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40화 (40/149)

악덕의 번영 (1)

“프레이 길드요?”

프레이 길드라는 말에, 왕호의 미간도 살짝 찌푸려졌다.

왕호는 유다희가 접근했다고 느꼈을 때, 달빛여제에 대해 조금 알아봤다. 그녀의 전 길드 이름쯤이야, 검색만 하면 금방 나온다.

프레이 길드.

던전 초년생들의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하는 악덕 길드. 물론, 각성협의 노력으로 이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근본이야 달라지지 않는다.

“프레이 길드가 저한테는 어쩐 일이시죠?”

평소와는 다르게 왕호의 말투가 조금 차갑다.

“오리진에 올라온 글 보고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는데, 진짜였더군요.”

길드 매니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한다.

왕호는 유다희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무래도 당사자인 그녀가 자신보다는 더 불편할 거라 생각됐다.

프레이 길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구겨진 신문지마냥 꾸깃꾸깃했었는데, 지금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유다희는 지금 복면을 벗어놓은 상태다. 그녀의 실제 얼굴을 아는 길드 관계자는, 그리 많지 않다. 지금 왕호를 찾아온 말단급 매니저로써는 유다희의 실물을 알아보기는 요원하다.

매니저가 케이스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트럭 선반 위에 올렸다.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저희는 사장님과 독점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독점 계약이요?”

“그렇습니다. 저희와 계약하고 저희 독점 던전에서 요리를 판매하시는 겁니다.”

“제가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요? 저는 레이드가 목적이 아니라서요.”

“하하하, 요리에 버프가 걸려있으니, 그냥 던전 앞에서 팔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버프의 효과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가격은··· 대충 1인분당 10만 원에 쳐드리죠. 만약 저희 측 버프와 중첩된다면 20만 원 드리겠습니다. 여기처럼 각성자들이 많은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많이는 못 팔 테지만 그래도 후회 안 하실 겁니다.”

‘헙!’

엄청난 가격! 왕호는 헛바람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1인당 10만 원이면 횟집에서 회의 끝판왕인 다금바리를 맛볼 수 있고, 20만 원이면 5성급 레스토랑에서 고급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하루에 스무 명만 받아도, 지금 수익보다 훨씬 웃돈다.

손님이 적다고 해서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접시 한 접시에 집중할 수 있다. 바쁘지도 않다. 여유가 많이 생긴다. 비록, 많이 만들지 못하기에 스킬의 숙련도는 크게 올릴 수는 없겠지만······.

“독점 던전이라면, 지금보다 상위 던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우선은 레벨 200던전에서 한번 효용성을 검증해보고 더 위로 넘어가 보죠.”

“흠, 200이라니······.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라이센스가 있어서 요리는 가능하나 몬스터 고기의 매매는 불가능합니다. 즉, 제가 직접 조달해야 한다는 뜻이죠. 200레벨 이면 솔직히 어렵습니다. 위험을 무릅쓸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300레벨은 넘어야 200레벨 던전에 갈 수 있겠죠.”

“아, 그건 걱정 마십쇼. 저희 길드가 힘이 좀 쎄니, 법적인 것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희 측에서 다 막아드리겠습니다.”

‘역시······.’

왕호의 인상이 팍! 구겨진다.

길드 매니저 입에서 불법을 저지르자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차피 200레벨 살코기를 받아와도, 제독 스킬의 숙련도와 레벨이 낮아서 해독을 못한다.

방법을 찾는다고 하면 없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에 레드혼 카우 수십 마리를 보관할 수 있으니, 여기서 조달 후 거기에 갖다 파는 방법도 있다. 다른 꼼수도 많다.

찾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합법적인 방법들을 찾을 수 있지만, 법을 어기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 곳과는 조건이 얼마나 좋든 간에 계약하고 싶지가 않다.

왕호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단호한 투로 말했다.

“크게 끌리지가 않네요.”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레벨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저희 측에서 쉽게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아뇨. 굳이 계약에 묶여서 소수에게만 제 요리를 제공하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들려오는 안 좋은 소문도 있지 않습니까.”

“허, 혹시 달빛여제 관련한 유언비어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저희 측에서 명예훼손으로 이미 고소 중에 있는 걸로 압니다. 다 거짓부렁이니 걸러 들으십쇼.”

“그런가요? 뭐, 언젠간 진실이 밝혀지겠죠. 어쨌든 계약은 하지 않겠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혹시, 생각 바뀌시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 주십쇼. 아, 한가지 조언해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저희랑 척을 지시면 아마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어려우실 겁니다.”

매니저는 비릿한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당당한 보폭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 말이 상당히 거슬린다.

왕호는 구겨진 얼굴을 유지한 채로 유다희를 바라봤다.

유다희는 꾸깃해진 왕호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하고 웃는다.

“거 봐요. 제가 괜히 당한 게 아니라니까요.”

“진짜 힘드셨겠네요. 그나저나 저 매니저가 한 말 진짜일까요?”

“너무 다 믿지는 마세요. 항상 한입으로 두말하는 놈들이니까요. 그래도··· 왕호님 요리의 가치는 지금보다 배는 넘을 거예요. 특히, 고레벨일수록 그 가치를 더 실감하겠죠. 여기 사람들은 있으나 마나 한 정도지만.”

고레벨일수록 더 실감한다라······.

유다희의 말을 들은 왕호의 머릿속이 심란해졌다.

지금 당장 레드혼 카우를 냉장고에 가득 싣고, 고레벨 공용 던전에 갈 수도 있다. 1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사실이라면···

‘대박!’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독의 숙련도나 요리 스킬의 숙련도를 크게 올릴 순 없어.’

재료의 레벨을 점진적으로 올려야 한다. 결국, 자신의 레벨도 같이 성장시켜야 한다는 뜻.

지금 당장 돈방석에 앉고 싶다면, 고레벨 던전으로 향하는 게 맞다. 허나, 길게 보면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레벨이 낮으면 방금 같은 악덕 길드에도 휘둘리기 쉽겠지.’

어차피 지금 버는 수입도 나쁘지 않다. 한 번에 던전의 레벨을 확!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간다면, 수익 또한 상승곡선을 그릴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것도 지수함수 형태의 가파른 곡선을 말이다.

싹바가지 없는 길드 매니저 덕분에, 기분이 살짝 언짢아졌다. 그래도 얻은 게 아주 없진 않다.

자신감을 얻었다.

천천히 나아가더라도, 결국엔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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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님!”

한여름의 모습은 오늘도 활기차다. 치어리더를 했으면 정말로 유명해졌을 것 같다.

트럭으로 생기 넘치게 달려오던 한여름이 그대로 멈칫한다.

“어? 이분 또 계시네요?”

한여름의 눈에, 트럭 앞에 죽치고 앉아있는 유다희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인사하실래요? 여긴 유다희님. 그리고 이쪽은···”

왕호는 얼떨결에 중개자가 되어, 한여름과 유다희를 서로 소개시켰다.

“안···녕하세요.”

한여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유다희에게 인사했다.

유다희도 마찬가지로 같이 고개를 숙였다.

유다희는 한여름을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으나, 한여름의 입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뭐야··· 원래 아는 사이였나? 손님이라고 한 것 같은데······.’

한여름은 찝찝한 마음을 달래려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녀의 눈에 트럭에 붙은 칠판이 들어온다. 무언가 달라져있다.

“어? 왕호님! 메뉴가 달라졌네요?”

“예. 코어석으로 냉장고 제작했습니다. 오븐도 새로 구했구요. 게다가 좋은 기술도 얻어서, 다양하게 바꿔봤습니다.”

“와! 정말요? 트럭이 날로 날로 발전하네요! 그럼, 저도 제일 맛있는 걸로 하나 주세요!”

드르륵-

한여름이 왕호와 가장 가까워지는 쪽으로 의자를 이동시켰다.

그녀의 눈에서는 왠지 모를 경쟁심이 번뜩이고 있었다.

*

<꿀팁주의! 30레벨까지 폭렙하는 비법.>

[최단 시간으로 폭렙하는 법을 공유하겠음. 반박하려면 댓글로 달아주면 좋겠음. 아마 없겠지만 ㅎㅎ···

···레벨 13까지 올렸으면 바로 레드혼 카우 던전으로 가는 게 좋음. 얘네들 레벨은 대충 20이 채 안되는데, 여기서 30렙까지 올리는 거임. ‘그게 가능해?’라고 묻는 친구들도 있을 거임. ㅇㅇ가능함. 그리고 이게 제일 빠름. 처음에는 파티 맺어서 한두 마리씩 잡으면 됨. 그리고 20레벨 넘어가면 여러 마리 몰아서 사냥하면 됨. 물론, 파티 못 맺는 성격이거나 거지 직업이면 그냥 다른 던전 가는 게 좋음···

···너네들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레드혼 카우 던전은 던전 크기만으로 따지면 대한민국 5위임. 그만큼 핵넒음. 게다가 A형 던전이라서 몹도 겁나 많음. 넓고 몹도 많으니까, 몰이하기가 너무 편함. 물론, 경쟁자도 많은데 던전이 넓으니까 발품 조금만 팔면 꿀자리 얻을 수 있음. 민첩 높은 애들 구해서 몰이 시키면 됨···

···다음 공략은 레벨 50까지 폭렙하는 법임. 조만간 올리겠음.]

오리진에서 엄청난 추천을 받은 게시글이다.

추천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왕호네 파티도 이 공략을 열심히 따랐다. 레드혼 카우 던전을 오지게 돌았다.

무려 2주 동안 말이다.

그리고 오늘이 아마 이 던전을 도는 마지막 날일 거다. 왕호의 레벨은 30을 넘어 35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한여름의 레벨이 아직 29였다. 아마, 오늘이면 30을 찍을 것 같았다.

‘이제는 레드혼 카우 고기로 요리 스킬의 숙련도을 올리기가 힘들어.’

제독 스킬에도 제동이 걸렸다.

더 상위 던전으로 향해야 한다.

다다다다-

왕호가 레드혼 카우 던전을 힘차게 달린다.

왕호의 눈이 무지갯 빛으로 번쩍인다.

적탐안赤探眼.

왕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마치 적외선 카메라로 보는 것마냥 형형색색으로 바뀐다. 차가운 건 퍼렇게, 뜨거운 건 빨갛게.

당연히 대부분의 색이 파란색이지만, 레드혼 카우의 몸은 빨갛게 보인다. 레드혼 카우는 온혈동물이니까.

왕호는 빨갛게 보이는 레드혼 카우 쪽으로 달려가, 젖소를 도발했다.

“훠이~ 훠이~.”

자신이 두른 앞치마를 펄럭이며 말이다.

왕호가 레드혼 카우 몰이를 위해 새로이 두른 앞치마의 색은 ‘빨간색’.

그 모습을 본 레드혼 카우의 눈이 헤까닥 뒤집힌다.

사실 빨간색은 그리 중요치 않다. 소는 색맹이라 빨간색을 구분하지 못한다. 허나, 왕호의 저 잔망스러운 몸짓을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레드혼 카우는 아마 없을 거다.

음무우우어어어어---!!!!

평소보다 울림이 고약하다.

투우사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오는 투우소마냥, 왕호의 몸을 꿰뚫어버리려는 듯, 발을 정신 사납게 구른다.

두두두두두-

그렇게 모인 레드혼 카우의 숫자가 열다섯이 넘어갔다.

사실 적탐안을 쓰지 않아도 레드혼 카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왕호가 이 스킬을 계속해서 껐다 켰다 하는 이유는,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전교 1등의 비법은 별거 없다.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똥 누거나 급식 줄 설 때, 영단어를 외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전교 1등의 심정으로, 틈 날 때마다 적탐안을 사용한다.

덕분에, 풀숲에 가려있는 레드혼 카우를 찾기도 했다. 아마 실버폭스같이 잘 숨는 몬스터가 있었다면, 쥐 잡듯이 찾아낼 수 있었을 거다.

“옵니다!”

강창모가 멀리서 뛰어오는 왕호를 포착하고 소리쳤다.

빨간 앞치마를 펄럭이며 뛰어오는 왕호의 뒤로, 지축을 울리며 다가오는 수많은 레드혼 카우들이 보인다.

덜덜덜덜-

엄청난 진동이 벌써 여기까지 느껴진다.

“섀도우 실드!”

강창모가 스킬을 사용했다.

그가 들고 있는 방패의 주위로, 푸른빛의 에너지 장막이 스멀스멀 형성됐다. 가로세로 20m는 넘을만한 거대한 에너지 방패!

스윽-

왕호는 이 에너지 장막을 아무렇지 않게 통과했지만, 저 젖소들은 아니다.

콰과과과광-!

장막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쿠어엉--!!

소들이 뒤엉켜 쓰러지자, 한여름과 김지원이 화염계열 광역스킬을 사용한다.

“파이어 필드!”

“플레임!”

화르르륵-!

열다섯의 레드혼 카우의 몸에 불이 잔뜩 붙는다.

음머어어-!

젖소들이 고통에 몸부림친다.

왕호는 그 고통의 끈은 끊어주기 위해, 몰리브덴 바나듐강 중식도를 들고 저벅저벅 다가갔다.

화염이 잔뜩 일렁이고 있었지만, 버틸 수 있었다.

불 친화력 특성 때문.

꽈악-!

식칼을 쥔 손에 힘을 빡! 주고, 그대로 휘두른다.

콰자작-!

첫 번째 소의 미간이 그대로 뚫렸다. 즉사한 소는 철퍼덕 주저 앉았다. 요새 레이더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로, 뚝배기가 박살 났다.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를 뜻한다.

왕호는 멈추지 않고 바로 다음 소에게 다가갔다.

부웅-

식칼을 휘둘러,

쾅-!

미간을 부순다.

다시, 휙-

쾅-!

휙- 쾅-!

휙- 쾅-!

휙- 쾅-!

거침없다.

매 맞을 순서를 기다리는 어린아이마냥, 레드혼 카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법 공격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벌떡-

운 좋게 마법 공격에서 벗어난 젖소 한 마리가 두발로 일어선다.

팟-!

그리고 왕호를 향해 드롭킥을 선사한다.

왕호는 상체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공격을 가볍게 흘렸다.

철푸덕-

드롭킥이 적중하지 않자, 젖소는 그대로 곤두박질친다.

휙- 쾅-!

결국, 동료들과 같이 최후를 맞이한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와! 드디어 레벨 30이에요!”

한여름은 기쁜 나머지, 제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축하해 여름아.”

왕호도 활짝 웃으며 그녀의 레벨업을 축하했다.

2주가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적지 않은 것이 바뀌었다.

한여름의 요청대로 왕호는 그녀를 편하게 ‘여름이’라고 불렀고, 한여름은 왕호를···

“고마워요 오빠!”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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