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2)
헙-!
왕호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에 정신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힐링 요리?’
평소에는 없던 특이한 문구를 확인하자, 왕호의 동공이 넓어진다.
각성을 하고 많은 요리를 만들어 왔지만, 방금과 같은 임팩트는 없었다.
스탯의 상승은 물론이고, 스킬형 버프 효과까지 생겨났다. 고유 스탯인 “치유력” 또한 생성됐다.
‘이게 개방된 힐링 요리사의 능력 중 하나인가?’
중급 요리가 생겨나면서, 클래스의 개방이 이루어졌다. 아직까진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조금 전, 모든 스탯이 상승했다. 레벨이 거의 두 단계 오른 거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이득이다.
저 힐링 요리를 보아하니, 왜 자신의 클래스가 그냥 요리사가 아닌 “힐링 요리사”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라는 의미일 거다. 그렇기에 치유력이라는 스탯도 생겨났을 테지.
‘그렇다면, 힐링 요리가 만들어지는 필요조건은 뭐지?’
정확한 조건은 아직까진 알 수 없는 상태이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니 몇 가지는 유추 가능했다.
몬스터를 이용한 요리, 상처에 대한 공감, 그 사람만을 위한 요리, 추억이 담긴 요리 등등······.
이 모든 조건이 다 충족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일반 재료를 사용해도 힐링 요리가 완성되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이제 첫 번째 힐링 요리를 만들었고, 한 개의 표본으로는 어떠한 것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으니까.
강창모는 왕호가 건네준 컵밥을 두 눈으로 계속해서 응시했다. 어제 먹었던 스테이크처럼, 게눈 감추듯 먹어치울 수가 없었다.
왕호가 던진 말은 비수가 되어 강창모의 심장을 푹! 찔렀다. 안 좋은 의미는 아니다. 마치, 혈관을 꽉 막고 있던 찌꺼기를 거둬내는 그런 비수다.
널따란 종이컵에 담긴 덮밥을 보자, 노량진에 처음 입성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강창모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찔러 밥을 퍼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뜻한 밥은, 길쭉하게 썰어진 연분홍빛 고기 이불을 덮고 있었다.
숟가락이 슬며시 움직인다. 천천히 움직인 숟가락은 강창모의 입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빈 숟가락을 입에서 빼내고는, 턱을 두어 번 움직였다.
우적- 우적-
“흐으으······.”
강창모의 왼쪽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볼품없게 꺽꺽대지도 않았다. 그저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한 방울의 눈물만이 땅으로 떨구어진다.
불안, 공포, 좌절, 두려움, 그리고··· 겁.
이 복잡한 감정들이 눈물 한 방울에 집약됐다.
‘그때의 나는··· 외로웠어.’
터덜터덜-
취업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외로이 발걸음을 옮겨 노량진에 들어왔다.
두 평짜리 독방과 싸구려 고시식당에서 벗어나, 유일하게 그가 즐길 수 있던 것이 바로 이 컵밥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 기억이 그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결코 아니었다. 그저 고통스러운 기억 중 하나에 불과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그런 후회스런 기억 말이다.
취업에 대한 실패는, 두려움이라는 괴물을 낳았다. 그 두려움은 다시 실패를 잉태했고, 실패는 또다시 두려움을 쏟아냈다. 그렇게 4번의 실패가 거듭되자, 그의 목구멍에는 어느새 “겁”이라는 거대한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꿀꺽-
잘게 부서진 컵밥과 함께, 거대한 괴물이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강창모! 넌 외롭지 않아! 혼자가 아니잖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그리고 응원하는 동생들이 항상 그의 뒤에 서 있다. 한없이 볼품없다고 생각했던 자신도, 누군가에겐 반짝거리는 별이다. 그동안 이 사실을 잊고 살았다. 아니, 애써 외면했었다.
“후우우···”
강창모는 긴 날숨을 한 번 내쉬고는, 결심한 듯 컵밥을 마구 퍼 올리기 시작했다.
와작와작- 우걱우걱-
‘맛있어!’
가득 퍼 올린 밥 한 숟갈 한 숟갈이 그의 위장으로 내려갈수록, 가슴 속에 있던 상처도 서서히 부서져 같이 내려갔다.
꿀꺽-
마지막 한 숟갈이 식도를 타고 미끄러져 갔다.
“크으으~ 사장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노량진에서 처음 컵밥을 먹었을 때처럼, 싹싹 비웠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 먹었던 컵밥의 기억이, 하나의 아련한 추억으로 느껴진다.
왠지 체력도 더 올라간 것 같다. 기운이 마구마구 올라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기분 탓인가?
[손님이 당신의 요리에 엄청나게 감동했습니다.]
[요리의 효과가 2배로 상승합니다.]
“제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드셔주는 것만큼, 요리사에게 영광도 없죠.”
“사장님은 정말 말씀도 잘하십니다. 나중에 강연 같은 거 하셔도 참 잘하실 거 같습니다.”
“하하, 누가 저 같은 놈을 써주기나 할까요?”
써주지도 않을뿐더러, 왕호는 자신이 말을 잘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건네주었을 뿐이다.
“배도 든든하고, 오늘은 정말로! 해낼 것만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강창모는 어깨에 힘을 팍!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서는 태산 같은 의지가 활활 불타올랐다.
상태창을 열었다면 능력치가 올랐다는 걸 알았을 테지만, 왕호는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때로는 착각이 약이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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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모가 파티원을 구하러 나가고 나서는 조금 한가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두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진······.
‘내 달팽이관······.’
왕호가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볐다.
쩝쩝쩝쩝-
“우와아! 나 컵밥은 처음 먹어봐! 진짜 맛있어! 3천 원이 아니라 3만 원이라도 내고 먹겠다.”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대박이다! 맨날 가는 레스토랑보다 낫다 야.”
복스럽게 먹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어찌나 말이 많은지 귀가 다 따가울 정도였다.
재잘재잘- 왁자지껄-
그녀들의 입은 모터를 달아놓은 것마냥 쉬질 않았고, 왕호는 청소를 하면 조금은 안 들릴까 싶어 계속해서 조리대를 벅벅 닦고 있었다.
그런 왕호의 귀에, 뜻밖에도 솔깃한 대화가 들려왔다.
“근데, 우리 둘만으로 정말 레이드 뛸 수 있을까?”
“멘토님이 가능하다고 했잖아. 비싼 마도구도 샀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래두··· 전사라도 한 명 데려가야 되지 않나 싶어서······.”
창모님이 말했던 금수저들인가?
대화를 들어보니 얼추 그런 것 같았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둘 다 가죽으로 되어 있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 상황에 비춰보니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아직은 후덥지근한 날씨다. 가죽옷을 꺼낼 시기는 아니다. 아무래도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마법 방어구 같았다.
“음··· 그럼, 탱커라도 한 명 구해볼까?”
“그러자! 혹시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실버폭스가 약하기는 해도, 맞으면 아플 거 같아.”
“모르는 사람은 조금 무서워서 우리 둘이 온 건데 흐으음······.”
기회다!
왕호는 지금이 바로 몬스터 살코기를 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왕호가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저기··· 두 분 얘기하시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저도 그 파티에 낄 수 있을까요?”
멋쩍었는지, 왕호는 볼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두 각성자세요?”
금발로 염색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물었다.
“예. 얼마 전에 각성했습니다.”
“와··· 근데 왜 여기서 음식을 팔고 계세요?”
“하하, 요리하는 게 좋아서 하고 있습니다.”
“던전에는 들어가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아직 못 들어가 봤습니다.”
“움··· 저희도 오늘이 처음인데··· 혹시 클래스는 어떻게 되시나요?”
여자는 살짝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호는 망설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고까워하진 않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만약 입장이 바뀌었더라도, 똑같이 난색을 보였을 거다.
두 사람도 던전을 들어간 적이 없는 초보인데, 생판 모르는 남자가. 그것도 같은 초보가 파티에 끼워주라니··· 안 들어주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이 손님들은 왕호의 말이라도 계속 들어주고 있었다.
“칼 쓰는 클래스입니다.”
“아··· 검사시구나··· 그럼 탱커는 아니겠네요? 흐음······.”
“예. 사실 두 분께서 하시는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아,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조리대가 워낙 가까워가지고요. 두 분 다 원거리 딜러 같으신데, 장비가 좋아서 두 분만으로도 레이드가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음··· 고 레벨 레이더께서 그렇게 말해주긴 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검으로 두 분께 도움을 드리기 어려울 거 같으니··· 레이드가 끝나면 두 분께서 원하는 디저트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래 봬도, 다니엘 킴 레스토랑에서 디저트 담당이었습니다.”
“예? 디저트요?”
달달한 디저트라는 말에, 두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꼴깍-
군침도 같이 넘어간다.
그녀들이 재잘거린 대화 중에서는 디저트 관련한 이야기도 있었다. 달달 중독자들인지, 아주 안 가본 카페가 없는 듯했다. 디저트의 종류란 종류는 죄다 꿰뚫고 있었다.
오히려 그 점이 왕호에게는 호재였다. 레스토랑에서도 디저트는 왕호가 거의 담당했었다.
왕호의 제안이 매력적이었는지, 그녀들이 상의하기 시작했다.
“어쩔래? 디저트 만들어 준다는데?”
“음··· 다니엘 킴 레스토랑이면, 그래도 좀 하는 곳이잖아?”
“맞아. 디저트 담당이었다면, 웬만한 거는 다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검사랬으니까 위급하면 도움이 좀 되겠지?”
설탕 덩어리로 유혹하자, 거의 다 넘어왔다.
왕호는 쐐기를 박기 위해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리고 저는 몬스터 살코기만 주시면 됩니다. 가죽이랑 마나석은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고기는 버리는 거니까 괜찮지 않습니까?”
“네? 저희는 그런 거 생각 안 해봤는데··· 그냥 경험 쌓으러 온 건데요?”
‘뜨아아!’
금수저들이라, 애초에 잿밥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왕호가 당황했다.
‘차라리 이 얘긴 꺼내지 말걸······.’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 굳어져 가는 찰나,
“좋아요! 진짜 디저트 만들어주셔야 해요? 막 종류별로 다 만들어달라고 할 거예요!”
전리품과는 별개로, 디저트만으로도 홀라당 넘어갔다.
“고맙습니다! 아마 인슐린 맞아야 할 겁니다.”
왕호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제 고기만 구하면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번엔 힐링 요리의 조건까지 파악해 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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