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잘나가는 건 아니다 (1)
남자는 왕호가 말을 바꿀까 싶어, 트럭 앞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귀한 스테이크를 맛볼 생각에,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완전 순둥이네.’
남자의 얼굴은 개미 한 마리 못 잡을 만큼 순해 보였다.
치이익-
왕호는 스테이크를 구우면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레이드는 언제부터 뛰신 겁니까?”
“이 던전에 온 지는 한 달이 훌쩍 넘었습니다. 벌써 두 달도 다 되어가네요. 사장님은 여기 처음이시죠? 푸드트럭은 저도 처음 봅니다. 아니, 여기 오기 한 달 전부터 던전에 대한 공부를 했는데 밥차가 돌아다닌다는 것은 듣지도 못했죠.”
“예. 오늘이 던전 처음입니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되네요 하하.”
왕호는 정보를 얻으려 남자를 부른 거지만, 자신의 입에서도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반값 할인을 했다 해도, 어쨌든 한 시간 만에 마주친 첫 번째 손님이다.
“다들 먹고살기 힘드니 밥 사 먹는 것도 쉽지가 않죠. 사장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혹시··· 각성자십니까? 던전 밖에서 장사하시는 걸 보니, 일반인인 것도 같은데··· 일반인은 거의 못 들어오거든요.”
“예. 각성잡니다.”
“오오, 클래스가 어떻게 되십니까?”
“칼잡입니다.”
“이야~ 고기 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검을 쓰는 분이셨군요.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전사계열입니다.”
처음 봤을 때는 상당히 어두운 얼굴의 손님이었지만, 같은 전사(?) 계열의 사람을 만나서인지 얼굴이 조금은 풀어져 있었다.
왕호는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매쉬드 포테이토와 구운 채소를 곁들여 남자의 앞에 놓았다.
모락모락-
뜨뜻한 김이 식욕을 절로 자극한다. 아침을 미숫가루 한 잔으로 간단히 때운 남자에 배에서는, 어서 빨리 저 고기를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맛있게 드세요.”
“예!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뭉쳐진 4천 원을 꺼내 올리고는, 그대로 스테이크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쫩쫩쩝쩝-
고기가 부드럽게 씹히고, 농밀한 육즙이 팍! 하고 터져 나온다. 스테이크의 자극적인 맛에, 남자의 뇌에서도 신경 물질이 뿅뿅 쏟아졌다.
“와아··· 정말 맛있습니다! 소고기가 이렇게나 맛있다니······.”
남자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빠른 속도로 스테이크를 빨아들였다.
식도락을 즐기기 힘든 그의 상황에서는, 소고기란 상당한 고급 재료에 속한다. 해서, 거의 사 먹지 않는다. 가장 최근에 섭취한 소고기는, 작년 추석에 먹은 육전이 마지막이었다.
“하하, 천천히 드세요. 체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여기 상황은 어떻습니까?”
왕호는 할인된 4천 원 어치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슬쩍 말을 붙였다.
“쩝쩝, 여기야 뭐 다른 곳이랑 똑같습니다. 재능있는 사람들이야 금방 캐스팅돼서 졸업하고, 저 같은 사람들은 밥 벌어먹기도 쉽지 않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자, 남자의 마음이 스스르 풀어졌다. 그의 입에서 하소연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남자의 이름은 강창모였다. 대학을 졸업한 지 4년째 되는 그는, 석 달 전 각성하게 됐다고 했다.
“···전 사실 전사 중에서도 탱커 계열입니다. 상당히 귀족군에 속하죠. 비루한 삶을 살던 저에게 이런 축복이 내려왔을 때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오리진에서도 다들 축하해줬죠. 탱커면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강창모는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정보 모으는 데만 집중했다. 그만큼 그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리하여 좋은 레벨 업 장소이자, 등용문인 이곳 실버폭스 던전으로 오게 됐다.
강창모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데··· 이론과 실전은 너무도 다르더군요. 몬스터 앞에 서니, 오금이 저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운 좋게 파티를 맺어 13레벨까지 찍긴 했습니다. 요샛말로 버스 탔다고들 하죠. 그것도 이제 저번 주 얘깁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경험치를 올릴 수가 없습니다.”
강창모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왕호는 그런 강창모에게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런··· 그래도 탱커계열이니, 길드에서 잘 받아주지 않습니까? 길드에 들어가면,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하하,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두 달째 매니저들 눈에 들려고 숱한 노력을 했는데··· 저 같은 쫄보는 탱커라도 받아주지 않더라구요. 사장님도 전사계열인데, 여기서 장사하시는 걸 보니 제 마음이 이해 가시죠?”
강창모는 왕호도 자신과 같은 처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검을 다루는 전사인데, 여기서 장사를 하는 것을 보니 몬스터를 무서워 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아, 예. 저도 이해합니다.”
사실 몬스터를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어, 이해는 가지 않았지만 맞장구를 쳐줬다.
왕호도 강창모가 안쓰럽긴 했다. 그의 순둥순둥한 얼굴이 말해주는 것처럼, 정말로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그 심성이 얼굴로 올라온 것이 아닐까 싶다.
“에휴, 좋은 클래스를 얻고도 왜 이 모냥인지 모르겠습니다. 길드에 들지 못하면, 상위 던전 가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레이드 접어야 하는지나 모르겠습니다. 저랑 같이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미 다 졸업했는데······.”
푹-! 우물우물-
강창모는 아껴놨던 마지막 스테이크 한 점을 입에 넣고는, 짙은 회상에 잠겼다.
각성했을 때만 해도, 인생 꽃길만 걸을 줄 알았건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
강창모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1년 동안 취업 준비에 힘을 쏟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학자금 대출과 알바를 병행하면서 수도권 대학을 겨우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신입사원을 리크루트하는 기업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바늘구멍을 뚫기에는, 그가 가진 스펙은 너무 볼품없었다.
청춘(靑春).
푸를 청(靑). 봄 춘(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네 나이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은 개뿔!
누구나 저마다의 꿈이 있다.
지금의 청춘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는 자는 극히 드물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 요새는 개천에 공구리를 쳐놔서 용이 나올 수가 없다.
결국 1년의 시간을 취업 준비로 허비한 강창모는, 발걸음을 돌려 노량진으로 향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는 공무원 시험뿐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좋게 고향에 있는 국립대를 갈걸.’
그랬다면, 등록금과 자취비용이라도 아낄 수 있었을 거다.
노량진에 들어간 강창모는 한 달에 22만 원을 받는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의지를 불살랐다. 과연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런 생각도 점차 잊혀졌다. 식사는 싸구려 고시식당에서 해결했다. 가끔가다 컵밥도 사 먹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매번 아까운 점수 차로 낙방했다. 해가 지나면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그만큼 경쟁자도 늘었다. 결국 3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인정할 수 있었다.
이 길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3년 차 결과가 발표되고, 강창모는 어머니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들~ 멀리서 공부하느라 힘들지? 엄마는 널 믿는다. 이번 시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마렴. 언젠가는 밝은 빛이 널 환히 비출 거란다. 그때까지 항상 의지를 잃어서는 안 된다. 알았지? 우리 아들 사랑한다!
정이 가득 느껴지는 어투에, 강창모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마치 양수기가 터진 것마냥, 바닥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어머니에게 죄송하다고,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
띠링-!
[각성하셨습니다.]
[클래스 “방패 전사”로 전직하였습니다.]
강창모는 악착같이 모아 둔 한 줌의 돈을 싹싹 털어, 거대 철제 방패를 사고는 던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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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커니임!!!”
파티의 오더를 맡은 여자 마법사가 악에 받쳐 소리친다.
“으으으···”
하지만 강창모의 귀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고, 그는 자신의 거대한 방패 뒤에 주저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최전방에 있는 방패 전사가 굳어있자, 실버폭스는 그대로 방패 전사를 뛰어넘었다.
그르르릉- 탓-!
실버폭스의 목표는 가만히 얼어있는 탱커가 아닌, 뒤에서 공격을 일삼는 원거리 딜러였다.
“파이어 볼!”
슈우욱-
펑-!
공중으로 점프한 실버폭스의 얼굴에, 마법이 정확히 적중했다.
끼이잉-
여자 마법사의 기지 덕에, 실버폭스는 불에 탄 채로 고꾸라졌다.
“아, 뭐하시는 거예요!!!”
마법사가 강창모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주변의 다른 동료들의 표정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눈빛에서 스파크가 찌릿 튀어나온다.
“죄, 죄송합니다!”
강창모는 고개를 팍! 숙이며 사과했다.
“하, 죄송하면 다예요? 탱커라고 해서 받아줬는데, 순 쫄보시네. 몬스터 중에 제일 약하다는 실버폭스를 보고도 그러면 어떡해요! 오히려 파티에 방해되잖아요. 으휴, 이젠 같이 못 뛸 거 같네요. 이만 나가주세요.”
“네······.”
익숙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탱커라고 하니, 받아주기는 오지게 잘 받아준다.
하지만, 두세 번 전투하고 쫓겨나기 십상이었다. 100번도 넘게 쫓겨난 것 같다. 그래도 그 두세 번으로, 조금이지만 경험치가 찔끔찔끔 쌓였다. 결국 레벨 13을 찍었다. 더 이상 경험치가 오르지 않았지만, 레벨 1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자아자! 할 수 있다 창모야! 제발 이번에는 쫄지 말자! 그냥 귀여운 애완 여우라고 생각하란 말이야! 노량진으로 다시 돌아갈래 새꺄? 정신 좀 단디 차리자 제발!’
짝- 짝-
창모는 자신의 손으로 뺨을 때려가며 속으로 다짐했다. 몇 번이나 주문을 외운 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버폭스와 마주치는 순간 몸은 바로 굳어버린다. 메두사의 눈을 마주한 것마냥 그대로 석화된다. 목이 턱! 막혀 숨조차 쉬기 힘들다.
실버폭스의 시뻘건 눈알을 보고 있노라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식은땀이 흘러나와 등골을 축축히 적신다. 눈은 학창 시절 일진을 마주한 것처럼, 자동으로 땅바닥을 향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방패를 꼭 쥔 손이 덜덜 흔들린다.
도저히 어떻게 고칠 수가 없었다.
꼬르르륵-
한 거라고는 쫄아있던 것밖에 없는데, 야속한 배꼽시계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다.
강창모는 터덜터덜 걸으며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킁킁-
빠져나오자마자, 고소한 향기가 그의 코를 자극한다.
눈을 돌리니, 푸드트럭에서 스테이크가 맛있게 구워지고 있다.
꿀꺽-
‘와··· 고기다··· 헉! 8천 원이나 하네······.’
너무 비싸다. 한 끼에 3천 원 이상 쓰지 않는 게 그의 철칙이다. 당장 이번 달에도 생활비가 궁하다.
그래도 너무 먹고 싶다.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처럼 보였다. 배가 고파서 더 그래 보이나? 눈 딱 감고 사치 한 번 부려봐?
절레절레-
강창모는 고개를 흔들어, 호사스런 생각을 떨쳐냈다.
한참을 망설이는 그에게 푸드트럭 사장님이 말을 건넸다. 첫 손님은 반값에 준단다.
4천 원······.
원래 3천 원 이상은 식비로 쓰지 않지만, 저것만으로도 엄청난 이득이다. 강창모는 혹여나 누가 첫 자리를 뺏어갈까 싶어, 재빨리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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