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트라이트 (1) >
왕호는 보르도 울프 등심을 도마 위에 올려, 세 덩이로 적당히 잘랐다. 돈까스··· 아니, 울프까스를 만들어야 한다.
적당히 잘린 고기를, 고기 망치를 이용해 마구 두들겼다.
쾅- 쾅- 쾅- 쾅- 쾅-
아주 걸레짝이 되도록 짓이긴다. 이래야 육질이 부들부들, 입에서 살살 녹는다.
빻아진 고기는 소금을 소금소금, 후추를 후추후추 뿌려 시즈닝한다.
밑간을 마친 왕호는, 밀가루와 빵가루 그리고 계란을 꺼냈다.
탈탈탈탈-
계란은 잘 풀어서 달걀물로 만들었다.
슥슥-
시즈닝된 고기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물을 적셔, 빵가루를 앞뒤로 묻힌다.
남은 고기도 밀가루, 달걀물, 빵가루 순으로 옷을 예쁘게 입혔다.
이제 튀기기만 하면 맛있는 커틀릿이 완성된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튀기는 건 반칙이다. 오죽하면, 신발 밑창을 튀겨도 맛있다는 얘기가 나올까.
콸콸-
냄비에 카놀라유를 가득 붓고, 가스 불을 켰다.
카놀라유는 무색무취에, 발연점도 높아 튀김에 적합하다.
왕호의 눈이 무지갯빛으로 변했다. 적탐안으로 튀기기 알맞은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기름이 적당히 달아오르자, 예쁘게 차려입은 고기를 투하했다.
풍덩-
쟈글쟈글-
기포들이 마구마구 올라오며 고기가 튀겨진다.
왕호는 적탐안을 끄지 않았다. 고기 내부를 8할 정도만 익힐 생각이다. 이따가 한 번 더 익혀야 해서 그렇다.
80% 적당히 익자 집게를 이용해 고기를 꺼냈다. 황금색으로 노릇노릇하게 아주 잘 튀겨졌다.
식힘망 아래에 키친타올을 깔고, 튀겨진 고기를 망 위에 올린다. 기름을 빼주기 위함이다.
적당히 기름이 빠지자, 고기를 도마 위로 올려 먹기 좋게 세로로 썬다.
슥삭- 슥삭-
썰리는 소리만 들어도 바삭하기 그지없다.
이제 가츠동 소스를 만들 차례.
양파와 대파를 꺼낸다.
탕탕탕탕-
양파는 채썰기로, 대파는 어슷썰기로 예쁘게 썰어낸다.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리고 식용유로 살짝 코팅했다.
그리고 달궈진 팬에, 썰어 놓은 양파와 대파를 투하한다.
치이이이-
대파와 양파가 익으면서 고소한 향이 부엌을 넘어 거실까지 가득 메운다.
살짝 볶은 후에, 왕호는 만들어 놓은 만능 간장을 국자로 퍼 올렸다.
그대로 투하!
치이익-
원래는 쯔유를 넣어야 하지만, 만능 간장으로 대신한다.
콸콸-
물도 적당히 붓는다. 양파와 대파가 살짝 잠긴다. 물은 졸이기 위해서 넣었다.
불의 세기를 올려 그대로 쫄쫄 졸인다.
물이 증발하며 양파가 익는다. 양파가 적당히 익자, 울프까스를 올리고 계속 졸였다. 수분이 계속해서 날아간다.
마지막으로 황금빛 달걀물을 스윽 둘러주어 마무리한다. 달걀물을 넣은 후에는 절대 저으면 안 된다.
덜컹-
밥솥을 열어, 뜨뜻한 흰 밥을 널찍한 그릇에 잘 담았다.
그리고 그 위로, 양념 된 울프까스를 올려 가츠동의 모양을 완성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구사일생 버프 부여.
‘제발 돼라!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구사일생 힐링 버프가 적용됩니다.]
[요리의 마나 캐퍼서티가 모두 사용됐습니다.]
[더 이상의 버프 부여는 불가능합니다.]
겨우 됐다. 구사일생 버프만으로 용량이 꽉 들어찼다.
감격!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요리에서 올라온다. 그 아지랑이를 보고 있자니, 괜스레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어서 빨리 저 요리를 먹고 생명력을 되찾고 싶었다.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보르도 울프 등심 가츠동”이 완성되었습니다.]
[커틀릿이 잘 익었습니다. 육질이 매우 부드럽습니다.]
[만능 간장을 사용해 소스를 완성했습니다.]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보르도 울프 등심 가츠동-
[체력이 얼마 없는 이를 위한 커틀릿 덮밥.]
[채소와 등심 커틀릿이 적절하게 익었다. 소스가 잘 배어있다.]
[만능 간장을 사용해, 소스의 풍미가 좋다.]
[일식 스타일로 조리됐다. 양이 많아 든든하다.]
[고기를 좀 더 재우면, 맛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버프 : “구사일생”이 발동됩니다.]
[구사일생 九死一生 – 아직 죽지 않았다면, 체력의 100%가 천천히 회복됩니다. 치유력 스탯의 영향으로, 올라온 멍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병
이 걸립니다.]
이제 힐링 타임이다.
“희영아! 나와서 저녁 먹어! 덕구도 데리고 나와~.”
벌컥-!
왕호가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희영이가 방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킁킁-
“와, 냄새 죽인다! 향기가 방까지 기어들어 와서 죽는 줄 알았다구. 오~ 오늘은 요리에 힘 좀 줬는데? 웬일이래?”
희영이가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감탄했다.
가츠동을 보자, 군침이 절로 흘러나온다.
스윽-
희영이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침을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헥헥-
희영이를 따라 나온 덕구도 침을 질질 흘린다.
“자. 네 건 여기.”
왕호는 가츠동 하나를 식탁 아래에 놓았다. 덕구 거다.
그러자 희영이 화들짝 놀란다.
“어? 이런 음식 먹여도 돼? 간 쎄잖아.”
“아, 얘는 보통 강아지가··· 음··· 얘 품종은 인간이 먹는 거 먹어도 된다더라. 쪼꼬렛 먹여도 된다던데?”
“헐, 진짜? 하긴 얘는 내가 모르는 품종이다. 비글인 줄 알았는데 털도 하얗고 복슬복슬 한 것이 처음 보네.”
“그리고 이미 맛 들려서 사료 줘도 안 먹을걸? 맛있게 먹으라고 냅두고 우리도 먹자.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대잖아.”
우적우적-
그러거나 말거나, 덕구는 이미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희영이가 힘차게 외친다.
매번 요리를 해줄 때마다 희영이는 신나게 외친다. 그래서 해줄 맛이 절로 난다.
왕호는 이제 젓가락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았으나, 희영이는 아니다.
희영이가 젓가락을 들어 양파와 함께 울프까스를 집어 올렸다.
“와, 진짜 탐스럽게 잘 익었다.”
잘 익은 사과에게나 할 법한 말을 하고는, 그대로 한입 베어 먹었다.
앙-!
우물우물-
“오오~ 맛있어!”
짜릿하다. 짜릿함에 희영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맛있는 요리를 먹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눈매는 반달을 그린다.
척-!
그대로 엄지를 세워 왕호에게 들이밀었다.
“맨날 한식만 먹다가 이거 먹으니, 진짜 맛있다. 오빠도 좀 먹어!”
“완전 일식 스타일은 아니야. 쯔유를 안 넣었거든. 맛있게 먹어라. 고3이니까 배가 든든해야지.”
왕호는 희영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웃으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정말로 스스로에게 첫 힐링 버프를 선물할 차례다.
왕호는 거치적거리게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다. 숟가락을 그대로 푹-! 찍어서 길쭉한 울프까스 조각을 반으로 쪼갰다.
숟가락을 들어 올리자, 반으로 토막 난 울프까스와 함께 밥이 한가득 올라온다.
그대로, 후아압-!
쩝쩝쩝-
“흐으으~.”
힐링 된다.
맛있어서 힐링 되는 것과 동시에, 체력이 살짝쿵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버프 “구사일생”이 발동됩니다.]
[최대 체력의 수치만큼 체력이 천천히 회복됩니다.]
[의지에 따라 체력회복속도가 달라집니다. 최소 24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가츠동을 흡입했다. 덕구는 어찌나 빨리 먹었는지, 벌써 앉아서 쉬고 있었다.
.
.
.
“맛있었어?”
왕호가 물티슈로 입을 닦으며 물었다.
너무 게걸스럽게 먹은 터라 입가에 소스가 잔뜩 묻었다.
“응! 진짜 맛있었어. 잘 먹어서 배 터질 것 같아. 근데 이거 돼지고기 맞아? 뭔가 되게 맛있네 헤헤. 게다가 호랑이 기운도 솟아나는 것 같애. 기분 탓인가?”
희영이가 배시시 웃으며 답했다.
“호랑이 기운? 하하, 무슨 씨리얼 광고··· 음······.”
왕호가 웃다 말고 갑자기 정색했다.
희영이가 먹은 요리는 왕호의 것과 똑같은 요리다. 즉, 희영이의 덮밥에도 ‘구사일생’이 걸려 있다는 소리.
그러고 보니, 희영이한테 제대로 된 버프 요리를 먹이기는 지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그냥 레이드 뛴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평소 먹이던 음식만을 먹였다.
생각이 너무 짧았다.
“응? 오빠 갑자기 왜 정색해?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지금 수능 며칠 남았지?”
“75일 남았지!”
“얼마 안 남았네? 공부는 할 만해?”
“맨날 똑같지 뭐. 늦여름이라 체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은데, 이거 먹으니까 다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희영이는 수능을 앞둔 고3이다.
프로야구에서는 한 시즌에 무려 144경기를 치른다. 꽤나 긴 레이스다. 이걸 ‘페넌트레이스’라고도 부르는데, 페넌트pennant는 우승기를 의미한다.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농구리그 또한 이런 장기리그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가 이러한 장기리그전을 채택하는데, 각 팀은 우승을 목표로 꾸준히 승률을 쌓아나가야 한다. 페넌트레이스의 결과가 결코 우승을 확정하지는 않는다. 하나, 정규리그에서 좋은 승률을 쌓아야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커진
다.
수능도 똑같다.
고3은 수능 디데이가 365일이 되기도 전부터 수능을 준비한다. 꽃봉오리가 완연한 봄에 몸이 나른해질 수도 있지만 체력을 유지해야 하며,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복날에도 페이스를 잃으면 안 된다.
찬바람 쌩쌩 부는 수능 코앞 날에도 핫초코 후후 불어 마시며, 끝까지 체력과 멘탈을 휘어잡아야 하는 것이다.
365일의 결과가 좋아야지만, 마지막 수능에서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내가 왜 희영이한테 버프 요리를 먹일 생각을 못 했지? 너무 짧게 생각했다.’
레이드 뛰는 것을 감추는 데 급급해서, 정작 희영이를 챙기지 못했다.
매일 매일 각종 버프로 체력만 길러줘도,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체력만이 아니라 다른 버프도 마구 걸어줄 수 있다.
“희영아, 아침에 오빠가 도시락 싸놓을 테니까 수능 끝날 때까지 그거 먹어라.”
“응? 왜 갑자기 귀찮은 짓을 하려고 그래. 급식 먹으면 돼. 급식 맛있어.”
“아냐. 내가 기사 봤는데, 수능 앞두고는 음식 조심해야 한다 그러더라. 식중독이라도 걸리면 진짜 큰일 나잖아.”
“그건 한 20일 앞두고부터 해야 되는···”
“싫어? 오늘 같은 요리 담아줄 건데?”
“헉! 누, 누가 싫대? 오빠 귀찮을까 봐···”
“나 요리 뚝딱 만들잖아. 손 빨라서 괜찮아.”
“히힛.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오라버니!”
희영이가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급식보다 왕호의 요리가 더 맛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왕호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의대 가고 싶댔는데, 의대는 점수대가 엄청 높잖아? 버프 오지게 넣어 줘야지.’
수능 만점이라도 받는 날에는, 6년 전액 장학금도 노릴 수 있다. 가문의 영광이 따로 없을 거다.
*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찌뿌둥하던 느낌이 전부 사라졌다.
휙-
이불을 들쳐보니, 멍도 거의 절반이나 없어졌다. 통증은 거의 다 잡아버렸고, 체력은 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하하하, 관장님 백날 때려보슈! 다시 회복하면 되지.”
왕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지개를 쫙! 폈다.
그러나 왕호의 호탕한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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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회복력이 좋구나!”
허용은 왕호의 체력이 회복된 것을 귀신같이 캐치했다.
허용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자리했다.
“좀 더 굴려도 되겠는데? 성장 속도에 아주 불이 붙겠어. 이거, 가르칠 맛이 쏠쏠하구나!”
쓰읍-
‘가르칠 맛이 아니라, 때릴 맛이겠지!’
이거, 아무래도 실수 한 것 같다.
.
.
.
따악-!
“으억!”
왕호는 빌어먹을 효자손에 얻어맞고, 매트 위를 데구루루- 굴렀다.
구르면서 생각했다. 살기 위해 생각해야 했다.
‘이건 아니다! 이대로는 아니야!’
저벅저벅-
왕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저승사자의 발걸음을 느끼고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요!”
“허허, 왜 그러느냐? 이제 좀 열심히 할 마음이 드느냐?”
열심은 무슨··· 아까부터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죽도는 저와는 맞지 않는 옷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 스포트라이트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