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42화 (42/149)

악덕의 번영 (3)

장미칼이라는 말에 여름이가 살짝 놀랐다.

그녀도 장미칼의 위엄 어린 소문을 들어본 적 있다. 도마는 물론이고, 같은 장미칼도 쓱싹 썰어버린다는 전설의 식칼이 아니던가!

홈쇼핑과 대형마트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판촉 상품이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사실··· 장미칼이 도마까지 썰어버릴 수 있는 이유는 칼이 아니라 톱에 가까운 형태라서 그렇다.

일반적인 칼날이 아닌, 톱니 모양의 서레이션serration 칼날을 가지고 있다. 톱니칼이기 때문에 단단한 재료는 힘을 들이지 않고도 스윽 잘라버리지만, 오히려 부드러운 재료는 잘 잘리지가 않는다. 당장 김밥을 썰어도 엉망진창으로 썰린다. 즉, ‘식칼’의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그리 알맞지 않은 칼.

하지만, 나무까지도 잘라버리는 퍼포먼스 때문이었는지 장미칼은 범국민적으로 유명해졌다. 엄청난 광고효과로 제조사는 회사의 규모를 거대하게 불릴 수 있었다.

덩치가 커진 제조사는 욕심이 생겼다.

그들도 안다. 식칼이라고 광고하고 판매하고 있지만, 식칼로 쓰기는 힘들다는 것을···.

초보 주부들이나 요리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에겐 굉장한 제품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힘을 살짝만 들여도, 쓱쓱 잘라버리니까. 하지만, 한 번 사용해 본 주부9단들이나 요리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욕을 바가지로 퍼먹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제대로 된 세계 최고의 식칼을 만들어보자!

그들이 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마나석에 있었다.

장미칼의 장점과 마법을 결합한다면?

그들이 염원하는 최고의 ‘식칼’을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오랜 연구기간 끝에 드디어 탄생했다.

그들 회사의 궁극의 역작이자, 비운의 걸작인 마나석 장미칼이 말이다.

왕호는 오른손으로 그 장미칼을 꽉 쥐었다.

‘그립이 좋아.’

인체공학적이다.

손잡이만 잡아봐도 제조사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지 알 것 같았다.

왕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제품의 설명을 쭉 읽어 내려갔다.

[날이 바짝 서 있는 만능 장미칼]

[티타늄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매우 단단합니다.]

[강화, 보존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매우 튼튼합니다.]

[날을 갈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날이 바짝 서 있습니다.]

[경량화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매우 가볍습니다.]

[클린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어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원터치로 모드 변경이 가능합니다.]

[만능 모드 : 일반 식칼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리하기에 안성맞춤.]

[서레이션 모드 : 날이 톱니모양으로 바뀝니다. 무엇이든지 썰어버릴 수 있습니다.]

[식칼에 예쁜 장미 문양이 각인되어 있어 기풍이 흘러넘칩니다.]

처음 이 설명을 보았을 때, 입이 쩍! 벌어졌다.

왕호는 칼을 눈높이로 올려 검신을 자세히 살폈다.

칼의 서슬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퍼렇다. 예사롭지가 않다. 날 위에 티슈를 떨어뜨려도, 펄럭거리며 반으로 갈라질 것만 같았다.

왕호는 엄지손가락으로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눌러봤다.

딸깍-

챙-!

그러자, 칼날이 톱니 모양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진정한 장미칼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장 이놈을 들고 가서 다이아몬드라도 썰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이 정도면 거의 식칼 끝판왕인데?’

왕호의 눈에는 단점이랄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제조사는 이 장미칼을 만들고 적자의 늪에 허덕여야 했다. 회사의 기둥이 몇 개나 뽑혔다. 도산의 위기에서 겨우 헤엄쳐 나왔다. 당연히 연구부서는 해체되고, 더 이상 이 마나석 장미칼은 생산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장의 니즈와 맞지 않은 제품.

가격부터가 말이 안 됐다.

무려 1,000만 원!

레이드를 뛰는 고랭커들은 5천만 원이 넘는 검도 우습지 않게 구매한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레이더이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식칼 하나에 천만 원을 꼬라박는다?

유명 맛집 주방장이거나, 준 스타 셰프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이 촌스러운 문양이 새겨져 있는 장미칼을 과연 사려고 할지 의문이다. 제조사는 이 부분을 크게 간과했다.

장미 문양은 그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이다. 하지만 홈쇼핑의 주력 타겟인 주부들에게는 단단히 먹힐지 몰라도, 유명 셰프들에게는 아니다. 다른 요리사에게 놀림 받기 딱 좋은 문양이다.

장미 문양을 제거하더라도 크게 메리트가 없다. 그들은 톱날 모드 자체가 필요가 없다. 필요도 없는 기능에 돈을 왜 쏟겠는가. 톱날 모드를 제외한 기능은, 다른 마나석 식칼에도 달린 것들이다. 차라리 길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식칼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할 거다.

돈이 많은 그들이 고급 프리미엄 독일제를 선호한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장미칼은 대한민국 중소기업에서 만들어졌다.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은근히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왕호에겐 아니다.

모든 기능이 마음에 쏙! 든다. 심지어 서레이션 모드까지!

‘톱날 모드로 변경하고 일도양단 스킬까지 사용한다면?’

셀타 오우거가 아니라, 오우거 할애비를 실은 장갑차가 와도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지 않을까?

재료 수급을 위해, 일차적으로 레이드를 뛰어야 하는 왕호의 입장에서는 이 톱날 모드가 상당히 끌리는 기능이었다. 다른 기능들은 뭐 두말할 것도 없다.

물론, 가격이 1,000만 원이었다면 왕호도 살 생각조차 안 했을 거다.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써진 문구가, 왕호의 눈에 들어왔다.

[가격 – 10,000,000원 -> 5,000,000원 50% 행사 중!]

재고 떨이를 위해 50%나 DC 중이다. 시쳇말로 개이득!

게다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서도, 화려한 문구들이 형형색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총 300만 원 이상 구매 시, 12개월 무이자 카드 할부

-총 700만 원 이상 구매 시, 24개월 무이자 카드 할부 진행 중!

그래서 왕호가 250만 원이나 하는 ‘자동으로 달궈지는 프라이팬’을 같이 구매하려고 한 거다.

도합 750만 원이 되어, 24개월 할부를 후릴 수 있다.

‘다음 달의 나와, 그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치면 못살 것이 없다!’

할부의 무서움이다. 이것에 너무 취한 나머지, 막 긁어버린다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다. 왕호는 그정도까지 멍청하진 않다. 24개월 무이자 할부 때문에, 프라이팬을 구매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이 이유가 아주 없진 않지만, 그래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철판이 있지만, 프라이팬이 있으면 더 좋지.’

철판과 프라이팬. 용도는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프라이팬은 기울일 수 있다는 거다.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면 볶는 것도 훨씬 편하다.

당장, 똑같은 스테이크를 구우라고 하면 프라이팬으로 더 맛있게 구울 자신이 있다.

‘어차피 반영구적이니 계속 쓸 수 있잖아?’

트럭의 규모를 더 키우든, 식당을 새로 차리든, 남자 가정주부가 되든···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20년을 사용한다고 치면 한 달에 겨우 만원꼴이다.

왕호는 왼손엔 프라이팬, 오른손엔 장미칼을 들고 계산대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24개월로 해주세요.”

*

집으로 돌아온 왕호는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쇼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고고··· 쇼핑 두 번 따라갔다가는 완전 스켈레톤 되겠네······.”

높아진 지구력을 훨씬 상회하는 거리를 뽈뽈뽈 돌아다녔다.

도대체 왜 갔던 매장을 여러 번 가고, 동선을 지그재그로 잡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머리로 무엇을 이해하리오···”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쇼파에 몸을 푹- 집어넣은 왕호는, 핸드폰을 꺼내 단톡방에 들어갔다.

[밥차 파티방 – 참여자 4인 : 안왕호, 한여름, 김지원, 강창모]

[안왕호 : 우리 다음 던전 정해야죠?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레벨 50까지는 이들과 같이 가기로 했다. 아마, 이다음 던전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더욱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까똑-!

조금 기다리자, 금방 단톡방이 활성화됐다.

[강창모 : 안 그래도 오리진 돌아다니면서, 대충 두 개 정도 알아봤습니다. 같이 고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김지원 : 와, 창모 오빠 역시 든든해요! 정보력 거의 CSI급인데?]

[한여름 : 내 친구가 자주 하는 말 있는데, 이럴 때 조별과제 버스 탔다고 하더라궁.]

[강창모 : 하하, 고마워. 그럼, 설명할게. ‘얀센 고블린’ 던전이랑, ‘보르도 울프’ 던전 이 두 가지가 제일 좋아 보여. 가깝기도 하고.]

강창모는 오리진에 자주 들어간다. 정보도 잘 캐낸다. 그런 강창모의 손에서 던전에 대한 정보가 술술 튀어나왔다.

고마움이 가득 일었다. 덕분에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보양식이라도 해줘야겠다.’

사실 강창모는 왕호와 동갑이었는데,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았다. 강창모가 한사코 거부했다. 왕호를 ‘존경’해 마지않는 입장에서 절대로 말을 놓지 못하겠다나?

[안왕호 : 설명만 들으면, 얀센 고블린 던전이 젤 괜찮은 거 같은데요? 레벨업 속도도 제일 빠르고··· 무엇보다도, 저번에 공략글 썼던 사람이 레벨 50까지는 얀센 고블린으로 가라고 했다면서요.]

[강창모 : 그렇긴 한데··· 사실 처음엔 저도 여기로 가려고 맘 잡았습니다. 근데··· 혹시 고블린 사진 보셨습니까?]

[안왕호 : 아뇨. 이상하나요?]

[강창모 : 이상한 정도가 아닙니다. 형체는 키 작은 인간이라 보시면 되는데, 몸 색은 딱 매생이 색이고 얼굴은 흉측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전 중세시대 흑사병 마스크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지원 : 와, 진짜 궁금하다. 직접 보고 싶네. 만져 보고도 싶다. 촉감은 어떨까?]

[한여름 : 윽! 미쳤어? 설명만 들어도 극도로 혐오스럽잖아!]

[강창모 : 맞아. 혐오스러워서 문젭니다. 왕호님은 몬스터를 잡아 요리해야 하는데, 고블린은 혐오스러워서 요리를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사 먹지는 않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요리야 뭐, 못하는 건 아니다. 요리를 10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 약했던 비위는 지금 말도 안 되게 강해졌다.

허나, 아무리 맛있게 만든다 한들 수요가 없을 것이 자명했다. 손님 입장에선, 먹을 때 고블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

[강창모 : 그래서 동물형 몬스터로 더 알아봤습니다. 제 생각엔 보르도 울프 던전이 좋아 보입니다.]

[김지원 : 난 창모 오빠 의견에 한 표!]

[한여름 : 저두 여기가 괜찮아 보여요! 동물형이라서 맛있으면 많이 사 먹겠어요!]

파티원들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끓어오른다. 왕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준다. 배려해주고 있다.

강창모의 말이 확실히 맞다.

지금은 버프의 메리트가 혐오감을 완전히 지워줄 정도는 아니다. 아마 좀 더 좋은 버프를 부여할 수 있으면, 아무리 혐오스러울지라도 수요가 생길 거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동물형 던전은 줄어드니, 천천히 준비해놓아야 한다.

[안왕호 : 그럼, 내일 보르도 울프 던전에서 봬요. 저도 자기 전에 보르도 울프에 대해 좀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 손자병법에도 나와 있지 않나.

왕호는 오리진에 들어가 정보를 캐는 것보다, 직접 경험한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게 낫겠다 싶었다.

곧바로 자신이 아는 가장 고랭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왕호 : 다희님! 혹시, 보르도 울프 사냥해보신 적 있으세요?]

[유다희 : 보르도 울프요? 네. 예전 길드에서 레벨 올릴 때 사냥했었네요. 프레이 길드는 아직도 보르도 울프 던전에서 길드원 키울 걸요?]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