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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34화 (34/149)

버프 파는 밥차 (2)

검은색 긴 생머리를 청초하게 늘어뜨린 한 여성이 왕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갈색으로 도렷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 보았을 때, 왕호는 자신의 혼이 지옥의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름답다.

그 단어 앞에는, 매혹적, 매력적, 고혹적, 매료적, 뇌쇄적··· 그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너무나 잘 어울릴 듯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왕호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눈매가 결코 낯설지 않았다.

‘배우인가? 티비에서 봤나?’

아리송함에 왕호의 고개가 살짝 기운다.

왕호는 눈썰미가 좋다.

물론,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좋은 재료를 선별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들조차도 놓치면 안 된다. 반으로 뚝딱 갈라서 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징후들을 정확히 캐치해야 한다.

10년을 넘게 재료를 꼼꼼히 살피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피는 눈이 좋아진 것뿐이다. 게다가, 각성한 이후로 왠지 모르게 더 눈썰미가 더 좋아진 느낌적인 느낌도 조금 있었다. 꼭꼭 숨어있는 실버폭스를 속속들이 찾아내지 않았던가.

왕호가 이러한 생각에 깊게 잠겨있자, 여자가 왕호를 한 번 더 호출했다.

“사장님?”

“아! 죄송합··· 어?”

왕호는 넋을 놓고 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하려 했으나,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조금 전 떠오른 의문이 갑자기 풀려버렸다. 손님의 정체를 알 것도 같았다. 아니, 확실히 알겠다.

그녀의 말투나 음색을 듣고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음의 피치는 왕호가 아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킁킁-

왕호의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고유의 향기로 그녀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쟈스민향의 강렬한 섬유 유연제 내음도 그녀의 향기를 전부 감추진 못했다.

절대후각을 통해 개코가 되어버린 왕호의 코가 그것을 정확히 잡아냈다.

‘복면 하나 벗었는데, 인상이 확 달라지네······.’

왕호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녀가 복면을 쓰고 있었을 때는, 눈동자가 이렇게 깊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매가 예뻤을 뿐이다.

하지만, 얼굴 전체가 드러나자 분위기가 단번에 살아난다.

짙은 쌍꺼풀과 오뚝한 콧날이 뚜렷한 이목구비를 형성한다. 미인의 기준이라는 얼굴의 좌우 밸런스 또한 완벽하다. 또한, 이마, 광대, 턱으로 이어지는 얼굴의 라인이 하나의 걸작 조각품을 보는 듯했다.

그야말로, 얼굴 가죽을 벗겨내도 매혹적일 상이다.

분명 사람 홀리는 구미호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홀딱 빠지면 안 된다. 껍데기가 다가 아니다. 정신을 다잡았다.

홀라당 넘어갈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이성에게 눈 돌아가 커리어 여럿 망친 스타 셰프를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왕호는 얼굴값 한다는 소리를 신봉하진 않으나, 어쨌든 저 정도 미모면 평범한 삶을 살진 않았을 것이다.

왕호가 손님의 얼굴을 빤히 관찰하고 있자, 그녀가 답답했는지 한 번 더 왕호를 불러냈다.

“사장님?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까부터 실례가 많았습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달빛여제님.”

“네?”

이번엔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녀의 정체는 역시나 달빛여제 유다희였다.

‘어떻게 알았지? 단순히 눈썰미가 좋다는 걸로는 저렇게 확신하기가 어려울 텐데······.’

왕호는 유다희의 정체를 완벽히 맞춰냈다.

뭐, 정체를 알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오긴 했다. 물론, 모르면 더 편할 것 같아서 복면을 벗고 왔다. 마도구까지 다 벗어놓고 일상복만 입고 왔으니, 눈매만으로는 그녀의 정체를 파악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목소리 또한 달빛여제로 활동할 때는 좀 더 강렬한 느낌을 주기 위해, 낮은 톤으로 바꿔 말한다.

그래서 그녀가 복면을 벗고 커피숍을 활보해도, 알아보는 이가 없는 것이다. 100이면 99가 달빛여제와 연관조차 짓지 못한다. 눈썰미가 좋다는 1%의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저렇게 확신하지는 않는다.

유다희는 애써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눈썰미 좋으시네요. 소문 듣고 선생님일 거 같아서 왔어요.”

“소문이요?”

“버프 파는 밥차가 나타났다고 오리진에 올라왔었어요. 아직은 다들 긴가민가한 분위기긴 해요.”

유다희는 왕호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이후부터, 그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직접적인 뒷조사는 하지 못했다. 그녀의 능력 밖이었다. 길드에 부탁하면, 흥신소마냥 사돈의 팔촌까지 파헤쳐줄 테지만 그러긴 싫었다. 명백히 불법이다. 물론, 길드도 나온 지 오래다. 사이가 무척이나 껄끄럽다.

어차피 번호를 알고 있으니, 정 궁금하면 직접 만나서 돌직구 날리면 된다.

그래서 몬스터 살코기 식용에 대해 몇 가지 알아봤다. 그 결과 고기의 유통도, 요리의 판매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팔지 못하는데, 왜 굳이? 자급자족하려고?

이러한 의문은 오늘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오늘도 어김없이 커피숍에서 라떼를 홀짝거리던 그녀는, 심심함에 오리진에 접속했다가 뜻밖의 글 하나를 확인했다.

<레드혼 카우 던전에, 버프 파는 밥차 떴음!!!>

[푸드트럭에서 몬스터 고기로 음식 만드는데, 버프 걸려있음. 민첩 10% 증가랑, 지력 10% 증가 있었음. 졸 신기해서 먹어봤는데, 맛이 깡패 수준이더라. 근데 버프가 크게 도움은 안 됐음. 내 기준으로 고작 민첩 1 오르더라고.]

[댓글]

[-실화냐?]

[-와, 이제 하다 하다 이런 걸로도 어그로 끄는구나. 관종은 오리진 접속 벤 하면 안 되나?]

[-진짠데? 나도 먹었음. 고로케 핵존맛임!]

[-고로케가 고로케 맛있냐? 몬스터 고기는 식용 불가인데 헛소리 지껄이네 다들.]

[-몬스터 조리사 자격증 있다던데? 해독 스킬로 마기 제거한다고 들었음.]

[-레알이면 개이득인데? 님이 쪼렙이라 그러는데, 내 기준에서는 민첩 30오름.]

유다희는 이 글을 읽자마자 왕호일 거라 확신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식약처에 바로 전화해 봤는데, 정말이었다. 라이센스가 오늘 신설됐단다.

‘어제까지만 해도 불법이었는데, 하루 만에?’

수상함이 더더욱 커진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유다희는 곧바로 던전으로 향했고, 정말로 왕호가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우르르 몰린 사람들이 우르르 떠나갔다. 손님이 다 사라지자 트럭 앞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장님. 혹시 버프 요리 남았어요?”

“죄송합니다. 재료가 다 떨어졌습니다. 이따 레드혼 카우 잡아다 저녁에 다시 팔 겁니다.”

“역시··· 매진돼서 사람들이 다 나간 거였네요.”

“출출하세요? 컵밥 메뉴도 있습니다.”

“아뇨아뇨. 점심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왔어요. 그냥 궁금해서 한 번 맛이나 보려고 물어봤어요.”

유다희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정말로 버프가 걸리는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버프가 걸리는 건 사실 같았다.

유다희가 무척이나 아쉬워하자, 왕호가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슬며시 제안했다.

“버프 요리는 아니지만, 집에서 만들어온 디저트가 있는데 한번 맛보실래요? 아, 물론 파는 겁니다.”

아무리 극강의 미모를 지녔다고 해도, 공짜로 줄 순 없다.

서비스야 후하게 줄 수 있을진 몰라도, 그건 모지리들이나 하는 짓이다.

유다희가 관심을 보인다.

“디저트요?”

“레몬 에클레어입니다. 푹신푹신한 에클레어 빵 속에 상큼하면서도 달콤달콤한 레몬 커스터드 크림이 잔뜩 들어가 있죠.”

꿀꺽-

왕호의 맛깔난 설명 때문인지, 군침이 절로 넘어간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달콤한 걸 좋아한다.

“특별히 달빛여제님이시니 개당 3천 원만 받겠습니다.”

“유다희에요. 복면 안 썼을 때는 유다희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두 개만 주세요.”

‘나이스!’

한입 크기로 가볍게 만든 건데, 3천 원에 갖다팔았다. 그것도 두 개나. 한 입 꿀떡하는 데 무려 3천 원! 역시 고 랭커라 통이 확실히 크다.

에클레어 두 개를 받아든 유다희는 망설이지 않고 하나를 입속으로 가져갔다.

우물-

이빨로 살짝 물었을 뿐인데, 찐득한 레몬 크림이 팟! 하며 입안을 가득 메꾼다.

짜릿-!

뇌에서 스파크가 팍팍 터진다.

상큼함과 달달함이 번갈아가면서 느껴진다. 그야말로 상.달.상.달. 두 맛 다 유다희가 좋아하는 맛이다.

유다희는 나머지 하나도 순식간에 입으로 집어넣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스스르 녹아 사라진다. 몇 개 더 살 걸 하는 후회가 잔뜩 밀려왔으나, 트럭을 정리하는 왕호에게 다시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사 그만하시게요?”

“손님이 더 이상 안 오니 브레이크 타임 가지려구요. 버프 요리가 매진되니까 안 오는 거 같네요. 재료 구해와서 다시 팔아야죠.”

“그럼, 지금 던전 들어가세요?”

“예. 저번에 파티원들 보셨죠?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몇 시쯤 다시 장사하시나요?”

“다섯 시 반까지는 다시 오픈 해야겠죠.”

“음··· 그럼 저도 그때 다시 올게요.”

유다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냥하는 것도 좀 확인해봐야겠어.’

멀찌감치 서서 지켜볼 요량이다.

유다희가 수상하게 여긴 것은, 몬스터 재료로 요리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제 겨우 20레벨쯤 된 요리사가 50레벨 오우거의 다리를 두 동강 냈다는 사실도 있다.

*

“왕호님~!”

게이트를 넘자마자, 파티원들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미리 연락해놓은 터라,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재료가 생각보다 빨리 떨어졌습니다. 한 시간 정도 더 여유가 생겼네요.”

“하하, 저희만 믿으십쇼. 재료는 물론이고, 아주 폭렙시켜드리겠습니다.”

팡팡-!

강창모가 자신의 방패를 손으로 두어 번 때리며 호언장담했다.

강창모는 레드혼 카우 던전에 처음 들어온 왕호를 위해 간단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먼저, 여기는 A형 던전입니다. 몹의 숫자가 상당히 많죠. 재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이따 보시면 아시겠지만, 레드혼 카우는 거대한 뿔이 달린 ‘소’입니다. 멀리서 달려와 뿔로 찍어버리는 게 주공격이죠. 뿔은 쇠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간 이유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맞으면 아픈 것은 둘째 치더라도, 화상까지 덤입니다. 그건 제가 방패로 막을 테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다만··· 근접하면 두 발로 서서 공격하니 당황하지 마세요.”

“예? 소가 이족보행을 해요?”

설명만 들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족보행뿐만 아니라, 이단 옆차기까지 합니다. 저희 셋이서 사냥할 때는 두 마리씩 끌고 왔는데, 왕호님이 합류하면 세 마리 이상도 가능할 거라 보고 있습니다. 일단, 해보면 알겠죠. 몹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쉬지 않고 사냥할 수 있습니다. 즉, 폭렙이 가능하다는 거죠.”

“좋아요! 갑시다!”

왕호가 새로 사 온 중식도에 힘을 빡! 주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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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폭스와 이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사냥하는 파티들의 모습이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실버폭스는 입문자들이 가득가득해서 아주 중구난방이었지만, 여기 사람들은 뭔가 서로 합이 잘 맞았다.

‘확실히 안전하겠군.’

규율도 제대로 숙지하고 있을 게 눈에 선하다. 저번의 진상처럼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가 있지 않은 한, 위험은 없어 보였다.

왕호의 눈에 레드혼 카우의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

이름처럼··· 얼룩무늬가 그려져 있는 ‘젖소’였다.

황소가 아닌 젖소.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요리사다운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젖소는 고기보다 우유가 더 맛있는데··· 혹시 짤 수도 있나?’

젖소고기는 육우고기에 비해 육질이 상당히 떨어진다. 평생 우유소로써 우유를 생산하다가 수명이 다해 도축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

물론, 레드혼 카우 고기는 육우고기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렇다면··· 쟤네들한테 짜낸 우유는 더 맛있지 않을까?

만약 짤 수만 있다면, 우유를 이용한 모든 요리의 버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방금 유다희가 먹은 에클레어 디저트를 만들 때도 우유가 들어갔다. 버프 요리의 범위가 무궁무진해진다는 의미다. 그 우유를 가지고 리조또를 만든다면, 일반 재료들을 쓰더라도 버프가 걸리지 않을까? 하는 기똥찬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움모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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