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5) >
역시 세상엔 거저먹는 게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왕호에게서 번호를 알아낸 영감님은, 능숙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빠르게 두들겼다.
“자, 계좌 보냈다. 매달 20일에 입금하면 된다.”
“아, 예······. 그럼 어떤 무술을···”
“허허, 그건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밥 다 먹고 설명해주마.”
아니, 이 영감님이··· 사람 쫄리게 만든다.
궁금하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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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는 설거지를 하겠다며 고무장갑을 꼈고, 왕호는 얼떨결에 흰색 도복으로 갈아입고 도장 안에 앉아야 했다.
앉아 있는 왕호의 앞으로, 영감이 뒷짐을 지며 왔다 갔다 한다.
“자, 아까 말했다시피 난 17세까지 운검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
노인의 이름은 “허 용”. 외자다.
허용은 열일곱까지 지리산에서 생활했다. 그렇다고 자연에만 처박혀 살진 않았다. 출생신고가 되어있는 이상, 의무교육은 철저히 받았다. 그냥 살고 있는 곳이 지리산이었을 뿐이다. 그래도 인터넷이 터질 정도로 상황이 좋진 않았다.
‘어휴 삼시세끼 준다고 할 때 따라가는 게 아니었지.’
부모를 여읜 채, 악바리처럼 싸움판을 뒹굴다 스승의 눈에 딱 들었다.
삼시세끼 푸짐한 밥에, 뜨뜻한 잠자리를 준다고 해서 따라온 곳이 지리산 중턱에 자리한 오래된 절간이었다.
푸짐··· 하긴 한데, 고기는 일절 없고 거의 풀죽이나 마찬가지. 뜨뜻한 잠자리는 직접 장작을 패와 아궁이에 불을 때야 했다.
-나는 조선제일검이신 1대 별운검··· 어쩌고저쩌고.
스승에게서 운검의 명맥을 이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개처럼 맞으며 검술을 익혔다. 쓸모도 없는 검술을 말이다.
‘돈도 안 돼. 실전에서도 못써. 스펙에도 도움이 안 돼. 이걸 왜 배우는 거야!’
심지어 일인전승이란다. 아니, 차라리 수강생들을 잔뜩 모집하면 수강료로 고기반찬이라도 사 먹을 텐데······.
고2를 앞두고 있던 어느 가을날. 천지개벽할 사건이 터졌다.
급식을 먹고 나오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언갈 보고 있었다.
-와, 이거 실화냐?
-영화 찍냐? 딱 봐도 CG 아니냐? 바이럴 마케팅이네!
-뉴스··· 에도 떴는데? 도망가야 되는 거 아냐?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며 떠들 때는 몰랐다.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아비규환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한국전쟁처럼, 부산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몬스터는 인민군처럼 위에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생겨났으니까.
의협심이 강한 스승이 환도를 들고 뛰쳐나갔다. 결과는 개죽음. 그때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전승해야 하는 이 검술은 그저 춤사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룩주룩-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는 날. 반으로 갈라진 스승의 시체를 땅에 묻고 펑펑 울었다. 눈에서 흐르는 액체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스스로도 알 턱이 없었다.
무식하게 구타당하며 검술을 익혔지만, 그래도 스승은 허용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부모님을 여읜 것만큼이나 가슴이 찢어졌다. 또다시 혈혈단신이 되었다.
“빌어먹을 세상아!!!”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보며 목에 핏대를 세울 때, 몸의 변화가 생겨났다.
허용의 육체가, 몬스터와 함께 흘러나온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각성 覺醒.
허용은 곧바로 자원입대했다.
스승님의 복수?
인류를 지키려는 의협심?
이딴 고귀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스승이 자길 거두었을 때처럼 삼시세끼 배부른 밥과 뜨뜻한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는 것.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군인들과 현대식 첨단무기는 일부 몬스터에게만 통했다. 심지어 현대문명의 결정체라는 수소폭탄까지도 통하지 않는 놈들이 존재했다.
결국, 마나를 사용하는 각성자들이 유일한 희망이 됐다.
푸짐.
‘와,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허용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진수성찬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매일 풀죽만 먹었다. 그나마 학교 급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그래도 급식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나. 지금처럼 융숭한 대접은 난생 처음 받아 봤다.
식량 공급은 끊겨, 밖에는 쫄쫄 굶는 이들도 허다하다던데···
굶주림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무리 각성자들이 귀해도 그렇지, 20첩이 넘는 반찬은 너무 심한 것 같았다.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이 사라졌다.
함께 밥을 먹던 각성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 나갔다.
‘사형수 같네······.’
마치 죽기 직전에 원하는 음식을 먹여주는 사형수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동료 각성자들은 무참히 죽어 나갔지만, 허용은 아니었다.
쓸모없다고 툴툴거렸던 이 검술이, 각성을 하자 목숨을 구제해줄 동아줄로 변했다.
남들이 둔기에 마나를 실어 무식하게 내려칠 때, 허용은 한 줄기 달빛처럼 수려한 검술로 몬스터를 베어 넘겼다.
그때부터는 목적이 달라졌다. 삼시세끼 따스운 밥이 아니라 동료들의 복수가 허용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그의 나이 20세가 되었을 때, 국가는 다른 전승자들과 함께 허용을 ‘최고 중요 각성자’로 분류했다.
그리고 “함무라비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
“함무라비 프로젝트요?”
왕호가 반문했다.
왕호는 마치 친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허용의 인생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허허, 작명은 누가 했는지 몰라도, 당한 것만큼 갚아주자는 의미였겠지. 전 세계 중요 각성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가장 효율적인 무예를 제작해 보급하겠다는 목적이었지. 한 200명쯤 모인 것 같으?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구먼.”
“서로의 무술을 공유한 건가요?”
“그렇지. 네가 말한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중국의 전승자뿐만 아니라, 크라브마가나 시스테마 같은 살인 무술의 실력자들까지 모여 각자의 기술을 공유했었다.”
허용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익히고 있던 검술은 별 볼 일 없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비기를 쉽게 공유하덥니까? 당장 지금 소림사만 하더라도 10억을 갖고 가도 안 가르쳐주지 않습니까.”
“끌끌, 인류가 다 죽게 생겼는데 공유 안 하고 배겨? 꽁꽁 감추고 있다가 다 죽는 것보다는 나았지. 우리는 낮에 몬스터를 상대하고, 밤에는 서로의 기술을 공유했다. 장점만 합치고 단점은 과감하게 버려야 했지.”
“그렇게 새로 만든 무술이 다희가 익힌 그것이겠군요?”
“얼추 맞다. 하나, 함무라비 프로젝트는 그 끝을 보지 못했다. 인류가 오리진 시스템이라는 더 효과적인 대책을 개발했으니까.”
오리진 시스템의 완성으로 각성자들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것도 가능해졌다.
허용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상당히 슬퍼 보였다.
“오리진이 완성되고 함무라비 프로젝트는 일시 중단되었지. 그 목적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다른 목적이요?”
“오리진 시스템을 적용받은 2세대들이 안전하게 강해질 때까지, 고레벨 몬스터들을 막는 것이었지. 아주 숭고한 임무였어. 순례자의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싸웠다. 우린 잘 막았다. 덕분에 2세대 각성자들이 우르르 튀어나와서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교과서에서는 오리진 개발자들만 영웅으로 나와 있던데, 왜 함무라비 프로젝트는 그대로 묻혔습니까?”
“끌끌, 본래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공은 나누면 반으로 줄지 않느냐. 게다가 다 죽어버려서 신경 쓰는 사람들도 없었다.”
“예? 다 죽어요?”
“200명 중에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
세상에나···
이제야 영감님의 슬픈 눈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관장님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셨나 봅니다.”
“허허, 아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다. 뭐, 운도 실력이라면 할 말은 없겠구나.”
영감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왕호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눈살은 찌푸려지고,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니, 그래도 이런 영웅을 이렇게 푸대접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세상을 구하는 데 일조했지만, 지금은 아파트 상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허허, 표면상으로는 2세대들의 활약이 컸으니,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퇴직금은 많이 받았으니 그걸로 퉁 쳐야지. 여기 도장 명의가 내 걸로 되어 있는 게 어디냐.”
“그 함무라비를 통해 만든 무술의 가치도 어마어마할 건데······. 당장 다희만 보더라도, 엄청나지 않습니까!”
“그때는 고유 스킬의 제대로 된 가치를 몰랐다. 레이드 산업이 발전하면서 그제야 주목을 받았지. 그리고 그때가 돼서는, 윗대가리들 머릿속에서 함무라비는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지. 끌끌.”
누군가 말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국 전쟁의 전쟁영웅을 푸대접하니, 이런 상황이 또 발생했다. 번쩍번쩍한 훈장 여러 개에 연금 팍팍 못 주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사람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교과서에라도 한 줄 실어주면 뿌듯해할 텐데 말이다.
관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한데, 다희를 가르칠 정도면, 관장님의 레벨은 어느 정도입니까?”
“레벨? 허허, 나는 오리진에 접속해있지 않다. 레벨이랄 것이 없지.”
궁금함은 다희가 대신 해결해줬다.
다희는 어느새 설거지를 마치고 왕호의 뒤에까지 와있었다.
“레벨은 제가 느끼기에 대충 600은 넘으시는 것 같네요.”
“으억!”
왕호가 경악했다. 600이란 수치는 어떠한 매체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숫자다.
“육, 육백이라면 거의 최고 레벨 아닙니까? 근데 왜···”
“왜 권력이 없냐고?”
허용은 왕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끌끌, 나는 은퇴한 지 오래다. 그리고 권력이란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더냐. 대통령이 주먹이 매워서 된 건 줄 아느냐? 아무리 육체의 힘이 약한 자라도, 그 그림자는 누구보다도 커질 수 있는 것이다.”
허용은 등을 긁던 효자손을 꺼내며 다시 말했다.
“자, 이제 일어나거라. 네 실력 한번 보자꾸나.”
“예. 근데 제가 호칭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스승님? 사부님? 아니면, 이대로 관장님이라고 부를까요?”
“허허, 스승이라··· 그건 예전 일이 생각나서 싫구나. 사부? 하하하하, 그럼 다희는 사매라고 부를 것이냐? 그냥 관장님이라 부르거라.”
“예! 관장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암, 나도 수강료 받았으니 열심히 가르치겠다. 그게 자본주의 법칙이지. 나는 검술을 맞으면서 배웠다. 그래서 때리지 않고 가르치는 법을 모르겠구나.”
“네?”
때, 때리면서?
왕호의 눈빛이 불안함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빨리 강해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더냐! 두 가지만 딱 기억하면 된다. 첫째, 모르면 맞는다. 둘째, 맞으면서 배운다. 끝.”
“헐······.”
너무 간단한 방식이다. 쉽게 말하면 스파르타식.
넋을 빼고 있던 왕호의 머리를, 허용이 들고 있던 효자손으로 내리쳤다.
딱-!
“아얏!”
“집중하고! 저기 뒤에 있는 죽도나 가져오거라.”
“아, 예······.”
왕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수강료까지 냈는데, 맞으면서 배워? 아이들은 안 때리는 것 같던데······.’
왕호는 효자손으로 얻어맞은 이마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죽도를 가지러 가는 왕호를 허용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
허용은 30년 전에 은퇴했다.
은퇴하자마자, 의정부 목 좋은 상가를 구매하고 태권도장을 차렸다.
더 이상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귀여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한적하니 아주 좋았다.
검도, 합기도, 유도 기타 등등··· 종목을 늘린 것은 나중의 일이다. 저 때는 태권도만으로도 수강생들이 넘쳐났다.
하루하루 한적하게 지내던 허용은, 어느 날 독기가 가득 찬 눈빛의 소녀를 발견했다.
아주 어릴 적, 자신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자신보다는 더 순수하다는 것? 모진 풍파를 맞았지만, 아직 순수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에잉 쯧쯧, 어린 것이 벌써부터 마에 사로잡혔구나.”
허용은 유다희를 거두어 손녀처럼 키웠다.
우여곡절이 몇 번 있었지만, 다희는 예쁘게 잘 자랐다. 외형은 물론이요, 심성까지 아름다워졌다.
자신을 닮아 사람을 가릴 줄 알며, 고된 일을 겪었지만 결코 선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런 다희가 얼마 전부터 입이 마르도록 얘기한 사람이 있다.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 옆에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사람. 특별한 요리를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허용의 눈앞에 있다.
‘독종이군.’
마음에 들었다. 가르칠 맛이 난다.
무엇보다도··· 요리를 정말 맛깔나게 한다.
< 요리만 잘하는? 요리도 잘하는! (5)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