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의 번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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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이챠!”
왕호는 가죽을 깔끔하게 벗긴 레드혼 카우를 고기걸이에 걸어 끼웠다.
냉장고 안에는 족히 50구는 넘을 법한 레드혼 카우가 쭉 늘어섰다.
‘소고기를 이용한 요리는 웬만한 건 다 해봤다.’
2주 동안 아주 원 없이 만들었다.
사골도 푹 고아 보고, 특수부위와 내장들도 죄다 사용해봤다.
덕분에 제독 스킬과 요리 스킬의 숙련도, 그리고 레벨을 줄기차게 올릴 수 있었다. 너무 오른 탓에, 레드혼 카우로는 이제 한계가 찾아올 정도다.
많이 만든 만큼, 당연스레 많이 팔아 재꼈다.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을 우습게 웃돌았다. 세금, 기름값, 기타 재료비 등등··· 소모되는 금액을 제한다고 해도, 이 추세라면 한 달 2,000만 원의 순이익은 뽑아낼 것 같았다.
비록,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지만 그래도···
‘내 또래에 이만큼 버는 친구들이 있을까?’
억대 연봉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할 시절엔, 세후 수령액이 채 400이 되지 않았다. 포장마차 때도 개같이 고생해서 겨우 500을 넘겼다. 그것도 남들과 비교했을 때 많다고 볼 수 있으나, 지금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월세, 보험료, 희영이 약값, 기타 생활비를 다 쓰고도 천만 원 이상을 저축할 수 있다. 몇 달만 더 모으면, 보증금을 빼서 수월하게 이사할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던전을 옮기면 수익이 더욱 늘어날 것은 자명한 일.
여러 번 느끼는 거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레벨일수록 버프의 효율이 증가한다. 즉, 가치가 높아진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충분히 수요가 생긴다. 아주 심플한 시장경제원리다.
왕호는 이제 자신감이 완전히 붙었다. 여러 길드가 자본주의적 시장원리를 완벽히 뒷받침해줬다.
-엑스튠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영웅문에서 나왔습니다.
-왕십리파에서 나왔습니다.
-이블 엠파이어입니다.
프레이 길드가 떠나고 나서도, 많은 길드가 왕호를 찾아왔다. 그리고 전속계약을 제안했다.
그만큼 버프 요리의 가치를 높게 본 것이다.
‘랜덤 버프임에도 이 정도면··· 만약, 버프를 지정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넘어서는 초대박!
지금도 버프가 자신과 맞지 않다고,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다.
다만, 그럴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직도 “힐링 요리사”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클래스 능력의 개방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다.
‘중급 요리의 숙련도가 50%가 되면 뭔가 달라질까? 아님··· 힐링 요리의 숫자를 늘리면 저번처럼 스킬이 해금되려나?’
그냥 추측하는 수밖에 없다. 중급 요리의 숙련도는 50%를 바라보고 있으니, 조만간 알 수 있겠으나··· 힐링 요리는 원한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척- 척-
왕호는 잡다한 생각을 유지한 채로 트럭을 정리했다.
여름이가 마지막으로 30레벨을 찍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2주 동안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언니! 이따가 같이 마도구 스토어 가요! 저 30레벨 찍어서 장비 바꾸려고요!”
“그래! 언니가 골라줄게.”
한여름과 유다희가 친해졌다.
유다희는 왕호와 친구를 맺고 나서부터는, 매일 찾아오지 않았다. 프리랜서로 작업을 뛰다가, 여유가 생길 때마다 와서 음식을 먹고 갔다. 왕호에게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물어볼 겸, 맛있는 음식을 맛볼 겸 해서 말이다. 거의 주 3회 꼴이었다.
그때마다 한여름과 마주쳤는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더니만··· 어느덧 서로 하하호호 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둘이 따로 만나서 카페도 자주 간단다.
한여름의 미친듯한 친화력과 러블리함이 유다희조차도 구워삶아버렸다. 물론, 그녀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왕호로썬 알 도리가 없다. 여자들의 인간관계는 남자처럼 단순하지 않으니까. 겉으로만 보면 거의 3년은 알고 지낸 사람 같다.
“오빠도 같이 가요!”
“그래요! 왕호님도 이참에 장비 바꿔보세요!”
유다희는 아직도 왕호와 말을 놓지 않았다. 이게 더 편하단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다희는 오히려 한여름과 더 친해 보였다.
“음···”
솔직히 크게 끌리지는 않는다. 일단, 저녁 장사를 못한다. 원래 계획은 새로운 던전에 답사 갈 겸, 그곳에서 저녁 장사를 하려고 했다.
뭐, 2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으니··· 반나절이야 쉴 수는 있다.
중요한 건··· 딱히 필요한 마도구가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마도구는 비싸다.
왕호가 망설이고 있자, 여름이가 말을 덧붙였다.
“열심히 장사했으니, 오늘 하루만 쉬어요! 저희랑 같이 가요! 구경하면 재밌을 거예요!”
왕호의 목덜미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같이 구경하자고?
쉬는 건 쉬는 건데··· 저 둘 쇼핑 따라갔다가는, 장사하는 것보다 진이 더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유다희도 거들었다.
“같이 가요 왕호님. 높은 던전 가시려면 장비도 중요해요. 지금 당장 사는 건 아니더라도, 한 번쯤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어쩐다···
“음··· 가는 곳에 조리 도구도 있을까요? 어차피 저는 레이드를 주로 할 것도 아니니까, 둘러볼 거면 주방기구 쪽으로···”
“당연히 있죠. 뉴월드 명동점으로 갈 건데요.”
결국 그녀들의 끈덕진 요청에 왕호는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 바람 좀 쐬고 집에 가서 쉬자.’
*
“헉!”
왕호의 눈이 토끼 눈마냥 커진다.
마치 엘도라도에 온 것만 같다. 세상세상 특이한 물건들이 천지삐까리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두 시간 동안 그녀들 뒤를 터덜터덜 따라다녔다. 요리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힘들었다. 지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 모든 남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뺑뺑이 돈 것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휙- 휙-
고개를 어디로 돌리든 간에, 죄다 갖고 싶은 것들뿐이다.
왕호는 지금 조리 도구 코너에 와 있다.
두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실이지만, 마도구는 비싸다. 저렴한 것도 있지만, 같은 용도의 일반 도구들에 비하면 열 배는 더 비싸다.
그래서, 왕호는 마도구 스토어에 거의 오질 않는다.
레스토랑 시절에도 일반 도구들을 사용했다. 냉장고나 오븐같이, 마도구를 반드시 이용해야 할 것들은 레스토랑 측에서도 거리낌 없이 구입한다. 허나, 일반 도구들까지 마도구로 교체하진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지금 왕호가 들고 있는 프라이팬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자동으로 달궈지는 프라이팬?”
입이 쩍 벌어진다.
세상에 이런 편한 물건이 있다니!
손잡이에 달린 휠을 돌려 쉽게 온도조절을 할 수 있다.
왕호는 프라이팬을 잡고 손목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휘리릭-
‘심지어 가벼워!’
프라이팬을 다시 내려놓고 좀 더 설명을 읽는다.
[자동으로 달궈지는 프라이팬입니다. 휠을 움직여, 온도 조절을 간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경량화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상당히 가볍습니다.]
[클린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강화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내구도가 뛰어납니다.(특수합금 이상)]
[다이아몬드 코팅 처리를 마치고 인챈트 하였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지지 않습니다. 반영구적입니다.]
[가격 – 2,500,000원]
‘저것만 있으면!’
가스불을 켜지 않아도 요리가 가능하다. 마치 자체적으로 인덕션 기능이 있는 프라이팬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설명들이 군침 확 돈다. 한 가지만 빼놓고.
가격.
비슷한 크기의 테팔 프라이팬은 3만 원이면 살 수 있다.
두리번두리번-
왕호는 장난감 가게에 온 네 살배기 꼬맹이마냥, 매장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상품을 관찰했다.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식칼?”
특이한 설명의 칼이 눈에 들어왔다. 생긴 것은 평범한 식칼처럼 생겼다.
아까 보았던 프라이팬처럼, 여기 손잡이에도 휠이 달려있었다.
왕호는 식칼을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휠을 돌려본다.
슈슈슉-
칼날의 길이가 거짓말처럼 늘어난다.
“헉!”
당황해서 휠을 반대로 돌리자,
스르륵-
칼날의 길이가 급격히 줄어든다.
마치 커터칼을 사용하는 듯한 착각!
“식칼에도 이 기능이 달려있네요.”
유다희도 그 모습을 보더니 조금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다른 칼에도 이런 기능이 있습니까?”
“그럼요. 전사들 중에 저런 검 들고 다니는 사람이 꽤 있어요. 평소에는 1미터 남짓으로 검신을 늘렸다가, 아주 근접하게 되면 단검으로 바꿔버리는 거죠.”
세상에나! ‘템빨’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칼은 5백만 원이네요··· 다희님께서 말한 그 검들도 다 이 정도 하나요?”
“그 정도로 싼 것도 있지만. 10배는 더 넘는 것도 허다해요. 단단한 몬스터를 사냥해야 해서 다른 마법들도 인챈트 해야 돼죠. 무기에 마나를 잔뜩 실어야 하는데, 웬만한 검이 아니면 내구도가 약해서 금방 부서지거든요.”
“하하, 무슨··· 외제차 한 대 값이네요. 두 개 모으면 아주 집이라도 사겠습니다.”
“그만큼 벌이가 있으니까요. 좋은 장비를 써야 더 강한 몬스터도 잡을 수 있겠죠.”
왕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것들도 구경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날을 갈지 않아도 되는 사시미 칼.
-바로바로 찌개를 끓여주는 뚝배기.
-전기가 필요 없는 밥솥.
-데우기, 얼리기가 모두 가능한 마나레인지.
별천지다.
한 바퀴 쭈욱 둘러본 왕호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충동구매일까? 제일 싼 게 200만 원인데······.’
예전 같았으면 바로 뛰쳐나갔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수중에 돈이 있다. 아낄 때는 아끼더라도 쓸 때는 과감해져야 한다. 계속 쟁여 두기만 하면 자린고비밖에 더 되나?
다른 것도 아니고 요리 도구다. 물론, 저런 잡다한 기능이 없더라도 요리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허나, 요리사로써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왕호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유다희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다희님. 아까 마나를 머금으려면 검이 좋아야 한다고 하셨죠?”
“네.”
“그럼 제가 가지고 있는 중식도로 일도양단 스킬을 쓴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왕호님께서 자랑하시던 그 몰리브덴 바나듐강 중식도요? 하도 들어서 이름을 다 외워버렸네요.”
“예.”
“특수 합금이라 다른 것보다는 오래 버틸 테지만, 열 번만 써도 이가 나가버릴걸요? 제가 볼 때는, 100번 정도면 산산조각 날 거예요.”
“헙!”
뎅-
머리에서 종 하나가 울린다. 충격적이다.
‘내 몰리브덴 바나듐강 식칼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니······.’
왕호는 일도양단 스킬을 오우거 다리를 썬 이후로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다. 요리에 쓸모 있는 스킬이 아니라, 굳이 숙련도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있는 마나로는 적탐안의 숙련도를 올리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 매장을 둘러보니 생각이 짧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레이더들은 고레벨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비싼 장비 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
왜?
그만큼 몬스터가 단단하기 때문일 거다.
실버폭스나 레드혼 카우 같은 경우는, 그저 자신의 힘과 민첩 스탯만으로 찍어눌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게 먹힐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결국엔 일도양단 스킬의 숙련도도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스킬을 사용해서 잡아야 하는 몬스터가 언제고 반드시 나타날 거다. 당장, 내일 새롭게 갈 던전에서 그 경우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내가 오우거의 다리를 썰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템빨이 없진 않아.’
금수저 진상의 비싼 검으로 오우거를 후렸었다. 그 검은 일도양단의 마나를 단단히 머금을 수 있었고, 검 자체의 공격력 또한 상당했다. 거기에 왕호의 높은 스탯과 칼질 센스까지 더해졌기에, 그 결과가 나온 것이리라.
‘그래! 까짓것!’
왕호가 결심했다.
“저도 두 개 정도는 사야겠습니다.”
“오~ 짠돌이 오빠가 웬일이래요?”
왕호의 결정이 의외였는지, 여름이는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어떤 거 살 거예요 오빠?”
“음··· 처음에 봤던, 자동으로 달궈지는 프라이팬이랑···”
“팬이랑?”
“날이 바싹 서 있는 만능 장미칼!”
“장미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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