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벼락스타 (1) >
박하진은 눈앞에 놓여진 요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비주얼이 기가 막힌다. 잘 익은 앵두처럼 새빨간 양념이 족발에 잘 버무려져 있다.
킁킁-
코끝으로 매콤한 불향이 절로 느껴진다.
손에서는 살짝 땀이 나고, 침샘에서는 침이라는 것이 폭발한다.
웬만해서는 바로 음식을 먹는 편이지만, 이건 왠지 자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찰칵-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팔로워만 100만이 넘는 박하진의 계정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던전 베테랑2 촬영 중!
던전 안에서 맛있는 푸드트럭을 하나 찾았습니다!! 몬스터 요리에 버프까지 걸린다니까 각성자분들은 먹고 뛰시면 좋을 것 같네요.
냄새만 맡아도 아주 매운 불족발입니다. 맛 후기는 다 먹고 남기겠습니다!
#먹스타그램 #던전베테랑2 #왕호네밥차 #불족발 #보르도울프던전]
어마어마한 팔로워 숫자 덕에, 올리자마자 댓글이 순식간에 달린다.
[-와, 진짜 맛있게 생겼어요! 사진으로만 봐도 매워 보여요.]
[-대 배우님 이런 서민음식도 드시네.]
[-몬스터 요리? 버프가 걸려? 실화냐?]
[-던전이면 일반인은 못 먹잖아요!! 아 넘나 슬픈 것.]
[-보르도 울프 던전이네. 레벨 200대 던전 오면 바로 사먹습니다.]
박하진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조심스레 젓가락을 들었다.
“쌈 좋아하시면, 이거랑 같이 드세요.”
왕호는 불족발 옆에 각종 쌈 채소와, 쌈무를 같이 놓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박하진은 일단 탱탱한 불족발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처음은 불족발의 맛만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아암-
입으로 집어넣고,
우물우물-
족발을 씹었다.
식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겉부분은 쫄깃탱탱한데, 고기 부분은 부드럽게 살살 녹는다.
그리고 씹자마자, 불맛과 함께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예술.
여기서 끝난다면 그냥 맛있는 족발이겠지만, 아직 맛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감칠맛 뒤로, 강력한 매운맛이 따라들어온다. 상당히 맵지만, 그 속에 고소함과 달짝지근함이 숨어있다. 단짠의 중독적인 맛을 매운향이 확! 증폭시켰다.
“흐아아~”
박하진이 입을 벌려, 뜨거운 김을 토해냈다.
매콤하기 그지없던 터라 마치 드래곤이 브레스를 내뿜듯, 불을 토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맵다!’
맵지만, 시중에 파는 핫소스 처럼 화학적인 맛은 결코 아니다.
맛깔나게 매운맛이다.
매워서 그만 먹고 싶은 음식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다. 이 요리는 맵지만서도 계속해서 젓가락이 움직이는 그런 맛이다. 멈출 수가 없는, 그야말로 마약 불족발!
맛의 향연에 놀라워하고 있을 때, 박하진을 한 번 더 놀래켜줄 알람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프리미엄 힐링 버프 요리를 섭취했습니다. 버프가 적용됩니다.]
[요리의 맛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버프의 효과가 2배로 증가합니다.]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맷집이 30% 상승합니다.]
[최대 체력이 30% 상승합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힐링 버프 “징크스 브레이킹”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헉! 세상에!’
엄청난 버프가 몸에 적용됐다.
스트레스가 감소한다는 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느끼고 있다. 맷집이 증가하는 것은 레이더들처럼 얻어맞을 일이 없기에 그다지 와닿지 않았지만, 체력이 늘어나는 점은 촬영에 도움이 된다.
활동량 많은 액션씬이라도, 저녁 늦게까지 촬영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태창을 열어, 징크스 브레이킹의 효과를 확인하고는 더 놀라야 했다.
‘주 스탯이 2배나? 게다가 마나회복속도가 300%나 증가한다고?’
레이더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히 사기 버프라고 칭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근거리 딜러의 경우엔 힘이, 탱커의 경우엔 맷집이, 마법사의 경우엔 지력이, 힐러의 경우엔 치유력이 2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게다가 마나회복속도도 엄청나게 늘어나니 스킬을 부담 없이 난사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사기다. 사기.
박하진은 레이드판을 뛰쳐나온 지 오래라 있으나 마나 한 것이지만, 레이더들에게는 소름 돋는 버프임에 분명하다.
박하진이 주목한 것은 이런 자잘한(?) 버프가 아니라. 징크스 브레이킹에 들어있는 “컨디션 100%” 효과였다.
NG를 여러 번 감수해야 할 만큼, 어려운 촬영이 있을 때 이것을 사용한다면?
실수가 나올 리가 없으니, 한 방에 오케이다. 배우 입장에서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완벽한 씬 하나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까.
물론, 이런 버프들을 다 제외하더라도, 맛만으로도 충분히 값어치를 하기에 충분했다.
박하진은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하게 맺히는 것도 잊어버린 채, 말없이 불족발을 흡입했다. 쌈 싸 먹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적우적-
큼지막한 쌈을 싸 먹는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
.
.
“사장님 정말 잘 먹었습니다. 아예 사장님 있는 곳으로 촬영을 계속해서 옮겨다니고 싶습니다 하하.”
박하진이 휴지로 땀을 닦으면서 호탕하게 말했다.
메이크업은 아마 다시 해야 할 지도 모르겠으나, 묵혀있던 스트레스는 쫙! 날아갔다.
“맛있게 드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아쉽지만 이곳 던전은 오늘로 끝입니다. 배우님도 영화 촬영 기분 좋게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윽, 정말 아쉽습니다. 그래도 저희 인연이 여기서 끝나리란 법은 없겠죠. 이쪽 업계에 궁금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쇼. 제가 발 벗고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그때는 한 10인분 포장해주십쇼. 두고두고 먹어야겠습니다.”
“예. 혹시 싸인 하나만 해주실 수 있나요? 트럭 안에 걸어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 물론이죠. 제 이름이 걸린다니 제가 다 영광입니다.”
식당에 연예인 싸인 걸어놓는 것은, 좋은 마케팅 수단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왕호가 놓칠 리 없다.
쓱쓱-
박하진은 정성 들여 싸인을 해주고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오늘 어려운 액션씬이 있는데, 이 버프를 발동시켜서 한 번에 끝내야겠어!’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
집으로 돌아온 왕호의 심정은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꽁돈 400만 원에, 봉 감독 영화 출연, 천만배우와의 인연은 좋았지만··· 정든 이들과의 파티사냥은 오늘로써 끝이다. 이제 솔플로 빠르게 강해져야 한다.
지원이는 포션 회사에 정식으로 취직할 예정이고, 강창모도 대형 길드와 계약했다. 다희가 소개시켜 준 길드라, 프레이 길드처럼 뒤통수치지는 않을 거다.
여름이도 오늘 박하진이 건넨 제안이 싫지는 않아 보였다.
-오빠! 부모님 통해서, 그 회사 재무상태나 진짜로 정직한 지 알아 볼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방송계 쪽으로 정말 진출할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한데···
-파티 끝났다고, 안 볼 생각은 아니죠? 저 SNS 잘 하니까, 제가 푸드트럭 홍보 맡을게요! 이미 페이지도 개설했어요 헤헤.
벌써 사진을 예쁘게 보정해 인터넷으로 홍보하고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아! 어차피 저쪽 일해도 시간 많이 남으니까 제가 알바할까요? 이참에 주방보조 쓰는 건 어때요?
껌딱지처럼 붙어있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딱히 알바생이 필요할 정도로 규모가 크진 않다. 그냥 자주 놀러 오라고만 했다.
‘이제 어느 던전을 가볼까? 이참에 바다 쪽으로 가서 해산물 요리를···’
왕호가 내일 향할 던전에 고민하고 있을 때,
우우웅--
전화기에서 진동이 거칠게 울렸다.
누가 전화했나 보니, 종구다.
“여보세요.”
-안킹호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뭐야 그 18세기 말투는? 부탁할 거 있냐?”
-뭐? 십팔 세기? 어째 욕같이 들린다? 하하하, 부탁은 아니고 저번에 거래한 거 잊진 않았겠지?
“거래? 아! 동문회?”
-그래도 양심은 있네. 안 까먹고 있었구만?
“벌써 한 달이나 지났냐?”
-오~ 요새 바쁜가 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래서 언제냐?”
-내일이다. 가능하지?
“뭐?!”
어처구니없는 말에, 왕호가 쇼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이, 미친놈아 내일이라면서 그걸 왜 오늘 저녁에 말하는데!”
-너는 자영업 하잖아. 원래 다음 주쯤으로 정했는데, 직장 다니는 애들 시간 맞추다 보니 딱 내일 밖에 안 되더라고.
“원래, 자영업이 더 바빠 인마.”
-미안하게 됐다. 내일 안 되냐?
“되긴 되는데···”
-오! 역시 될 줄 알았다. 크크크 내 가오 살려주기로 한 거 꼭 지켜야 된다!
“야, 진짜 타이밍 잘 맞아서 되는 거야. 원래라면 장사 나가야 돼. 기다리는 사람들 있으니까.”
보르도 울프 던전에 더 이상 안 온다고 고지해놔서, 다행히 시간이 빈다. 내일 하루 정도야 충분히 쉴 수 있다.
-담엔 꼭, 너한테 먼저 연락 하마.
“내일 하는 거 봐서, 담에 또 나갈지 안 나갈지 결정할 거다.”
-진짜 재밌을걸? 너 기다리는 애들 많다.
“알았어. 시간이랑 위치 찍어줘. 맞춰서 갈게.”
-오케이! 내일 풀어 놓을 썰이나 준비하고 있어라. 아! 맞다! 야··· 좀 서운하다?
“응? 서운하다고? 뭐가?”
통화를 나누는 왕호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너 각성했지?
“각성? 그걸 네가 어떻게···”
종구가···?
종구한테는 말한 적이 없다. 종구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인마, 너 페북스타 됐던데 내가 모를 리가 있냐?
“엥? 페북스타? 그게 뭔 말이야?”
-어? 너 SNS 안 해?
“대학 졸업하고 계정 탈퇴했잖아. 그런 거 할 여유가 어딨냐? 게다가 관종들 너무 많아서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는데.”
-그럼 “왕호네 밥차” 페이지 운영하는 사람 누구야? 거기 네 사진 있던데?
“왕호네 밥차? 아! 여름이!”
-여름이? 와, 운영자 따로 둘만큼 장사 잘 되나 보네. 하긴, 그러니까 박하진까지 거기 간 거겠지?
“박하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크크크 이 새끼 완전 모르고 있네. 박하진이 낮에 네 트럭에서 요리 먹고 졸라 맛있다고 글 올려서, 너 스타 됐어 지금. 네 거 푸드트럭 페이지도 벌써 팔로워 1만 넘었다 야.
“뭐?! 마, 만 명? 야, 잠깐만······.”
왕호는 통화를 유지한 채, 오래전 지웠던 어플을 다시 설치했다.
어플에 들어가서 검색을 하니, 정말로 “왕호네 밥차” 페이지의 팔로워가 1만을 넘어 2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왕호는 얼떨떨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페이지를 샅샅이 훑었다.
주르륵-
페이지에는 글이 수십 개가 올려져 있었다.
여름이가 그동안 몰래 찍어온 왕호의 사진과, 트럭의 모든 메뉴들의 사진이 예쁘게 올려져 있다.
‘이건 언제 찍은 거야?’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었다.
만들어 놓은 지는 꽤 된 것 같았다. 그 소식은 오늘 들었지만······.
어제까지 올려놓은 사진에는 댓글이 그리 많이 달리지 않은 걸로 보아, 정말로 박하진 때문에 유입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왕호는 오늘자 게시글을 클릭했다.
요리하는 왕호의 모습과, 맛깔나는 불족발의 사진이 올려져 있다. 박하진의 사진은 없는 걸로 보아, 퍼블리시티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보였다.
[댓글]
[-박하진 인스타보고 왔습니다!]
[-저도요! 음식 사진 똑같은 거 보니까 여기 맞네요!]
[-우와 진짜 맛있겠다!!]
[-그 깔끔하고 깐깐하다는 박하진이 극찬할 정도면 말 다했죠? ㅇㅈ?]
[-인정! 박하진 저번에 내 식탁을 부탁해 나와서도, 셰프들 극딜했자너ㅋㅋㅋ]
[-하, 사장님! 던전에서만 장사하시나요? 저도 먹고 싶은데 정녕 방법 없는 부분입니까?]
[-안녕하세요! 먹방 스트리머입니다. 같이 몬스터 먹방 도전해보고 싶은데 합방 가능할까요?]
[-근데 사장님도 존잘이네. 머리 스타일 간지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알파고!]
머리 스타일은, 영화 분장팀의 도움을 받았다. 멋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메이크업까지 되어 있는 상황.
왕호는 이게 진짜 오늘 하루에 다 벌어진 일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오늘 하루에만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야, 종구야.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뭔데?
< 벼락스타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