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크스 (4) >
[손질된 셀타 오우거 다리.]
[Lv. 50 셀타 오우거의 잘려진 한쪽 다리다.]
[핏물을 쫙 빼고, 잔털을 제거한 상태다.]
[마기가 제거되어 있지 않아, 식용으로 쓰기 어렵다.]
[급속 냉동으로 보관되어 있다.]
[마나석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터라, 꽤나 싱싱한 상태다.]
실버폭스 던전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얻어낸 오우거 족 足이다.
언젠가는 꼭! 족발을 삶아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핏물을 쫙! 빼고 잔털까지 제거해놓은 상태다. 냉동고에서 아주 오랜 시간을 버티고 있던 녀석.
그동안은 레벨과 제독 스킬의 숙련도가 낮아 마기를 빼낼 수 없었으나, 지금은 레벨 68의 몬스터 재료까지 마기를 해독해낼 수 있다.
‘제독!’
왕호는 스킬을 사용해, 마기를 제거했다.
[초급 제독의 숙련도가 99%로 상승하였습니다.]
기분 좋은 알림이다. 조만간 중급 제독으로 오른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보르도 울프 고기의 제독으로는 숙련도가 답보되어 있었는데, 한 단계 상위 재료를 해독하니 금방 상승한다.
‘이제 해동을 해야 하는데···’
좋은 방법이 있다.
애초에 냉장실에 넣어놓았다면 따로 해동할 필요가 없지만, 이 오우거 다리를 얻었을 적에는 마나석 냉장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냉동상태로 보관해놓았고, 마나석 냉장고를 구입했을 때는 이미 얼려진 상태라 그냥 냉동고에 넣어버렸다.
왕호는 트럭 구석에 철푸덕 누워있는 덕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덕구에게 얼려진 오우거 다리를 내밀며 살포시 웃었다.
덕구는 왕호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재빨리 마법을 사용했다.
디프로스트defrost 마법.
스르르-
마법견 덕구의 해동 마법 덕에, 얼어 있던 다리가 순식간에 물컹물컹해진다.
전자레인지에 넣어 해동시켰다면, 육질이 상했겠지만 덕구 덕에 싱싱한 상태로 요리할 수 있게 됐다.
찡긋-
덕구는 엎드린 상태에서 왕호에게 윙크를 날렸다.
만들고 나면, 한 접시 달라는 신호다.
지금 덕구는 사각지대에서 마법을 사용한 상태라, 바깥에서 알 도리는 없었다.
왕호는 덕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손을 씻고 일회용 라텍스 장갑을 착용했다. 이제 본격적인 요리 시작이다.
먼저, 오우거 족발을 삶아야 한다.
손질된 오우거 다리에 칼을 푹! 찔러 넣었다. 속에 칼집을 내어 삶을 때 잡내를 제거함과 동시에, 삶아 내는 시간을 단축시킬 거다.
사골 우려낼 때 사용하는 거대한 스댕 통을 꺼내 가스 불 위로 올렸다. 그리고,
콸콸콸-
만능 육수를 통에 쏟아부었다. 간장과 레드혼 카우 사골을 베이스로 만들어 놓은 진갈색 육수다.
풍덩-
육수 속으로 다리를 통째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잡내를 완벽히 잡아줄, 생강, 계피, 팔각, 통 양파, 영지버섯을 넣고 뚜껑을 야무지게 닫았다. 이제 팔팔 끓여주기만 하면 맛있는 족발이 완성된다.
족발이 삶아질 동안, 이제 양념장을 만들 거다. 아주 매운 양념장을.
‘스트레스의 ’스‘자도 생각하지 못하게 매운맛으로 간다!’
새로 꺼낸 보울 속으로, 청양초 고춧가루와 베트남 고춧가루를 후두둑 쏟아부었다.
위이잉-
믹서기에 양파를 곱게 갈고,
보울에 투하했다.
생강술도 그 위에 뿌렸다. 생강술은 쓴맛 없이 양념의 잡내를 잡아줄 거다. 청주 속에 생강을 넣어 숙성시킨 술이다. 미리 만들어 놓았다.
숟가락으로, 태양초 고추창도 푹! 떠서 집어넣었다.
슥슥-
숟가락으로 양념을 잘 비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잘 섞어지자 그 위로, 간장, 소금, 설탕 가득, 그리고 멸치액젓을 넣고 고루고루 또 섞었다.
순간! 멸치액젓 대신에 마나 포션을 넣을까도 생각해봤다. 꼬릿꼬릿 시큼한 향이 얼추 비슷했다.
‘연구는 손님 없을 때 하자.’
그건 나중으로 미뤘다.
마지막으로 다진 마늘을 사알짝! 집어넣고 다시 슥슥- 섞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진 마늘을 ‘살짝’ 넣는 것이다. 지금 만드는 양념장은 나중에도 써먹을 거라, 대량으로 제작 중이다. 다진 마늘을 많이 넣으면 풍미가 더 좋아지긴 하지만, 알긴산 성분이 발효를 촉진한다.
차라리 이 양념장으로 요리를 할 때, 따로 마늘을 더 넣는 것이 낫다.
슥슥슥-
양념장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잘 섞으니, 양념이 꾸덕해진다.
만능 볼케이노 마그마 땡초 양념장 완성.
새빨간 것이 눈으로만 봐도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 같았다.
이제 족발만 잘 삶아지면, 이 양념장으로 화끈한 불족발을 만들면 끝이다.
아직 좀 더 삶아야 하기에, 왕호는 박하진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축구선수 생활이랑 배우 생활이랑 많이 다릅니까?”
박하진은 넋을 놓고 있다, 깜짝 놀랐다. 왕호의 요리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석처럼 시선을 끌어당기는 마력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아! 어딜 가나 다 비슷합니다. 살아남는 게 어렵죠. 육체적으로는 더 나은데, 정신적으로는 지금이 더 고된 것도 같습니다.”
박하진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왕호의 요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요리 과정이 아주 깔끔한 것이, 맛이 없더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음식점에 가면, 음식 하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식기들도 왠지 더러워서 마음이 찝찝했었다. 한데, 여기는 요리 과정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트럭의 내부도 몹시 청결했다.
왕호가 물었다.
“외람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혹시··· 결벽증 있으십니까? 사실, 저도 예전에는 정말 심했습니다.”
“하하, 너무 티 났습니까? 결벽증 조금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축구선수로 활동하다가 생긴 겁니다. 강박증이 너무 심해서 결벽증까지 발전한 케이스죠. 병원에도 다녀봤는데 크게 도움은 안 되더라고요.”
“병이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인데, 쉽게 고쳐질까요.”
왕호가 이야기의 물꼬를 트자, 박하진의 입에서 하소연이 술술 터져 나왔다.
“사실··· 지금도 배우로서 최고가 되고 싶지만, 축구하던 시절에도 정말 최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갈망이 어느 정도였냐면, 징크스만 수백 개는 생길 정도였습니다.”
“징크스요?”
“제 주 발이 왼발입니다. 해서, 축구장에 입장할 때 첫 라인은 반드시 왼발부터 넘어야 했죠. 오른발로 넘어갔을 때 패배한 이후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깔끔해야 합니다. 오늘도 완벽하게 공을 차야 하는
데, 조그마한 것이라도 비틀려 있으면 가슴이 콩닥콩닥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편의점에 가더라도 라벨을 제가 맞춰놓습니다. 알바생도 아닌데 말이죠 하하.”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레스토랑에서 일할 적에,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어야 마음이 편안했었죠. 식기들의 오와 열을 딱! 맞춰놓으면, ‘아! 이러면 왠지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이러면서 자기최면을 걸곤 했었습니다. 부담이 만들어낸
저만의 징크스이겠네요 이것도.”
“오, 그렇습니까? 사장님은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저는 아직도 7시에 일어나 아침에 조깅하고, 8시 샤워, 9시 식사, 10시 모닝똥··· 모든 시간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선수 때의 습관인데 아직도 이대로 생활합니다. 십 년을 넘
게 이걸 하다 보니 바꿀 수가 없더라고요······.”
박하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오랜 시간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을 아직도 떨쳐낼 수가 없는 사실이 너무도 비참했다.
왕호는 조리대를 빠르게 정리하며 박하진을 위로했다.
“그토록 열심히 하셨으니, 통산 어시스트 1위라는 업적을 세운 것이겠지요.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저도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런 부담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심하게 받고 있더라구요.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피해를
줄 정도로요.”
왕호는 조리대를 대충 정리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예전 왕호라면 요리 도중이라도 아주 깔끔히 정리했겠지만, 지금은 대충 할 정도로까지 나아졌다.
“너무 피곤한 날이 있었습니다. 설거짓거리가 한가득 쌓여있었는데, 팔 하나 들 힘이 없더라구요. 하고는 싶은데 몸은 움직이지 않고, 결국 주방에서 자버렸습니다. 한데, 중간중간 계속 깨더라구요. 저걸 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깊게
잘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침에 완전히 깨고 나서야 설거지를 마쳤죠. 그런데··· 아침에 했는데도 상황은 똑같이 잘 돌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짐을 슬쩍 덜어 놓았죠. 물론, 남들이 보기에는 아직도 과하긴 합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스트레스는 받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말을 마친 왕호는 적탐안을 사용해, 오우거 족발을 확인했다.
아주 잘 삶아졌다.
왕호는 냄비의 뚜껑을 열고,
모락모락-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족발을 건져내, 도마 위에 올렸다. 처음 넣었을 때 족발은 흰색이었지만, 꺼냈을 때는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만졌을 때, 탱글탱글 쫀쫀한 것이 콜라겐이 듬뿍 들어있음에 틀림없었다.
맨손으로 족발을 잡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불 친화력 특성 덕분에 뜨거운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마장 발골!’
쓰윽-
왕호는 스킬을 사용해, 뼈와 살을 분리했다.
발골 스킬의 숙련도가 꽤 오른 상황이라, 살이 큼지막하게 발라진다.
이제 먹기 좋게 썰어야 한다.
왕호는 탱글탱글한 살을 잡고는 식칼로,
슥삭- 슥삭-
잘 썰었다.
‘완전 탱탱한데?’
썰면서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기가 막혔다.
돼지 족발을 썰 때보다 월등한 쫀득함이다.
왕호는 달궈진 프라이팬을 꺼내, 그 위로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올렸다.
치이이익-
양념장이 뜨거워지면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온다.
여기에 썰어놓은 족발을 투하하고, 다진 마늘과 물엿을 첨가했다. 물엿이 양념을 좀 더 꾸덕꾸덕하게 만들어 줄 거다.
휙휙-
손목의 스냅으로 프라이팬을 움직였다. 양념과 족발이 아주 잘 버무려진다.
황갈색이던 족발이 어느새 시뻘겋게 변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왕호는 찬장에서 석쇠를 꺼내, 족발을 옮겨 담았다.
그리고,
화르르륵-!
가스 불을 켜서 그대로 직화!
지글지글-
석쇠를 앞뒤로 돌려가며, 알맞게 족발을 구웠다. 진정한 불족발의 완성이다.
적탐안 덕에 절대로 타지 않는다.
주섬주섬-
왕호는 예쁜 사기 접시를 꺼내, 불족발을 플레이팅했다.
왕호의 손재주는 이제 어마어마할 정도라, 플레이팅된 접시는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당장 박물관에 전시해도 될 수준이다.
완성.
박하진의 부담감은 왕호도 완벽히 공감하는 것이었으며, 그의 심장을 관통하고 있는 찐득한 스트레스를 당장에라도 날려주고 싶었다. 힐링의 마음을 가득 담아 요리했다.
[힐링 요리 “스트레스를 타파하는 화끈한 셀타 오우거 땡초 불족발”이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4]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스트레스를 타파하는 화끈한 셀타 오우거 땡초 불족발-
[각성자 배우 “박하진”을 위한 요리. 부담감을 덜어내고 스트레스를 날려주려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스트레스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화끈하게 맵다.]
[레드혼 카우 만능 육수로 삶아, 맛이 진하다.]
[화학적으로 매운맛이 아닌, 천연의 매운맛이다. 맛있게 맵다.]
[셀타 오우거 족이 아주 잘 삶아졌다. 잡내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콜라겐이 듬뿍 들어가 육질이 쫄깃쫄깃하다.]
[효과 :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맷집이 15% 상승합니다. 최대 체력이 15% 상승합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버프 : “징크스 브레이킹”이 발동됩니다.]
[징크스 브레이킹 – 컨디션이 100%로 상승합니다. 주 스탯이 2배로 상승하는 대신, 체력이 초당 0.1%씩 감소합니다. 마나회복속도가 300% 상승합니다. 이 버프는 시전자의 의지로 발동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전자의 의지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해제 시 다시 발동할 수 없습니다. 24시간 동안 발동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버프가 사라집니다.]
새로운 힐링 요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왕호가 운용할 수 있는 힐링 버프가 한 가지 더 늘었다.
왕호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며 접시를 박하진 앞으로 내밀었다.
< 징크스 (4)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