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2) >
뚜루루루--
통화음이 짧게 울리고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안왕호라고 합니다. 박하진 씨 소개받고 연락드렸습니다.
-안···왕호 씨요? 아! 그 던전 푸드트럭 사장님! 하하,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하진 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왕호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박하진의 엔터테인먼트 공동 CEO였다.
“다름이 아니라, 에이스 셰프 코리아에 관해서 조금 물어보고 싶은데 통화 가능하십니까?”
-예, 물론이죠. 편하실 때 언제든지 전화 주셔도 됩니다. 아, 그럴 게 아니라 차라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만나서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어차피 물어볼 것도 많고, 토요일이라서 던전에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다.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공짜 밥이라니 더더욱 거절할 이유가 없다.
.
.
왕호는 문자로 받은 주소로 트럭을 몰고 갔다.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한 고급 초밥집.
‘CEO라 돈이 많나 보네, 이런 곳에서 먹자 하고.’
딸랑-
왕호는 초밥집의 문을 열고, CEO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비밀스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룸식으로 되어 있는 고급 일식집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왕호를 보자, 먼저 도착해있던 CEO가 벌떡 일어났다.
“오오오, 안 사장님 실물로 보니 훨씬 잘생기셨습니다. 화면에 잡히면 팬들이 아주 많아질 것 같아요!”
“하하, 비행기 태워주시네요.”
덥석-
둘은 악수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CEO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명함에 적혀있듯이, 제 이름은 최철순입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레드오션이긴 한데··· 하진 씨의 진정성에 감복 받아서 뛰어들게 됐습니다.”
“예. 아주 정직한 매니지먼트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셰프들과도 계약하나요?”
“그럼요. 요새 요리 프로그램이 어디 한둘입니까? 가게를 운영해야 하는 셰프 입장에서, 매니저도 없이 방송국을 들락날락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 프로그램만 한다면 모르겠지만, 인기를 얻으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지죠.”
“얼핏 들었는데, 방송 부분만 케어 받을 수 있다더군요.”
“물론입니다. 저희가 100% 케어해드립니다. 출연료와, 나중에 미디어 광고가 들어오면 거기서 저희가 수수료 정산을 진행하는 방식이죠. 그 이외에 다른 부분은 일절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장님처럼 식당을 운영하시든, 아니면 레이드를 뛰시든 그 부분과
수입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죠.”
“전속은 아니라는 얘기 시군요.”
“예. 방송계에 한에서죠.”
왕호는 조금 고심하더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사실, 에이스 셰프 코리아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저도 이 에셰코가 우승자를 미리 만들어놓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하, 요리계에 계셨다더니 알고 계시는군요.”
“그럼에도 제가 연락드린 것은, 대표님께서 에셰코 PD님과 관계가 괜찮으시다고 들어서입니다. 굳이 우승까진 아니더라도, 악마의 편집만 피하면 괜찮을 거 같아서요.”
“사장님께서는 아직 인지도가 없으시니, 에셰코만한 것도 없죠. 호감 이미지로 저희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문 PD랑 한 번 보시죠?”
“예? 지금요?”
“토요일이니 아마 시간 날 겁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최철순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호는 얼떨결에 에셰코 문 PD와 마주하게 됐다.
“요리사 안왕호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야~ 왕호네 밥차 사장님 맞으시죠? 이렇게 뵙게 되다니 정말 인연인가 봅니다.”
“예? 절 아시나요?”
왕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명색이 요리 프로그램 PD인데 모를 수가 있나요. 박하진 씨 인스타에 떡 하니 올라와 있지 않습니까. 저희 프로그램에도 한 번 모셔보려고 연락드리려 했습니다.”
“오! 문 피디! 안 사장님 소문 들었나 보군. 그러면 이야기가 더 잘 풀리겠어 하하하.”
최철순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 PD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인사를 나누고 나니, 어느새 고급 초밥 세트가 줄줄이 세팅되어 있었다.
왕호는 흰살생선 초밥을 하나 들어, 입속으로 가져갔다.
쩝쩝쩝-
흰살생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그 사이로 와사비의 톡! 쏘는 향과, 초밥의 시큼함이 함께 들어온다.
장인이 만들어서 그런지, 밥알 사이사이에 공기가 살아있어 식감이 더더욱 예술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섭취했습니다.]
[미식이 상승합니다.]
고급 집이라 맛있긴 한데, 왕호도 이젠 많이 성장했다. 비슷한 맛을 흉내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해산물은 많이 안 만들어 봤네. 다음 던전은 해양 쪽으로 가야겠다.’
왕호가 초밥 하나를 해치우자, 문 PD가 말을 걸었다.
“에셰코에 출연하고 싶으시다구요?”
“예. 악마의 편집만 피할 수 있으면 한번 나가보고 싶습니다.”
“최 대표님이랑 계약하셨다면, 악마의 편집은 걱정하지 마십쇼. 아주 극 호감 이미지로 마사지해드리겠습니다.”
“너무 띄워주시면 그것도 문제 되지 않을까요? 우승자가 정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음··· 아무래도, 저희 방송국에서도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심사위원 측도 요리계에 종사하는지라,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죠. 요새 유행하는 힙합 경연프로그램도 마찬가지잖습니까. 심사위원 자체가 힙합 레이블 대표
이고, 같은 인맥의 소속사에서 대부분 지원하니까요. 어쨌든, 그건 저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탈락하더라도, 실력적인 요소가 아닌 운이 없었단 식으로 잘 포장해드리겠습니다.”
문 PD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아직 PD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왕호는 하차할 생각이 다분했다. 물론, PD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말했다가 수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왕호는 남은 초밥을 맛있게 해치우고는, 엔터테인먼트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여름이의 말을 들어보니, 재무 상태도 괜찮고 정직하게 정산해주는 곳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여름이가 계약을 해서 그런지, 최 대표님이 더욱 잘 챙겨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5주 남았네.’
그동안 방송에서 먹힐만한 메뉴를 만들고, 미션에 대비하면 된다. 심지어 미션까지 사전에 문 PD가 언질해준다고 했다. 이제 정말 왕호의 앞에, 맛길만이 펼쳐진 것이다.
초대박 맛길 말이다.
*
다음 날, 일요일이었지만 왕호는 결코 집에서 빈둥대지 않았다.
어제저녁에 오리진과 다희에게서 긁어모은 정보를 토대로, 던전을 결정했다.
오늘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일요일이니까, 재료를 모으고, 메뉴를 개발하고, 시험 판매하는 날로 잡았다.
그렇게 왕호가 트럭을 몰고 도착한 던전은···
스퀴드맨 던전.
다리 10개 달린 오징어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가 나타나는 해양 던전이다. 레벨은 무려 70이 넘지만, A형 던전이기도 해서 왕호는 솔플로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다희에게 보증까지 받았다.
해양 던전이라고 하여, 꼭 바닷가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던전은 새로운 차원이다. 지금 도착한 던전도 동탄 옆에 위치해있지만, 게이트를 넘어가면 바로 바닷가가 나온다.
왕호는 트럭을 주차하고, 연장을 챙겼다.
마법 배낭을 메고, 앞치마를 둘렀다.
허리에는 발골용 칼을 비롯한 각종 칼이 달린 벨트를 착용했다. 양손에는 장미칼과 프라이팬이 들려 있다.
출격 준비 완료.
“덕구야, 마법 연습 열심히 하고 있어라.”
“웅! 마스터! 근데, 나는 언제쯤 같이 사냥할 수 있나?”
“아직 네 존재가 들키면 안 되니까, 그건 나중으로 미루자. 요리 하는 것만 마법으로 좀 도와줘.”
“알겠다! 마스터 요리는 맛있으니까 나도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마스터 요리를 먹으면 나도 빨리 강해진다!”
헥헥-
요리를 생각만 해도 침이 흘러나오는지, 누가 강아지 아니랄까 봐 침을 질질 흘렸다.
이상하게 덕구는, 버프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성장했다. 새로운 마법을 계속해서 배웠으며, 지니고 있는 체력과 마나량도 점점 늘었다.
덕분에 덕구가 있으면, 마법 요리까지 기똥 차게 만들 수 있다. 얼음도 뚝딱 만들어 내는 것이, 냉면 만들 때도 아주 요긴했다.
“후우~”
게이트 앞에 선 왕호는 심호흡을 한 번 내쉬었다.
아무리 할만한 던전에 왔다 하더라도, 항상 긴장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방심하다 등에 칼 맞으면 골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슈웅-
왕호는 게이트를 넘어갔다.
게이트를 넘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미리 보고 온 영상에 나온 것 그대로였다.
처음엔 다른 던전처럼 풀밭이 나온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면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그 앞에는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오징어 괴물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개구리처럼 수륙양용이 가능한 몬스터다.
다리는 10개다. 정확히 말하면 8개의 다리로 움직이고, 길쭉한 두 다리로 인간을 공격한다. 입으로는 먹물까지 뿜어낸다.
왕호는 백사장에 도착했다.
왕호의 눈에 들어온, 스퀴드맨도 그렇게 생겼다.
어린아이의 크기만 한 몬스터도 있었고, 성인 남자만 한 몬스터도 있었다.
3m가 넘는 거대 대왕오징어도 있다는데, 그 정도로 큰 몬스터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쪼매만한 것부터!’
안전제일 주의다.
투다다다-
왕호는 백사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모래를 박찬다. 팟팟팟팟- 왕호의 발이 지나간 자리에 모래가 깊게 깊게 파인다.
목표는 어린아이만 한 스퀴드맨.
프라이팬으로는 급소인 심장 부근을 가리고, 오른손에 쥔 장미칼은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는 위치로 옮겼다. 전후좌우 위아래, 팔방을 모두 공격할 수 있는 위치다.
‘단숨에 숨을 끊는다!’
그래야만 먹물 공격을 받지 않는다. 먹물에는 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맞으면 더럽다. 세탁비 나간다. 물론, 덕구가 클린 마법을 배운 터라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찝찝하다.
어느덧 스퀴드맨의 코앞까지 다가온 왕호. 그런 왕호의 접근을 몬스터도 눈치챘다.
스퀴드맨이 길쭉한 다리 두 개를 채찍 휘두르듯 휘두른다.
부우웅-
피하기 힘들게 수평으로 공격했다.
추아아악-
왕호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허리를 꺾어 마치 림보하듯이 손쉽게 미끄러져 피했다.
피하고는 스프링 튕기듯 다시 상체를 빠르게 들어 올렸다.
쌔애액-
그리고, 곧바로 장미칼을 스퀴드맨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정확히 마나석이 있는 곳. 몸이 투명한지라 아주 잘 보였다.
몸이 투명하다고 해서, 몸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흠집 하나 내기 힘들다.
스퀴드맨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칼날을 빗겨낸다. 또한, 정통으로 맞았을 시에도, 마나를 몸에 실어 공격을 튕겨낸다.
하지만 왕호에겐 톱날모드 장미칼과, 무자비한 함무라비 스킬이 있다.
‘응비봉사!’
왕호는 쾌검 초식을 이용해, 찌르는 속도를 말도 안 되게 올렸다. 속력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키네틱 에너지Kinetic energy는 곱절로 상승한다. E=1/2mv^2
‘검기 발현!’
스킬을 사용해 마나까지 칼에 예쁘게 둘렀다.
푹-!
왕호의 칼이 스퀴드맨의 배를 가르고 들어간다. 들어간 칼날은 마나석에 닿는다. 단단한 마나석에 닿았음에도, 속도를 멈추지 않는다. 마나석을 뚫고 들어간다.
쩌저적-!
마나석은 몬스터의 심장이자 에너지원이다. 에너지원을 잃은 몬스터는 그대로 온몸을 축- 늘어뜨려야 했다.
원샷원킬.
[레벨 70의 스퀴드맨을 잡았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할 만한데?’
왕호가 찔러넣었던 칼을 뽑아내자, 칼끝에 박혀있던 마나석이 같이 빠져나왔다.
몬스터도 죽이고 마나석도 같이 뽑아냈다.
일석이조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가 따로 없다.
어제 다희와의 지옥대련으로 응비봉사의 숙련도를 50%까지 끌어올린 터라, 공격이 더 잘 먹히는 것 같았다.
왕호는 곧바로 늘어진 오징어를 배낭 안에 집어넣고는, 다른 몬스터를 향해 눈을 돌렸다.
아까보다는 몸집이 더 커 보이는 놈이 눈에 들어왔다.
다리도 더욱 통통하고, 빨판은 더더욱 똥그랗다. 몸통 또한 더욱 희였다. 머리끝에 달린 지느러미는 팔랑팔랑- 마치 왕호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남들이 보면 징그럽다 할지 모르는 모습이었으나, 왕호에겐 그저 맛있는 식재료로 보였다.
꿀꺽-
‘다리가 통통한 것이 숙회로 떠먹어도 될 것 같고, 몸통은 통째로 찌던가 아니면 오징어순대로 만들면 크으~. 반건조시켜서 마요네즈랑 찍어먹으면 맥주 안주로 딱! 아니면 버터구이로 구워서 영화관에 가져가고 싶네.’
아 참! 오징어 물회도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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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2)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