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져야 하는 이유 (1)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왕호는 쌀국수를 만들기 위해 각종 향신료를 선반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덕구를 따로 불러 살며시 얘기했다.
“저기 저 사람 외국인이거든? 언어가 서로 달라서 말이 잘 안 통해. 네가 중간에서 통역 좀 해라.”
“같은 인간인데 서로 말이 다르나? 신기하군! 알았다!”
“대신··· 로봇처럼 말해줘야 해. 말하는 강아지 보면 안 되거든.”
“로봇? 그게 뭔가?”
“음··· 움직임 자제하고, 무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말해주면 돼. 잘 해주면 지금 만드는 요리 나눠줄게. 들키면 육포로 때울 거야!”
“새로운 요리? 정말인가?! 열심히 하겠다 마스터!”
헥헥-
요리를 준다니까, 여타 강아지처럼 침을 질질 흘린다.
왕호는 트럭 구석에 앉아있는 덕구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위대한 존재라고 외치면서 주인은 잘 따르네. 이렇게 보면, 강아지는 강아지야. 중2병 강아진가?’
잘 생각해보니 효자가 따로 없다.
공원에 예쁜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오면, 강아지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주인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100이면 99가 정말로 강아지가 예뻐서 다가온다. 이걸 노리고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도 없지 않다. 물론, 다가온 이후부터는 주인의 능력에 달렸다.
여성 손님 호객하는 데는 최고다. 푸드트럭 마스코트로도 안성맞춤.
게다가 이렇게 야매 통역사로도 도움받을 수 있다.
삼시세끼 보양식을 챙겨줘도 손해가 아니다. 예쁘기만 하다. 입만 열심히 다물고 있다면 더 예쁠 거다.
왕호는 덕구를 번쩍 들어, 뚜이와 자신 사이 선반에 올려놓았다. 덕구는 몸을 빳빳히 고정시킨 채, 왕호의 오더를 잘 따랐다.
“뚜이님이랑 대화하려고 새로 가져온 통역 기··· 계···입니다. 여기다 대고 말씀하시면 돼요!”
왕호가 얘기하자, 덕구의 입에서 베트남어가 튀어나왔다.
뚜이를 바라보고 얘기하면 베트남어가, 왕호를 바라보고 얘기하면 한국어가 능숙하게 나온다.
뚜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오! 역시 IT 기술 강국 답습니다. 정말 혁신적인 통역기네요. 귀엽기도 해서 고국에 팔면 정말 대박 날 것 같습니다.”
이제야 대화할 맛이 난다.
“그런가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쌀국수 만들어 보겠습니다. 맛보시고 평가 좀 해주세요. 반응 좋으면 메뉴로도 팔아볼 생각입니다.”
“오호! 정말 기대됩니다!”
왕호는 던전에 들어가기 전, 미리 사골 육수를 끓여놓았다. 레드혼 카우 뼈를 레이드 하는 동안 푸욱 고았다. 이걸 베이스로 이용할 생각.
레시피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했던 레스토랑의 컨셉이 퓨전이었다. 각종 시도는 참 많이 했다. 쌀국수도 어떻게 퓨전 해볼까 연구를 해봤었다.
콸콸콸-
왕호는 냄비에 사골 육수를 붓고 토치로 가스불을 붙였다.
탓-! 화르륵-
퐁당-
그리고 육수 속으로, 큼지막한 보르도 울프 가슴 고기를 투하했다.
소고기로 치자면, 양지머리 부위. 육수의 맛을 더 진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고, 잘 삶아서 고명으로도 올릴 생각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동남아시아의 요리답게 향신료가 무지막지하게 들어간다. 간을 보면서 비율을 잘 조절해야 한다.
왕호가 꺼내놓은 향신료는 무려 여덟 가지.
한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생강과 계피가 있다. 그리고 한식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팔각, 카다멈, 정향, 라임, 코리앤더 씨드, 그리고 고수까지. 대형 마트에서 다 긁어온 재료들이다.
왕호는 도마 위에 양파를 올리고 큼지막하게 썰었다.
서걱-!
육수용으로 쓸 거다.
생강을 꺼내어, 얇게 썬다.
탕탕탕탕-
뚝-! 뚝-!
시나몬 스틱도 꺼내 부순다.
그리고 다시백bag을 꺼내어 향신료를 적절히 담았다.
얇게 썬 생강을 담는다. 적당히 부서트린 시나몬 스틱도 담는다. 못의 모양을 띠고 있는 향신료인, 정향도 담는다.
정향은 자극적인 향신료이지만, 상쾌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베트남 쌀국수의 가장 핵심인 “팔각”을 담았다.
팔각은 별 모양의 향신료인데, 이 모양 때문에 서양에서는 스타 아니스Star Anise라고 부른다. 아네톨Anetol 성분에 의한 달콤한 향미가 강해서, 중국 오향의 주원료로 쓰인다. 다른 향신료 다 빠지더라도, 이게 빠지면 베트남 쌀국수 맛이 안 난다.
풍덩-
왕호는 향신료를 넣은 다시팩을 꽉! 묶어서 육수에 빠트렸다. 팩에 넣으면 채로 건져내지 않아도 된다. 편하다.
이제 육수가 끓어오르면 카다멈 파우더와 코리앤더 분말을 뿌리고, 설탕과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절대미각의 숙련도가 많이 오른 터라, 강한 향신료들 사이에서도 간을 잘 맞출 수 있을 거다.
육수는 잘 우러나오게 팔팔 끓여야 한다. 시간이 조금 소요되는 터라, 왕호는 뚜이에게 말을 건넸다.
“뚜이님! 길드 생활은 만족스러우세요?”
“전에 일하던 곳보다는 낫습니다. 만족스럽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굶지는 않으니 만족해야겠죠.”
“점심 때 같이 오신 분에게 뚜이님 사정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 프레이 길드에서 뚜이님을 많이 이용하고 있더라구요. 혹시 아셨습니까?”
“모르진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타지에서 온 힘 없는 입장인데, 제가 이해해야죠.”
“뚜이님께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고해도 됩니다. 도와줄 사람 많아요.”
“신고하면 저도 처벌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감옥 간다고 했습니다. 벌금도 몇천만 원 토해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그렇게 큰돈 없습니다.”
“예? 누가 그런 얼토당토않는 말을 했어요?”
왕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확실한 유언비어다.
“길드에서 그랬습니다. 전 감옥 가면 안 됩니다. 딸린 식구가 많습니다. 가족들 굶습니다!”
“감옥 안 가요. 아마 추방당하는 선에서 끝날 거예요. 몇 년간은 한국에 못 들어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정말입니까? 그냥 추방당하기만 합니까? 와··· 완전히 속았습니다. 근데··· 왜 저는 한국에서 일할 수 없습니까? 제 고향에도 각성자 많은데, 한국처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전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뚜이님께서 왜 불법체류자가 됐는지 저는 알 턱이 없죠. 다만, 지금은 뚜이님께서 각성자가 되셨으니 워크 퍼밋을 발급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전에 불법체류의 처벌은 받아야겠지만요.”
뻐끔뻐끔-
물이 끓으려는 조짐이 보인다. 바닥에서 기포 방울들이 슬슬 올라온다.
솔솔솔-
왕호는 카다멈 파우더와, 코리앤더 파우더를 육수 안에 뿌렸다.
왕호는 이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뚜이님께서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용 허가제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뚜이님 사정이 어찌 됐건, 허가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악덕 고용주는 뚜이님을 헐값에 부려먹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뚜이님 때문에 일자리가 한 자리 줄어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무책임하게 돈만 벌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숨어들어오는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뚜이님은 아닌 것 같지만요.”
“흐업! 저 때문에, 한국이 피해 봤습니까? 오 정말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한국 사랑합니다! 한국은 저희 가족을 되살려준 좋은 나라입니다. 제2의 고향입니다. 저와 한국 모두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정식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그럼 걱정 마시고 신고하세요. 가구 업체와 지금의 길드는 뚜이님을 착복했지만, 아직까지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맞아요! 사장님도 좋은 사람입니다.”
보글보글-
어느덧, 육수가 팔팔 끓기 시작한다.
후루룹-
왕호는 수저로 육수를 살짝 떠서 맛을 봤다.
[익숙하지 않은 맛을 경험하셨습니다.]
[미식이 상승합니다.]
절대미각이 혀끝을 민감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향신료들의 맛이 입안을 강하게 맴돈다. 하나하나의 맛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왕호는 소금을 적당히 뿌려 간을 제대로 맞췄다.
이제 쌀국수를 완성할 차례.
왕호는 쌀국수 면을 찬물에 집어넣었다. 여기서 불리고 뜨거운 육수로 옮길 예정이다.
숙주나물도 뜨거운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
슥- 슥-
풍미의 대미를 장식할 라임도 엄청 얇게 썰었다.
이것에 더해, 미리 준비해둔 양파 절임을 넣어 쌀국수 특유의 신맛을 일깨울 거다.
쌀국수 국물은 진하게 우러나왔다. 왕호는 가스불을 끄고, 육수에 담겨 있던 보르도 울프 고기를 건져냈다.
슥삭- 슥삭-
왕호는 뜨겁디뜨거운 수육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아주 잘 삶아져서 쉽게 썰린다. 썰어진 면에서 고소한 향이 올라온다.
왕호는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 맛을 봐봤다.
쩝쩝-
동공이 커진다. 진한 맛이다. 맛있다.
‘구운 것보다 훨씬 낫네.’
고기에 육수가 잘 배어 맛깔난다. 당연히 육수도 맛있다는 뜻.
왕호는 미소를 지으며 사기그릇을 꺼냈다. 테이크아웃이 아닌, 먹고 갈 사람들을 위해 준비해둔 그릇이다.
국자로 국물을 한가득 퍼서 그릇에 담았다. 거기에 찬물에 담가놓았던 쌀국수를 넣었다. 양파 절임과 라임을 예쁘게 올리고, 그 위로 보르도 울프 수육을 겹겹이 쌓았다.
마지막으로 숙주나물을 가득 올리고, 고수풀도 쌓았다.
한국인에게 고수풀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지만, 뚜이는 베트남인이다. 풍성하게 올렸다.
완성.
모락모락-
뜨뜻한 김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온다.
정통 베트남식 쌀국수다.
[힐링 요리 “헤진 마음을 달래는 고향의 맛, 정통 베트남식 쌀국수”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3]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헤진 마음을 달래는 고향의 맛, 정통 베트남식 쌀국수-
[베트남인 “뚜이”를 위한 요리. 어머니의 손맛을 보여주려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과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레드혼 카우 사골을 우려, 맛이 진하다.]
[정통 베트남식으로 조리했다. 보르도 울프 고기가 고명으로 올라가있다.]
[각종 베트남식 향신료가 맛의 풍미를 증진시킵니다.]
[효과 : 힘이 11% 상승합니다. 최대 마나가 15% 상승합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버프 : “CHEER UP!”이 발동됩니다.]
[CHEER UP! – 체력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최초 1회 발동됩니다. 1시간 동안 모든 스탯이 10% 상승합니다. 체력회복속도가 2배로 늘어납니다. 24시간 이내에 발동하지 않으면, 버프는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정신을 힐링하는 요리, 육체를 힐링하는 요리, 마음을 힐링하는 요리를 모두 완성하였습니다.]
[클래스 “힐링 요리사”의 능력이 개방됩니다.]
[클래스 고유 스킬이 해금됩니다.]
[그룹 스킬 “버프 부여”가 생성되었습니다.]
어?!
왕호는 쌀국수 그릇을 뚜이 앞에 내려놓고는 벙찌고야 말았다.
놀랍다.
오늘 하루에만 그 어렵다는 힐링 요리가 두 개나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클래스의 능력이 더 확장됐다.
이제 좀 더 확실해진다.
정신, 육체, 마음.
이 세 가지 치유가 “힐링 요리사”라는 클래스의 근간이다.
그동안 힐링 요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나 축하를 위한 요리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힐링의 요소.
위로, 치유, 회복··· 그리고 감동.
자신을 각성시킨 최 영감의 말마따나, 감동을 주어 힐링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 힐링에는 말 그대로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도 해당되는 거고.
‘그룹 스킬이라······.’
이것도 처음 얻는 종류다. 게다가 “힐링 요리사”만의 고유 스킬. 범상치 않을 것은 확실하다.
기대에 가득 찬 왕호는 재빨리 새로 얻어낸 스킬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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