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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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난 왕호는, 시장에 들러 각종 재료를 구입했다. 마케팅 전략을 바꾼 만큼, 재료의 종류도 엄청나게 늘렸다.
왕호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트럭을 대고, 칠판을 꺼냈다.
어제 적어놓았던 글을 쓱싹 지우고는, 새로운 내용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슥슥-
적을 것이 많았는지, 이번에는 꽤나 오랫동안 칠판을 들어야 했다.
<오늘의 메뉴>
-치킨마요 컵밥 3,000원 / 베이컨 스팸 컵밥 3,000원
-삼겹살 김치 컵밥 3,500원 / 김치계란 컵밥 2,000원
-스테이크 데리야끼 컵밥 4,000원 / 황제 스테이크 8,000원
-카드결제 가능! 현금영수증도 가능!
예쁘게 글씨를 적은 왕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칠판을 내걸었다. 손재주 스탯이 올라가서 그런지, 글씨 또한 나날이 발전하는 모양새다.
‘평소보다 손이 많이 가겠네. 그래도 많이 팔아야 남는다!’
왕호가 정한 메뉴는 “컵밥”이었다.
마케팅 전략도 바꿨다. 고급스런 한 가지 메뉴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메뉴를 여러 개 놓기로 했다. 손님들의 선택권을 넓혔다.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고, 취향도 같이 고려했다.
얼핏 보면 메뉴가 여러 개 같지만, 실상 다 같은 메뉴다. 전부 철판에 볶거나 구워서 만든다. 넓은 철판이 설치되어 있으니, 여러 재료를 동시에 조리할 수 있다. 손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면 된다.
혹여나 어제와 같은 메뉴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거란 생각에, 스테이크도 메뉴에 추가했다.
왕호는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갓 도정된 싱싱한 쌀은, 차에 시동을 걸기 전 미리 취사 버튼을 눌러놓았다.
일단, 사 온 재료를 모두 꺼내 펼쳤다.
“흣챠!”
식감을 살려줄 쪽파는 미리 송송 썰어놓는다.
컵밥에 들어갈 양반김도 가위로 미리 잘라둔다.
소스도 만든다.
슉슉-
버터를 잔뜩 넣은 마요네즈 소스, 그리고 볶은 양파를 넣어 끓인 데리야끼 소스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치킨마요에 들어갈 발골된 생닭을 꺼냈다.
조물조물-
닭고기에 가볍게 밑간을 하고는 철판에 후두둑 쏟아부었다.
치이익-
구워서 사용할 거기 때문에, 미리 노릇노릇하게 구워둔다. 식으면 그때그때 다시 철판에 올려 데울 생각이다.
오븐이 있었다면 기름기가 쫙 빠진 담백한 순살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도 사용해야 한다.
이제 남은 재료는 주문받는 대로 볶아서 내주면 된다.
닭고기만 살짝 구웠을 뿐인데, 닭 껍질의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퍼져나간다.
킁킁킁-
어제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코를 자극하는 향기에 시선을 트럭으로 돌렸다.
어제라면 군침만 꿀꺽 삼키고 그냥 지나쳐갔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어? 저거 어제 온 밥차 아니야? 메뉴 바뀌었네?”
“헐! 컵밥이다! 가격 봐봐. 노량진 컵밥거리인 줄?”
“저 정도면 이따가 도시락 사러 안 나가도 되겠는데?”
“살짝 출출한데, 먹고 뛰는 건 어떠냐?”
“콜!”
이번에는 각성자들이 꽤나 관심을 보인다.
서로 파티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 그룹 하나가 다가왔다.
“아저씨! 여기 치킨마요 하나 주세요!”
“저도 치킨마요로 주세요!”
“그럼, 나도 치킨마요!”
치킨을 방금 구워서 그런지, 전부가 치킨마요를 주문했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장사 준비를 마친지 5분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어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12배나 더 빠른 페이스다.
왕호는 활짝 웃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슥삭- 슥삭-
먼저, 껍질이 노랗게 잘 구워진 닭고기를 도마에 올려 썬다. 먹기 좋게 네모나게 썰었다. 너무 잘게 다지지는 않는다.
달궈진 철판엔 기름을 휙휙 두르고, 계란 여러 개를 까서 투하했다.
탁- 탁-
달걀을 한 손으로만 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오오오.”
지켜보는 각성자들이 감탄한다.
치이이이-
뜨거운 철판에 날달걀이 닿자 순식간에 익기 시작한다.
휙- 휙-
왕호는 익어가는 프라이를 마구 저어 스크램블 에그로 만들었다.
솔솔솔-
계란이 다 익기 전에 소금을 소금소금, 후추를 후추후추 뿌렸다.
요리법은 상당히 간단하다. 이제 조리된 재료를 동그란 종이 그릇에 담기만 하면 된다.
밥솥을 열어 뜨뜻한 밥을 넉넉히 퍼넣는다. 그 위에 치킨마요의 재료인 구운 치킨, 스크램블 에그, 송송 썬 쪽파를 넣는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 놓은 데리야키 소스를 붓고, 그 위에 마요네즈 소스를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구마구마구 뿌렸다.
마지막으로 김을 살포시 올려 화룡점정을 그린다.
-맛있는 치킨마요 컵밥-
[부드러운 치킨 살과 자극적인 소스의 궁합이 환상적이다.]
[갓 지은 쌀밥과 고소한 마요네즈가 잔뜩 들어가 있다.]
[칼로리가 상당하다.]
[효과 : 포만감이 오래 유지되어 든든합니다.]
“자, 맛있게 드세요!”
왕호는 완성된 요리를 재빨리 건넸다.
순식간에 컵밥이 완성되자, 손님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초패스트 푸든데?”
“방금 5분도 안 걸렸지?”
“빠르니까 좋네. 우리도 빨리 쳐묵하고 레이드 뛰러 가자.”
휘적- 휘적-
손님들은 플라스틱 수저로 컵 속의 밥을 휙휙 섞었다.
그리고 누구랄 것도 없이, 맛있게 섞인 밥을 한 움큼 퍼서 입속으로 가져갔다.
얌- 우물우물-
“오오!”
손님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한다.
“와, 맛좋네!”
“그니까 3천 원인데 도시락보다 10배는 낫다.”
“양도 많네. 혜자다 혜자야.”
“아저씨, 저녁에도 장사해요?”
손님 하나가 묻는다.
“음··· 그건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재료 떨어질 때까지는 할 생각입니다.”
“헉! 그럼 재료 다 떨어지기 전에 나와서 먹어야겠네요!”
말을 마친 손님은 말없이 컵밥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컵밥은 금세 동났다. 동료들까지 그릇을 싹싹 비우자 재빨리 계산을 끝냈다.
그리고는 동료들을 데리고 게이트 안으로 사라진다. 후딱후딱 끝내고 저녁을 빨리 먹으려는 궁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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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대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장사가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컵밥은 빠르게 빠르게 팔려나갔고,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공간 또한 순식간에 회전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컵밥을 만들다 보니, 조금 한가해지는 텀이 찾아왔다. 이제 조금 쉴 수 있나 싶었는데··· 멀리서 손님 한 명이 후다닥 달려온다. 남자는 등에 거대한 방패를 맨 채, 달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장님! 오늘도 나오셨네요.”
반가운 얼굴인 강창모였다.
“하하, 반갑습니다. 창모님 조언대로 메뉴 바꿨습니다.”
“와, 컵밥이네요! 노량진 처음 왔을 때, 거의 매일 먹었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일단 앉으세요. 한번 드셔보시고 맛 평가 부탁드립니다.”
왕호가 반갑게 맞이하자, 강창모도 환하게 웃으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흐음······.”
강창모는 메뉴판을 살펴보더니, 이내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결심한 듯 왕호를 향해 당당히 외쳤다.
“사장님! 스테이크 데리야끼 컵밥으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제값 다 지불할 겁니다.”
강창모는 컵밥 중에 가장 비싼 컵밥을 주문했다.
왕호는 그런 강창모의 모습에, 살포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제 반값으로 먹은 것이 고마워서, 가장 비싼 컵밥을 시킨 것이다.
‘레드혼 카우가 한 덩이 남았으니까, 그걸로 만들어 줘야겠다.’
애정이 가니 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었다.
왕호는 냉장고에서 랩으로 둘둘 쌓인 고기 한 덩이를 꺼내 밑간했다.
시즈닝 된 고기가 식기를 기다리면서 창모에게 말을 살짝 건넸다. 어제 못하단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어제는 장사가 잘 안 돼 왕호도 심란해진 터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었다.
“창모님.”
“네?”
“사람들이 왜 일요일보다 금요일을 더 좋아하는 줄 아세요?”
“음··· 글쎄요? 일요일은 다음날 다시 출근해야 하니까요?”
“맞아요. 제가 포차를 운영했을 때도, 금요일이 압도적으로 손님이 많았죠. 그때 느꼈습니다. 인간은 오늘을 보고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을 보고 산다는 걸요. 바꿔 말하면, 지금이 행복하면 비루했던 과거는 그저 추억이 되는 거죠.”
강창모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왕호가 하는 이야기의 요지를 찾으려 애썼지만, 아직까진 요원했다.
왕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대학 졸업하고 레스토랑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정말 고달팠습니다. 선배들한테는 매일매일 맞으면서, 하루에 고작 네 시간밖에 못 잤죠. 레스토랑을 때려치기 직전에 생각해보니, 내가 왜 여길 들어왔나 후회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각성하고 작게나마 제 장사를 시작하고 나니, 그때가 마치 추억처럼 느껴집니다. 창모님도 그 두려움을 극복해내고 나면, 지금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너무 오늘을 걱정하며 상심하지 마세요. 아, 이제 고기 구우면 되겠네요.”
왕호는 고기가 어느 정도 녹자, 빠르게 철판에 올렸다.
치이이익-
강창모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왕호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밥차 사장님에게 이러한 위로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왕호는 후다다닥 요리를 하면서도, 계속 입을 움직였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았다.
“이 험난한 세상 악착같이 살다 보니, 마음이 점점 팍팍해지더라구요. 그때마다 항상 저 자신을 채찍질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좀 살자고. 긍정적인 마음을 계속 가지려고 노력하니, 정말로 버틸 만 하더군요. 지금 창모님은 거대한 두려움에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그 큰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창공을 뚫고 훨훨 날아갈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탱커가 되겠죠. 자, 여기 컵밥 나왔습니다.”
요리는 순식간에 끝났다.
왕호는 스테이크가 부채꼴 모양으로 예쁘게 올려진 컵밥을 창모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
[힐링 요리 “두려움을 힐링하는 레드혼 카우 스테이크 컵밥”이 완성되었습니다.]
[첫 번째 힐링 요리를 완성하였습니다.]
[개방된 “힐링 요리사” 능력에 따라,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고유 스탯 “치유력”이 생성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1]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두려움을 힐링하는 레드혼 카우 스테이크 컵밥-
[방패 전사 “강창모”를 위한 요리.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상하라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노량진 시절 눈물 젖은 컵밥의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채끝살의 육즙이 매우 풍부하며, 데리야끼 소스와의 궁합이 탁월하다.]
[칼로리가 높아, 포만감이 오래 지속된다.]
[효과 : 최대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맷집이 10% 상승합니다. 체력회복속도가 80%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손님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버프 : “용기백배”가 발동됩니다. 이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용기백배 – 두려움이 용기로 치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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