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 (2)
로스트 치킨이나 피자같이, 오븐을 반드시 필요로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왕호가 자신 있어 하는 수많은 디저트 요리도 시도할 수 있다. 디저트의 8할이 오븐을 필요로 한다.
냉장고와 함께, 덤으로 얻게 된 오븐이 트럭에 예쁘게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공간이 조금은 협소해졌지만, 그런 것은 하등 중요치 않았다.
‘헤헤···.’
왕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무언가 푸드트럭을 넘어선 것만 같았다. 꿈꾸던 레스토랑에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이제는 확실히 레스토랑에서 나올 법한 음식들을 만들 수 있다.
달리는 레스토랑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나중에 정말 코스요리까지 만들어볼까?’
푸드트럭에서의 코스요리라······.
시도만 한다면 아마 자신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하는 왕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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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앙-
푸드트럭이 고속도로를 힘차게 질주한다. 엔진의 힘이 빵빵하니, 악셀을 밟을 때 쾌감이 짜릿하다.
왕호는 100km/h의 규정을 준수하며 2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힐끔-
왕호가 조수석에 앉아 있는 유다희를 슬쩍 쳐다봤다.
그녀는 살포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피곤함은 살짝 느껴졌지만,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잠을 저렇게 긴장하며 자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이해한다. 우연히 몇 번 마주쳤다 해도, 아직은 낯설 테니 말이다.
‘저렇게 철저하면서 왜 의도적으로···’
왕호는 고개를 전방으로 돌려 상념을 떨쳐냈다.
‘운전에나 집중하자.’
그래도 깨어있는 것 같으니, 슬쩍 말을 건네본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오븐까지 얻었네요.”
“뭘요··· 이렇게 차 얻어 타니까 쌤쌤이죠.”
역시나,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
“레드혼 카우 던전은 왜 가시는 겁니까? 레벨도 높으신 분이 여기서 얻어먹을 건 없어 보이는데······.”
“조사해볼 게 있어요. 상당히 수상한 거라서요.”
“조사라··· 어쨌든 조사도 밥 먹어가며 해야 하는 거죠. 점심 장사 전에, 제가 따로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어? 정말요?”
유다희가 등받이에 기댔던 상체를 살짝 들어 올리며 반문했다.
“냉장고도 바꾸고 오븐도 얻었으니, 새로운 요리를 해보려구요.”
유다희 덕분에 오븐을 얻은 것도 있었지만, 왕호에겐 또 다른 속셈이 있었다.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유다희를 지켜본 바로는 상당히 의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았지만, 맛난 요리를 먹을 땐 경계심이 살짝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그 사람만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해줬을 땐 더더욱.
*
주차를 마친 왕호는 곧바로 요리 준비에 들어갔다.
트럭에 달린 칠판에는 아직 CLOSED라고 적혀있었다.
유다희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어떤 요리 하실 거예요?”
“오븐 성능도 확인해볼 겸, 로스트 비프를 만들 겁니다.”
정확히는 야매 로스트 비프다.
제대로 된 로스트 비프를 만들려면, 하루 정도 숙성 시간이 필요한데, 당장은 그럴 시간은 없다.
왕호는 냉장실에 옮겨놓은 큼지막한 레드혼 카우 살치살을 꺼냈다.
꺼내는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아니, 신비에 가까웠다.
공간이 확장되어있는 탓에, 냉장실이 어마어마하게 넓다. 넣어둔 살치살을 꺼내기 위해선, 냉장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락날락해야 한다.
‘오랜만이네.’
레스토랑에서 일할 적에는 익숙했던 일이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왕호는 큼지막한 살치살을 도마 위에 올리고는 먹기 좋게 썰었다.
슥- 슥-
큐브 스테이크보다는 크지만, 한입에 넣기는 조금 버거운 크기다.
본래, 로스트 비프를 하기 위해선 아주 큼지막하게 통으로 요리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지 속이 더욱 촉촉,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그러려면 오븐에서 2시간 이상을 가열해야 한다. 역시나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적당한 크기로 썰어야 했다.
고기를 썰었으니, 이제 소스를 만들 차례.
왕호는 통마늘을 꺼내어 도마 위로 올리고, 식칼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는,
탕-! 탕-! 탕-!
식칼의 옆면으로 통마늘을 으깼다.
[중급 으깨기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슉-
으깨진 마늘을 보울 안에 집어넣고, 그 위로 설탕을 아빠숟갈로 퍼 올렸다. 곧이어 강황 가루 약간. 간장을 두 스푼 집어넣는다. 소금으로 간을 더 간간하게 만들고, 바질도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스테이크 소스를 가득 붓고 마트에서 사 온 와인을 콸콸콸 부어 비프 소스를 완성했다.
유다희는 요리에 집중하는 왕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술 유단자의 수려한 몸짓. 그리고 뛰어난 마법사가 뿜어내는 눈부신 스킬 보다, 요리하는 모습에 눈을 떼기가 더 힘들었다.
소스를 완성한 왕호는 통마늘, 양파, 쪽파를 꺼내 올렸다.
마늘이랑 쪽파는 통째로 넣으면 되고··· 양파는 너무 크니 삼등분으로 크게크게 썰었다.
달그락-
널찍한 오븐용 팬을 꺼내든 왕호는, 양파, 통마늘, 쪽파를 침대보를 깔듯이 잘 깔았다. 그 위에 썰어놓은 살치살을 올리고 올리브 오일을 휙휙 뿌렸다.
그리고 완성된 소스를 붓는다.
콸콸-
팬 아래가 소스로 인해 살짝 잠긴다.
이제, 오븐에 굽기만 하면 완성.
덜컥-
왕호는 오븐의 문을 열고 팬을 집어넣었다. 버튼을 돌려 230도를 맞추고는 오븐을 작동시켰다.
화악-!
문을 닫았음에도, 뜨뜻한 열기가 순식간에 느껴진다. 예열할 필요가 없는 마나석 오븐의 위력이다.
지글지글-
이대로 15분을 굽고, 온도를 170도로 낮춰 5분 정도 더 구울 생각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낮은 온도에서 한 시간을 구웠을 테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고기가 천천히 구워지는 동안, 왕호는 유다희에게 말을 붙였다.
“다희님. 저는 왜 조사하시는 거예요?”
귀찮게 돌려 말할 거 뭐 있나. 왕호는 곧바로 돌직구를 날렸다.
묵직했다.
유다희의 동공이 슬쩍 흔들린다.
“네? 그게 무슨···”
“너무 티 났습니다. 저 그렇게 바보 아닙니다. 우연이 계속 겹치면 그건 우연이 아니죠. 필연이거나··· 의도적이거나, 둘 중 하나겠죠.”
“······.”
유다희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진다. 그녀의 입은 자물쇠마냥 굳게 닫혔다.
“일부러 살가워 하시는 거 조금 어색했습니다. 살짝 힘들어 보이기도 했구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아마, 친화력 강한 성격은 아니겠지요.”
“···수상하니까요.”
침묵하던 유다희가 달빛여제가 뱉어낼 법한 낮은 톤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수상합니까?”
“조금요.”
아니다. 유다희가 느끼기에는 많이 수상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네요. 수상하다라······.”
“제가 좀 의심이 많은 성격이에요.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편한 건 딱히 없었습니다.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됐죠.”
손님도 많이 끌리고, 냉장고도 오늘 바로 받지 않았던가.
“그럼, 계속 조사해도 될까요?”
“네? 그냥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대놓고 물어보세요. 속옷 색깔 이런 거만 아니면 솔직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왕호는 딱딱해진 유다희의 표정을 풀어주기 위해, 농담조를 섞어 말했다.
“고마워요.”
유다희의 표정이 다시금 풀어졌다.
계속 붙어있으면, 언제고 의도를 알아차릴 거라 생각하긴 했다. 그 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을 뿐이지만.
왕호가 대놓고 물어보라고 했지만, 유다희는 물어볼 건 물어보고 관찰할 건 관찰할 생각이었다.
비밀은 물어본다고 해서 쉽게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땡-!
오븐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음식의 완성을 알렸다.
왕호는 오븐용 벙어리장갑을 양손에 스윽- 끼고는 완성된 로스트 비프를 꺼냈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스르르 올라온다. 고기의 겉면은 아주 진한 갈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바닥을 적시고 있던 소스도 전부 진득히 졸여졌다.
[“마음을 달래주는 레드혼 카우 로스트 비프”가 완성되었습니다.]
[간단히 조리했지만 맛이 일품입니다.]
[알맞게 익었습니다.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마음을 달래주는 레드혼 카우 로스트 비프-
[의심많은 “유다희”를 생각하며 만든 로스트 비프.]
[오븐에 알맞게 익었다. 육질이 매우 부드럽다.]
[소스의 풍미가 좋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져 간이 잘 배었다.]
[숙성과 함께, 오랜 시간 익힌다면 더욱 부드러워질 것이다.]
[효과 : 지구력이 10% 상승합니다.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손님이 감동할 시, 효과는 1.5배로 증가합니다.]
[몬스터 식재료를 이용한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새로운 요리의 숫자 : 10]
[경험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새로운 요리의 숫자가 10을 달성했습니다.]
[클래스 스킬 일부가 해금됩니다.]
[스킬 “적탐안”이 생성됩니다.]
[첫 번째 특성 “불 친화력”이 생성됩니다.]
‘뭐, 뭐야?!’
왕호는 양손으로 로스트 비프가 담긴 팬을 든 채, 쩌저적- 굳어버렸다.
새로운 요리의 숫자?
단순히 의미 없는 숫자인 줄 알았건만··· 해금의 전제조건이었을 줄이야!
왕호는 음식을 내려놓을 생각도 없이, 곧바로 스킬을 확인했다.
[적탐안赤探眼 – 숙련도 0% 마나 소모량 : 초당 3]
[요리사에게 있어, 온도의 조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외선을 탐지하듯이, 눈으로 온도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숙련도로는, 1도 간격으로 온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감지 스펙트럼이 촘촘해집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멀리까지 온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불 친화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성]
[불 친화력 – 1단계]
[요리사에게 불은 친구와도 같은 존재다.]
[불을 쉽게 다룰 수 있게 해준다.]
[불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화상을 잘 입지 않는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화염에 대한 이뮨immune이 상승합니다.]
‘적탐안? 열화상 카메라가 눈에 달리는 건가?’
엄청난 스킬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일도양단’과는 다르게, 요리에 쓸모있는 스킬.
비록, 마나 소모량이 초당 3이지만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니다. 1분만 켜놔도 마나가 180이나 달지만, 온도를 체크할 때마다 껐다 켰다 하면 되는 부분이다.
왕호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눈썹이 씰룩거린다. 금전적인 이득을 봤을 때, 나타나는 왕호만의 특징이다.
‘나이쓰! 비접촉 적외선 온도계를 살까 말까 고민했는데, 돈 굳었다.’
비록 10만 원 이면 성능 좋고 오래가는 온도계를 살 수 있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해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다.
요리를 오래 해왔기에, 손등을 근처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대략적인 온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온도다.
정확한 온도는 알지 못한다. 그동안은 메뉴의 스펙트럼이 좁았기에,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냉장고와 오븐이 생기면서, 메뉴 선택의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넓어졌다. 여기엔 온도에 극히 민감한 요리도 포함된다. 레스토랑에 있을 시절엔, 온도계를 사용했었다.
‘특성? 처음 생긴 거네.’
불 친화력이라······.
불 조절이 중요하긴 하다. 가스를 사용하는 요리면 불 조절이 곧 온도 조절. 이 특성과 적탐안 스킬의 연관성이 매우 깊다. 그래서 아마 같이 해금되지 않았나 싶다.
불을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화상을 잘 입지 않는다’ 이건 피부로 느껴지는 효과다.
불에 대한 저항력이 올라간다는 뜻인데, 왕호는 지금도 몸에 화상 자국을 달고 산다.
뜨거운 것을 하도 많이 만진 터라 손가락 살은 이미 굳어버린 지 오래다. 또한,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요리를 하면서 필연적으로 몸 곳곳에 화상의 흔적을 새길 수밖에 없었다. 지방이 많은 고기를 굽거나, 튀김이라도 하는 날엔 기름이 엄청나게 튀니까.
그런 면에서는 이 특성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저기··· 사장님?”
왕호를 바라보는 유다희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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