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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58화 (58/149)

< 스포트라이트 (3) >

“헛! 정말요? 그러면 박하진도 여기 오는 거예요? 꺄앗!”

기대에 가득 찬 한여름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1편 주인공? 축구선수 출신?”

“네! K리그 통산 어시스트 1위인데, 각성 후에 영화판으로 뛰어들었잖아요. 운동선수 출신이라 몸 좋지 액션 되지. 엄청 잘생긴 건 아닌데, 카리스마가 대박이죠!”

“와, 되게 빠삭하네. 팬클럽 회원이야?”

“헤헤, 아뇨. 저는 영화 좋아하잖아요. 일주일에 적어도 한 편씩은 본다구요. 게다가 이쪽으로 가고 싶기도 하고······.”

여름이가 부끄러운지 말끝을 흐렸다.

여름이는 이제 곧 50레벨을 찍는다. 여름이 뿐만 아니라, 지원이와 강창모도 그렇다.

한여름과 김지원은 50레벨 까지만 올리고, 던전을 벗어나기로 애초에 계획했다. 위험한 레이더로서의 삶을 굳이 택할 이유가 없다.

둘 다 연예계 쪽을 고심하는 것 같았다.

왕호가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근데, 내가 듣기로 연예계도 엄청 힘들다던데··· 사기 계약도 판을 치고.”

“아무래도 인기 위주로 돌아가니까 그렇겠죠. 근데, 각성자들은 베네핏이 크잖아요. 던전에서 활약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연기 전공자들에 비해서 외모나 연기가 딸려도 쉽게 캐스팅 되더라구요.”

“여름이 너 정도 외모면 각성자 아니라도 충분할 거 같은데? 연기는 배운 적 있어?”

왕호가 한여름의 외모를 인정하자, 여름이의 볼에 홍조가 살짝 어렸다.

“···연기학원 계속 다니고 있어요. 한번 부딪혀보고, 안 되면 그때 다른 길 알아보려구요. 지원이는 하다가 포기했어요. 발연기를 못 고치겠다나?”

“그래? 그럼, 지원이는 제약회사 들어가겠네.”

한여름과 김지원의 전공은 약학이다. 가업이 그러했으니, 자연스레 전공을 그쪽으로 정한 것이다. 한데, 둘 다 100% 의지를 가지고 전공을 택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하겠지마는, 전공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먹고살려고 취업 잘 되는 과로 들어가기 일쑤다.

“지원이는 자기네 포션회사로 들어갈 거래요. 그냥 마음 잡은 것 같더라구요.”

“오, 그럼 지원이한테서 포션 싸게 들여올 수 있는 건가? 친구 할인찬스로?”

“가능은 할 거예요. 포션 필요해요? 제 가방에 잔뜩 있는데.”

“아니, 아직은 괜찮아. 비스무리한 거 있거든.”

구사일생 힐링 요리가 있다. 비록 체력 회복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느리지만, 그래도 비싼 포션을 사 먹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은 포션이 필요치 않지만, 혹시 모른다. 나중에 필요할 수도···

어?!

포션을 떠올리자, 왕호의 뇌리에 기막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포션을 써서 힐링 요리를 만든다면?

체력 즉시 회복이나, 마나 즉시 회복의 효과가 더해지지 않을까? 육체적 힐링 버프의 효과가 배가 되려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호가 물었다.

“혹시··· 포션 맛은 어때? 맛있어? 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포션이요? 윽, 완전 맛없죠. 하도 맛대가리가 없어서 합성착향료를 첨가하긴 하는데··· 그래도 맛없어요. 억지로 먹는 거예요.”

“그래?”

그럼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맛이 없으면 팔리지가 않는다. 요리의 최우선은 뭐니 뭐니 해도 맛이다.

‘레몬이나 라임을 잔뜩 넣어서 맛을 지워버릴까? 아니면 계피를 넣고 팔팔 끓여? 아니면 어리굴젓으로 더 강하게···’

왕호가 맛대가리 없는 재료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뚜벅뚜벅 트럭 앞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네? 어서 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아, 뭐 사 먹으러 온 건 아니고. 여기서 장사 계속하실 겁니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영화 촬영팀에서 나온 듯싶었다. STAFF라고 적힌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말투가 상당히 공격적이다.

“장사요? 저녁까지는 아마 계속할 겁니다.”

“하, 좀 뒤쪽으로 가주실래요? 필름 동선에 겹칠 수도 있는데.”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부탁을 해도 공손한 어투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말하면,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이런 식이면 굳이···

“이 자리에서 장사한 지 2주가 넘었습니다. 제가 꼭 비켜야 할 의무라도 있습니까?”

“하아~.”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돌려 근처에 있는 다른 남자를 불러냈다.

“야! 미소지기! 네가 좀 와서 설명해라.”

“옙!”

후다닥-

남자는 미소지기라 불린 이를 트럭 앞에 세워 두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아마 이런 부탁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꾸벅-

미소지기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얼굴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미소지기는 정말 말 그대로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상당히 잘생겼다.

상대가 웃으며 말을 건네자, 왕호도 웃으며 화답했다.

“네. 영화 촬영팀에서 나오셨나 봐요?”

“예. 전 엑스트라입니다.”

“보조 출연자세요? 그럼, 저 사람은 누구···”

“아, 저분은 조연출 감독님이세요. 봉 감독님 밑에서 연출 배우는 AD분이죠.”

“제가 여기 있는 게 영화 촬영에 방해됩니까?”

“아뇨. 영화 촬영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조용히 장사하는 사람 쫓아내지는 않습니다. 윽박지르는 영화사들도 많은데, 저희 봉 감독님은 그러지 않습니다.”

“한데, 왜 저 보고 자리 비키라고 한 겁니까?”

“그냥 저분이 유달리 예민한 겁니다. 신경 끄셔도 돼요. 진짜 방해되는 위치에 있으면, 저 같은 엑스트라한테 말하라고 시켰겠습니까?”

“조연출이 엑스트라를 이렇게 맘대로 부려도 되나요? 촬영 씬도 아닌데.”

“하하하, 까라면 까야죠 뭐. 제가 을의 입장인데요. 아니, 을이 아니라 병, 정이네요. 와, 근데 던전에 푸드트럭도 있네요. 참 신기합니다.”

꿀꺽-

미소지기가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름이가 자부심을 가득 담아 말을 건넨다.

“오리진에서 못 보셨나 봐요? 완전 유명하진 않아도, 소문은 얼추 들으셨을 법도 한데.”

“아! 저는 각성자가 아닙니다. 오리진에는 접속하고 싶어도 못하죠.”

“에? 각성자가 아닌데 던전엔 어떻게 들어왔어요?”

“영화 촬영 차 허가받았습니다. 저희 봉 감독님도 비각성자세요. 각성 연기자는 귀한 편이라 지금 출연진에도 몇 있지 않습니다.”

“와, 던전에서 촬영하는 거는 처음 봐요! 저도 사실 영화계에 관심 많거든요! 저기 사장님이랑 던전 베테랑 전작도 봤어요! 거기에도 출연하셨나요? 이 정도로 말끔하게 생긴 배우는 본 적이 없는데······.”

여름이가 고개를 가우뚱거렸다.

“전 이번에 오디션 보고 들어왔습니다.”

“예? 엑스트라도 오디션을 봐요?”

“아뇨. 원래는 조연으로 오디션 봤는데, 떨어졌죠. 봉 감독님께서 아쉽다고 대사 몇 줄 있는 엑스트라로 넣어주셨···”

꼬르륵-

말하는 도중 미소지기의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공교롭게도 지금이 딱 점심때다.

왕호가 웃으며 제안했다.

“한 끼 드시겠습니까?”

“좋죠! 어차피 제 촬영 씬은 한참 남았습니다.”

드르륵-

미소지기는 신나게 의자를 끌어당기며 앉았으나···

“헉!”

가격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프 요리? 와, 레이드 뛰는데 도움 되겠네. 그래서 저렇게 비싸나?’

남자가 몹시도 망설이자, 왕호도 남자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단 번에 파악했다.

“밑에 보시면 일반 요리도 있습니다.”

“엇! 그러네요! 하하, 다 비싼 줄 알았습니다. 그럼, 황금 볶음밥 하나 맛깔나게 해주십쇼 사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해드리겠습니다. 아, 근데 그 미소지기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무척 잘 어울립니다.”

“하하, 그건 설명하자면 길어지는데··· 그러니까, 제가 오디션 보러 갔을 때···”

왕호에겐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 이렇게 살짝 스위치만 눌러주면 죄다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왕호도 그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가웠다.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괜스레 그 이야기에 매료된다. 새로운 분야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고, 깊게 공감하는 것도 좋았다. 게다가 요리 하는 것도 심심치 않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고민이나 상처를 맛있는 요리와 함께 힐링해줄 때가 너무 좋았다. 가슴 깊은 심연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솟아오른다. 뿌듯함을 넘어선 어떠한 ‘쾌감’이다.

흔히 사람들은 담배를 수명과 맞바꾼 쾌락이라고 한다. 왕호가 느끼는 이 감정은, 반대로 수명을 늘려주는 기분 좋은 쾌락임이 분명했다.

*

미소지기는 자신이 오디션을 보러 간 그날의 일을 열심히 설명했다. 미소지기의 본명은 박주혁.

와작-

아침에 먹으면 금이라는 사과 반쪽을 씹어먹으며, 박주혁은 원룸을 나섰다. 청송 꿀사과라 그런지 달콤하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달콤했음 싶은데······.

오늘이 드디어 천만감독 봉길수 감독의 후속작인 ‘던전 베테랑2’ 오디션이 있는 날이다.

“거 조금 힘들다고 울어버릇 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인마.”

지정된 대사를 읊조리며 원룸촌을 빠져나간다. 오전 8시의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말끔하게 정장 차림을 한 화이트칼라 하나가 부리나케 뛰어간다. 충무로역 3번 출구. 거대하게 입 벌린 지하철역 입구가 그를 꿀떡 삼켰다.

“치열하게들 산다 진짜.”

읊어내는 대사가 왠지 우리들의 현실과 맞닥뜨려있었다.

충무로 근처에 원룸을 잡은 덕에,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대사를 점검하며 오니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제작사 건물 2층에 들어선 박주혁은 복도에 길게 들어서 있는 경쟁자들을 살폈다.

‘갈수록 더 느네······.’

감독이 감독이니만큼 지원자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어찌나 많은지 복도에 비치된 의자에 앉기는커녕. 서 있을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주연이냐고? 주연은 꿈도 꾸지 않는다. 비각성자니까. 결국 애매한 비중의 주인공 친구역에 지원했다.

‘제발 오늘은 잘 되게 해주세요!’

두 눈을 감으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간절히 부탁해본다. 이번이 일흔 번째 오디션이다. 이번 달만도 벌써 두 번째. 죄다 감나무에서 홍시 떨어지듯이 떨어졌다. 연기력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하~ 연습이나 하자.

.

.

“다음 지원자 박주혁 씨! 들어오세요!”

긴긴 기다림 끝에 이름이 호명됐다.

“예!”

힘차게 대답을 외친 박주혁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오디션장에 들어갔다.

넓은 방 안. 중앙에는 접이식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멀리 탁자 너머에 세 명의 사람이 서류철 하나씩을 손에 쥔 채 앉아있었다.

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은 유명 감독 봉길수. 감독의 오른편엔 공동 각본을 맡은 심은진 작가님이다. 왼편은··· 아마 제작사 대표일 거다.

“안녕하십니까! 한성호 역에 지원한 박주혁이라고 합니다!”

자신감 팍팍 담아 인사했다. 허리는 90도를 넘어 120도로 숙였다.

“허! 저 친구 발성 하나는 좋구만. 앉으세요.”

서류철을 보고 있던 봉길수 감독이 손을 내밀어 의자를 가리켰다.

칭찬을 들었다. 시작이 좋다. 오디션을 많이 봤지만, 봉길수 감독의 작품은 처음이다. 오디션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긴장은 크게 되지 않았다.

“준비되면 바로 시작하세요.”

호흡을 가다듬으며 감정을 잡는다. 수백 번도 더 연습했다. 연기만큼은 자신 있다.

“거 조금 힘들다고 울어버릇 하지 마. 어차피 내일도 힘들어 인마.”

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었다. 슬픔에 잠긴 주인공에게 울어도 달라질 것 하나 없다는 뼈있는 조언을 남기는 친구의 심정! 그 심정에 완전히 몰입했다.

지정된 대사를 모두 마치자,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까지 중에 연기력은 제일 좋네. 발성, 톤, 피치, 감정, 표정까지 거의 완벽했어.”

봉길수 감독의 극찬이 쏟아졌다.

“감사합니다!”

좋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박주혁은 살짝 들뜨고 말았다. 드디어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가 싶다.

“프로필 보니까 한국예술종합대학 연기과 수석 졸업이라고 나와 있네요? ‘장학수 연극단’에서 3년 있으셨고. 좋은 연극 많이 하셨네~ 이런 수재가 왜 지금은 영화관에서 일하고 있나요? 미소지기로 일하고 있네요.”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심은진 작가가 입을 열었다.

예상했던 질문이다.

< 스포트라이트 (3)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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