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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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젊은 사장님 또 오셨네요?”
일면식이 있는 공무원 아주머니가, 왕호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왕호는 시청이 문을 여는 9시가 되자마자, 이곳을 찾았다. 빨리 찾아온 만큼, 사람이 없었다. 짠돌이답게,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아껴버린다. 시간은 곧 돈이나 마찬가지다.
“하하, 또 뵙네요.”
“원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웬만하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젊은 사장님은 그 머리 스타일 때문에 잊어버릴 수가 있어야지. 말도 이쁘게 하고 호호. 그나저나, 어쩐 일로 왔어요?”
이번에도 역시나 아주머니의 입은 쉬지 않았다. 두서가 무척이나 길었다.
“여쭤볼 것도 있고, 등록할 것도 있고 해서 왔습니다.”
“호호호, 뭐가 궁금한데요?”
“혹시, 푸드트럭 몰고 던전에 갈 수 있습니까? 던전 앞에서 장사하고 싶어서요.”
“예? 더, 던전요?”
던전이라는 말에, 아주머니가 몹시 당황했다. 이런 난감한 질문은 처음이다. 수많은 푸드트럭을 등록시킨 베테랑이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잠시만요.”
뒤적뒤적-
아주머니는, 책상 위에 꼽힌 몇몇 서류를 이 잡듯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휙- 휙-
아무리 책장을 넘겨도 그것에 대한 규정은 없는지, 아주머니의 고개가 연신 갸우뚱거렸다.
“흠흠, 잠시만 기다리세요.”
찾다찾다 못 찾았는지,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장실로 향했다. 자신의 상관에게 물어보려는 듯싶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다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착석했다.
“호호호. 관련 규정이 아예 없어서 판단하기 힘들었는데, 상관없을 것 같아요. 일단, 취사 금지구역이 아니기도 하고, 장사가 금지된 것도 아니니까요. 마나석이랑 가죽 같은 것도 바로바로 매매 되잖아요.”
“하하,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사장님 던전엔 들어갈 수나 있어요? 각성자가 아니면, 거의 못 들어 갈 텐데······.”
맞다. 정부 관계자나, 대형 길드 법인에 빽이 있는 게 아니라면 비각성자는 던전에 발 한 발자국도 내밀 수 없다. 근처에 가는 것도 엄격히 통제된다.
“그래서 레이더 등록까지 하려고 왔습니다. 레이더 등록도 여기서 하죠?”
“에엥? 사장님 각성자셨어요?”
아주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 예. 각성잡니다.”
왕호는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와··· 상상도 못 했네요. 각성자면서 왜 푸드트럭 따윌··· 호호호,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뭐, 사연이 있겠죠? 자, 여기 마도구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리면 돼요.”
아주머니가 지문인식기처럼 생긴 마도구를 왕호에게 내밀었다.
왕호는 마도구 위에 엄지를 갖다 댔다.
마도구에서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 마도구는 지문을 읽어 신원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몸이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파악하는 기계다. 각성자라면 마나를 느낄 테고, 비각성자라면 반응하지 않는다.
디스플레이에 결과가 표기됐고, 아주머니는 결과를 보고 작게나마 감탄했다.
“오 정말 각성자셨네요! 등록은 금방 끝날 거예요. 어려운 건 아니라서요. 근데, 사장님 클래스가 어떻게 돼요?”
아주머니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마도구로는 각성자와 비각성자를 가릴 수는 있지만, 클래스까지는 확인할 수 없다. 외관상으로는 각성자와 비각성자 구분도 쉽지가 않다.
왕호의 클래스는 “힐링 요리사”이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관심종자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이미 한 번 겪어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산직은 왕호가 알기로는 아직까진 자신뿐이다.
“칼잡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요리사는 식칼을 잡는다.
“아아, 검객이셨구나. 전사계열은 몬스터와 직접 살을 맞대야 해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이해해요. 자, 등록 끝났어요!”
아주머니는, 키보드를 타다다닥 놀리면서 입도 같이 놀려댔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멀티 태스킹이 가능한지 신기할 따름이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빠르시네요.”
“저번에 사장님이 예쁜 말을 해줘서 힘 좀 썼지요.”
“하하, 그렇습니까? 빈말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우세요.”
빈말 맞다.
“오호호홍, 사장님 그럼 장사 대박 나시길 바랄게요!”
“예!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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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는 무턱대고 던전으로 향하지 않았다.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온 왕호는, 오리진에 접속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던전은 위험한 곳이다. 살아있는 몬스터는 언제든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물론, 왕호는 던전 안에 들어갈 생각까진 없다. 그저, 던전 입구에서 음식만 팔 생각이다.
그럼에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람 일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추천 수가 꽤나 높은 글 하나가 왕호의 눈에 들어왔다.
<서울지역 레이드 처음 뛰는 분들을 위한 공략!>
[길드 홍보할 겸 해서 글 씁니다. 우선, 레이드 하기로 맘 먹으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막막하실 텐데,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서울권에서 가장 낮은 레벨의 던전은 “실버폭스” 던전입니다. Lv1에서 10까지의 실버폭스가 나타나는데, 날쌘 대신 공격력이 낮아서 매우 안전하죠. 게다가 다른 몹처럼 흉측하게 생긴 게 아니라서, 덜 위협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힐러 혹은 마법사 같은 원거리 딜러 분들은, 좀 더 상위던전으로 바로 가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불안한 분들은 여기서 레벨 8, 9 정도 올리고 가세요. 대신, 근접계열은 여기서 레벨 13까지는 올릴 수 있으니, 최대한 올리고 졸업하세요.···
···이런 초급 던전에서 눈에 띄는 실력을 뽐내시면, 각종 길드에서 영입 콜이 쇄도할 겁니다. 앞서 말한 실버폭스 던전에도 저희 매니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죠. 개인적으로 저희 법인으로 오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독점하고 있는 던전이 꽤 있어서, 안정적인 레벨업과 높은 수익을 약속···]
왕호는 글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8할 정도가 홍보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쓸만한 정보는 얻어낼 수 있었다.
“그래, 일단 제일 약한 던전부터 맛을 보자.”
왕호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다시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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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3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종구에게 무려! 반값으로 받아낸 네비에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명색이 던전인가?”
실버폭스 던전은 서울 근교에서는 가장 레벨이 낮은 던전에 속한다. 위협적이지가 않아, 거의 초보자사냥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던전은 던전인지, 근처에 다다르자 인적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도로 또한 뻥뻥 뚫렸다. 몇몇 차들만이 던전을 향하고 있었다.
던전의 초입까지 좀 더 들어가자, 드디어 검문소와 마주칠 수 있었다.
각잡힌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단독군장을 한 채로 다가오는 차들을 멈춰 세운다. 왕호도 군인의 안내를 받아, 차의 속도를 줄였다.
왕호의 트럭이 완전히 멈춰 서자, 하급자로 보이는 이가 운전석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왔다. 가슴팍에는 작대기 두 개짜리 계급장이 박음질 되어있었다.
“여기서부터 실버폭스 던전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푸드트럭 영업하러 왔습니다.”
“민간인은 출입이 금지되어있습니다. 알고 오셨습니까?”
“예. 전 각성자입니다. 레이더로 신고까지 했구요.”
“알겠습니다. 확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여기를 바라보시면 됩니다.”
군인은 작은 디바이스를 내밀었다. 왕호는 군인이 가리킨 대로, 디바이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번쩍-!
기계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와 왕호의 눈을 빠르게 훑었다. 홍채 인식 디바이스다.
띠딕-
“안왕호 씨. 각성자 확인되셨습니다. 그런데··· 영업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예.”
“영업이라면··· 음식을 팔겠다는 말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시청에 확인해 보니, 가능하다고 듣고 오는 길입니다.”
“음······.”
왕호의 말에 일등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상급자에게 말을 건넸다.
“임 병장님! 이분께서 밥 팔러 오셨다는데, 들여보내도 됩니까? 각성자 확인됐고, 시청에서도 가능하다고 확인받았답니다! 푸드트럭은 처음이지 말입니다!”
위병소 안에서 한가롭게 판타지 소설을 읽던 임 병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얼마나 귀찮았던지, 고개는 계속해서 책에 고정되어 있었다.
“푸드트럭? 흐음··· 하, 새끼 빠져가지고. 그 정도는 네 선에서 알아서 처리하란 말이야. 유도리 있게 해라 좀 유도리 있게. 영업 허가증만 확인하고 보내드려.”
“예 알겠습니다!!!”
일등병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했다.
왕호는 글로브박스에서 빳빳한 허가증을 꺼내 보여줬고, 허가증을 확인한 군인은 바리케이드를 올려 푸드트럭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던전에 밥차가 오는 건 처음 보네. 아, 나도 짬밥 말고 싸제 밥 먹고 싶다······.”
꿀꺽-
일등병은 멀어져가는 트럭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워낙 작은 목소리라 임 병장은 듣지 못했다. 만약 들었다면, 저 악마 같은 놈은 아마 이걸 트집 잡아 괴롭힐 게 뻔했다. 고작 일병인 그는 병장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왕호는 검문소를 지나, 한참을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굽이굽이친 커브 길을 지나자, 말로만 듣던 던전을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으허, 직접 보니까 더 크게 보이네······.”
왕호는 핸들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감탄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던전의 입구인 “게이트”의 위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왕호는 게이트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거대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할 것만 같다. 입구가 무슨 강남역 빌딩 수준이다.
오리진에서 알아본 바로는 이렇다. 던전이라 함은 차원의 균열로 발생한 ‘통로’를 말한다. 그 입구가 바로 차원을 넘나드는 웜홀. 즉, 게이트다.
게이트를 넘어가면 던전이 나온다. 앞서 말했듯이 던전은 통로다. 당연히 지구가 아닌 다른 차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곳에서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온다.
던전이 생겨난 지는 어언 60년. 인간이 던전을 지배한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알려진 것보다 베일에 싸인 부분이 더 많다. 일단, 한 던전에서는 한 종류의 몬스터밖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몬스터는 던전을 통해 지구로 넘어올 수 있지만, 인간은 몬스터의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인류는 각고의 노력을 다 해왔지만, 아직 작은 단서 하나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저 게이트로 몬스터가 넘어오지 않는다. 오직 인간이 ‘사냥’을 위해 들어가는 용도로 바뀐 지 오래다.
왕호는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사람이 드글드글 하네. 대박의 향기가 솔솔 풍긴다~!”
입문자가 모이는 던전 답게, 던전은 수많은 각성자들로 우글우글거렸다. 왕호는 게이트 근처에 트럭을 주차하고는,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왕호는 내리자마자, 트럭의 옆면에 휴대용 칠판을 걸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칠판에는 한 줄의 글이 더 추가되어 있었다.
<오늘의 메뉴>
-소고기 스테이크, 단돈 8,000원!!!
-몬스터 남은 사체(살코기) 대신 처리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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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마친 지 30분이 지났다. 이상하게 손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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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올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트럭을 지나쳐갔다.
왕호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한번 후각 자극 전략을 펼쳤다. 승률 100%의 전략이다.
치이이익-
고기가 구워지는 고소한 향이 게이트 앞을 물들인다. 그 치명적인 향기에 몇몇 사람들이 왕호의 트럭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몇몇은 입가에 흐르는 침을 소매로 슬쩍 닦을 정도였다.
‘안 오고는 못 배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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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만 배기더라.
우적우적-
왕호는 꾸깃꾸깃해진 표정으로, 다 식어버린 스테이크를 억지로 욱여넣었다.
‘왜지?’
왜 안 팔리는 거지?
왕호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분명 각성자들은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스테이크에 관심을 보였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상당히 먹고 싶어 한다는 걸. 허나, 결국 팔리지 않았다.
상당히 심란해진 왕호의 눈에, 아까부터 트럭 앞을 서성거리는 인물이 포착됐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자였는데, 등에 거대한 철제 방패를 짊어진 남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트럭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게이트로 들어가는 각성자들과 달리, 남자는 계속해서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왕호는 좀 더 그를 관찰했다.
‘저 사람··· 나랑 같은 부류네.’
짠돌이다. 분명, 돈이 아까워서 망설이는 것이 분명했다. 같은 부류기에, 조금만 지켜봐도 알 수 있었다.
여유가 있다면 한 끼 배불리 먹여주고 싶었지만, 이 트럭은 무료 급식소가 아니다. 왕호는 돈을 벌어야 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는 게 좋다. 벌지는 못할지언정,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는 안타까웠다.
‘원가로 만들어 주면서, 정보나 캐자.’
이 던전에 대한 현장 정보와 사람들이 왜 스테이크를 애써 외면하는 지 들을 수만 있다면, 손해는 결코 아니다. 글로 읽는 던전과 현장 사람에게 직접 듣는 것은 분명 느낌이 다를 테니까.
왕호가 서성거리는 남자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스테이크 한 점 하시겠습니까? 첫 손님이라서 반값에 드릴게요!”
혹여나 부담을 느낄까, 자본주의적인 미소도 잊지 않았다.
“저, 정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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