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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43화 (43/149)

악덕의 번영 (4)

[안왕호 : 프레이 길드요? 길드들은 보통 독점 던전을 이용하지 않나요?]

[유다희 : 독점 던전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전체 던전의 5%도 채 안 될 걸요? 인류는 몬스터 때문에 존폐의 기로까지 갔었기 때문에, 독점 허가는 쉽게 나지 않아요. 한 달 정도의 선독점은 쉽게 내주지만요. 특히나, 육성을 필요로하는 저렙 던전은 독점 던전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안왕호 : 그렇군요. 그럼, 프레이 길드는 보르도 울프 던전을 길드원 육성 지점으로 삼은 거겠네요?]

[유다희 : 맞아요. 아무래도 한 던전만 공략하는 게 쉽겠죠. 육성 노하우도 계속해서 쌓일 테고요. 대형 길드끼리는 서로 겹치지 않게, 사전에 합의를 봐요.]

[안왕호 : 사실, 내일부터 보르도 울프 던전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레벨 50까지는 이곳에 있으려고요. 그래서 다희님께 물어본 겁니다.]

[유다희 : 정말요? 아, 옛날 생각 새록새록 나네요. 좋은 공략법 알려달라는 거죠? 일단, 보르도 울프는 무리 생활을 하는데, 대장 울프의 힘에 따라 무리 규모가 달라져요.]

[안왕호 : 대장이 약하면 따라다니는 몬스터 숫자가 적어진다는 말입니까?]

[유다희 : 맞아요. 그래서 처음엔 4, 5마리씩 뭉쳐 다니는 애들 찾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기도 레드혼 카우 던전 만큼이나 넓으니까 많이 돌아다니면 금방 눈에 띌 거에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팁이 있는데, 대장 먼저 잡으세요. 덩치가 제일 큰놈이 보통 대장 하는데, 얘 먼저 잡으면 사기가 확! 떨어져서 쉬워질 거예요.]

[안왕호 : 고맙습니다. 오리진에다 물어보면 한참 걸렸을 텐데, 다희님 덕분에 일찍 자겠네요.]

[유다희 : 그런가요? 그럼, 보르도 울프로 신메뉴 만드시면 알려주세요! 바로 찾아갈게요. 당연히 친구DC 해주겠죠?]

[안왕호 : 돈도 많이 벌면서······. 알겠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셨으니, 첫 메뉴는 그냥 드릴게요.]

왕호는 유다희와의 대화를 마치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보르도 울프의 레벨은 30대. 이걸로 요리하면 버프의 효율이 더 높아질 수도 있어!’

지금까지 왕호가 해왔던 버프 요리는, 죄다 레벨 20 이하의 재료들로만 만든 요리다.

하나같이 스탯의 상승 폭이 10%를 넘지 못했다. 이것으로 추측건대, 특정 레벨 이하의 재료를 사용하면 10%가 한계일 수 있다는 소리다.

그 한계 레벨이 30일지 40일지 50일지는 아직 모른다.

내일이 되면 아마 더 확실해지겠지······.

*

왕호는 아침 10시 즈음 보르도 울프 던전에 도착했다. 게이트 앞 목 좋은 곳에 주차를 마치고는, 간단히 장사 준비에 들어갔다. 적어도 10시 45분부터는 점심 장사를 오픈할 예정.

‘다음번엔 좀 더 빨리 와서 브런치 메뉴도 팔아야겠다.’

레드혼 카우 던전에서부터 어렴풋이 느낀 거지만, 아침 레이드를 뛰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많은 수는 아니다. 그래도 브런치 메뉴까지 팔아버린다면, 수익이 더 올라가긴 할 거다. 잠을 조금만 줄이면 된다.

주섬주섬-

왕호는 냉장고에 들어가 각종 재료를 뭉텅이로 꺼냈다.

일단은, 새로운 던전 첫날이니 검증된 레드혼 카우 요리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오후에 보르도 울프를 잡아 메뉴를 개발할 거다.

왕호는 요리를 위해 어제 사 온 장미칼과 프라이팬도 꺼내 올렸다.

그 전까지 쓰던 고급 양식도는 가죽 케이스에 잘 넣어 따로 보관했다.

6년을 넘게 사용했다. 요리를 업으로 삼은 터라, 수도 없이 사용했다. 당연히 날을 갈고 갈고 또 갈았다. 횟수만 해도 백 번은 넘을 거다. 절삭력이 줄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낀다. 다만,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 쉽사리 바꿀 수 없었다.

그래서 몇 주 전부터는 중식도를 새로 사서,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몬스터를 효과적으로 처치하기 위해, 특수합금 중식도를 새로 구입했다.

그래도 왕호에겐 양식칼이 더 익숙하다. 전공도 양식이다.

장미칼을 구했으니, 이제 오래전 물건은 은퇴할 차례다.

“고생 많았다! 이제 쉬어라.”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저 칼과 함께 지옥 같던 레스토랑 시절을 굳세게 견뎌냈었는데······.

왕호는 반짝거리는 은색의 중식도로 눈을 살짝 돌렸다.

‘이건 계속 써야지.’

몰리브덴 바나듐강 중식도는 같이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놔뒀다. 마늘 으깰 때, 이것만 한 것도 없다. 옆면으로 쾅! 쾅! 내려찍으면 기가 막히게 으깨진다.

“모드는 일반 모드로···”

장미칼의 모드를 알맞게 맞췄다. 서레이션 모드로 했다가는 도마가 잘려나간다. 조심해야 한다.

왕호는 장미칼을 들어 큼지막한 고깃덩이를 반으로 썰었다.

쓱싹-

장미칼의 첫 칼질을 시작하면서, 요리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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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와, 냄새 죽인다.”

“던전에도 푸드트럭이 오네?”

“오리진 안 봤냐? 저거 레드혼 카우 던전에 있던 밥차잖아.”

“그러네. 버프 준다는 그 밥차다. 와, 이 던전에도 오네?”

“저거 먹고 들어가면 개꿀 아니냐? 글 보니까 스탯 10% 오른다던데.”

“겁나 신기하네. 원리가 뭘까? 힐러가 요리에다가 버프 마법을 사용하는 건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흐뭇하다.

푸드트럭을 사기 잘했다는 생각이 확연히 든다. 남들은 한 번 밖에 못 받는다는 오픈빨이, 던전을 옮길 때마다 생긴다.

왕호는 레드혼 카우 던전에서 팔았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았다. 이곳은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 곳. 자연스레 가격도 인상됐다.

우르르르-

손님들이 트럭 앞으로 몰려들었다.

몇몇 손님이 칠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소스라친다.

“헐 3만 원? 와 너무 비싼 거 아냐?”

“버프 준대잖아. 버프값이라 생각하면 되지.”

“우리 길드 힐러가 버프 공짜로 주는데, 굳이 저 돈 주고 사 먹을 이유가···”

“저기 중첩된다고 나와 있네! 나는 무조건 사 먹는다.”

“그래도, 매일 먹기는 조금 부담되지 않냐?”

“메뉴 다양하잖아. 제일 싼 거 먹어라. 물론, 나는 제일 비싼 스테이크 먹을 거임. 너와는 다르게 이번 달 정산금 어마어마하거든.”

“글 보니까, 맛도 미쳤다던데? 맛있으면 이득 아니냐 어차피?”

호황이다.

높아진 가격 때문에 돌아서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들 입장에서는 버프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면, 진짜로 돈이 없거나.

.

.

.

한 남자가 왕호의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트럭을 보고 심하게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창모님 때랑 비슷한 반응인 거 같은데······.’

진짜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머뭇거리던 강창모의 모습과 심히 흡사했다.

하지만···

‘왜?’

왕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곳은 초급 던전인 실버폭스 던전이 아니다.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길드에 소속되어 있다. 레벨 30 정도면, 아무리 돈을 못 벌어도 이걸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맞지 않았다면, 그냥 망설임 없이 떠났을 거다.

왕호는 계속해서 몰려오는 손님 때문에, 이 의문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한 남자가, 망설이던 그 사람을 데리고 트럭 앞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여기 불고기 샌드위치 두 개 주세요!”

왕호는 다가온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아까 망설이던 이의 외모는 누가 보더라도 동남아시아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를 데려온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봤을 때, 한국 사람임이 분명했다.

둘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왼쪽 가슴팍에 “프레이”라는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프레이 길드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초급 마법 방어구 같았다.

외국인을 데려온 남자가 외국인에게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뚜이! 불고기 아시죠? 불고기 샌드위치 시켰어요.”

“뿔고기 마시씀미다! 나 뿔고기 조아함미다!”

외국인의 한국어는 어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불고기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는지, 아이같이 환한 웃음을 지어냈다.

“뚜이! 저는 이것만 먹고 이제 다른 던전에 가야돼요! 50레벨 넘었거든요. 제가 마지막으로 사주는 거니까, 맛있게 먹고 앞으로도 씩씩하게 잘 버텨야 돼요!”

“마쥐막? 빠이빠이 임미까? 나 너무 쓸쁨미다!”

외국인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당장에라도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굴 것만 같다.

왕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제 트럭에 외국인은 처음이네요. 서비스 많이 넣어드리겠습니다. 곱빼기로 드릴게요.”

“오, 정말입니까? 뚜이! 여기 사장님이 뚜이 같은 외국인은 처음이라고 서비스 많이 넣어준대요! 곱빼기로 준대요!”

“꼬빼기? 나 꼬빼기 모름미다!”

“아, 많이 준대요 많~이!”

남자가 양손을 둥글게 펼치면서 말했다.

“아! 마니! 나 마니 머글 쑤 있씀미다! 싸장님 조아요!”

외국인은 왕호를 향해 엄지척을 날렸다.

두 사람의 대화만 봐도, 저 한국인이 외국인을 잘 챙긴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치이익-

왕호는 요리를 만들면서, 한국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두 분 다 프레이 길드 소속이신가 봐요?”

“아, 예. 지금은 길드 도움 좀 받고 있죠. 덕분에 레벨업도 빠릅니다. 여기 온 지 2주 만에 벌써 50레벨 찍었습니다.”

“근데, 던전에서 외국인은 처음 봅니다. 이 분도 길드와 계약하신 겁니까?”

“아··· 뚜이님이요? 저는 정식 3년 계약인데, 이 분은 케이스가 좀 특이합니다.”

남자는 말을 하기 좀 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왕호는 궁금했지만, 억지로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다. 요리에 집중했다.

지글지글-

곡성의 장미처럼 빨갛던 소고기가 갈색으로 익어갈 즈음··· 남자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이 왕호에게 물었다.

“아! 사장님, 오늘 처음 오셨죠? 푸드트럭은 제가 처음 봐서요.”

“예. 처음입니다.”

“그럼, 언제까지 있을 예정이세요?”

“음···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도 2주 이상은 있을 것 같습니다.”

“오! 잘됐네요! 그럼, 제가 선불로 미리 결제해놓고 갈 테니까, 여기 뚜이님 점심식사라도 챙겨주실 수 있을까요? 일주일 정도만 챙겨주세요. 그때쯤이면 뚜이님도 50레벨은 될 것 같네요.”

“그거야 어렵지 않죠. 많이 아끼는 분이신 거 같습니다.”

“아낀다기보다··· 조금 안타깝죠······.”

남자는 뚜이라 불린 외국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뚜이는 잘 익어가는 불고기를 군침을 흘리며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뚜이를 보는 남자의 낯빛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남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몇 번이나 고민하더니··· 이윽고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았다.

“사장님. 뚜이님 부탁하는 김에, 이건 알려드려야 할 거 같네요. 사실 뚜이님은 길드와 정식으로 계약하지 않았습니다.”

“예? 그럼···”

“사실, 뚜이님은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입니다. 예전에 가구 공장에서 일한 것으로 아는데, 거기 환경이 조금 열악했다고 들었습니다. 노동법은 당연히 안 지키고, 임금체불까지 있던 거 같아요.”

“허···”

한국인으로서 조금 창피해지는 말이었다.

“체류 기간이 만료되었는데, 고향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속 일한 거 같아요. 그러다가 딱! 각성하게 된 거죠.”

“각성하게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나요? 불법 체류자라도 어쨌든 각성자는 고급 인력이잖습니까.”

“법적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중요한 건 그 가구 업체에서 뚜이님을 프레이 길드로 넘겼다는 거죠.”

“넘겨요?”

“저도 얼핏 들은 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악덕 업주한테 돈을 많이 주고 뚜이님을 데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걸 듣고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프레이 길드도 같은 악덕 업체잖아요.”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돈 주고 거래를 해요? 그게 가능합니까?”

“불법투성이죠. 그렇다 한들, 누가 이걸 트집 잡을 수 있을까요? 프레이 길드는 대형 길드고, 보복이 들어오는 건 당연할 텐데요.”

왕호가 눈살을 강하게 찌푸렸다.

유다희의 경우만 보더라도, 프레이 길드가 얼마나 악독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습성은 변하지 않았다.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법을 일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 읽은 고전 소설 ‘악덕의 번영’이 절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악명높은 소설가이자 방탕아인 ‘마르키 드 사드’가 1797년에 지은 장편이다. 이 사드 후작은 ‘사디즘sadism’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욕망에 찌든 삶을 살았다.

프랑스 혁명 뒤에 출간된 이 책은, 악덕을 거듭하는 젊은 여인 ‘쥘리에트’를 통하여 인간의 탐욕에 대한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이야기의 충격적인 점은, 악덕을 일삼는 주인공 쥘리에트가 결국엔 영화를 누린다는 점이다.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책이었다.

그리고···

왕호는 이 프레이 길드가 쥘리에트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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