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8화 (18/149)

모두가 잘나가는 건 아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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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습니다. 제가 먹어본 음식 중에 단연 으뜸입니다.”

아스파라거스까지 싹싹 긁어먹은 강창모가, 왕호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다.

“하하,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완전히 파리 날리게 생겼습니다.”

강창모가 맛있게 먹어줘 기분이 조금 나아졌지만, 손님이 너무 없어 걱정되는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음··· 여기엔 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대박의 꿈에 부풀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한 끼 식사로 8천 원을 쓰기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밥이 없어서 포만감도 그렇게 크지 않구요. 게다가 도시락을 가져와서 안 사 먹는 사람도 꽤 있겠죠. 아, 혹시 카드도 받으시면 칠판에 적어놓으세요. 푸드트럭은 현금만 받는다고 아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가끔가다 금수저들이 보이니까, 너무 상심하지는 마십시오.”

왕호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역시 단가가 문제였다.

“여기에도 금수저들이 있나요?”

“그럼요! 제가 여기 근 두 달 동안 관찰한 결과,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값비싼 마도구들로 온몸을 칭칭 감은 놈도 있었고, 심지어는 그 귀하디귀한 힐러를 고용해 쩔받는 놈들도 있었습니다.”

“쩔이요? 레이드에도 그런 게 있나요?”

왕호의 눈이 호기심으로 번쩍였다.

RPG 게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아주 흥미로웠다.

“다른 클래스로는 조금 힘듭니다. 힐러는 그나마 쉽게 가능하죠. 안 그래도 귀족인데 아주 좋은 부분은 다 갖췄습니다. 파티를 이루어 사냥하게 되면, 경험치가 분산되죠. 일단, 금수저들은 몹과 일대일로 싸웁니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힐러는 힐만 넣어주죠. 아직 체력이 높지 않아서 기여도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험치의 대부분을 독식할 수 있죠. 레벨 업 속도가 월등히 빠릅니다. 이걸 이용해서 홍보하는 길드도 있습니다. 쩔을 약속하고 계약하는 거죠.”

“그렇군요. 여기도 출발선 자체가 다르네요.”

왕호가 씁쓸하게 웃었다. 요리계에서도, 밀어주는 스타 셰프나 각성자 셰프는 그 출발 선상부터 달랐다. 같은 재능일지라도, 누구는 훨씬 앞에서 출발하니 정당한 게임이 될 리가 없다. 금수저 스타 셰프 중 한 놈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이라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거기서 따져봤자 자신만 손해였다.

“아, 여기에 길드 매니저들도 있으니까 아주 안 팔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이거··· 다들 안 먹어봐서 그런데, 먹어보면 아마 다시 안 사 먹고는 못 배길 걸요? 아마 사채라도 쓰려고 할 겁니다. 그··· 뭐랄까, 강원랜드가 생각나는 맛입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조언대로 메뉴를 바꿔보든지 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팔리는 데까지 팔고, 내일은 좀 더 저렴하고 양 많은 걸로 가져올게요. 내일도 오셔서 맛보고 가세요.”

“알겠습니다. 내일은 꼭 제값 주고 먹겠습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꾸벅-

강창모가 고개를 숙였다. 파티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지만, 왕호에게는 정말정말 고마운 마음이 컸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창모님! 용기를 잃지 마세요! 창모님은 쫄보가 아닙니다. 진정한 겁쟁이는 도전조차 하지 않습니다. 각성이라는 9부 능선을 넘었으니, 이제 봉우리 하나만 넘으면 됩니다.”

왕호는 손을 흔들어, 강창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깊이 내재된 두려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처음에야 어렵지, 한 번 뛰어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왕호도 잘 안다. 생선 손질을 배울 때, 참 힘들었었다.

강창모가 지나간 자리는 무척이나 깨끗했다. 플라스틱 의자도 안쪽으로 넣어놨으며, 쓰레기도 잘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었다. 흘린 소스 한 방울까지도, 일어서기 전에 깨끗이 닦았다. 기본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지 않나.

강창모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들으니, 왕호도 그가 잘 되길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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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모의 말대로, 아주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물에 콩 나듯, 손님들이 가끔 들렀다. 지갑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개중에는 길드에 속한 스카우트 매니저도 존재했다.

“오호, 던전에서 밥차라··· 아마 사장님이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자신을 중소 길드의 매니저라 소개한 남자가, 매우 신기해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매번 나가서 사 먹거나, 시간이 없을 땐 도시락으로 해결했는데··· 이것도 꽤나 사업아이템으로 좋겠네요. 대신 각성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뭐, 사장님같이 레이드 못 뛰는 각성자도 허다하니······.”

상당히 출출했는지, 매니저는 스테이크를 2인분이나 주문해 해치웠다.

꺼어억-

매니저는 빵빵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감을 표했다.

“으하, 진짜 맛있네요. 아주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 혹시 다른 던전에 가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다른 던전요?”

“저희 길드원에게도 한 번 맛 보여주고 싶네요. 전속계약이라도 해서, 저희 독점 던전으로 모시고 싶을 정돕니다. 이거 한 번 대표님에게 말해봐야겠네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오늘이 던전 첫날이라고 하셨죠? 궁금한 점 있으면 뭐든 물어보세요.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니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좋은 기회다. 길드의 매니저는 레이드 사업에 깊게 종사하는 만큼, 고급 정보도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신인들은 보통 이곳에서 발굴합니까?”

“그렇죠. 대형 신인들은 여기와 용인에서 많이 낚아옵니다.”

“용인이요?”

“용인에도 초급 던전이 있는데, 거기는 B형 던전이죠. 두 던전의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두 군데에 다 스카우터를 보내 놓습니다.”

왕호는 아침에 오리진에서 얻은 정보를 떠올렸다.

던전은 크게 A형과 B형으로 나뉜다.

A형은 비교적 약한 몬스터가 여러 마리 나타나는 곳이고, B형은 강한 몬스터가 소수로 나타나는 곳이다. 어떤 던전에는 딱 한 마리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300명 이상의 레이더들이 공격대를 이루어 레이드 해야 하는 거대 몬스터도 있다고 들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B형에는 발 한 발자국도 안 내밀어야지.’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수가 있다.

왕호는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매니저가 기분 좋을 때, 아주 뽕을 뽑아야한다.

“탱커들은 보통 서로 데려가려고 하지 않나요?”

“대부분은 그런데··· 그것도 탱커 나름이죠. 제가 눈여겨보는 탱커 중에 지독한 겁쟁이 하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데려가면 오히려 손해죠.”

‘창모님인가 보네······.’

매니저들 사이에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는 강창모였다.

“길드는 꼭 들어가는 게 좋습니까? 수익의 일부분을 상납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음··· 제가 길드 소속이라 드리는 말이 아니라, 길드에 속하지 않으면 뭘 하기가 정말 어렵죠. 일단, 독점 던전을 들어갈 수도 없고, 독점이 아니더라도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어서 웬만한 능력 아니고서야 힘들다고 보시면 돼요. 잘 나가는 힐러이거나, 달빛여제처럼 무쌍이라면 프리랜서가 오히려 수익이 더 높을 겁니다. 아, 그녀도 원래는 길드와 계약했다가, 기간이 끝나서 프리랜서로 전향했죠.”

“그렇군요.”

“혹시 주변에 놀고 있는 힐러나, 좋은 각성자 있으면 저한테 연락 주세요. 명함 놓고 가겠습니다. 저희 길드가 규모는 중간밖에 안 되지만, 다른 곳처럼 돈 떼먹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아까 말한 달빛여제도 유명 길드와 계약했는데, 독소조항 때문에 3년 동안 제대로 정산을 못 받았었죠. 거의 150억은 넘게 벌어줬을 텐데, 1년에 3억 정도 받았으려나? 뭐, 그 정도만 해도 우리 같은 샐러리맨한테는 엄청난 액수지만요. 저희는 전문 변호사님께 공증을 받아서 계약하니,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계약 같은 건 걱정 안 한다. 실력이 엄청난 변호사 아저씨도 하나 알고 있다. 아니, 애초에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레이드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몬스터 고기를 이용해 요리 스킬을 올리고, 장사 대박 치려고 온 거니까.

왕호는 마지막으로 아까부터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혹시··· 제가 칠판에 써놓은 내용 보셨습니까?”

“아, 몬스터 남은 사체 처리한다는 거요? 몬스터 살코기는 대체 어디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요리사다 보니, 연구 좀 해보려구요.”

“식용 연구는 정부 기관에서도 계속 연구 중인데, 죄다 실패한 걸로 압니다. 뭐, 그래도 연구하는 건 자유지만 남은 사체는 구하기 힘들 겁니다 아마.”

“예?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쓰레기 취급받는 사체를 처리해 준다고 했지만, 관심 가지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필시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몬스터 고기는 마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살코기는 매매가 금지되어 있죠. 몇 달 전에, 중국에서 대량으로 몬스터 살코기를 팔다가 적발됐습니다. 무슨 이상한 약품을 써서 마기를 감췄다는데, 결국엔 발각됐죠. 정말 못 만드는 게 없는 나랍니다. 그것 때문에 법이 더 강화됐습니다. 살코기는 정부 기관에 연구용으로 기증하던가, 아니면 그냥 버리는 수밖에 없어요.”

“허, 오리진에서는 못 본 내용인데··· 그럼, 구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까?”

“없지는 않죠. 사장님이 직접 잡으시면 되잖아요. 사는 게 아니니까 어찌 막겠습니까.”

뜻밖의 해결책에, 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직접 잡는다라······.

정육점 사장님처럼 아는 레이더에게서 얻어내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것도 역시나 불법임이 뻔하다. 매매가 안 된다면, 당연히 증여도 안 될 거니까.

결국 직접 잡는 방법이 유일한데, 과연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전투를 위한 스킬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괜히 나섰다가 다치기라고 한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생긴다.

‘그냥 일반인들 상대로 계속 장사해야 하나······.’

왕호의 고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일단은, 몬스터 고기를 구해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싶었다.

‘내일도 와서 확인해보자. 한 마리만 어찌어찌해서 구하면 된다.’

파티를 맺어, 맛있는 요리로 사기를 북돋워 준다든지, 옆에서 안마를 해준다든지, 별의별 방법을 쓴다면 한 마리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집으로 돌아온 왕호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오늘 장사는 완벽히 적자다. 매니저가 나가고 나서 몇몇 손님이 더 오긴 했지만, 그래도 고기가 많이 남았다. 심지어는 기름값도 못 벌었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위안거리다.

그래도 메뉴를 바꿔 한 번 더 도전해볼 생각이다.

메뉴는 강창모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미 결정을 내렸다. 강창모가 고시생 시절 얘기를 꺼낼 때, 딱 이거다 싶었다.

노량진 고시생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왕호도 고등학교 때 알바하면서 수차례 만들어본 음식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쌀 사러 가야겠네.’

쌀은 아무래도 이천 쌀이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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