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65화 (65/149)

< 벼락스타 (2) >

“내일 만나는 애들도··· 다 알까?”

-너 각성한 거? 아마 SNS 열심히 하는 애들은 알지 않을까? 애들끼리 소문 돌았을 수도 있겠지.

“하, 어쩔 수 없이 주목받겠네.”

-크크, 주목받는 거 싫어? 주목 못 받아서 안달 난 김성오 같은 애들도 있는데, 즐겨라 그냥. 어차피 너 오랜만에 나와서 주인공 확정이었어. 대학 다닐 때도 맨날 1등이었잖아.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그때는 요리 실력보다는 그냥 열심히 하는 애들이 성적 잘 받았지.”

-그래도 결과적으로 보면, 요리사로는 네가 제일 잘 나갔지. 우리 학교가 무슨 끗발 있는 곳은 아니었잖냐. 그냥, 유학 못 간 애들 집합소였지.

“팩트폭력 좀 그만해줄래?”

-크크크 원래 뚱뚱한 애들은 뚱뚱한 애들 까도 되지만, 마른 애들은 뚱뚱한 애들 까면 안 돼. 나도 거기 나왔으니까 까도 된다.

“알았어. 시간 맞춰 갈게.”

-천하의 안왕호가 늦기야 하겠냐? 근데··· 늦어도 되니까, 힘 좀 빡! 주고 나와라. 너 돈 아낀다고 동묘에서 산 옷 입고 오지 말고 쫌!

종구가 신신당부했다.

종구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힘주고 나갔을 거다.

그래도 잘 보여야 하는 이가 한 명쯤은 있으니까.

*

동문회가 열리는 시간은 어김없는 불타는 금요일.

아마 저녁에는 여기에 계속 붙잡혀있을 것만 같았다.

해서, 무술 도장과 마장동에는 미리 다녀왔다.

“으으으, 맷집이 늘면 덜 아파야 되는 거 아냐?”

왕호는 잔뜩 쑤셔오는 삭신을 손으로 주물렀다.

실력이 늘면, 그에 비례해서 관장님의 손도 매워진다. 어떻게 오리진 시스템을 사용하지도 않고, 정확히 수치를 파악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상태창!”

왕호는 상태창을 불러왔다.

왕호는 자신의 상태창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 고작 레벨과 체력, 마나 정도만 확인하고 바로 꺼버린다. 자잘자잘하게 확인하기보다는, 확 성장한 수치를 제대로 느끼기 위함이다.

이제, 보르도 울프 던전을 마무리했다. 얼마나 또 성장했을지, 잔뜩 부푼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안왕호 Lv. 64]

[클래스 – 힐링 요리사]

[체력 : 450/1760 마나 : 1130/1130]

[힘:63 민첩:65 지구력:64 지력:40 맷집:79 손재주:79 미식:55 치유력:67]

[보유 특성 : 불 친화력(1단계)]

[보유 스킬 : 감정, 러닝, 중급 요리, 절대미각, 절대후각, 중급 썰기, 중급 으깨기, 중급 다지기, 이터블 감정, 초급 제독, 초급 마장 발골, 일도양단, 스매시, 적탐안]

[그룹 스킬 : 버프 부여 – 기본, 스탯, 특성, 힐링]

[그룹 스킬 : 함무라비 검법 – 초급 함무라비 단검술, 검기 발현, 쾌검 – 응비봉사]

흐뭇-

왕호는 미소를 지으며 상태창을 응시했다.

아름답기 그지없다.

많이 성장했다.

그만큼 많이 노력했다. 노력의 결실이 이렇게 수치적으로 표현되니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진짜 내가 봐도 스탯 깡패네······.’

레벨에 비해 스탯이 어이없을 만큼 높다. 왕호도 레이드를 이제 많이 뛰어본 터라, 다른 각성자들이 어느 정도의 스탯을 지니고 있는지 안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말 그대로 압도적인 수치임이 분명했다.

손재주는 타고났다고 쳐도, 특히 맷집은···

오싹-

허용의 덕이 컸다. 소름이 돋는다.

‘하, 마나만 어떻게 많았으면 좋겠는데······.’

레이드를 뛰어보니, 마나가 후달리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일도양단은 지금 들어서 거의 쓰진 않지만, 그래도 저 마나면 3~4번 밖에 못 쓴다. 응비봉사도 11번 쓰면 바닥난다. 응비봉사는 쾌검인 터라, 빠르게 빠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스킬. 11번이면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진다.

하지만 지금 왕호의 클래스 상, 마나는 레벨 업으로밖에 올릴 수가 없다. 지금은 그냥 폭렙 하는 게 답이다.

“아 진짜 너무 아파서 못 버티겠네.”

비명을 지르는 육체를 달래기 위해, 왕호는 힐링 요리로 끼니를 대충 때웠다. 체력이 다시 차오른다.

어차피 곧 저녁이고, 동문회 가면 양껏 먹을 것이 뻔하다.

.

.

왕호는 지금, 전신 거울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힘을 빡 주려면···”

여름이가 사준 옷이 하나 있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입었다. 옷장에 고이 모셔놓은 상태.

왕호는 그 옷을 꺼내 맵시 넘치게 착용했다.

옷빨이 제대로 산다.

머리는 청담동 샵처럼 어떻게 다듬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제 분장팀이 하던 느낌을 떠올리며 대충 정리했다.

전문가를 어설프게 따라 했지만, 높은 손재주 스탯 덕에 확실히 깔끔해졌다. 어디 가면 클럽 호객행위 정도는 충분히 할 만한 정도다.

집을 나선 왕호는, 지하철 대신에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어차피 나 던전에서 푸드트럭 하는 거 소문났을 테니까.”

굳이 뚜벅이처럼 걸어갈 이유가 없다. 기름값 정도는 이제 호탕하게 소비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왕호는 종구가 보내준 주소로 밥차를 몰았다.

---------

“여어! 히사시부리!”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얼굴이 손을 들고 왕호를 반겼다.

광수다.

대학 시절에 종구와 함께 셋이서 항상 붙어 다녔었다.

왕호는 같이 손을 흔들며, 광수의 앞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이다 광수야. 일본 생활은 할 만하냐?”

“유학 생활이 뭐 다 힘들지. 진짜 오랜만이다. 연락 좀 하지 그랬냐!”

“국제 전화가 얼마나 비싼데··· 애인 사이도 아니고 이렇게라도 얼굴 보면 됐지. 그나저나 한국엔 언제 자리 잡을 거야?”

“일식 기술 완전히 뽑아 먹고 가야지. 이번엔 네 얼굴 볼라고 간만에 비행기 탔다. 근데, 누가 전화하랬냐? 메신저 어플을 써라 인마!”

“하하, 요새 바빠서 그래. 게다가 유학생 방해하기도 미안하고. 그래도 우리 중에 유학 간 사람은 너밖에 없잖냐. 출세했다 진짜.”

“출세는 네가 했지. 소문 들었다. 완전 스타 됐담서?”

“하, 유명해져서 좋긴 한데 내 요리 때문이 아니라 배우 때문이라 조금 얼떨떨하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지, 원래 처음에는 그렇게 뜨고 맛으로 입소문 타는 거야. 맛만 있으면 뭐하냐, 재야에 파묻혀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쨌든 나는 네가 부럽다. 그리도 원하는 유학길 떠났잖아.”

“인마, 너도 아직 늦지 않았어. 각성자 됐으니 여유 좀 생길 거 아냐? 날 잡아서 이탈리아에 갔다 와. 돈 좀 바르면, 한 1년? 그 정도면 뽕 뽑아올 수 있다.”

왕호와 광수는 일찍 도착한 터라, 못다 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이윽고, 종구도 도착해서 오랜만에 청춘 분위기가 물씬 살아났다.

종구를 필두로, 졸업 후 연락이 닿지 않던 얼굴들도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친구들은 왕호의 얼굴을 보고 하나 같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야, 이게 얼마 만이야?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금칠해놨어?

-완전 유명해졌더라? 박하진이랑 호형호제한다는 소문도 돌던데?

-우리 중에 제일 잘 나가네. 완전 스타야 스타!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유명해져서 내 식탁을 부탁해도 나가라! 우리 학과 최고 아웃풋은 이제 왕호다!

얼굴이 다 낯간지러웠다. 명실상부 이번 동문회의 주인공은 왕호였다.

아직 모든 인원이 오지 않은 가운데,

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고, 꽤나 예쁘장한 얼굴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러자, 왕호의 옆에 앉은 종구가 호들갑을 떨며 왕호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소곤소곤-

“야, 내가 일부러 수지랑 친한 애들 저쪽으로 앉혔다. 걱정 마라.”

“난 크게 상관없는데? 뭐, 사이 안 좋게 끝난 것도 아닌데.”

“헐··· 예전에는 막 한강에 뛰어들려고 하더니 완전 쿨하다잉?”

여성의 이름은 성수지.

왕호와 대학 CC였다.

‘많이는 안 변했네.’

5년을 안 봐서 내심 기대했는데,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하긴, 사람이 5년 만에 달라지면 얼마나 달라졌겠는가. 물론, 자신은 엄청날 정도로 달라졌지만······.

오히려 약간의 실망감이 가슴속에 생겨났다.

역시 추억은 추억으로 삼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그때는 완전 여신 그 자체로 여겼는데, 지금 보니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수지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눈웃음을 치며 서로 인사했다.

그래도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터라, 그녀의 존재감은 점점 잊혀져갔다.

아마 수지도 알고 있으렷다.

자신이 각성자라는 것을.

여기 온 친구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쫙 돌아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얼추 인원이 다 모이고, 시간이 지나자 가장 끝에 앉아있던 종구가 벌떡 일어났다.

“자, 오랜만에 모였으니까 건배 한 번 하자. 우리 대 호텔조리과 친구들의 승승장구와··· 오랜만에 나온 벼락스타 안왕호의 꽃길을 위하여!”

“위하여!!!”

“축하한다. 안왕호!”

“왕호야 대박 났으니 2차는 네가 한턱 쏴라!”

“오~ 짠돌이 킹타이거님의 골든벨을 드디어 볼 수 있는 건가?”

결국, 종구가 왕호를 격하게 띄우려다 졸지에 2차 쏘게 생겼다.

왕호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앉은 종구를 몰래 나무랐다.

“얌마! 뭐 하는 거야!”

“왜? 이 정도는 해줘야 가오가 살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나는 가오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하하하, 2차는 반반씩 내자.”

“됐어. 내가 낼게. 넌 애들 관리나 열심히 해라. 회장 감투 썼다면서.”

“오~ 진짜 장사 잘 되나 봐? 천하의 안왕호가 단체로 쏘는 거는 처음 보네.”

“다 네 가오 살리려고 하는 거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셔라.”

“크크, 또 부탁할 거 있음 다 말해라. 특히, 차 살 거면 진짜 크게 도와주마.”

낯은 조금 간지러웠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뜻하지 않게 인정도 크게 받았다.

꼴깍꼴깍-

기분이 좋아서 술이 술술 들어간다.

.

.

.

그렇게 30분 정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지속됐을까?

‘재밌네.’

삶의 여유가 생기니 이런 소소한 재미도 크게 다가왔다. 이대로만 끝난다면, 앞으로 종종 나와도 좋을 것만 같았다.

그때,

부아아앙--

가게 내부에까지 들릴법한, 웅장한 배기음 소리가 들려왔다.

사자의 포효같이 우람한 소리에, 왕호는 유리 벽 너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불법 튜닝을 한 외제 차 한 대가, 가게 앞에 불법 주차를 시도하고 있었다.

“나 저거 누군지 알 거 같다. 성오라는데 손모가지 건다.”

종구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광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한다.

“뭔 소리야? 그 김성오? 좆도 없는 애가 저런 차를 무슨 수로 타고 오냐? 관종짓 하는 걸로 봐서는 맞는데, 저건 아니지. 손모가지 걸지 말고 나랑 만 원빵 하자.”

“만 원? 콜! 만 원이 아니라 십만 원이라도 가능하지. 광수 외국에 있다 보니 아직 소식 못 들었나 보네. 크크크. 네 만 원은 이제 내 꺼다.”

“엥? 뭔 소식? 성오 로또라도 맞음?”

“비슷해. 잘 봐봐라.”

주인공은 원래 늦게 도착하는 법이다. 모두의 관심을 단숨에 집중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관심종자들도 늦게 도착한다. 주인공과 비슷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으니까.

엄청난 슈퍼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억 소리 나는 외제 차에서 한 남자가 내린다. 종구의 예상대로 거드름 피우기 좋아하는 김성오다. 그리고,

온몸을 한껏 치장한 여자도 조수석에서 같이 내린다. 압구정역에서 쉽게 볼 법한 인조적인 외모의 여성. 처음 보는 것이 동문은 아닌 게 확실했다.

아니면, 성형수술로 못알아 본다거나.

딸랑-!

김성오는 여성을 에스코트하며 당당하게 들어왔으나, 크게 반기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김성오는 이제 앞길이 창창해진 각성자 셰프다. 스타 셰프 양성소라 불리는 플라톤 호텔에도 들어갔다. 그러니 저런 차를 끌고 온 것일 테지.

해서, 친구들은 김성오를 완전 쌩까지는 않았다.

“어, 성오 왔네! 야, 이쪽으로 앉아라.”

“오~ 김성오 출세했다더니, 정말이네? 그 아름다운 여성분은 누구야? 여자친구?”

“플라톤 호텔에 들어갔다면서? 거기 어떠냐? 친구 할인되냐?”

김성오는 자신을 반기는 친구들에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자랑을 이었다.

“하하, 호텔 와서 내 이름 대면 섭섭지 않게 대접할 거다. 여기는 내 여자친구. 레이싱 모델이야.”

“오~ 진짜 미인이시네. 여기 자리 비었다. 호텔 썰이나 들어보자.”

하지만, 오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김성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 저기 안왕호도 왔네? 흐흐, 나는 저쪽 가서 앉으련다. 이따 다시 오마.”

< 벼락스타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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