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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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둘-!
“태애~ 꿘!”
수십의 아이들이 정권을 뻗으며 힘차게 외친다.
다른 한 쪽에서는,
“머리!!!”
짝-!
호구를 착용한 아이들의 죽도가 서로의 머리를 노린다.
굉장한 광경이다. 하나의 도장에 여러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무술을 수련하고 있다.
그런데···
수강생의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다. 아니, 전부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아무래도 택지지구의 특성상 아이들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인성교육까지 겸한다고 간판에 적혀 있으니, 몸과 마음을 단련시키기 위해 어머니들이 등록시킨 것일 테지.
“쯧쯧, 업어치기는 그렇게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거늘!”
검은색 도복을 입은 한 노인이, 아이들 사이들 돌아다니며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 힘 하나 없어 보였다. 키도 무척 작았다.
노인은 가장 덩치가 큰 학생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 학생의 얼굴은 중학생 정도로 앳돼 보였는데, 뭘 먹고 컸는지 덩치는 러시아산 불곰만 했다.
“허리의 회전이 중요하다. 하체까지 같이 사용해야 적은 힘으로도 쉽게 넘길 수 있다고 그렇게 강조했지 않았더냐! 이렇게 말이다!”
노인은 한 손으로 학생의 도복을 잡더니, 허리를 휙- 하고 숙였다.
그러자 학생이 붕- 하고 넘어간다.
완벽한 업어치기.
철푸덕-
100킬로는 넘어 보이는 학생이 매트 위로 나부라진다.
믿을 수 없는 광경!
‘헉! 한 손으로?’
왕호의 두 눈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키는 160 정도밖에 안 된 비루한 노인이지만, 테크닉이 어마어마하다.
왕호는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힘으로 넘긴 것이 아니라, 기술로 넘긴 것이라고. 무식하게 힘만 써서 공격하는 것은 지금의 왕호가 몬스터에게 하는 짓이다. 모를 수가 없다.
만일, 자신의 무식한 기술에 저러한 묘리를 담으면 배는 더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사로잡았다.
“40분이나 일찍 왔네요?”
입을 벌리고 있는 왕호의 뒤에서, 다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흰색 도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다희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의정부라길래 어디 산속에 있는 암자겠거니 해서 일찍 출발했지.”
“큽! 암자요?”
다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래된 무술 하시는 분이라고 그랬잖아.”
“맞아요. 근데 그게 암자랑 관련이라도 있어요?”
“관련은··· 없지.”
고정관념이 이렇게나 무섭다. 아무래도 중국 무협영화를 너무 많이 본 듯싶었다.
“30분만 저기 앉아서 기다려요. 토요일 아침반 끝나면 그때 소개시켜줄게요.”
“저분 맞으시지?”
왕호가 노인을 공손히 가리키며 물었다.
“맞아요. 여기 관장님이세요. 제 할아버지기도 하구요.”
“아, 저번에 말한 그 할아버지? 어릴 적 거둬준?”
“네. 친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죠.”
“그럼 저분이 관장님이면··· 다희 너는 여기서 알바 하는 거야?”
“알바는 아니고 틈나면 그냥 놀러 오는 거예요. 사범이에요 여기. 예전에는 정식으로 반을 맡아서 했는데, 각성하고는 그만뒀어요.”
“그렇구나··· 도복이 잘 어울리네.”
안 어울리는 옷이 뭐가 있겠나.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거늘······.
한데, 자세히 보니 유다희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살짝 끼어있었다.
“숙취 있어?”
“아, 조금요······. 자주 안 마시는데 확 달려서 그래요. 취기는 해독 스킬로 없앨 수 있는데, 숙취는 고레벨 힐러한테나 받아야 되나 봐요. 그럼 앉아서 지켜보고 있어요!”
*
동아시아는 전사들의 강국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검과 주먹을 다루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서양권 각성자들이 마법에 강세를 보이는 것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릴 적부터 무술을 단련하기 때문. 한국만 보더라도 전국에 태권도와 검도 도장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의도치 않은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아주 잘 정립되어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도장에 먼저 등록할 정도니 말 다했다.
애들 용기나 길러주는 이런 도장이 무슨 도움이 되나 의뭉스러울 수도 있다. 무술 도장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실전에 전혀 쓸모가 없으니까. 그저, 인성교육이랍시고 인의예지나 가르치는 게 유일하게 쓸모 있을 거다.
실전에 써먹을 것을 찾는다면, 이종격투기를 배우는 게 더 합당하다.
하지만, 이들이 각성자가 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실전에서 전혀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기술들이 무시무시한 살생 기술로 변모한다.
기본적인 태권도나 검도가 이럴진대, 오랜 시간 명맥을 이어 온 무예들은 어떻겠는가.
특히, 중국에서 이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국민 체조라는 태극권만 사용하더라도, 레이드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소림사, 화산파, 무당파와 같은, 무예를 전승하던 집단의 비기는 어떠한 위력을 발산하겠나.
몬스터에게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던 1세대들 가운데, 이러한 무예를 익힌 자들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우악스러운 몬스터들에게서 인류를 보호하는 것에 지대한 역할을 맡았다.
이들이 몬스터를 막아주었기에, “오리진”이라는 시스템이 나타날 수 있었다. 오리진 시스템을 적용받은 2세대부터는 완전히 상황 역전. 더 이상 몬스터들은 인류를 위협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1세대 무인들이 찬밥 신세가 되느냐?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오리진의 탄생으로 더더욱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들이 정립한 무예는 오리진을 통해 ‘고유 스킬’로 되살아났다. 오리진에서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기초 검술 따위는 어떻게 비빌 수 없는 고급 스킬로 말이다.
각성자들은 강해지기 위해, 유수한 문파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가문의 비기나, 유명 문파의 비기를 배울 수만 있다면, 레이드 판에서 한자리 꿰차는 것은 일도 아니니까.
하나, 그런 문파들이 아무나 문파원으로 받아줄 리 만무했다. 결국, 문전박대 당한 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격투기나 배울 수밖에 없었다. 이거라도 배워둬야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갈 테니까.
“그러니까, 어르신께서도 소림사의 승려들처럼 무예를 익힌 분이시라는 거죠?”
왕호는 푸른색 도장 매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노인의 말을 경청했다.
노인은 효자손으로 등을 벅벅 긁으며 왕호의 말에 대답했다.
“껄걸,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바로 옆이 북한산인데, 거기서 후예를 양성해야 하지 않나요?”
“예끼! 이눔아! 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 산속에 들어가서 자연과 더불어 살면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더냐?”
“아! 그러네요?”
돈 얘기가 나오자 바로 이해가 간다.
“그리고 산속은 와이파이가 안 터져서 말이야. 인터넷 안 되면 어찌 사누.”
“그, 그렇군요. 근데, 이 모든 무술을 다 가르치시는 거세요?”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다. 태권도, 검도, 합기도, 유도, 특공무술, 기타 등등··· 이 많은 무술을 혼자서? 그것도 가르칠 정도로 익혔다?
“고럼! 사람은 먹고살려면 응당 기술을 배워야 한다. 내 다희에게 듣자 하니, 너도 호구지책 糊口之策 으로 요리라는 기술을 익히지 않았더냐. 내 젊은 시절 이미 관장 자격을 다 따놓았느니라.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 특공무술, 기타 잡다한 단증을 다 합
치면 아마 40단은 훌쩍 넘을 거다.”
“세상에···! 한데, 왜 서울에서 쓸어 담지 않으시고, 여기서 아이들을···”
“끌끌, 지금이야 레이드 뛴답시고 도장에서 꼴값 떠는 이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누가 거들떠나 봤겠느냐? 혈기 왕성한 놈들은 어떻게든 이성한테 잘 보이려고, 헬스장에나 가서 빨래판이나 만들고 에잉 쯧쯧. 아이들 많이 사는 곳에서, 학부모들 감사 인사
나 받는 게 훨씬 먹고살만했었다. 게다가 때묻지 않은 아이들 키우는 게 훨씬 더 재밌지 않느냐.”
“그럼 혹시 관장님께서도 각성자이신가요?”
“각성자가 아니라면 내가 어찌 다희를 가르쳤겠느냐?”
역시, 느껴지는 아우라부터가 장난이 아니었다. 동화 속 산신령이나 도인 같더라니··· 역시나 각성자가 확실했다.
그런데, 왜?
“레이드는 안 뛰세요? 그쪽이 진짜 짭짤한 동네잖습니까.”
“허허, 몬스터는 이제 꼴도 보기가 싫구나. 내 나이 열일곱에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됐다. 지옥도나 다름없었지. 자고 일어나면, 어제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갔다. 오죽했으면 관이 부족해서 단체로 묻어버렸겠느냐. 물론, 나는 워낙 출
중한 실력이라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지만 말이다 끌끌.”
영감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넘겼지만, 그 웃음 속에 진한 슬픔이 녹아들어 있었다. 가슴 찢어지는 슬픔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웃는 것이다.
“20년 동안 수도 없이 몬스터를 베어 넘겼다. 이때까지 죽인 몬스터만 10만이 넘을 거다 아마. 그때는 이 몬스터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했었지. 세상 많이 좋아졌구나.”
“다, 관장님 같은 영웅 분들 덕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왕호가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100년 전의 전쟁 용사나 1세대 각성자 영웅들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따스운 밥 하나 먹지 못했으리라.
“껄걸, 다희가 입이 마르도록 얘기하더니, 교육 하나는 잘 받았나 보군. 그래, 강해지고 싶다고?”
“예. 다희처럼 강해져서 제 요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맨입으로 부탁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
“다희가 그러던데, 요리를 아주 기가 막히게 한다 더구나.”
“예. 조금 할 줄 압니다.”
“그럼, 실력 한 번 보자꾸나. 아, 그렇다고 수강료로 퉁칠 생각은 하덜 말거라!”
쓰읍-
선수를 뺏겼다. 사실, 요리로 퉁칠 생각이 없진 않았다.
‘같은 부류다!’
영감님은 왕호만큼이나 짠돌이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혹시, 어제저녁에 약주하셨습니까?”
“헛, 그걸 어찌 알았느냐?”
“올라오다 봤는데, 분리수거함에 막걸리 병이 잔뜩 있더라구요. 아직도 향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어제 먹은 거라 확신했습니다.”
“끌끌, 눈썰미 하나는 좋구나. 차라리 탐정을 하지 그랬느냐. 어제 다희가 회포를 덜 풀었다고, 이 늙은이를 술친구로 삼더구나”
“그럼, 제가 해장국 한번 끝내주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호!”
해장국이라는 말에, 영감님의 눈이 영롱하게 빛났다.
“혹시, 여기 주방도 있습니까?”
“여기서 살다시피 하니 당연히 있지.”
“그럼 주방 좀 쓰겠습니다. 냉장고도 써도 되죠?”
“허허, 너무 거덜 내진 말거라.”
왕호는 노인을 따라서 주방에 도착했다. 영감님이 지내는 공간은 도장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벌컥-
왕호는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샅샅이 훑었다.
‘기본적인 찬 밖에 없네······.’
각종 김치 종류와 정갈하게 볶아낸 반찬들이 락앤락 통에 담겨있었다.
왕호는 파김치가 담긴 통을 꺼내, 손으로 파김치 한줄기를 집어올렸다.
그리고,
아삭아삭-
‘괜찮네!’
아삭한 식감도 나쁘지 않고 맛있게 잘 익었다.
그럼 이걸 메인 반찬으로 하고···
응?
냉장고 문을 닫자, 소쿠리에 담긴 시래기가 눈에 들어왔다.
“관장님! 이거 시래기 써도 될까요?”
“영준이 엄마가 보내준 시래기구만. 맘껏 쓰게나.”
시래기를 보니, 왕호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어린다.
좋은 메뉴가 떠올랐다. 해장국의 끝판왕인···
“뼈해장국 만들어보겠습니다.”
트럭 안에, 보르도 울프 등뼈가 가득 있으니, 이걸 이용해서 해장국을 만들 생각이다.
‘숙취해소 음료보다 이게 제격이지.’
한 번 맛보면 여명 생각은 절로 떠나갈 거다.
<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