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39화 (39/149)

외모지상주의 (3)

왕호가 벙어리장갑을 낀 채, 로스트 비프를 하염없이 들고만 있다. 발가벗은 귀신이라도 목격했는지, 얼굴은 히죽히죽거린다. 이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유다희가 왕호를 슬며시 부르자, 그때서야 왕호가 정신을 차린다.

“아! 하하, 제가 잠시 멍 때렸네요. 여기 로스트 비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팬이 뜨거우니 손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

왕호는 유다희의 앞에 팬을 올리고, 포크와 나이프를 오른편에 슬며시 놓았다. 그녀는 오른손잡이다.

“와··· 무슨 석탄 같네요.”

유다희가 감탄을 마지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정말로 무슨 돌덩이 같은 비주얼이 튀어나왔다.

고기의 겉면은 석탄 같이 검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진한 갈색.

푹-!

유다희는 포크로 고기를 찍고, 주먹만 한 고기를 쓱쓱- 썰었다.

그러자,

장미처럼 새빨간 속살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살코기의 붉은색은 결코 아니다. 육즙이 잘 갇힌 상태에서, 부드럽게 익었다. 촉촉하게 익으며 나타난 붉은 빛이다.

유다희는 잘 썰린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후압-

입을 크게 벌리고 큼지막하게 썬 고기를 집어넣었다.

쩝쩝-

몇 번 씹지 않았건만, 속살이 스르르 녹아 사라진다. 녹으며 육즙이 팟! 하고 터져 나온다. 부드럽기 그지없다. 수박마냥 육즙이 꽉꽉 들어차 있다. 반대로, 바싹 익은 겉면은 육포처럼 쫄깃하다.

우물우물-

말 그대로 우牛물水 우牛물水. 소고기의 육즙이 만연하다.

유다희의 표정에서 얼이 빠져나갔다. 저번처럼 경탄할 수조차 없었다.

‘같은 소고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맛이 나지?’

기존에 먹은 스테이크들과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맛이었다.

[손님이 당신의 요리에 감동했습니다.]

[요리의 효과가 1.5배로 상승합니다.]

유다희가 넋을 놓고 있자, 왕호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충격적인 맛 때문에 겪는 반응인 걸 잘 안다.

“로스트 비프는 처음 먹어보시나요?”

“네. 기존의 스테이크와는 조금 다르네요.”

“완벽한 로스트 비프는 아닙니다. 나중에 제대로 만들면 그때 다시 맛보여 드리겠습니다.”

“진짜죠?”

왕호의 말에 유다희가 반색했다.

사실, 유다희는 고급 레스토랑을 즐겨가지 않는다. 블로그에 나오는 맛집이나, 분식집을 더 자주 간다. 지금은 수입이 엄청나지만, 그렇다고 씀씀이가 확! 늘어나진 않았다. 어릴 적 그렇게 여유 있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절약이 몸에 배어 있는 탓이다.

그래서 로스트 비프라는 것을 오늘 처음먹어 봤다. 유다희의 머릿속에 소고기구이라고 하면, 꽃등심, LA갈비, 불고기, 안심 스테이크 정도밖에 없었다.

왕호가 슬쩍 말을 건넨다. 상당히 민감한 질문이라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저··· 다희님?”

“네?”

“예전에 길드에 속해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실버폭스 던전에서 만난 매니저에게 들었다. 달빛여제가 계약을 잘못해서, 손해를 막심하게 봤다고.

유다희가 왕호를 수상하게 여긴 것만큼, 왕호도 유다희의 의도가 미심쩍었다. 자신을 얼마나 수상하게 느꼈으면, 어색한 연기까지 해가며 접근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생겨났다.

그녀에게는 민감한 부분일 테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진실된 속마음이 스리슬쩍 드러나기 마련이다.

유다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그녀는 잘라낸 고기와 함께, 같이 익힌 채소를 입에 집어넣었다.

와구와구-

‘맛있어···’

다시 표정이 녹아내린다.

경계심이 풀어진 유다희는 살며시 입을 열었다.

“4년 전에 각성하고 처음 던전에 갔어요. 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죠. 제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든 갚고 싶었거든요.”

유다희가 말투가 상당히 진중하다.

그녀의 가슴 속 철창에 갇혀있던 비밀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치부였다.

“전 사실 혼외자에요. 아버지는 누군지 아직도 모르고, 어머니는 무명 배우셨는데 어릴 때 절 버리고 잠적했어요···”

‘헐······.’

왕호의 동공이 살짝 벌어진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유다희의 기구한 인생 스토리가 펼쳐졌다.

초등학교 갓 입학할 나이이거늘··· 고아원에 맡겨지게 됐다. 또래보다 예뻤던 탓에, 고아원 선생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자연스레 고아원 친구들의 시기로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미워하진 않는다. 그땐, 하나같이 다 어린 친구들이었으니까.

“고아원 선생님들이라고 제 괴롭힘을 막아주지 못했어요. 오히려 분란을 유발한다며 저를 나무랐죠. 다수를 혼내기보다는 저를 나무라는 게 더 편하니까요. 저는 제 몸을 지키기 위해 고아원에서 나와야 했죠. 아무런 힘도 없는 저는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어요···”

-독하게 살자! 독하게!

어린 유다희는 이를 악물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사람들이 나를 버려도 절대 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여기서 주저앉아 버리면, 너무 억울하지 않나. 하늘이 자신을 이 땅에 내린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길을 비추었다.

독기를 잔뜩 품은 10살짜리 꼬맹이의 눈빛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그 눈빛을 보고 한 사람이 혀를 끌끌 찼다.

-에잉 쯧쯧, 어린 것이 벌써부터 마魔에 사로잡혔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었다. 그는 유다희를 데려다가 친손녀처럼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학교에도 보냈다.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지만, 노인의 가르침이 그녀의 심맥을 틀어막고 있던 마를 거두어냈다.

“각성하자마자 다짐했어요. 꼭! 성공해서 은혜를 갚자. 우리 할아버지 호강시켜주자.”

“뜻대로 되진 않으셨군요.”

“맞아요. 처음 맺었던 파티가 문제였어요. 남자 셋에 여자 하나였는데, 제가 들어가서 다섯 명이 됐죠···”

완벽하게 성숙해버린 그녀의 미모는, 마치 미인대회의 끝판왕 수준으로 진화된 상태였다.

당연히 남자 파티원들은 어화둥둥 그녀를 챙기기 바빴다. 이제껏 겪어온 경험대로, 여자 파티원은 그녀를 싫어할 거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절 살갑게 대하더라구요. 그래서 금방 친해졌죠. 따로 만나서 같이 쇼핑도 하고, 놀러도 다니고, 맛집도 구경하고 그랬어요. 저한테 길드를 소개시켜준 것도 그 친구예요. 좋은 길드라고 그랬죠. 저는 당연히 그 말을 믿었고, 마침 길드에서도 저를 따라다니면서 잘 챙겨줬어요.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계약했죠···”

계약서의 세부 내용까지 세세히 파악할 순 없었다. 복잡한 법률 용어를 잘 알지도 못했으며,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그녀가 독소조항을 걸러내기에는 솔직히 역부족이었다.

“그쪽에서 계약금도 많이 줬어요. 많이 주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땐 몰랐죠. 계약금은 그 친구가 좋은 마도구 업체를 안다면서, 제 마도구 제작비용으로 다 가져갔어요. 그리고 연락이 끊겼죠···”

믿었던 친구의 배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정도가 아니었다. 심장이 후벼 파이는 듯한 충격이었다.

친모가 자신을 버리고, 고아원에서도 도망치고, 믿었던 친구가 등에 칼을 꽃았다. 가슴이 쓰라렸다.

‘세상에······.’

왕호는 유다희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신고는 하셨습니까?”

“처음엔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기다렸죠. 진실을 깨닫고 나서야 신고했어요. 늦게 한 터라, 1년 후에나 잡혔어요. 사기당한 돈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유가 궁금했죠. 왜 그랬냐고, 우린 친구 아니었냐고 물었죠.”

돌아온 대답에, 유다희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난 처음부터 네가 싫었어.

간악한 뱀이 이브를 속여 선악과를 따게 만든 것처럼, 질투라는 독이 그 친구의 정신을 옭아맸다.

“계약금을 사용하는 순간 계약의 효력은 발생해버렸고, 저는 이미 덫에 걸린 생쥐나 마찬가지였죠.”

“도움받을 사람은 없었습니까?”

“속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할아버지께 털어놓았죠···”

그녀가 기댈 곳이라고는 인자한 영감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라고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영감님은 은퇴한 지 오래됐고, 권력은 그의 손을 떠난 지 오래였으니까.

-쯧쯧, 그러게 잘 확인해봤어야지 욘석아!

“할아버지께서는 소송을 걸어 계란으로 바위를 부숴보던가, 아니면···”

-버텨! 그리고 강해져라! 강해져서 너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세상을 바꿔보려무나.

그녀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대중은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라는 명언처럼, 유다희는 정말로 유명해졌다.

“유명해지니 권력이란 게 생기더라구요. 저는 각성자협회에 힘을 실어줬고, 그 결과 몇몇 독소조항을 법적으로 막아버릴 수 있게 됐지요.”

“와··· 큰일 하셨네요. 그럼, 다희님께서 겪은 그 3년의 손해는 보상받을 수 없는 겁니까?”

“그건, 지금 소송 중이에요. 길드가 너무 커져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싸워봐야죠. 제가 행동해야,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 안 생길 테니까요.”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갖고 있다. 하지만 왕호가 지금 들은 이 사연은, 깊어도 너무 깊었다.

가엾고 딱하고 안타까웠다.

왕호의 그런 눈빛을 읽었는지, 유다희가 왕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만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내가 왜······.’

구미호에 홀린 것마냥 술술 털어놓았다. 그것도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말이다.

‘뭘 잘못 먹었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꽁꽁 감추고 있던 비밀을 털어버리고 싶었다. 한 번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었던 신하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유다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하소연을 마무리했다.

“죄송해요. 제가 의심이 많아서 실례를 저질렀네요. 어릴 때 상처가 많아서 성격이 삐뚤어졌나 봐요.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겠네요. 외모라도 평범했으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텐데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네?”

“다희님에게서는 좋은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희님 곁으로 모여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외모 덕이 더 크다.

“네?”

유다희가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로 큰 상처를 겪고도 이렇게나 잘 컸지 않습니까.”

“예? 잘··· 커요?”

얼핏 들으면 뺨 맞기 딱 좋은 멘트.

“저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할 상처들을 품고도, 삐뚤어지지 않았잖습니까. 아주 곱게 자랐습니다. 다희님은 사랑받고 자란 티가 확 납니다. 사랑을 많이 받아봐야,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알거든요. 아마 다희님을 거두어주신 할아버지의 덕이 클 테죠.”

한여름이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잔뜩 받고 자란 티가 물씬 풍긴다면, 유다희는 시련 속에서 사랑을 받고 굳게 자란 듯 보였다. 마치 겨울의 추위를 뚫고 만개한 동백꽃처럼 말이다.

유다희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왕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희님은 제 눈으로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 있는 작금의 사회에서,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는 없었겠죠. ‘못나게 생긴 것보다 낫지 않느냐?’ 이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다희님이 처한 상황을 겪지 못했는데,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

“벌과 나비는 꽃을 향해 날아들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를 처음 맺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외모가 가장 먼저 들어옵니다. 아직은 외모로밖에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면접 전에 스펙으로 이력서를 걸러내는 거나 같은 경우입니다. 다희님이 이렇게 태어났으니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하겠죠. 다희님이 의심이 많아졌다고 해서, 이제 와서 그걸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여태까지 잘 컸으니, 앞으로도 잘 크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왕호는, 유다희의 앞에 놓인 식기를 치웠다. 음식은 유다희가 구구절절 하소연하면서, 이미 싹싹 비우고 없었다.

유다희는 왕호의 말을 계속해서 곱씹으며 충격에 잠겼다.

여태까지 자신에게 접근했던 남자들은 수도 없었으며, 친하게 지냈던 여자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은 없었다.

‘이 남자···’

처음에는 수상했지만, 지금은 호기심이 일렁인다.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그런 호기심.

“왕호님.”

유다희가 왕호를 불렀다. 이제는 사장님이란 호칭 대신, 왕호라는 이름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네?”

“처음엔 왕호님이 수상했어요. 제 눈으로 봤을 때는 말이 안 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억지로 들러 붙어있으려고 한 거예요. 귀찮았을 텐데 정말 죄송했습니다.”

꾸벅-

유다희가 왕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니깐요. 귀찮은 것보다 도움을 더 많이 주셨어요. 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인데요··· 저희 친구 해요!”

“예?”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제안이다. ‘야! 우리 친구 할래?’

“친구로 지내면 자연스레 왕호님도 알게 될 거고, 그리고 또··· 맛있는 요리도 먹을 수 있겠고··· 아! 물론 친구 사이라도 할 건 해야죠! 돈 내고 먹을 거예요!”

여사친이라······.

“그래요. 친구DC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트럭 앞에 조금 앉아있다가 가야 됩니다. 홍보 잘 되거든요.”

나쁘지 않은 사람이니,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게다가 고 랭커이니, 정보도 많이 알 거고 도움도 크게 될 거다.

무엇보다도···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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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희는 이자카야에 세워진 맥주광고 입간판마냥, 왕호의 트럭 가장 앞에 앉아있었다.

우르르르-

흑심을 잔뜩 품은 남정네들이 잔뜩 몰려든다.

온 김에 요리 하나씩 사 먹는다.

흐뭇하다.

유다희에게 알바비라도 줘야 할 판이다.

그렇게 몰려든 사람 중에는 수트를 쫙 빼입은 남자도 있었다.

“사장님 잠깐 이야기 가능하십니까?”

남자가 왕호를 향해 묻는다.

“네? 무슨 일이시죠?”

“프레이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프레이 길드라는 말에 유다희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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