은 진상 아주머니가 쫓겨난 것에 오히려 통쾌함을 느끼는 상태였다.
남은 손님들이 왕호에게 따봉을 날린다. 몇몇은 이 재밌는 싸움 구경을 스마트폰으로도 담았다.
‘하, 장사가 잘되니 흠집 내기도 생기는구나. 경쟁 포차에서 보낸 프락치인가?’
이것도 장사가 흥하고 있다는 증거렷다.
왕호는 씁쓸하게 웃으며, 애써 자신을 위안했다.
*
다음날 정오. 재료 손질을 위해 포차로 미리 나와 있던 왕호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두 남자가 포차를 찾아왔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건장한 아저씨들이다. 유니폼의 가슴팍에는 ‘송파구청’이라는 글씨가 고딕체로 박혀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구청 식품위생과에서 나왔습니다.”
“아, 예······. 무슨 일이시죠?”
“신고가 들어와서요. 여기 음식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고 신고가 들어왔거든요. 확인차 위생 점검 나왔습니다.”
“예? 식중독이요?”
왕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식중독이라니?
아주 비싼 고급 재료는 아니지만, 왕호는 항상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한다. 위생은 더 이상 강조하면 입 아플 지경. 왕호는 10년 넘게 요리계에 종사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요리에 균이 침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말 같지도 않은 신고다.
‘어제 그 진상 아줌마 짓인가?’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한 번 눈이 돌아갔으니, 뭔들 못하리······.
하지만 너무 빨랐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이렇게 일 처리를 빠르게 하지 않는다. 진상 아줌마와는 늦은 밤에 다퉜는데, 다음날 일찍, 다짜고짜 구청에서 찾아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이가 신고했거나, 아님··· 진상 아지매 말대로 정말로 자신이 한 따까리 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구청 공무원들은 가져온 키트를 꺼내, 조리대 곳곳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들도 뭔가 아니다 싶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거··· 너무 깨끗한데?”
“그러게. 모범 식당으로 선정해도 모자랄 판인데? 대장균의 ‘대’자도 검출 안 되겠네.”
“그럼, 또 허위신고야?”
“근데 누가 신고했길래, 과장님이 우리보고 당장 가라 한 거야? 그것도 점심시간인데.”
“에효~ 낸들 알겠냐. 까라면 까는 게 우리 위치지.”
검사가 끝났는지, 공무원들이 굽었던 허리를 펴며 왕호를 호출했다.
“흣챠! 사장니임!”
“예!”
“여기 손질한 재료 몇 개는 저희가 샘플로 가져가겠습니다. 가서 검사해보고, 대장균이 검출되면 아마 행정처분이 나올 겁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장사 준비는 계속하셔도 됩니다. 결과는 오늘 오후에 바로 나올 거구요.”
“아, 예. 수고 많으십니다.”
“후아암~ 사장님도 똥 밟으셨네요. 보아하니, 대장균은 검출 안 될 거 같아요.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장사하세요.”
공무원들은 피곤했는지 연신 하품을 해대며, 구청 승합차에 다시 올라탔다.
하아-
왕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왕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것만큼 찝찝한 기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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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왕호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송파구청 식품위생과였다.
7종의 대장균 검사 모두 네거티브(음성) 반응이 나왔다는 문자였다.
뭐, 당연한 결과였지만 이런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찝찝한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밀려드는 손님에, 왕호는 다시금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
2주가 바쁘게 흘러갔다.
진상 아주머니와 위생 점검 사건은 왕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포차의 이익은 계속해서 늘었으며, 그와 비례하게 왕호의 레벨과 스탯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초급 요리의 숙련도는 이미 99%가 된 지 오래다.
‘왜 100%가 안 되는 걸까?’
벌써 일주일째 10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걸 뛰어넘어야, 중급 요리로 스킬이 업그레이드된다. 그리고 초급 스킬과 중급 스킬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중급 요리를 배우면, 포차를 접고 진짜 식당을 차려도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뭔가, 임팩트 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하나?’
많은 양의 요리를 해서 늘지 않는다면, 아마 이것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왕호는 조만간 신메뉴를 또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자자.’
벌써 탁상 위의 알람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포차의 특성상, 왕호는 항상 4시가 넘어야 겨우 잠에 빠진다.
밥 잘 먹는 것과 잠 잘 자는 것만큼 보약이 또 없다. 늘어난 힘, 민첩, 그리고 지구력 스탯 덕분에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도 많이 자둬야 튼튼한 체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왕호는 베개에 머리를 댄 지 고작 1분 만에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달달했던 왕호의 수면은, 거칠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아! 장사하자 먹고살자~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대한민국의 하느을---
무척이나 신나는 벨 소리지만, 자고 있을 때 울리는 벨 소리는 그저 고통일 뿐이다.
왕호는 눈살을 몹시 찌푸리며, 탁상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다섯 시 반. 잠자리에 든 지 겨우 1시간 남짓 지나 있었다.
이 시간에 대체 누가 전화를······.
띡-
“여보세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리가 없다.
-강변 포차 사장님 되십니까?
“예에··· 그런데요······.”
-경찰입니다. 지금, 포장마차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한번 나와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네?!!!! 화, 화재요?”
벌떡-
왕호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형사라는 말보다, 금쪽과도 같은 포장마차가 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
후다닥-
왕호는 부랴부랴 겉옷만 걸치고는,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자신의 포장마차 앞에 당도했을 때.
풀썩-
왕호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소방차 여러 대와 경찰차가 포차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방관들은 불을 이미 다 끄고는, 호스를 말며 상황을 정리하는 상태였다.
왕호는 덜덜 떨리는 눈으로, 포차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잠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황빛 예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던 포차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검게 그을린 주방 도구들과, 다 타버리고 남은 회색 잿가루. 그리고 흐물흘물 녹아, 서로 엉겨 붙은 플라스틱 의자가 참혹했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포장마차가 불에 탄 것이 아니다. 자신의 꿈과 가족의 미래가, 화마에 먹혀 송두리째 파괴된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있는 왕호 앞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으로 보이는 형사가 다가왔다.
“저기···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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