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5) >
앞서 말했지만, 면은 거뭇거뭇한 정도가 아닌 영롱한 검은 빛이다. 마치 남태평양 타히티 제도에서 추출한 흑진주를 보는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오징어 먹물로 염색을 하는지도 알 듯했다.
면을 만들었으니, 이제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완성할 차례.
슥슥슥슥-
생마늘을 꺼내 도마 위에서 잘게 썰었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올리브 오일을 스윽 둘렀다. 그 위로 바로 썰어놓은 마늘 투하!
치이이익-
마늘이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튀기듯이 굽는다.
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분은 적탐안을 사용하면 걱정 없다.
여기에 스퀴드맨 몸통 숙회를 썰어서 넣고, 갈릭향이 잘 스며들게 팬을 휘저었다. 휙- 휙-
그 위로 화이트 와인을 주르륵- 뿌린다.
취이익-
뜨거운 온도 때문에, 와인과 함께 팬의 재료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탕탕탕탕-
바질도 한 움큼을 썰어서 넣는다.
이제 면을 익혀서, 소스와 함께 버무리기만 하면 끝이다.
면을 익히기 위해, 냄비에 물을 담아 소금 넣고 팔팔팔 끓였다.
‘정말로 1초 만에 끓일 수 있는 마도구 냄비가 있으면 좋겠네.’
요리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맛도 훨씬 좋아질 것이 자명하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물에, 썰어놓았던 검은색 파스타 생면을 넣는다. 생면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조리하지 않아도 된다. 1, 2분이면 충분하다.
면이 익자, 프라이팬에 아까 만들어 놓았던 소스 국물을 국자로 퍼서 부어넣었다.
보글보글-
소스가 스퀴드맨 숙회와 함께 끓기 시작한다.
그 위로, 익히 파스타 생면을 투하!
이제 면에 소스가 잘 배이게, 프라이팬을 휘젓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반대편 손을 뒤로 쭉 뻗고, 프라이팬을 쥔 손목의 찰진 스냅으로!
휙- 휙- 휙-
순식간에 면과 재료, 그리고 소스가 하나로 융합된다. 더 잘 버무리기 위해, 면수를 아주 살짝 떠서 넣고 다시 휙휙- 끝.
달그락-
새로운 접시를 또 꺼낸 왕호는, 집게를 이용해 파스타 면을 둥글게 플레이팅했다.
그리고 면의 가장자리에, 양념 된 숙회를 예쁘게 올리고, 팬의 남은 소스와 재료를 아름답게 둘렀다.
마지막으로, 로즈마리 잎을 하나 올려서 플레이팅을 완성.
신비로운 빛깔의 스퀴드맨 먹물 파스타가 완성됐다. 영롱한 검은 면과, 토마토 빛의 빨간 소스가 기묘하게 잘 어울린다.
[시그니처 힐링 요리 “천상계의 맛, 황홀한 스퀴드맨 먹물 파스타”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5]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천상계의 맛, 황홀한 스퀴드맨 먹물 파스타-
[미식가 “나동수”를 위한 요리. 맛있는 음식을 끝없이 갈구하는 나동수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요리사의 시그니처 메뉴다. 역대급 맛을 느낄 수 있다.]
[스퀴드맨 먹물로 생면을 만들었다. 풍미가 가히 엄청난 수준이다.]
[오로지 맛에 집중해 만든 요리. 맛의 깊이가 엄청나다.]
[같이 버무려진 스퀴드맨 숙회가 매우 쫄깃쫄깃하다.]
[말 그대로 천상의 맛.]
[효과 : 지구력이 15% 상승합니다. 지력이 10% 상승합니다. 미식이 영구적으로 2 상승합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버프의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이 요리는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기본 1.5배로 발동됩니다.]
[버프 : “맛깡패”가 발동됩니다.]
[맛깡패 – 환상의 맛을 섭취하여, 황홀경에 빠집니다. 엔돌핀과 도파민이 뿜어져 나와,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거식증이 100% 치료됩니다. 투지가 100%로 상승합니다. 맛의 황홀경이 지속되는 동안, 몸의 능력이 개방됩니다. 마나를 농축
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킬의 마나 소모량이 50%로 감소합니다. 모든 마나회복 수단의 효율이 2배로 상승합니다. 이 버프는 평균 30분, 최대 3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생각만 하고 있던 “시그니처 힐링 요리”가 생겨났다.
감동 시, 최대 3배의 버프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사기 요리다.
게다가 새로 얻어낸 힐링 버프 또한 기가 막힌 수준이다. 여태까지 나온 버프 중에 지속시간이 가장 짧지만, 대놓고 스킬을 난사하라고 나온 버프다.
마나회복속도의 증가 같은 간접적인 버프가 아닌, 스킬의 마나 소모량 절반 감소라는 광전사적 요소가 가득 담긴 버프.
‘그나저나, 맛으로도 힐링할 수 있구나.’
식도락이 삶의 1순위인 자들에게는, 맛있는 요리를 섭취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월등한 힐링인 셈이다.
왕호는 갓 만든 뜨뜻한 파스타를 나동수에게 건넸다. 파스타는 왕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시그니처 디쉬다. 아마 오리진의 알람이 없더라도 맛은 보증했을 거다.
나동수가 감탄해 마지않는다.
“오오오! 면이 검습니다. 먹물 파스타! 한 달 전에, 백제호텔에서 먹어봤더랬죠. 미슐랭 투 스타 출신의 셰프가 만들었다고 해서 그런지, 제가 먹어본 파스타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이건 어떨지 정말 기대됩니다! 비주얼은··· 호오! 그때 이상이군요!”
거의 30분을 기다린 나동수가, 기대에 가득 차 파리처럼 손을 마구 비볐다.
나동수의 말을 듣자, 왕호는 그 셰프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몇 달 전에, 여름이랑 같이 간 그 백제 호텔 셰프다!’
미슐랭 투 스타 레스토랑에서 영입했다는 그 셰프임에 틀림없었다.
그때에는 감히 범접조차 하지 못할 실력이었는데, 왕호도 그동안 “힐링 요리사”로써의 능력을 많이 배양했다.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왔을지, 나동수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알고 싶었다.
나동수는 파스타도 많이 먹어보았는지, 포크로 파스타를 둘둘 마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포크에 한가득 둘러진 파스타를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는 나동수.
우물우물-
파스타 면을 입에 넣자마자, 스퀴드맨 숙회를 찍어 또다시 입으로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뜨헉!’
나동수의 눈동자가 급격히 팽창한다.
‘지, 지져스!’
나동수는 믿지도 않는 신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면발을 빨아들였을 때는, 스퀴드맨 향이 듬뿍 들어간 특유의 토마토소스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전혀 비리지 않고 새콤함과 감칠맛으로 중무장한 맛. 여기까지는 유명한 맛집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었다.
하지만 면발을 씹자마자 느껴지는 엄청난 풍미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올림포스 신전의 신들이나 맛볼 법한 그런 풍미! 신들의 맛! 천상계의 맛!
이것이 바로 파스타계의 메시라 불리우는, 진정한 먹물 파스타의 맛인가······.
게다가 쫄깃한 스퀴드맨 고기를 씹었을 때 속에 감춰진 단맛은, 먹물 파스타 면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급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맛의 깊이가 엄청나!’
그동안 수도 없이 맛을 위해 안 가본 곳이 없었지만, 지금 먹은 이 요리는 어느 곳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는 유니크한 요리다. 맛의 깊이는 마리아나 해구를 아득히 넘어서는 그런 깊숙한 깊이다.
“사, 사장님! 이 요리는 그때 먹은 먹물 파스타의 척추를 뚝! 부러뜨릴만한 맛입니다! 지금 완벽히 느꼈습니다, 정말 맛깡패시군요!!! 버프는 필요 없슴다! 맛만으로도 정말 최고입니다. 따봉!”
나동수가 엄지 척을 무려 양손으로 발사했다.
[손님이 당신의 요리에 감동했습니다.]
[요리의 효과가 2배로 상승합니다.]
엄청난 극찬을 쏟아내는 나동수를 보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복스럽게 먹는 나동수의 표현이 너무 재밌었다.
“하하, 정말 더 맛있습니까? 저도 그 백제호텔 셰프님의 요리를 예전에 먹어봤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맛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맛있습니다! 이 나동수가 보증할 수 있슴다!”
나동수가 거대한 가슴팍을 팡팡- 때리며 호언장담했다.
식도락을 위해 직장까지 때려치우고 전국을 누비는 나동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신빙성이 없는 말은 아니다.
‘아직 고급 요리 스킬에까지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미슐랭 스타급의 실력까지 올라왔단 말이야?’
놀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호로로록-
나동수는 계속해서 파스타 면을 흡입했다.
“흐으으으··· 어어억!”
무슨 마약이라도 먹은 듯, 나동수의 눈동자가 풀린다.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탄성이 새어 나온다.
195cm 거구의 몸도 부르르- 떨린다.
나동수는 맛의 황홀경에 빠져버렸다.
“이 맛은! 우심방 우심실을 타이슨의 핵펀치로 때려갈기고, 좌심방 좌심실을 수다예프 기관단총으로 후려갈기는 맛입니다!”
“예?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씀···”
“제가 해외는 물론 전국 맛집을 엄청나게 다녀봤지만, 맛 표현은 잘 못 합니다. 그냥 제 심장이 쿵쿵 뛰고, 혈관이 팽창하고, 혈류량이 늘어나고, 말초신경이 자극되고, 동공이 넓어지는 그런 맛입니다. 어쨌든 졸라 맛있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요리사에게 맛있다는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뛰어난 칭찬이다. 졸라 맛있다니, 말 다 했다.
딱-!
나동수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한 반응이었다.
“사장님! 이 요리를 무조건 에셰코 첫 번째 메뉴로 가져가십쇼!”
“이걸요?”
“아마 심사위원들이 이 요리를 먹으면, 임팩트가 엄청날 겁니다. 대회 끝날 때까지 사장님만을 주시하겠죠.”
“하하, 알겠습니다. 파스타는 제가 가장 잘 하는 요리이기도 하니까요.”
“흐흐, 이 실력에 우승 못 하면 제가 방송국에 쳐들어가서 다 뒤집어 놓겠슴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에셰코 우승이 사실 요리 실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니 요리 프로그램인데, 요리 실력이 아니라면 어떤 걸로 뽑습니까! 흠흠, 어쨌든 너무 맛있습니다. 약속대로 제가 마도구 하나 기쁜 마음으로 제작해드리겠습니다. 어떤 게 가장 필요하십니까?”
마도구 하나라···
솔직히, 나동수를 만나기 전까지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동수의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확실히 달라졌지만.
바로바로 끓여주는 냄비?
맛을 그대로 유지시켜주는 그릇?
항상 뜨거운 뚝배기?
수많은 조리도구가 생각났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무료’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숙성 냉장고가 가장 필요한 듯싶습니다.”
이게 생각나는 것 중에, 인챈트 비용이 제일 비쌀 것 같았다.
“오! 그게 있으면 각종 숙성 요리를 맛볼 수 있겠군요! 좋슴다! 원래는 마나석은 사장님께서 부담하시고 저는 인챈트만 무료로 해주려고 했는데, 아예 숙성 냉장고를 제가 맞춰드리겠슴다! 앞으로 새로 나올 요리가 너무 기대돼서 못참겠슴다!”
“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저도 마나석 있습니다. 오늘 얻어낸 따끈따끈한 것도 많은데···”
“하하핫, 고작 레벨 70대 마나석이지 않습니까! 제가 400대 마나석으로 최상품 하나 만들어 드리겠슴다! 대신 신메뉴 개발되면 바로바로 연락주셔야 함다!”
“아이고··· 그럼, 오늘 먹은 요리는 제가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이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네요.”
“와우!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서비스로 먹었다니, 더 맛있어진 것 같슴다! 안 되겠슴다! 바로 가서 제작 들어가야겠네요! 이 ‘맛깡패’라는 버프가 마나 소비량을 말도 안 되게 줄여주는군요. 효과 끝나기 전에, 고오급 마법 오지게 인챈트 넣어드리겠슴다!”
결국, 열일곱 접시나 해치운 나동수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폴짝폴짝- 뛰며 트럭을 빠져나갔다.
‘정신없네······.’
일요일이라 한가하게 연구하려 했는데,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될 놈은 뭘 해도 된다고, 아주 좋은 인연이다.
씨익-
왕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자리했다.
*
눈 깜짝할 새도 없이 2주가 흘러갔다.
<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 (5)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