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57화 (57/149)

< 스포트라이트 (2) >

끄응-

왕호가 죽도를 지팡이 삼아, 힘겹게 일어났다.

“윽, 이건 양손으로 쥐는 검이잖습니까.”

“그렇지.”

“처음 잡아보는 터라,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허허, 검술에 왕도란 없다. 다 기초부터 시작하는 법이니라.”

“그게 아니라, 차라리 한손검을 사용하면 안 되겠습니까?”

“한손검? 단검을 쓰겠다는 얘기냐?”

허용의 눈에 호기심이 살짝 어렸다.

“저 그래도 명색이 요리 짬밥만 10년입니다. 식칼 정도는 우습게 다룰 수 있습니다.”

“끌끌, 이놈아! 어디, 죽어있는 재료를 써는 거랑, 살아 움직이는 적을 제압하는 거랑 같다더냐?”

“몬스터한테는 쓸 만 하던데요? 쌩기초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허허, 장인은 연장을 가리는 법이 아니거늘······.”

“제 말이 딱 그겁니다! 연장을 가리면 안 되니, 식칼로도 충분하잖습니까.”

왕호가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자, 허용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그 말도 일리가 있구나.”

“혹시, 관장님께서는 한손검을 다루시지 못하는···”

왕호는 이때다 싶어, 관장을 살짝 자극했다.

“예끼! 함무라비 프로젝트에 뽑힌 인원만 200이 넘는다! 한손검이라면 그리스의 아킬레우스 비전과 사천 서문세가의 비기가 쓸만했었지.”

“그걸 다 익히신 겁니까?”

“다는 힘들고, 장점만 뽑아서 익혔지. 한손검 뿐만 아니라, 맨손, 창술, 봉술, 삼절곤, 연검, 환도, 대도, 기타 등등··· 모조리 핵심만 뽑아 먹었다. 한손검은 일도 아니지! 암!”

아주 술술 넘어온다.

“그럼 관장님께서 집대성한 특급! 한손검의 묘리를 익히면 안 되겠습니까?”

“흐으음··· 단검도 극한까지 익힌다면 별 다를 것이 없지. 알겠다. 그럼, 다른 한 손은 어찌할 생각이냐? 그대로 놀릴 생각이냐?”

“던전에서는 방패···라고 해야 하나? 여튼, 방패를 사용했습니다.”

“오호! 좋은 선택이야. 아무렴! 한손검은 방패와 함께해야 궁합이 가장 잘 맞지. 서로에게 원앙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겉멋에 찌들어 쌍검을 휘두르는 자들도 있는데, 그건 효율도 낮을뿐더러 양손검보다 더욱 다루기가 힘들다.”

허용은 속사포로 검과 방패 조합의 뛰어난 점을 설파했다.

‘됐다!’

왕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손에 익은 식칼을 사용하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괜찮을 거다.

실실 웃으며 가만히 서 있는 왕호를 허용이 재촉했다.

“뭐 하고 있느냐? 연장 바꾸겠담서? 연장 가져오지 않고.”

“예? 식칼 말입니까?”

“죽도는 싫다고 하지 않았더냐. 던전에서 사용하는 걸로 가져오너라.”

“하나, 그건 진짜 칼인데···”

“허허, 괜찮다. 아직 네 실력은 내 새끼발톱의 때만큼도 안 되니 퍼뜩 가져오거라!”

“예······.”

터덜터덜-

왕호는 최대한 천천히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빨리 갔다 오면 맞는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래도 덜 맞지 않을까?’

희망찬 생각이 왕호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

.

허용이 왕호의 꼬락서니를 보고 또다시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네가 말한 방패가 프라이팬이었느냐? 그 칼은 또 무엇이냐? 장미가 그려진 것이 예사 식칼은 아닌 듯싶구나.”

“이래 보여도 둘 다 마도구입니다. 장미칼이라고 못 들어보셨습니까? 뭐든지 썰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물건입니다.”

“호오~ 무엇이든지 썰어버린단 말이냐? 도깨비방망이 같은 물건이구나.”

“이건, 너무 위험해서 다른 칼도 가지고 왔습니다. 여기 일반 식칼도 있고, 회 뜨는 사시미칼도 있고, 발골도도 있고, 중식도, 과도, 빵칼···”

“허허, 괜찮다. 실력 한번 보자꾸나. 공격 해보거라.”

허용은 이번에도 효자손을 쥐어 자세를 취했다.

“효자손? 그거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허허, 뱁새가 황새 걱정을 다 하는구나.”

탓-!

왕호는 보르도 울프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허용에게 달려들었다.

슈우욱-

달려오는 힘을 그대로 실어, 허용의 옆구리 쪽을 공략했다. 세로로 베는 것보다, 가로로 베는 것이 더 피하기가 힘든 법이다.

허나, 허용은 피하지 않았다.

효자손을 가볍게 들어 장미칼의 이동 반경을 가로막는다.

‘어림없지! 나무 정도는 그냥 썰어버린다고!’

이번에는 관장님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주 코를 납작하게···

는, 개뿔.

턱-!

효자손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상태로 장미칼을 막아냈다.

‘미친!’

순간 왕호의 눈에 당황이 서렸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가마니가 된다. 처맞을 게 눈에 선했다.

반사적으로 왼손에 쥔 프라이팬을 그대로 휘둘렀다.

부우웅-

목표는 관장님의 관자놀이.

하지만···

퍽-!

타격 소리가 들린 곳은 허용의 머리통이 아니라, 왕호의 정강이였다.

[맷집이 상승하였습니다.]

“아아악!”

쪼인트를 까인 왕호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벌러덩-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덜 맞지 않을까?>

오 분 전에 떠올린 생각이다.

아주 산산조각났다.

왕호는 정강이를 부여잡고 구르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크흑, 효자손으로 어떻게 장미칼을···”

“허허, 나도 마나를 쓸 수 있지 않느냐.”

“그 효자손도 마도구입니까?”

“응? 아니다. 요 앞 마트에서 사 온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나를······. 터져야 정상 아닙니까?”

“껄껄, 마나를 잘 다루지 못하는 놈들이 쓰면 그렇게 되겠지. 겉에만 살짝 두르면 괜찮느니라.”

“헙! 정말입니까?”

“때가 되면 너도 가능할 것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거라. 그나저나, 식칼을 사용하니 아까보단 쓸 만 하구나. 좋다. 그걸로 정하고, 매달 초식 하나를 알려줄 터이니 한 달 안에 마스터 해야 할 것이야!”

허용이 흠집 하나 나지 않은 효자손으로 등을 벅벅 긁으며 당부했다.

“마, 마스터 말입니까?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요?”

“그렇다. 넌 오리진에 접속되어 있으니 알기 쉽게 설명하면, 한 달에 스킬 하나씩을 알려줄 것이니, 숙련도를 100%로 만들라는 뜻이다.”

“아, 아니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왕호의 고개가 바닥으로 푹- 떨어졌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맞으면 된다잖아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양손검이라는 가시밭길을 벗어나서 꽃길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눈앞에 나타난 꽃길은 그냥 꽃길이 아니라, 장미가시밭길이었다.

*

2주라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이고 삭신이야······.”

왕호가 오른손으로 반대쪽 어깨를 주물렀다. 곡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회복 버프를 거의 매일 섭취하다시피 한다. 하나, 체력이 회복되면 그만큼 다시 줄어든다. 귀신이 따로 없다 진짜.

“오빠 요새 뭐 하고 다니길래···”

그런 왕호를 한여름이 안쓰럽게 쳐다본다.

“아, 요즘 운동하느라 그래.”

“헬스장이요? 어디 다녀요? 저도 다닐래요!”

“헬스장은 아니고, 무술 도장 다녀.”

“어? 오빠도 그런데 다녀요?”

“응? 그런 곳이라니?”

“요새 레이더들 사이에서 핫한 곳 있잖아요. 검술 같은 거 알려주는 학원이요! 오리진에서도 막 홍보하고 그러던데? 학원만의 고유 스킬 알려준다고 빨리 등록하라고요.”

“와, 진짜 별별 사업 아이템이 다 있네.”

왕호는 다른 의미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국인의 사업심은 알아줘야 한다. 사교육 열풍이 레이더들 사이에서도 불고 있다.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면 학원에 등록해야 한다. 여기서 나오는 정보가 학교보다 더 알차다나?

오죽하면 학교에 내는 등록금보다, 학원에 꼬라박는 학원비가 더 많을까.

“오빠는 거기 안 다녀요?”

“그런 데 아니야. 동네 검도 도장이야. 의정부 아파트 상가에 있어.”

“와 디게 멀리 다니네요? ···잠깐! 의정부면 다희 언니 사는 곳 아니에요? 오빠 요새 다희 언니 따로 만나요?”

“응? 의도해서 보는 건 아니고, 마주칠 때는 있지.”

따로 볼 때도 있다는 대답에, 여름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왕호를 노려보았다.

“어쩐지··· 요즘 다희 언니가 오빠를 왕호님이라고 안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었네. 둘만 따로 놀지 말고 저도 불러서 같이 놀아요! 저 시간 많아요! 요새 천만영화 새로 나왔다는데 보러 가요!”

“영화? 저번에 보지 않았나?”

“던전 베테랑이요? 에이 그건 이미 한물 지났죠! 일주일에 영화가 대여섯 개씩은 쏟아지잖아요.”

“그렇게나 많아?”

대학 졸업하고 영화관에 가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영화판이 어찌 돌아가는 지 하나도 모르겠다.

여름이는 항상 파티원들과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씩 일찍 온다. 일찍 도착해서 왕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 버프 요리를 먹고 레이드를 뛴다.

2주간 열심히 뛴 덕에, 파티원들의 레벨은 이제 50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왕호는 얼마 전 60레벨을 넘겼다. 관장님에게 함무라비식 단검술을 전수받은 터라, 맷집 스탯도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그래도, 효과가 없다고 볼 순 없네.’

사랑의 매는 실로 대단했다. 사냥이 훨씬 능숙해졌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깊이 체감할 수 있었다. 관장님은 다희가 3년 걸린 경지를 정말로 1년 만에 만들어버릴 요량인 듯싶었다.

2주간이었지만, 트럭의 요리 또한 크게 발전했다.

버프 부여 스킬이 생겨난 터라, 좀 더 체계적으로 바꿔보았다.

메뉴를 총 3가지의 큰 줄기로 나눴다.

<버프요리>, <프리미엄>, <일반요리>.

<버프요리>는 기존에 팔던 버프 요리와 똑같다. 주 스탯을 기준으로, 좀 더 세분화시킨 것만 조금 달라졌다.

<프리미엄>은 말 그대로 프리미엄. ‘용기백배’, ‘구사일생’, ‘CHEER UP!’ 세 가지 힐링 요리 버프를 부여한 특제 요리다. 맛도 맛이고 버프도 버프, 게다가 비주얼까지 레스토랑 뺨치게 업그레이드시켰다. 당연히 가격도 기존 버프 요리의 두 배 이상이다.

<일반요리>는 버프를 부여하지 않은 요리다. 버프 요리가 너무 비싸다고 등을 돌리는 이들이 있어서, 일반식을 만들었다. 몬스터가 아닌 재료를 사용해도 되고, 몬스터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버프를 부여하지 않으면 일반요리로 만들 수 있다.

프리미엄 특제 요리를 위한 각종 소스들도 개발했다.

만능 간장, 칠리 소스, 핫 소스, 굴 소스, 해선장 소스, 스테이크 소스, 탕수육 소스, 기타 잡다한 소스까지.

덕분에 2주 동안 수입도 꽤나 쏠쏠했다. 지갑이 두둑해졌다.

‘돈 생기니까, 식기를 좀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 어?’

부르릉-

행복감에 젖어있던 왕호는, 던전으로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차들의 행렬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빵빵-!

맨 앞서 있던 화물 트럭이 크락션을 울리며, 사람들의 길을 텄다.

왕호네 푸드트럭의 거의 2배 가까이 되는 대형 트레일러였다. 그 뒤로 승합차 여러 대가 꼬리를 이었다. 개중에는 상당히 비싸 보이는 고급 밴도 있었다. 삼각별 로고를 달고 있다.

“와, 저게 다 뭘까요?”

한여름도 고개를 빼꼼 내밀며 관심을 보였다.

주차를 마친 승합차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수가 족히 50은 넘었다.

내린 사람들 중 일부가,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각종 장비들을 힘겹게 꺼낸다.

끄응-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장비들이 하나둘씩 내려진다. 그중에는 무척이나 비싸 보이는 대형 카메라들도 있었다.

“어! 카메라다!”

여름이가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눈을 찌푸려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그러자···

“오빠! 저기 글씨 보여요? 가까이 가서 볼까요?”

트레일러 옆에 글씨가 페인팅 되어 있었는데, 너무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몽골인 급의 매서운 눈을 가진 왕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왕호는 여름이가 가리킨 로고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던전··· 베테랑2 촬영 트레일러··· 라는데?”

< 스포트라이트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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