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으로 (1)
‘중급 요리?’
왕호는 연거푸 터지는 알람에 깜짝 놀라면서도, 재빨리 요리 스킬을 확인했다.
[중급 요리(패시브) – 숙련도 0%]
[많은 종류의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맛도 무척이나 뛰어납니다.]
[몬스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숙련도가 100%로 오르면, 고급 요리로 업그레이드됩니다.]
한동안 도태되어있던 요리 스킬이 업그레이드됐다.
왕호의 입가에 미소가 퍼져나갔다.
‘예쓰!’
기쁜 마음에, 허공에 대고 어퍼컷을 날렸다. 순간, 창피했지만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허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에 들어갔다.
‘왜 숙련도가 오른 거지?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해줘서? 손님이 크게 감동해서? 몬스터 재료를 사용해서?’
그 어떤 것도 확실치 않다. 다만, 중급 요리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새로운 정보가 발견됐다.
‘조건이 갖춰지면’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더욱 많은 스킬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힐링 요리사”로서의 능력이 더욱 개방됐다는 것. 이 두 가지다. 아마 힐링 요리사에게 있어, 이 “요리” 스킬은 가장 큰 뼈대인 듯싶었다. 뼈대가 튼튼해야 주변으로 살을 다닥다닥 붙일 수 있다.
아직은 그 조건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능력의 개방이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번 크게 성장했다는 점은 왕호에게 깊이 와닿았다. 좋지 않은 일을 겪었지만, 다시 일어서서 이렇게 성장한 자신이 대견했다.
왕호는 정확한 사실확인을 위해 이 남은 고기는 남겨두기로 했다.
‘냉동 보관하면 고기의 특성이 많이 망가지니까, 일단은 냉장 보관하자.’
왕호는 남은 고기를 신선칸에 집어넣었다.
다만··· 냉장보관 하는 만큼, 오래 사용할 순 없다.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당장 내일 확인해보면 된다.
*
부르릉-
다음날. 왕호는 전날보다 세 배 가까이 되는 고기를 싣고 출발했다. 준비 시간도 넉넉히 잡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했다.
재료를 순식간에 손질하고 빠르게 판매 준비를 마친다. 사람들은 그새 밥차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클러버들 사이에 소문이 잔뜩 돌았다. 이들의 표정을 보니,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히 배를 채우려는 듯 보였다.
“이 집이 그렇게 맛있다며?”
“뭐야? 왜 다들 줄 서 있는 거야? 맛집이야?”
“맛차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자, 군중심리가 작용해 줄이 더 길어진다.
왕호는 오늘 한 가지 실험을 해 볼 생각이다. 일반 소고기와 레드혼 카우의 고기를 비교해, 어떤 차이가 발생하는지 확인해볼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변수를 최대한 차단해야 한다.
“맛있게 드세요!”
왕호는 스테이크를 사 가는 손님 하나하나의 얼굴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들 중 몇몇은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다시 찾아올 거다. 그럼, 그들에게 레드혼 카우의 고기를 먹여볼 요량이다.
먹는 대상이 같으니, 두 고기의 차이점을 확실히 판별할 수 있다.
-----------
벅벅벅-
철판을 빠른 속도로 닦는 왕호의 입가에 미소가 역력하다.
이번에도 완판.
세 배가 넘는 고기를 가져왔지만, 공연이 마무리되기 전에 다 팔아치웠다.
밥차를 시작한 지 채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수익이 꽤 괜찮다. 부스 이용료와 세금도 계산해봐야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익이다. 물론, 푸드트럭이라는 것이 날마다 수익 편차가 조금 심하긴 하다. 목을 잘 잡은 날엔 한없이 높다가, 다음날 파리 날릴 수도 있는 것이 푸드트럭이다.
당장 이 축제가 끝나면, 마땅히 갈 곳도 없다. 다른 축제는, 이미 부스 자리가 꽉 찼다. 이것도 운이 좋아서 얻은 자리다.
그래도 첫 단추를 잘 뀄다. 뭐, 날이 좋으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원 근처로 가면 된다. 날이 좋지 않아도, 인구가 밀집된 택지지구에 가서 판다면 일당은 충분히 벌 수 있다.
예전에야,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가 심해 자리를 쉽게 옮길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규제도 다 풀렸다. 아주 ‘특수한’ 장소만 아니라면,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다.
“후후. 역시, 예상이 어느 정도 맞았군.”
왕호는 딱 한 덩이 남은 몬스터 고기를 랩으로 둘둘 감싸 냉장고에 넣었다.
실험결과, 레드혼 카우로 만든 요리의 효과가 월등했다. 맛도 훨씬 나았다. 반응 자체가 달랐다.
‘하지만, 스탯의 증가가 항상 있던 것은 아니었어.’
전날 보았던 확실한 수치상의 변화는, 딱 한 번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손님이었던 탓에, 조금 더 신경 써서 요리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괜찮은 요리가 나왔다. 손님은 크게 감동했고, 왕호도 뿌듯함을 느꼈다. 이 삼박자가 이루어져, 요리의 효과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표본이 한 개밖에 없어서, 정확한 조건은 잘 모르겠네. 좀 더 확인해보고 싶은데···’
···몬스터 고기가 다 떨어졌다.
*
-···내일 날씨는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겠습니다. 내일 아침 서울 기온은···
24인치 정도 되는 조악한 텔레비전에서, 기상 캐스터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왕호는 티비를 켜 놓은 채, 거실에 앉아 오늘의 정산금액을 맞춰보고 있었다.
왕호는 히죽히죽 웃으며 빳빳한 현금을 빠른 속도로 세었다.
낼름-
엄지에 침을 바를 때마다 느껴지는 돈맛이 짜릿했다. 돈다발이 묵직하다. 입꼬리를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클럽 죽돌이들이라 더 잘 팔린 거겠지?”
클럽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것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사람들일 거다. 그렇기에 8천 원이나 되는 길거리 음식임에도 많이 찾은 것일 테지.
고작 이틀 영업했지만, 벌써 2주는 생활할만한 생활비를 벌었다.
“읏챠!”
정산을 마친 왕호는, 소파에 몸을 푸욱 집어넣고 생각에 잠겼다.
EDM 축제가 끝났으니, 내일 당장 영업할 곳을 결정해야 한다.
날씨가 화창하다고 했으니, 여의도 공원에 가볼까?
괜찮은 생각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클러버들처럼 줄 서서 사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꽤나 팔리긴 할 거다.
오늘처럼은 아닐지라도 작게나마 이득을 쌓아 나간다면, 언젠간 목 좋은 상가로 들어갈 수 있다. 더 나아가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다. 어머니께서도 더 이상 궂은일 하지 않아도 된다.
꾸준함은 왕호가 가장 자신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왕호의 가슴 깊은 곳에서 도전정신이라는 오랜 친구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아주 예전에 잃어버린 놈이다.
‘이렇게 성실하게 영업한다면, 언젠간 빛을 보겠지···’
···한데, 자꾸만 몬스터 고기가 눈에 밟힌다.
고작 하루였지만, 몬스터로 만든 요리가 월등했다. 맛, 비주얼, 손님들의 반응, 경험치 획득량 등등. 모든 면에서 소고기를 압도했다.
왕호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일단, 경험치 획득량부터가 차이나.’
몬스터 요리가 훨씬 많은 경험치를 제공했다. 즉, 몬스터 고기로 요리하는 것이 더 빠른 레벨업을 의미한다. 끝까지 넘지 못했던 초급 요리도, 몬스터 고기 덕에 벗어났다. 레벨과 스킬숙련도가 오른다는 것은, 요리 실력의 상승이나 마찬가지다. 요리 실력의 상승은 곧 맛의 상승. 대박의 꿈이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풍미도 더 좋았어.’
직접 먹어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실력에서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의 재료. 물론, 레드혼 카우가 유난히 맛이 특별할 수도 있다.
왕호는 이제 제독 스킬로 몬스터 고기를 사용할 수 있다. 레드혼 카우 같은 숨은 재료를 찾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허나, 그 무엇보다도 왕호의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것은 바로 손님들의 반응이었다. 맛이 좋으니, 손님들이 더 감동하는 것도 당연하다.
맛이 뛰어나다라······.
모든 요리사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들과는 다른 맛. 남들보다 뛰어난 맛을 우려내기 위해, 요리사들은 실력을 갈고닦고 영혼을 다해 음식을 연구한다.
그 마지막 종착역은 아마도 미슐랭 쓰리스타 일 것이다. 오죽하면, 미슐랭 별을 다시 박탈당할까 봐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셰프까지 있었겠는가.
왕호도 요리를 전공으로 삼았을 때는, 미슐랭 쓰리스타를 목표로 삼았다. 물론, 거창함을 넘어서 말이 안 될 정도의 헛된 꿈이다. 그 꿈이 꺾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들 그렇지 않나. 고등학교 입학할 때는 죄다 서울대가 목표지만, 막상 고3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점수에 맞춰 한없이 작아진다. 왕호도 그랬다.
‘그래! 사람들이 좀 더 좋아하는 요리를 하자!’
그것이 요리사의 길이자, 숙명이다. 열정의 도화선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 끝은 비록 미슐랭 3스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핸들이 고장 난 8톤 푸드트럭처럼 우직하게 직진하다 보면, 언젠간 터널의 끝이 보일 것이다.
‘그럼, 몬스터 고기를 구해야겠네······.’
몬스터는 레이드를 통해 잡힌다. 레이드는 던전에서 벌어진다. 고로, 던전으로 가야 몬스터 고기를 구할 수 있다.
EDM 축제 덕에 이번 달은 조금 여유가 있다. 도전하려면 차라리 지금 하는 게 낫다.
‘게다가 레이드 뛰는 각성자들은 돈이 많다고들 했다!’
여유가 있으니, 클러버들처럼 망설이지 않고 주문할 것이 뻔하다. 거기에 몬스터 살코기는 쓰레기 취급을 받으니, 잘하면 거저 구할 수도 있을 거다. 그것을 요리해 팔면 엄청난 순이익이 남는다.
“좋아!”
왕호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심했다.
밥차를 끌고 던전으로 가자!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푸드트럭을 산 것이, 이리도 다행일 수 없었다. 아주 ‘특수한’ 장소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장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순간, 왕호의 얼굴에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잠깐··· 던전이 특수한 장소는 아니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