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51화 (51/149)

<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2) [여기서부터 유료입니다] >

“네. 좋은 분에게 검술을 배웠죠. 제 스승님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소개시켜드릴게요!”

“스승님···? 막 무협지에 나오는 그런 스승님?”

“음···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죠.”

“흰색 도복 입고,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턱수염은 가슴팍까지···”

“그 정도는 아니에요··· 지금 21세기에요. 스마트폰도 쓰세요.”

다희가 왕호를 어이없게 쳐다보았다.

“하핫, 너무 오바했나? 근데··· 그 스승님이라는 분이 그런 고급 기술을 가르쳐 줄까? 난 다희님··· 아니, 다희 네가 알려주는 줄 알았는데.”

“오빠라면 충분히 가르쳐줄 거예요. 제가 말도 많이··· 해놓았구요. 이건 팁인데··· 할아버진 음식 좋아하니까, 요리로 환심을 사도 될 거 같아요.”

“그래? 어떤 음식 좋아하시는데?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음··· 그냥 다 좋아하세요. 안 가리고 잘 드세요.”

“요리라면 자신 있지.”

요리는 왕호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다.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자기소개 취미, 특기란에 요리라고 써왔다. 다른 취미로 바람을 피운 적은 결코 없다.

왕호가 유다희를 고마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에서도 말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고마웠다.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왕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요리.

“이모! 여기 볶음밥 2인분이요~!”

왕호가 주문하자, 볶음밥 재료들이 테이블 위로 세팅된다.

쌀밥, 김 가루, 얇게 다진 단무지, 잘게 썰린 김치, 그리고 화룡점정을 장식할 모짜렐라 치즈까지.

왕호는 볶음밥을 볶아주려는 이모님의 손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모님! 제가 볶아도 될까요?”

“어머, 그럼 나야 좋지~. 흐음··· 가만 보니 총각 머리도 길쭉한 것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예전에 자주 오던 그 대학생 맞지?”

“예. 학교 다닐 때 많이 왔었죠.”

“오홍홍, 기억난다 기억나! 그때도 총각이 직접 볶는다고 한 거 같은데. 날치알 서비스로 갖다 줄까? 단가가 안 맞아서 빼버렸거든.”

“그럼 저희야 좋죠. 참기름도 살짝만 가져다주세요!”

“호호호, 알았어. 내 수고 덜어주는데 그 정도야 뭐··· 그나저나 여자친구가 참 곱네~. 호호홍 아주 잘 어울려!”

‘여자친구 아닌데···’라고 말할 틈도 없이, 이모님은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괜스레 기분이 묘해졌다. 왕호는 다희를 슬쩍 쳐다봤다. 다희는 아무 말 없이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테이블 위로 날치알까지 추가됐다.

왕호는 철판의 온도를 다시 뜨겁게 달구고, 환상의 볶음밥 제조에 들어갔다.

우선 가위를 들어 남은 닭갈비와 채소들을 잘게 잘랐다.

서걱- 서걱-

적탐안을 사용해 철판의 온도가 완벽해졌다 싶자, 놓인 재료들을 한꺼번에 투하했다. 김 가루, 참기름, 치즈는 아직 넣지 않았다.

취이익-

상온에 있던 재료가 뜨거운 철판과 만나, 기분 좋은 앙상블을 이룬다.

왕호는 양손에 철로 된 호떡 뒤집기를 하나씩 쥐고는,

두다다다다-

손을 거침없이 움직였다.

수직으로 움직여 재료를 다질 듯이 부수고,

휙- 휙-

수평으로 움직여, 상하좌우로 재료들을 마구마구 섞었다.

“우와아···”

유다희의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온다.

항상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요리를 하는 왕호의 모습은 멋있다. 아니, 멋있는 걸 넘어 섹시하다.

특히, 여름이라 딴딴한 전완근과 볼록 튀어나온 이두박근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만을 위해 요리를 해주고 있지 않나.

슬금슬금 올라오는 취기가 그녀의 넋을 더 잃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양념이 골고루 배고, 수분이 사라지자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슥- 슥-

볶음밥을 철판에 가득 차게 꾹꾹 눌러 펴준다.

피자 도우처럼 펴진 볶음 밥 위로, 챔기름을 스윽 두른다.

김 가루도 솔솔 뿌리고, 마지막으로 모짜렐라 치즈를 가득 투하했다. 이제, 치즈가 예쁘게 녹기를 기다리면 끝.

“나는 누룽지처럼 바싹 볶아진 게 좋아. 다희 너는?”

“···네? 아! 저, 저도요!”

넋을 놓고 있던 다희가 갑작스런 질문에 놀랐다.

“그럼 더 익혀야겠네.”

왕호는 적탐안을 그대로 켜 둔 채, 철판을 노려보았다. 볶음밥의 바닥이 타는지 안 타는지 이걸로 알 수 있다.

딸깍-

시간이 살짝 흐르자 불을 완전히 껐다. 이제, 잔열만으로 누룽지처럼 바싹 익혀질 거다.

“자, 이제 먹자!”

유다희와 왕호는 동시에 숟가락으로 철판을 긁어, 볶음밥을 떠올렸다.

그대로 앙-

쩝쩝-

고슬고슬하다. 아주 잘 볶아졌다. 참기름으로 고소하게 코팅된 밥알 사이로, 닭갈비 양념이 묻은 채소가 느껴진다. 남은 닭고기의 쫄깃한 육질 또한 느껴진다.

맛있다.

닭갈비만 먹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맛!

게다가 뒤에 따라오는 맛도 일품이다. 단무지와 김치의 새콤 짭짜름한 감칠맛이 입속을 유영한다. 그 맛을 고소한 김 가루와 치즈가 완전히 감싼다. 마지막으로,

톡-!

터지는 날치알 까지! 환상의 오케스트라가 따로 없다. 마치 귓가에 BJ특공대 성우님의 목소리가 절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맛있지?”

왕호가 물었다.

이제는 뛰어난 미각의 왕호가 맛있다고 느낄 정도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진짜 맛있어요! 오빠가 볶아서 더 맛있나 봐요!”

“그건··· 인정. 내가 만든 만능 간장하고 볶았어도 진짜 맛있을 텐데.”

“만능 간장이요? 그게 뭐예요?”

“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만능 양념장이야. 거의 모든 요리에 써도 될 만큼 활용도가 깊어서 만능 간장이라고 부르고 있어. 볶을 때 써도 되고, 찍어 먹어도 되고, 그냥 먹어도 맛있고, 뿌려 먹어도··· 헉!”

만능 간장의 위대함을 설파하던 왕호가,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런 왕호의 모습에, 다희까지 놀랐다.

“왜 그래요?”

“갑자기 소름 돋는 생각이 떠올라서······.”

“뭔데요?”

“내가 만든 만능 간장에 다진 고기가 들어가거든?”

“네.”

“그 고기를··· 몬스터 고기로 바꾸면 어떨까 해서.”

“몬스터 고기요? 그러면··· 그 만능 간장에도 버프가 걸리는 거예요?”

“내가 버프를 부여하면 걸리겠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마나 캐퍼서티가 늘어난다는 거야. 만능 간장은 말 그대로 만능처럼 사용할 수 있거든.”

“그럼, 기존의 버프 요리에 그 만능 간장을 더한다면 버프의 효과가 늘어나겠네요.”

“그렇지! 게다가, 일반 요리에도 몬스터 만능 간장을 사용한다면, 작게나마 버프가 걸릴 거야. 몬스터 주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버프를 부여할 수 있다는 소리지!”

왕호의 어투에 흥분이 절로 묻어 나왔다.

새로운 발견이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소스도 몬스터를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데!’

유다희도 왕호가 기뻐하는 것만큼이나, 같이 기뻐했다. 좋은 사람과 나누면 기쁨은 배가 된다.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과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으니, 왕호도 기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유다희가 없었더라면 이와 같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럼, 만능 간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소스도 그런 식으로 바꾸면 되겠네요?”

“맞아. 칠리소스도 한 번 만들어 봐야겠어. 역시 술이 들어가서 머리가 비상한 쪽으로 돌아가나 봐.”

“술은 예술가의 친구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한 병 더 콜?”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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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어지럽다. 취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더운 날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것 같이, 아스팔트가 울렁인다.

그래도 버틸만하다. 하지만···

“이차가요 이차아! 고고~! 이차는 맥주에 감튀죠~ 아하하.”

다희가 맛이 가기 직전이었다. 뒤늦게 올라온 취기가 그녀를 집어삼켜버렸다.

“이차는 나중에 하고, 늦었으니까 집 가서 발 닦고 자야지.”

“엥? 시시하게 여기서 끝?”

유다희가 한쪽 눈을 찌푸린다. 홍조가 잔뜩 낀 얼굴에 그 표정이면··· 웬만한 남정내는 심장에 과부하가 걸린다.

그러나 왕호의 논리 회로는 남들과 조금 달랐다.

2차? 맥줏집?

방금은 음식점에서 먹은 거라 그리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하지만 펍은 다르다. 안주의 퀄리티는 무시하더라도 완전히 눈탱이 얻어맞는 가격대다.

장사를 해본 입장이라 더더욱 잘 안다. 차라리 편의점에서 4개에 만 원들이 하는 수입 캔맥주 사서 먹는 게 낫다. 집에서 안주 만드는 게 맛도 맛이고 가격적으로도 5배는 더 이득이다.

결국, 왕호의 머릿속에서 펍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들 중 하나. 카페처럼 분위기를 돈 주고 빌린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나저나, 주량은 나보다 약하네.’

드디어 한 가지 찾아냈다. 외모와 실력이 엄친딸 수준이라 조금 인간 같지 않았었는데, 이제야 조금 사람 냄새가 난다.

“택시 잡아줄게. 내일 거기로 가면 되지?”

“움··· 쩝, 알았어요. 2차는 다음에 하는 걸로오!”

“많이 취했어? 해독 스킬 써줄까?”

왕호가 유다희를 걱정스레 쳐다봤다. 아무리 택시를 태워 보낸다고 해도, 불금 저녁에 여자 혼자다.

심지어, 외모가 천상계 수준이니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왕호는 제독 스킬을 가지고 있다. 몬스터 고기에 사용하면 마기를 해독할 수 있다. 사람에게 쓴 적은 없지만, 그래도 숙취 정도는 해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됐거든요! 나도 해독 스킬 정도는 있거든요! 알딸딸한 느낌 느끼고 싶어서 안 쓴 거거든요! 낼 일찍 오기나 해요. 늦으면 얄짤없어요!”

“걱정 마. 약속 시간은 칼같이 지키니까. 어, 저기 택시 온다. 택시!”

왕호는 손을 흔들어 택시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뒷좌석을 열어 다희를 집어넣고는 신신당부했다.

“집 도착하면 메시지 보내고!”

“걱정 마요. 대한민국에 저보다 강한 사람 손에 꼽으니까.”

“방심하다 골로 가는 사람 여럿 봤다. 사주경계 똑바로 하고! 그리고 조만간 나도 다희 너보다 강해질 거니까 너무 자만하지 마. 3년 걸린 거 나는 1년 안에 끊을 거다.”

“풋, 자신감은 좋네요.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요!”

부아앙-

문을 닫자, 택시가 빠른 속도로 길을 빠져나갔다.

‘바 번호판에 4885 효광택시. 주황색 세단.’

왕호는 번호판을 빠르게 외웠다. 혹시나 해서다.

다희를 태워 보낸 왕호는, 땅바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찰싹-!

자신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

“정신 차려 왕호야!”

자꾸 쓰레기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후~ 술이 무섭긴 무섭다. 어렵게 사귄 친구 잃을 뻔했네.”

잘 참았다. 이젠 친구를 넘어선 조력자다. 실수하면 안 좋다.

뭐, 사람 일이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나중엔 구렁이 담 넘듯 술술 넘어갈 수도···

찰싹-!

‘그나저나, 쟤는 다 커가지고 무섭지도 않나? 내가 편한 건가? 아님···’

절레절레-

사람 마음을 어찌 알겠는가, 왕호는 고개를 휘저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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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에 타자마자, 유다희의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다시 맑아졌다.

‘조금 아쉽지만··· 역시 음흉한 사람은 아니네.’

다희의 입가에 미소가 슬쩍 나타났다 사라졌다.

*

부우웅-

“윽, 머리야.”

왕호는 트럭을 운전하면서, 왼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랜만에 소주로 달렸더니, 숙취가 거하게 찾아왔다. 그래도 막걸리를 안 마신 게 천만다행이다. 맥주만 깔짝깔짝 마시다가, 몇 달 만에 막걸리로 달리면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본다.

-전방 3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네비가 안내하는 대로 천천히 트럭을 몰았다.

“여기 맞아?”

왕호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무술의 달인 어쩌고 해서, 산속이나 어디 외진 곳의 옛 건물로 오라는 건 줄 알았다.

한데···

“상가네?”

아파트 상가였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사는 택지지구의 목 좋은 아파트 상가. 그중에서도 가장 꼭대기 층.

“덕구야!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한숨 더 자라. 혹시 몰라서 밥은 따로 담아놨으니까, 배고프면 꺼내 먹어.”

왕호는 상가 뒤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고개를 들어 상가 꼭대기에 쓰여 있는 간판을 눈으로 읽었다.

“태권도, 검도, 합기도, 유도, 특공무술, 인성교육··· 뭐야··· 저걸 한 도장에서 다 가르쳐?”

저런 간판은 난생처음 봤다. 무슨 부대찌개도 아니고··· 한 곳에서 저걸 다?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사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2) [여기서부터 유료입니다]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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