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져야 하는 이유 (3)
“보복은 당연한 거 아닌가? 야구에서도 우리가 당하면, 빈볼로 머리를 맞춰야 다음부터 안 그런다. 제갈공명도 아끼던 장수의 목을 베어 일벌백계했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아나 모르겠네?”
“이 상황에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하는 짓은 불법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해치는 일이잖습니까!”
매니저는 손을 훠이훠이 흔들어 왕호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됐고. 더 이상 입씨름하면 입만 아프니, 말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나랑 같이 온 이 사람 보이지? 레벨 200대의 로그다.”
“그런데요?”
꽈악-
왕호는 손을 슬쩍 움직여 프라이팬을 강하게 쥐었다.
저들이 트럭으로 찾아온 저의가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레벨 200대의 각성자를 데려왔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하하, 보는 눈도 많은데 여기서 깽판 칠 생각은 없다고. 긴장 풀어 사장 양반. 다만 밤길 조심해야 할 거야. 트럭도 잘 숨겨두는 게 좋을걸?”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처럼 들렸나? 그냥 예고한 건데? 그럼 진짜 협박처럼 만들어 주면 되겠군. 한 가지만 알려주면, 더 이상 터치 안 하고 곱게 사라져줄 수도 있어.”
“뭡니까?”
왕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요리에 버프를 부여하는지, 그 방법만 알려줘. 아니면, 우리 길드 계약서에 싸인 하던지. 물론, 저번 제안처럼 좋진 않을 거야. 뭐, 알려주기 싫음 안 알려줘도 돼. 알아내는 방법엔 신사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매니저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로 협박했다.
그러자, 상황을 듣고만 있던 파티원들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의를 참지 못하는 김지원이 나섰다.
“옆에서 듣고 있으려니 구역질이 다 나오네 진짜! 야! 너 뭐 믿고 그렇게 깝죽거리는 거야? 길드 믿고 나불대는 거지?”
“응? 어린 것이 어디서 끼어들어! 어른들 얘기하는 거 안 보여?”
“어른 좋아하네. 나도 어른이거든? 기껏해야 30대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구만. 게다가 나이는 똥구녕으로 처잡수셨나? 협박하는 게 되게 자유롭더라?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거 같애. 다 녹음해놨으니까 어디 판사님한테도 협박해 봐.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법 없어야 사는 사람은 처음 보네. 기가 찬다 기가 차!”
“녹음? 하하하! 네 말을 경찰이 들어줄 거나 같아?”
“왜 못 들어줘? 내가 위치witch라서? 지금이 무슨 마녀사냥 하는 중세유럽이야? 길드 빽 믿고 그러는 거 같은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바로 남의 힘 믿고 설치는 군상이야. 스스로 가진 힘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아주 꼴불견이 따로 없네. 빽은 내가 더 커 이 아저씨야!”
“어린 것이 입에 걸레를 물었나··· 네가 누군데?”
김지원이 덤비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매니저가 김지원에게 한발 다가섰다. 자신의 허리춤을 양손으로 잡고 가슴팍을 확! 내미는 것이 영락없는 양아치였다.
“왜? 누군지 알면 무릎 꿇고 싹싹 빌게? 우한양행 딸내미다! 프레이 길드 포션 어디 꺼 써? 보나 마나 우리 거 쓰겠지. 이제 다시는 쓸 생각하지 마. 너네 같은 쓰레기 길드한테는 안 팔 거니까.”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어디서 허세 질이야!”
매니저가 강하게 윽박질렀다.
그는 김지원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했는데, 동공은 미약하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사실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우한양행은 포션 산업에서 국내 시장을 80% 이상 독점하다시피 하는 거대 제약회사다. 수출량도 어마어마해서, 아시아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가히 독보적.
고작 길드 주제에 이런 대형 기업과 척을 진다?
포션 수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기본이요,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거다. 대한민국 최대 길드라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지원의 말은 정말로 사실이었다.
한여름과 왜 같이 유학까지 갔겠는가. 애초에 부모님끼리 친하다. 같은 제약업계 사람이다.
우한양행은 한대약품에게 일반 약의 파이를 점점 뺏기자, 포션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결과는 대성공. 업계 2위를 굳건히 굳혔으며, 포션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각성자들 사이에서는 한대약품보다 더 끗발 있는 업체다.
갑자기 김지원의 광대가 하늘을 향한다. 매니저가 보여줬던 미소보다 더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자리했다.
“내 입이 걸레 같다고 그랬지? 진짜 걸레 한번 보여줄게.”
김지원을 옥죄고 있던 봉인이 해제됐다.
“아저씨 왜 이렇게 빡대가리야? 적당히 나대야지 적당히! 뇌 주름에 다림질을 해 놓은 거야? 아니면 주름은 있는데 우동사리로 이루어진 건가?”
“뭐, 뭐?!!!”
난생 처음 듣는 톱클래스 욕지거리에, 매니저의 언성이 높아졌다.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아스팔트에 얼굴을 갈아서 해독주스로 디톡스 해버릴까보다. 3번 척추뼈랑 7번 이랑 자리 바꿔줄까? 창의적으로? 내장은 뜯어다가···”
삐이이---
공중파 뉴스의 음성 모자이크 소리가 절로 들리는 것만 같다.
한여름은 그런 김지원이 익숙했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강창모와 왕호는 아니었다.
왕호의 입이 쩍 벌어진다.
여름이가 저번에 내뱉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역시 스승의 실력은 클라스가 달랐다.
여름이가 청출어람을 하려면,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수 밑에서 족히 10년은 욕을 내뱉어야 할 것 같았다.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의 욕만큼이나 구수하고 시원했다.
부들부들-
고막에 때려 박는 무자비한 욕 때문에, 매니저의 몸이 분노로 떨린다.
“안 닥쳐? 콱!”
매니저가 손바닥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때리려는 시늉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래도 차마 때리지는 못했다. 혹시나 정말로 우한양행가의 딸이면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트럭 안에서 쌀국수를 흡입하던 덕구가 슬금슬금 튀어나왔다. 그 좋아하는 음식까지 멈추며 말이다.
튀어나와 매니저 쪽으로 슬쩍 다가간다.
살랑살랑-
꼬리를 귀엽게 흔들고, 얼굴은 헥헥거리며 웃는다.
매니저는 그 귀여운 강아지를 저지할 생각은 일절 하지 못했다.
매니저의 발 앞까지 도착한 덕구는 그대로 뒷다리를 굽혀 앉았다.
마치 쓰다듬어달라는 무언의 의사표시 같았다.
하지만 덕구가 뒷다리를 굽힌 것은, 점프를 하기 위함!
탓-!
덕구가 튀어 올랐다.
순식간의 매니저의 치골까지 올라온 덕구는,
와작-!
매니저의 고간股間을 그대로 물어버렸다.
매니저는 무방비상태에 덕구를 신경도 쓰고 있지 않은 터라,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왕호의 동공이 벌어진다. 마치 귓가에 탁-! 하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계란이 탁! 하고 깨지는 그런 소리 말이다.
“끄, 끄아아아아악!!!!!”
매니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통스레 절규한다. 깨져버린 자의 처절한 절규.
풀썩-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소리를 지른다. 붉게 충혈된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줄줄 흘러내리고, 입에서는 게거품이 보글보글 생겨났다.
두 손은 자신의 사타구니를 꼭 쥐고 있었다.
거사를 마친 덕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밥그릇으로 돌아갔다. 남은 쌀국수를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끄악! 꺼어억··· 뭐, 뭐합···니까! 제가 당했···으니, 나서야···죠··· 아아악!”
매니저는 힘겹게 입을 열어 로그에게 말을 건넸다.
로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매니저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리 매뉴얼을 정하고 온 듯했다.
로그가 움직이자, 왕호도 프라이팬을 쥐고 트럭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해서다.
‘레벨 200대면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데······.’
셀타 오우거를 마주한 상황은 지금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 배는 더 위험하다.
드르륵-
왕호는 손잡이에 달린 휠을 돌려, 프라이팬의 온도를 1,000도 이상으로 올렸다.
프라이팬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로그도 두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허리춤에 있는 단검에는 손도 대지 않는 걸 보니, 양심은 있어 보였다.
아마, 제압해서 몇 대 쥐어박으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일촉즉발의 상황!
왕호는 눈에 힘을 빡! 주며 집중했다.
스륵-
로그의 어깨가 먼저 움직였다.
‘헙!’
왕호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어깨가 움직이는 모습까지는 어떻게 포착했으나, 그다음 광경은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와 있는 주먹이었다.
‘너무 빨라!’
이대로라면 코뼈가 아작나고, 이빨이 몇 개 부서져 임플란트를 필요로 할 것만 같았다.
왕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본능적인 동작이었다.
턱-
‘퍽-!’소리가 아닌 ‘턱-’소리.
로그의 주먹은 왕호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 누군가가 로그의 손목을 낚아챈 것이다.
“여기서 뭐 해요?”
로그의 손목을 잡아챈 이가, 로그를 향해 물었다.
복면을 쓰고 있는 여자.
왕호와 파티원들은 단숨에 그녀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달빛여제?!”
파티원들이 동시에 놀란다.
‘다희님? 여긴 언제······.’
왕호도 놀랐다.
손목을 잡힌 로그 또한 몹시 당황했다.
“저들이 먼저 길드 매니저를 공격했다.”
“그래서 레벨 200이 넘으신 분이, 아직 레벨 30 겨우 넘은 저들을 공격하시겠다?”
“어, 어쩔 수 없다. 그대로 지나가면 길드의 위상이···”
“그놈의 위상 무너진 지 오래라는 건 그쪽도 잘 알잖아요. 아저씨께서 길드 밑이나 닦고 계신 걸 보면, 인물이 어지간히 없는 것 같네요. 맛탱이 다 갔네 프레이.”
“······.”
로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
“돌아가서, 여기 신경 끄고 길드 앞가림이나 잘하라 그러세요. 공판 날짜가 코앞인데, 이상한 곳에 힘 빼시네. 여기 또 오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네, 네가 이 사람들을 왜···”
“여기 사장님이 제 남사친이거든요.”
유다희의 말에 로그가 흠칫 놀랐다.
유다희는 그제야 로그의 손목을 풀어놓았고, 로그는 주저앉아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매니저를 부축해 자리를 떠났다.
한여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오빠! 달빛여제님이랑 친했어요? 저희 몰래 그새 만나고 다녔던 거예요?”
달빛여제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보다, 왕호가 달빛여제의 남사친이라는 것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답은 왕호 쪽이 아니라 유다희에게서 튀어나왔다.
“여름아. 진정해. 언니야.”
“어? 다희 언니?!”
유다희의 어투가 다시 부드러워지자, 한여름이 화들짝 놀랐다.
“언니가 달빛여제였어요?”
여름이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충격을 단단히 받은 모양새였다.
“응. 말 못 해서 미안.”
“헐, 대박······.”
김지원과 강창모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왕호의 표정이 몹시 어둡다. 무언가를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지원이가 그런 왕호를 살살 달랬다.
“오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놈들이 다시는 트럭 못 건들게 길드 기둥을 다 뽑아버릴게요. 다희 언니··· 그니까 달빛여제도 오빠 편인 걸 알았으니까 이제 완전히 손 뗄 거예요.”
“맞아요!”
여름이도 지원이의 말에 맞장구쳤다.
왕호는 살며시 웃으며 그녀들을 안심시켰다.
왕호가 걱정하는 것은 프레이 길드가 아니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2의 프레이 길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프레이 길드야 겉모습만 탑 10의 대형길드지,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다. 가라앉는 배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의 버프 요리를 노린다면?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불과 어제, 버프 요리가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날이 갈수록 버프가 진화해가는 것은 이제 자명한 일이다. 버프 요리의 영향력이 커지면, 눈독 들이는 이도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왕호에겐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렇기에 김지원과 유다희가 왕호를 두둔한 거다.
예전에 도움을 받았던 박칠우의 말마따나, 이것도 왕호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만큼 나약하다고도 볼 수 있다.
조금 전의 매니저는, 푸드트럭과 버프 요리를 가지고 협박했다. 푸드트럭은 왕호의 직장이자, 삶의 터전. 그리고 요리는··· 절친한 친구이자, 둘도 없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를 지키지 못한다?
그것만큼 가슴 찢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유다희는 왕호가 느끼는 그런 고민을 정확히 잡아냈다. 그녀도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고민했었으니까.
“왕호님. 왕호님이 무얼 걱정하는 건지 저도 잘 알아요. 저도 경험했었거든요.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더라구요.”
“네?”
“왕호님은 요리를 하기 위해 레이드를 뛰잖아요. 몬스터 요리는 포기하시고, 던전 밖에서 성공하시면 돼요. 목숨까지 위협받을 일은 아마 없겠죠.”
버프 요리를 포기한다?
중급 요리의 숙련도가 50% 가까이 다다랐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좋은 식당을 차릴 수 있을 거다. 블로그에 나올 법한 그런 맛집 정도는 가능하다.
유다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던전에 계속해서 있고 싶다면, 대형 길드와 계약하세요. 건실한 길드 하나쯤은 제가 소개해줄 수 있어요. 그들의 비호를 받는다면, 왕호님은 안전할 거예요.”
“······.”
“저번에 말한 것처럼 길드에 얽매이기 싫다면···”
유다희는 말을 살짝 끊고는 왕호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이 유다희가 택했던 방법.
“···저처럼 강해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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