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2)
왕호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프라이팬을 들고, 그대로 풀숲으로 향했다.
“어어?”
왕호가 프라이팬을 들고 움직이자, 파티원들도 쫄래쫄래 왕호의 뒤를 쫓았다.
‘확실해!’
왕호는 확실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끼이이잉-
풀숲 쪽으로 접근할수록, 옅은 신음소리가 점점 짙어졌다. 적탐안에 보이는 노란 자국도 선명해졌다.
이윽고 풀숲 앞까지 도착한 왕호는, 허벅지까지 올라와 있는 풀떼기를 확! 젖혔다.
그러자,
“헉!”
무언가를 발견한 파티원들이 하나같이 소스라쳤다.
하나의 여린 생명체가 바닥에 엎드려 낑낑대고 있었다.
보르도 울프와 닮아 있으면서도 무언가 달랐다. 허나, 외관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 생명체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 보였다.
두 다리는 풀에 엉켜 꼼짝달싹을 못 하고 있다. 덩굴을 떼어내지 못할 정도로 진이 빠져있다는 뜻이다. 등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나 있었는데, 여기로 피가 줄줄 흐르다가 지금은 굳어버린 듯했다.
“보르도 울프 새끼인가?”
김지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녀는 자연스레 강창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창모는 오리진에서 정보 긁는 게 취미다. 무언가 알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몬스터의 새끼는 여태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데······. 새끼가 아니라면, 다른 종인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다른 종이 있을 리가 없지. 여긴 보르도 울프 차원인데.”
강창모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까지 몬스터의 생식 메커니즘조차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새끼도 발견된 적이 없다. 새끼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저 작은 덩치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윽, 근데 털에 묻은 거 뭘까요? 냄새가 역한 것이 똥··· 같은데······.”
지독한 냄새가 풍겨오자 김지원이 코를 틀어막았다.
“똥이고 자시고, 일단 살려볼까?”
왕호가 파티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예? 몬스터인데 살려도 될까요?”
“눈 봐봐. 한쪽 눈은 맑아.”
눈썰미 좋은 왕호의 말대로, 한쪽 눈망울은 정말로 맑디맑았다. 반면에, 오른쪽 눈알은 다른 몬스터처럼 붉었다.
두 눈의 눈꺼풀은 당장에라도 감길 것 같이 꿈뻑꿈뻑거렸다.
벌렁벌렁-
몬스터의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왕호가 굽고 있는 고기의 향기를 포착한 것이다.
“이거 먹고 싶어?”
왕호가 물었지만, 다 죽어가는 몬스터가 대답할 리가 없다.
왕호의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강하게 일었다. 눈동자도 한쪽이 맑은 것이, 살려내야 할 것만 같았다. 덤벼들면 그때 프라이팬으로 기절시키면 된다.
“이거 근데 보르도 울프 고기라서, 주기가 좀 그렇다.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동족을 먹는 걸 수도 있잖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다른 거 해 줄게.”
왕호는 다 구워진 보르도 고기를 따로 담아내고는, 혹시 몰라 가져온 레드혼 카우 살코기를 꺼냈다.
보르도 울프가 맛없으면, 이걸 구워 먹으려고 했다.
“생고기 먹을 수 있어?”
고기를 코앞으로 가져다 댔지만, 입이 열리지 않는다. 콧구멍도 아까처럼 벌렁거리지 않는다.
‘날것은 안 먹나?’
혹시 몰라 주전부리로 챙겨온 레드혼 카우 육포를 건네봤다. 이것도 날것이지만, 다행이 향신료를 입혀놓아 그런지 입을 겨우 벌린다.
앙-
질겅-
하지만 질긴 육포를 씹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우리 뽀삐 생각나네······.’
힘겹게 육포를 씹어내고 있는 것을 보니, 어릴 적부터 키워온 강아지 뽀삐가 눈에 아른아른거렸다.
덩치도 비슷하고, 겉에 묻은 오물을 제거하면 털도 희어 보이는 것이··· 포메라니안이었던 뽀삐와 무척이나 흡사했다.
15년을 넘게 키웠던 뽀삐도 말년에 저렇게 씹는 것을 힘겨워했다. 그럴 때마다 소고기나 황태를 넣어 끓인 라따뚜이를 챙겨주면 그렇게 잘 먹곤 했다.
지금 라따뚜이를 만들기에는 재료도 없고, 도구도 부족하다. 소고기를 아주 맛있게 구워주는 수밖에 없다. 씹는 것을 힘겨워하니, 레어 정도로 부드럽게 구워서 주면 좋을 것 같았다.
왕호는 달궈진 프라이팬에 곧바로 레드혼 카우 고기를 올렸다.
치이익-
되도록 지방이 적당하게 붙은 걸로 사용했다. 너무 마블링이 촘촘하면 강아지의 심장에 안 좋다. 쟤가 강아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뽀삐를 많이 닮았다.
인간들이 먹는 스테이크처럼 요란하게 굽지는 않는다.
소금간도 하지 않았다. 건강에 안 좋다.
그저 허브만 넣은 채, 정성을 들여 담백하게 잘 구웠다.
왕호는 부드럽게 구워진 소고기를 큐브 스테이크보다 더 작게 토막 냈다. 먹기 쉽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벌렁벌렁-
요리가 완성되자, 몬스터의 콧구멍이 다시 움직였다.
[힐링 요리 “죽음을 물리치는 보양식, 레드혼 카우 등심구이”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2]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죽음을 물리치는 보양식, 레드혼 카우 등심구이-
[죽어가는 “낯선 생명”을 위한 요리. 원기를 회복하고 일어서라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레어로 구워져 매우 부드럽다.]
[아주 잘게 잘려서 아픈 이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육즙이 매우 풍부하며, 허브의 향긋함이 배어 있다.]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해, 잃어버린 피를 회복시켜 줍니다.]
[효과 : 최대 체력의 10%가 즉시 회복됩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중첩되지 않습니다.]
[버프 : “구사일생”이 발동됩니다.]
[구사일생九死一生 – 아직 죽지 않았다면, 체력의 100%가 천천히 회복됩니다. 제독 스킬의 영향으로 몸속에 깃든 마기와 간단한 독을 빼낼 수 있습니다. 병病의 근본적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체력회복의 속도는 대상의 의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최소 24시간, 평균 48시간이 걸립니다.]
어?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건만··· 느닷없이 힐링 요리가 튀어나왔다. 강창모를 힐링하고 나서 무단히도 얻어내려 노력했지만 죄다 허사였다.
‘왜지? 방금 처음 본 생명체인데? 힐링에 초점을 맞춰서 그러나?’
더 이상은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보양식을 멕여 저 생명체를 살려주고 싶었다. 이 파티엔 힐러가 없으니, 힐링 요리에 붙어 있는 버프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고기를 납작한 그릇에 담아 몬스터의 코앞에 놓았다.
몬스터는 군침 도는 향기를 맡으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잘게 토막 난 고기를, 혀를 낼름거리며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몬스터의 털이 삐쭉! 솟아오른다.
입에 맞았는지, 부들부들거리며 앞다리로 몸을 지탱했다. 젖 먹는 힘을 다해 상체를 살짝 들고는, 허겁지겁 남은 고기를 흡입했다.
낼름낼름- 우적우적-
몬스터의 혀와 아래턱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어? 쟤 눈알이···”
여름이가 몬스터의 눈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스르르-
보르도 울프처럼 붉게 물들어 있던 한쪽 눈깔이 점점 투명하게 바뀌고 있었다.
‘눈동자의 색이 바뀐다?’
힐링 요리를 먹고 바뀌었으니, 분명 요리의 효과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체력이 올라가서 눈이 맑아졌거나···, 버프의 설명대로 마기가 빠져 맑아졌거나.
만약 후자라면, 이성理性이라는 것이 생길지도 모른다. 왕호가 알기로 모든 몬스터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붉다. 이성이랄 것이 없다. 인간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든다.
벌떡-
게걸스럽게 고기를 해치운 생명체는, 기력이 생겼는지 네 다리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헥헥-
혀를 삐쭉 내밀며 웃는다. 꼬리는 하늘을 향한 채 살랑거린다. 영락없는 반려견의 모습이다.
뒷다리가 넝쿨에 걸려있어 움직이지 못할 뿐이다.
“혹시 모르니까 다리는 나중에 풀어주자. 지원아, 클린 마법 좀 부탁해.”
“알겠어요! ···클린!”
마법사인 지원이 클린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몬스터의 털에 잔뜩 묻어있던 굳은 피, 똥, 진흙, 먼지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다.
번쩍번쩍-
마치, 애견샵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마냥 털이 매끈매끈 해졌다.
조금 전의 꾀죄죄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꺄아아! 너무 귀여워~!”
몬스터의 본 모습이 튀어나오자, 한여름이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발을 동동굴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깨끗이 태어난 몬스터의 모습은 너무도 귀여웠다.
흰색 털이 밍크코트 처럼 매끈매끈하다. 똥그랗게 뜬 눈망울은 우유니 소금사막처럼 투명했다.
씻기고 나니, 예전 뽀삐의 모습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포메라니안이라기보다··· 마치 악마견을 똑 닮아있다.
“비글 같이 생겼는데? 털만 흰색으로 복슬복슬하게 올라온 비글.”
“어? 저도 그 생각 했는데! 오빠 강아지에 대해 잘 아세요?”
여름이가 눈에서 꿀을 뚝뚝 떨어트리며 물었다.
“웬만큼은 알지. 어릴 때 포메라니안 키웠거든.”
“우와 진짜 귀여웠겠다!”
“근데··· 씻기고 보니까, 보르도 울프랑 생긴 게 많이 다르다? 덩치도 절반밖에 안 되고, 늑대가 아니라 무슨 애완견 같네. 털 색깔만 똑같다.”
“근데 한 던전에 두 종류의 몬스터가 있을 수 있나요? 여긴 타워형같이 다중 차원 던전도 아닌데?”
“흠··· 다른 각성자가 유기하고 갔나? 아까 눈동자는 빼도 박도 못하게 몬스터였는데······.”
몬스터가 헥헥 거리며 웃는 것을 멈췄다.
묶여있는 다리는 풀 생각은 안 하고, 몬스터인지 아닌지 갑론을박 중이다.
정신을 차린 몬스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몬스터의 소리를 들은 파티원들 모두가 놀라 자지러졌다.
몬스터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는 “멍멍!”이나 “왈왈!” 혹은, “그르릉!”이런 종류가 아니었다.
“공격 안 할 거니까, 다리나 풀어줘 이 인간들아!”
사람의 말이 튀어나왔다.
말하는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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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왕호를 비롯한 모든 파티원들의 턱이 한참이나 벌어져 있었다.
대충 2분가량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왕호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방금 사람 말 한 거 맞지?”
“마, 맞아요. 저도 들었어요.”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세상에 저런 일이’에 제보하면 실시간 검색어 1위는 따 놓은 당상이겠다.
풀어줄 생각이 없자, 말하는 개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아니, 이것 좀 풀어주라고! 내가 아직 힘이 후달려서 못 풀겠어. 나 여기 계속 묶여 있으면, 망할 놈의 늑대새끼들한테 잡아 먹힐 거야!”
진짜 말을 한다. 그것도 한국어를!
왕호가 조심스레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언어를 구사하니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아, 안녕?”
“어! 나를 구해준 인간! 넌 내 생명의 은인이다. 위대한 존재로서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겠다! 그나저나, 이것 먼저 풀어주면 더 고맙겠다!”
“위대한 존재? 넌 몬스터가 아니야?”
“뭐? 몬스터? 괴물? 나를 여기 있는 ‘앙카 늑대’들과 같은 하찮은 존재로 보는 건가? 하하하하하!!! 나는 위대한 존재인··· 음··· 위대한 존재··· 뭐였지? 내 이름은··· 뭐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인간! 내 이름이 뭐냐!”
말하는 개가 당황한다.
왕호도 어이없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도 처음 봤는데.”
“으으··· 누군가 내 기억을 지웠나? 기억이 듬성듬성하다! 어쨌든, 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마법? 마법도 쓸 줄 알아?”
“지금 너와 처음 듣는 요상한 언어로 대화를 하고 있잖아! 다 내가 기본적으로 구사하는 통역 마법 덕분이지 움하하하!”
말하는 개가 호탕하게 웃는다.
고개를 하늘로 살짝 들고 웃는 것이···
“와, 진짜 귀엽네. 그럼 마법 쓰는 강아지네? 마법견이라고 불러줄까?”
“뭐? 강아지? 나를 그런 같잖은 미물과 나란히 놓지 마! 말했잖아! 나는 위대한 존재라고!”
“누가 보더라도 강아진데? 뭐 이건 젖혀두고, 위대한 존재라 했지? 그럼 왜 여기 묶여 있는 거야? 상처는 또 왜 났고? 몬스터가 아니라면 이 던전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일단 불편하니까 다리 좀 어떻게 풀어줘! 그럼 다 얘기하겠다!”
“알았어.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된장 발라버릴 거야.”
“된장? 그게 무슨 뜻이냐?”
“있어, 너 죽는다는 소리야.”
“엇! 아니다! 나는 위대한 존재! 절대 은혜를 원수로 갚지 않는다!”
말하는 개가 앞발 하나를 흔들며 발사래 쳤다.
혹시 몰라 왼손에 프라이팬을 꽉 쥔 채, 장미칼로 강아지를 구속하고 있는 넝쿨을 잘라냈다.
서걱-
“우하하! 자유다!”
오랫동안 묶여 있었는지, 강아지가 눈밭에 튀어나온 것처럼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여름이가 참지 못하고 말하는 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놈을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와락-!
“꺄아~ 너 너무 귀엽다! 말까지 하니까 대박 더 귀여워!”
갑작스럽게 안겨있게 되어 당황할 법도 한데, 말하는 개의 입에서는 이상하게도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흐흐흐, 인간 여자 향기 달콤하다. 그리고··· 이거 너무 푹신푹신하다. 오우야~”
꾹꾹꾹꾹-
음탕한 표정을 지으며, 두 앞다리로 한여름의 가슴팍을 번갈아가며 눌렀다.
음흉한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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