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4) >
나동수의 말을 듣고 왕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왕호의 냉장고를 인챈트 해준 티파니는, 달빛여제가 보증한 인물이다. 업계 1위의 마도구 제작사에서도 최고 대우를 받는 인챈터다. 그런 티파니를 가르쳤다니··· 엄청난 인챈터임이 분명했다.
“티파니를 가르치셨다구요? 그럼, 동수 님께서도 설마 마법사···?”
“엥? 인챈터이니 당연히 마법사지요. 아, 회사는 나온 지 꽤 됐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임다. 맨날 골방에만 틀어박혀 마도구만 만들다 보니, 사는 게 재미 없더라고요. 지금은 전국 팔도 맛집 찾아다니며 식도락 즐기는 맛으로 삽니다. 먹기만 하면 살만 뒤
룩뒤룩 찌니, 레이드 뛰면서 칼로리 태우고요. 헬스장 가는 것보다, 레이드에서 땀 빼는 게 마나석도 얻고 일거양득 아니겠슴까?”
세상에나! 정말 마법사였다니···!
왕호는 나동수의 말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 마도구 메이커라는 말을 들었을 땐, 그냥 마도구 제작 업체에서 일하는 용역인 줄 알았다.
그만큼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마법사라고는 일절 생각지 못했다. 고정관념이 이렇게나 무섭다.
호기심이 잔뜩 동한 왕호는,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레이드를 뛰는데 땀이 납니까? 인챈터시니 뒤에서 마법만 걸어주면 되잖습니까.”
“뭐, 정상적인 레이드 상황이면 그렇겠죠. 근데 그러면 칼로리가 빠지지 않슴다. 제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맛있는 요리를 많이 먹기 위해섭니다. 저는 먹기 위해 사는 인간이죠. 그냥 몸으로 뜁니다! 제가 특수 제작한 마도구를 두르고, 지팡이로 몬스
터를 퍽퍽 때려잡는 거죠. 제 별명이 힘법사임다.”
힘법사?
너무도 문학적인 표현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와 같이 말이 안 되는 표현! 마치 문학에서만이 허용 가능할 법한 말!
마법사인데 힘으로 몬스터를 때려잡는다?
“그게 가능합니까?”
“뭐, 처음부터 제 힘 스탯이 유달리 높기도 했고, 먹는 것을 다 힘으로 풀다 보니 힘 스탯이 거의 전사급으로 높아지게 됐슴다. 지금 레벨 400대인데, 힘 스탯만 보면 레벨 300의 전사랑 비슷한 정도임다. 어릴 적에 고전 판타지 영화 ‘반지의 주인’을 봤는
데, 거기 나오는 간달프란 마법사가 지팡이로 오크들을 뚜들겨 패더라고요. 거기서 영감을 받았슴다.”
“그, 그렇군요. 그럼 동수 님께서 쓰시는 그 지팡이도 예사 물건은 아니겠습니다.”
왕호의 눈이 나동수의 벨트에 꽂혀있는 지팡이로 향했다.
등산용 지팡이처럼,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끔 생겼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마법사용 지팡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 재질이 아니라, 초 특수합금마냥 반짝이는 금속재질이었다.
“이거 말입니까? 제가 마도구 제작자로서는 한 손가락 안에 듭니다.”
“한 손가락? 다섯 손가락도 아니고 한 손가락이요?”
“사실인데요 뭘. 그런 제가 직접 쓸 지팡이인데 대충 만들었겠슴까? 레벨 410의 골트 아이언 골렘의 심장을 텅스텐, 티타늄과 합금해서 만든 겁니다. 코어는 레벨 430의 스톡홀름 드레이크의 마나석으로 만들었슴다. 인챈트 되어 있는 마법으로는, 충격량
강화, 라이트닝, 마나증폭, 화염폭발, 기타 등등··· 대충 열댓가지는 넘죠.”
“와···”
무슨 소린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냥 겁나 엄청난 물건인 듯싶었다.
“이걸 휘둘러 몬스터 패면, 바로 뚝배기 터집니다.”
“그니까 그걸로 마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휘둘러서 머리를 부순다는 말씀이죠?”
“위급할 땐 마법도 사용하죠. 뭐, 템빨이라고 보심 됨다. 사장님도 마찬가지임다! 에셰코에서 살아남으려면, 템빨이 중요함다. 뚝배기에 마나석을 박아서, 팔팔 끓게 만들어야죠. 찌개는 온도가 생명 아니겠슴까? 아, 제가 방금 말한 뚝배기는 머리가 아니라
진짜 뚝배기 그릇 말한 겁니다.”
“템빨···”
“시간제한 있는 미션도 있는데, 언제 냄비에 찬물 담고 끓입니까. 마나석 냄비에 넣으면 1초 만에 보글보글하는데요. 사골도 전통방식으로 18시간씩 고아버릴 겁니까? 마도구를 사용해야죠! 게다가 숙성 냉장고도 있으면, 바로바로 숙성시킬 수 있슴다. 게
임 자체가 안 됩니다.”
“헙! 그렇습니까? 아직, 제가 전 시즌을 다 돌려 본 게 아니라서···. 정말로 다른 요리사들은 그렇게 합니까?”
“진짜 시골에서 올라온 초짜들은 없어서 못 하는데, 호텔 출신들은 무조건 저렇게 이득 봅니다. 결과는 보나 마나 호텔 측이 이깁니다. 아무리 감성을 팔아봤자, 요리는 맛으로 판단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사장님은 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왜냐? 절 만났
기 때문임다!”
나동수가 걱정 말라는 듯이, 자신의 거대한 가슴 근육을 팡팡- 때렸다.
나동수가 잔뜩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하는 사장님이, 이런 재야에 묻혀있음 안 됩니다! 널리 널리 알려, 이 맛을 전해야 함다! 인류애가 넘치는 저로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슴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유명해지는 단계지만, 제가 에셰코에서도 우승할 수 있게끔
마도구를 만들어드리겠슴다.”
“우, 우승이요? 그건 사실 좀 어렵···”
“허! 기왕 나가는 김에 우승을 노려야죠! 사실, 저한테 마도구 좀 만들어달라고 줄 서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근데 안 해주죠. 왜? 만들 시간에 맛집 돌아다녀야 하니까! 근데, 특별히 사장님 것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슴다!”
“조건이요?”
“그 마도구들 가지고, 졸라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무조건 맛입니다! 요리는 맛! 못생긴 요리라도 상관 없슴다. 맛만 있으면 뭐든 좋습니다!”
나동수의 눈에서 마치 레이저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몸이 다 따가울 정도다. 맛있는 요리에 대한 욕망이 진하게 느껴졌다.
왕호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껴야 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두 번째 오징어 요리에도, 힘을 잔뜩 쏟아부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자극적이게 가자!’
왕호는 불족발을 요리할 때, 만들어 놓았던 “만능 볼케이노 마그마 땡초 양념장”을 꺼냈다.
지금 만드는 요리는, 매콤한 오징어 볶음.
추아아악-
철판 위에 양념장을 넣고, 거침없이 볶기 시작했다.
.
.
.
주르륵-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돌려놓은 것마냥, 나동수의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나온다.
매워서 나오는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다.
“크으으으으~!!!”
나동수가 탄성을 내질렀다. 마지막 남은 오징어 한 조각까지, 시뻘건 양념을 싹싹 묻혀 클리어했다.
나동수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감탄했다.
“후우~ 매콤한 요리도 엄청납니다. 군산에서 먹었던 매운 짜장보다 더 맛있슴다! 안 되겠습니다 사장님!”
뭘 자꾸 안 되겠다는 건지······.
“사장님께서 만들 수 있는 정말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주십시오!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니, 첫 마도구는 제가 인챈트 인건비 안 받고 무료로 해드리겠슴다!”
“최고의 요리요?”
“예! 최고의 맛! 환상의 맛! 정말 충격적인 맛을 경험하면 최소 한 달은 식도락 안 떠나도 행복합니다. 제발 저의 팔도 유람을 멈춰주십쇼!”
자극적인 요리를 먹이면, 좀 누그러들 줄 알았건만···
나동수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아주 왕호의 뽕을 있는 대로 뽑아버릴 기세였다.
최고의 맛이라······.
‘그래!’
왕호도 눈을 번쩍였다.
지금의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최고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
게다가 나동수가 감동하면, 마도구까지 하나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총동원한다!
그렇다면 메뉴는···
시그니처 메뉴인 파스타.
그중에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최상의 재료를 활용한 파스타를 말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대로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맛있는 걸 먹을 수만 있다면, 3박 4일이라도 기다릴 수 있슴다!”
시중에서 파는 파스타 면을 사용한다면,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겠지만, 왕호는 지금 파스타 면을 생면으로 직접 뽑을 생각이다.
일단, 소스를 30분 정도 우릴 생각이기에 먼저 소스 만들기부터 들어갔다.
휙휙-
왕호는 냄비를 꺼내 올리브유를 살짝 둘렀다. 냄비가 달궈지자, 그 위에 남은 오징어 다리를 넣었다.
살짝 구워지자, 그 위로 이탈리아의 멸치액젓이라는 엔초비를 넣고, 그 위로 화이트 와인을 살짝 뿌렸다.
치이이익-
뜨거운 팬에 와인이 닿자, 순식간에 수분이 증발한다.
곧바로, 양파, 당근, 샐러리, 월계수 잎을 넣고 잘 저었다.
주르륵-
미리 만들어 놓은 파스타용 토마토소스를 투하하고, 방울토마토 여러 개를 반으로 썰어 넣는다.
콸콸-
물을 붓고,
귀한 향신료인 샤프란을 살짝 넣었다.
30분 동안 소스를 우려서, 국물만을 사용할 생각이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이제, 생면을 뽑아낼 차례.
밀가루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 페투치네 면으로 반죽할 거다. 칼국수 면이랑 흡사한 모양이다.
조물조물-
왕호의 손에서 반죽이 크러미하게 뭉쳐진다.
소금을 소금소금 후추도 후추후추 뿌려, 빠르게 주물렀다.
여기서 끝난다면 일반적인 파스타 생면이 완성될 거다.
하지만 왕호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요리 재료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지 않나.
턱-
스퀴드맨을 해체할 때, 따로 꺼내놓았던 먹물 주머니를 도마 위로 올렸다.
‘감정’
[스퀴드맨의 먹물 주머니]
[Lv. 70의 스퀴드맨에게서 해체한 먹물 주머니다.]
[마기가 제거되어 있지 않다.]
[먹물 속에 독 성분이 가득하다. 주의를 요한다.]
[식재료로 절대 사용할 수 없다.]
[해독하려면, 강력한 해독 스킬이 필요하다.]
왕호는 곧바로 제독 스킬을 사용했다.
[스퀴드맨의 먹물 주머니가 해독됩니다.]
[먹물의 마기가 해독되었습니다.]
[먹물의 독 성분이 해독되었습니다.]
[스킬 “마기 흡수”가 사용됩니다.]
[먹물의 마기를 흡수해 마나가 영구적으로 3만큼 상승합니다.]
[먹물의 독 성분을 흡수해 마나가 영구적으로 2만큼 상승합니다.]
스르르-
해독된 마기와 독 성분이 왕호의 몸속으로 들어온다.
이 성분들은 스킬로 인해 마나로 치환됐다.
엄청난 청량감이 몸속을 휘저었다.
상쾌하다.
몸도 상쾌해졌지만, 그와 별개로 기분도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쓰!’
오징어 먹물을 재료로 사용하려 했는데, 마기 흡수로 뜻밖의 이득을 얻어냈다.
영구적인 마나 상승!
물론, 쥐꼬리만큼 사알짝! 올랐지만 영구적인 수치다. 앞으로 많은 몬스터를 잡아 와서 제독을 사용할 거니, 쌓이는 것은 시간문제. 티끌 모아 태산 되는 거다.
스킬을 난사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룰루랄라-
왕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먹물 주머니를 톡! 터뜨렸다.
주르르륵-
흘러나온 먹물이 파스타 반죽을 적신다.
주물주물-
왕호는 먹물을 머금은 반죽을 잘 주물러 반죽을 완성했다.
완성된 반죽은 롤러 기계에 넣어 면을 뽑아내면 되지만, 그런 기계가 지금 없다.
대신 밀대는 있다.
반죽 위에 밀대를 올리고 힘차게 밀었다.
스윽-
두툼했던 반죽이, 아주 얇게 밀린다. 힘 스탯이 낮지 않은 탓에, 오히려 기계보다 더 깔끔하고 얇게 밀렸다.
밀린 반죽은 다시 접어, 밀대로 스윽- 밀었다.
그렇게, 밀고 접고, 밀고 접고, 밀고, 접고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얇아진 반죽을 이제 차곡차곡 잘 접고는 칼국수면 썰 듯이 칼로 슥슥- 썰어냈다.
영롱한 검은 빛을 뽐내며, 널찍한 파스타 면이 완성됐다.
검은색 페투치네 면이다.
그렇다. 왕호가 만들 파스타는 오징어 먹물 파스타다.
그것도 반죽에서부터 먹물을 집어넣은 제대로 된 먹물 파스타!
<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4)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