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디저트 (1)
조건이 맞았는지, 뜻밖의 스킬을 습득했다.
스킬이 생겼으니 서툴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 왕호는 재빨리 스킬을 사용했다.
“발골!”
휘리릭-
왕호의 중식도가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스윽-
배를 일자로 쭈욱 갈라 각종 장기를 모두 꺼낸다. 그 과정에서 최하급 마나석도 같이 튀어나왔다.
내장을 다 제거하고는, 걸리적거리는 관절을 크게 내리쳐 분리시킨다.
콰득-
그리고는 가죽과 살 사이에 칼을 집어넣어 어느 정도 틈을 만든다. 그 틈을 손으로 잡고는 가죽을 쫙쫙 벗겨냈다.
슥- 슥-
마지막으로 뼈에 붙어있는 살코기도 발라낸다.
작업 끝.
왕호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자세히 살폈다.
‘윽!’
너무도 어설펐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뼈에는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며, 가죽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가죽 여기저기가 찢겨있었다. 절반은 버리게 생겼다.
완벽하게 얻어낸 것은, 실버폭스 몸속에 있던 마나석 뿐이다.
[실버폭스의 최하급 마나석]
[Lv.3 실버폭스가 품고 있던 마나석이다.]
[크기가 매우 작고 그 품질이 볼품없다.]
[소량의 마나를 잠시나마 저장할 수 있다.]
왕호는 마나석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이거는 먼저 두 분께서··· 엥?”
왕호는 하던 말을 멈춰야만 했다.
한여름과 김지원이 저 멀리서 벌벌 떨며, 기겁하는 눈빛으로 왕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헛구역질까지 내뱉는다.
‘왜 저러지··· 아!’
왕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꼬라지를 살피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둘러맨 앞치마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고, 양손은 아예 빨갛게 물이 들어있다. 오른손에 쥔 칼에서는 피가 뚝뚝 흐른다. 게다가 왕호가 서 있는 바닥에는 내장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피가 낭자했다.
실로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오직 겁대가리를 일시적으로 상실한 강창모만이 왕호의 곁에 다가올 수 있었다.
“와, 사장님 볼수록 대단하십니다! 그런 작업도 가능하십니까? 존경합니다!”
강창모가 왕호를 향해 엄지를 연신 치켜세웠다.
‘해체기술을 제대로 배워서 시도해야겠다. 이러다간 다시는 파티 못 맺겠네.’
기술과 지식이 부족해, 큼지막한 혈관들을 다 건드렸다. 당연히 피가 여기저기 튀고, 작업도 깔끔하지 못했다.
어쨌든 다시 이용할 수 있는 살코기를 얻었으니, 오늘은 더이상 발골스킬을 쓰지 않는 게 좋아 보였다.
.
.
.
왕호는 호숫가를 찾아, 몸을 박박 씻고 피비린내를 벗겨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파티원들 곁에 다가갈 수 없었다.
왕호는 물에 젖은 몰골을 하고 다시 나타났다. 옷에 묻은 피가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죄송합니다. 살코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그만······.”
왕호가 겸연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괘, 괜찮아요. 저희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서··· 실례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아닌지 미안하네요.”
헛구역질한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그녀들도 왕호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운 좋게 좋은 파티를 구했네.’
왕호의 겸연쩍은 웃음이, 밝은 웃음으로 변했다.
솔직히 처음엔 금수저들이라 조금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혹여나 자신과 강창모를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편견. 레스토랑 시절, 같이 일했던 금수저들의 무시 어린 눈빛을 많이 받아 온 왕호는, 그런 편견을 쉽게 떨쳐낼 수는 없었다.
사실 금수저나 흙수저나 다들 똑같은 사람이다. 이상한 부류의 사람이 있으면, 좋은 부류의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왕호는 운 좋게 좋은 부류의 사람을 만난 것뿐이다.
한여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이 마나석 정말 저희가 가져도 될까요?”
“어차피 공평하게 나눌 거니까 상관없습니다. 다음 마나석은 창모님 드리면 되니까요. 그리고 저는 원하던 살코기를 얻었으니, 마나석은 안 받아도 괜찮아요.”
“저희도 마나석 구하려고 온 거는 아니라서 딱히···”
“그래두 받아 두세요. 두 분께서 처음 잡은 몬스터이니, 기념품으로라도 챙겨두세요. 정 필요 없으시면, 다음 거는 저희가 챙기겠습니다.”
한여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왕호가 건네준 마나석을 받았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마나석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으로 처음 얻어낸 거라 그런지 뭔가 뿌듯했다.
‘평생 간직해야겠다.’
한여름은 주머니 속에 마나석을 고이 집어넣었다.
왕호도 가져왔던 비닐 팩에 토막 낸 살코기들을 담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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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왕호네 파티의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됐다.
템빨로 무장한 두 명의 마법사가 원거리에서 공격을 일삼는다. 한여름은 소서러답게, 위력적인 공격 마법을 내뱉었고, 김지원은 특유의 상태이상 마법으로 실버폭스의 발을 묶었다.
강창모는 더 이상 겁에 질리지 않은 자신이 대견한지, 연신 포효를 내뱉으며 그녀들을 지켰다. 다가오는 몬스터들은 강창모의 방패에 얻어맞고는 멀리 날아가기 일수였다. 잔인한 공격은 되도록 자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한 마리씩 잡는 것을 넘어서서 여러 마리를 동시에 사냥한다.
다중 사냥에 적응하자, 사냥 속도에 불이 붙었다.
왕호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숨어 있는 실버폭스를 찾아 데려오는 일을 맡았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들은 찾지 못하는 실버폭스를, 왕호는 보이는 족족 찾아냈다.
“혹시··· 몽골인이세요?”
한여름이 이렇게까지 물을 정도였다.
그렇게 잡은 실버폭스들은, 왕호가 배를 살짝 갈라 마나석만 빼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들의 뼈와 가죽은 내구도가 약하다. 상품성이 크지 않으니, 굳이 가져갈 이유가 없다.
“와, 속도 장난 아니네요!”
김지원이 감탄을 마지않았다. 말 수가 많이 없던 김지원은 파티원들과 어느 정도 호흡이 맞자, 마음의 벽을 한 꺼풀 벗겨냈다. 내성적이었던 그녀의 진면목도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내일이면 레벨8 찍겠는데?”
한여름이 물개 박수를 치며 맞장구쳤다.
그녀들은 본래 레벨 7혹은 8까지만 이곳에서 경험치를 쌓을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레이드 멘토도 그걸 추천했다.
둘이서만 사냥했다면 거진 일주일 이상은 잡았어야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파티사냥으로 가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붙었다. 눈썰미 좋은 왕호가 어그로를 끌어오면, 강창모가 선봉에 서서 방패로 그것들을 가로막는다. 한여름과 김지원은 뒤에서 편하게 마법을 난사하기만 하면 된다. 마나가 상당히 쪼들리는 레벨이지만, 물약으로 도핑하면서 광역마법을 마구 날려댔다.
디저트를 먹고 싶어 여기까지 끌고 온 인연이었는데, 돌이켜보니 엄청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쩝, 가져온 포션 벌써 다 썼네요.”
김지원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나가서 제가 맛있는 디저트 해드리겠습니다.”
왕호는 눈웃음을 치며, 주섬주섬 마나석을 챙겼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들은 최하급 마나석이 필요 없었다. 처음에 기념으로 챙긴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왕호나 강창모에게 넘겼다. 최하급이라도 마나석은 마나석이다. 팔면 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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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왕호는 우선, 가방에 넣어놨던 실버폭스 살코기를 냉장실에 넣었다.
한여름과 김지원, 그리고 굴러들어온 강창모는 어느새 트럭 앞 의자에 앉아 왕호가 디저트를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거 드시고 싶으세요? 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거면 다 해드리겠습니다.”
왕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디저트와 이탈리안 요리는 정말 자신 있다.
“음··· 뭐 먹을까?
결정권을 쥐고 있는 그녀들은 고심에 빠졌다.
달콤함에 중독되어버린 그녀들에겐, 먹고 싶은 디저트가 너무도 많았다.
“꾸덕꾸덕한 초코머핀 해달라 할까?”
“음··· 달달하면서 스르륵 녹아버리는 커스터드 푸딩은 어때?”
“그것보다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딸기 타르트가 낫지 않을까?”
“에스프레소의 진한 풍미와 크림의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티라미수도 괜찮을 것 같애.”
그녀들의 입에서 각종 디저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것들뿐만 아니라, 퐁당 오 쇼콜라, 치즈케이크, 브라우니, 크렘 브륄레, 마카롱, 에클레어 등등··· 세상에 있을 법한 후식은 전부 튀어나왔다.
왕호는 가만히 서서 그녀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그녀들은 거의 10분째, 결정장애라도 걸린 것마냥 망설이고 있었다.
보다 못한 왕호가 나섰다.
“방금 말한 것들 대부분은 오븐이 없어서 아마 만들기 어려울 겁니다.”
“헉! 그럼 어떡해요?”
한여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냥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맛있는 후식을 만들어 드릴게요.”
“네! 안 그래도 결정하기 너무 힘들었는데 잘됐네요!”
왕호는 슬며시 웃으며 디저트 준비에 들어갔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마법의 재료를 넣어버릴 계획이었다. 레이드에서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으니, 충격적인 맛으로라도 존재감을 뽐내야 하지 않겠는가.
“크레이프 케이크 해드릴게요.”
왕호가 만들 디저트는 크레이프 케이크. 아주 얇게 부친 팬케이크를 겹겹이 쌓아서 만드는 디저트다.
피 한 장 한 장이 엄청나게 얇기 때문에, 실크처럼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여러 개를 쌓으면 푹신푹신하면서 쫀득해진다.
왕호는 커다란 보울을 꺼내 계란 5개를 까 넣었다. 그리고 그 계란물에 소금을 살짝! 설탕을 부아악! 넣었다.
“헉! 설탕을······. 저러다 우리 죽는 거 아냐?”
김지원의 턱이 쩍 벌어졌다.
“원래 베이킹은 설탕이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10시간은 족히 뛰어야 빠질 겁니다. 하지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죠.”
왕호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멘트를 날리고는, 달걀물을 휙휙 휘젓기 시작했다.
휘핑 기계를 사용하면 쉽게 할 수 있지만, 왕호는 머랭을 칠 때도 손으로 한다.
‘그래야 민첩이 오르거든.’
민첩 스탯을 올리기 위해 노가다를 자처하는 것이다.
계란물이 다 섞이자, 밀가루를 투하한다. 밀가루는 박력분을 사용한다. 그리고 다시 휙휙 젓는다. 어느 정도 섞이자, 우유를 넣고 다시 휙휙휙 젓는다. 전자레인지에 녹인 버터도 같이 넣고 저었다.
상당히 묽은 반죽이 완성됐다. 왕호는 채에 반죽을 걸러 더욱 부드럽고 묽게 만들었다. 얇은 피를 만들어야 한다. 질척거려선 안 된다.
이제 피를 부쳐야 한다.
왕호는 달궈진 철판에 버터를 부볐다. 버터가 순식간에 녹으며 코팅된다. 반죽이 달라붙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추우욱-
반죽을 국자로 퍼서 아주 얇게 펼친다. 얇은 탓에 순식간에 익어버린다.
한쪽면이 익자, 왕호는 맨손으로 반죽 끝을 잡고 휘리릭 뒤집었다.
“헉! 안 뜨거우세요?”
김지원이 또 놀란다.
“괜찮아요. 익숙합니다.”
왕호는 웃음으로 김지원을 안심시키고는 반죽을 계속했다.
거의 크레이프 만드는 기계처럼 계속해서 한 장 한 장 부친다. 피가 얇은 탓에, 한 장을 부치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왕호의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도 한 몫 거들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만든 크레이프가 20장이 되어서야, 왕호는 피 만드는 것을 멈췄다.
이제 피 사이사이에 넣을 크림만 만들면 끝난다.
새로운 보울에 생크림과 설탕을 넣고 손으로 열심히 휘핑한다.
휘적- 휘적-
[민첩이 상승하였습니다.]
이 알람이 왕호를 웃음 짓게 만든다. 이래서 기계를 안 쓴다.
생크림이 점점 질척질척해가자 왕호는 손을 멈추고는 마법의 재료를 꺼냈다.
“헉! 저, 저건?”
강창모도 아는 물건인지 화들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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