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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74화 (74/149)

< 치유의 힘 (2) >

오래전 이야기라서 그런지, 허용은 담담한 투로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왕호의 입장은 달랐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너무도 가슴 아픈 상실의 이야기였다.

“관장님······.”

허용을 바라보는 왕호의 눈빛이 애처로워졌다.

처음엔 그저 불순한(?) 의도로 이끌어낸 이야기였지만, 어느새 허용의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했다. 마치 자신의 아픔처럼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당장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왕호의 표정을 보자, 오히려 허용이 왕호를 달랬다.

“그 시절엔 다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건 다반사였지. 나라고 예외일 수 있었겠느냐?”

허용과 결혼했던 사모님은, 같은 함무라비 프로젝트의 멤버 중 하나였다.

사모님이 함무라비 멤버였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왕호의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프로젝트 인원 중에 오직 허용만이 살아남았으니,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함무라비 프로젝트는 범세계적인 프로젝트다.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이 모였다. 허용의 그녀도 외국에서 온 낯선 이였다.

“그녀의 이름은 이자벨 꼬띠아르.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출신이었지. 지중해를 끼고 있어 참 아름다운 도시다.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한 번 꼭! 가보거라.”

“관장님은 가보셨어요?”

“결혼까지 했으니, 안 가봤겠느냐? 해안가의 기가 막힌 야경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손수 만들어 준 라따뚜이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구나.”

“와, 말만 들어도 낭만적입니다. 주말에 제가 라따뚜이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

“허허, 그래주면 고맙겠구나. 어쨌든, 그녀도 아름다운 프랑스류 검법의 계승자였지. 펜싱의 기원국이 프랑스지 않느냐. 아주 수려한 검술이었다. 그 수려한 몸짓만큼이나 그녀도 아름다웠지. 처음 봤을 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첫사랑 해본 적 있느냐?”

“첫사랑이요?”

“눈만 감으면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미치는 줄 알았다. 머리는 항상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지. 열병처럼 들끓기 시작한 그 어린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었지. 지금

처럼 번역기의 성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구글 번역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간단한 단어나 문장만 번역할 수 있었다.”

“근데 어떻게 결혼까지 골인하셨습니까? 그것도 프랑스 미녀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관장님!”

“이눔이? 검술 가르칠 때보다 더 존경하는 눈빛인 것 같구나. 껄껄껄, 사랑에 국경이 뭐가 중요하겠느냐, 눈빛으로 대화하면 그만이거늘···. 매일 붙어 다니고, 서로의 검술을 나누며 몸을 뒤섞으니 정분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겐 참 행운이었지.”

상당히 예전 이야기였지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왕호는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해놓은 새우살을 구울 생각도 못 한 채,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다.

“끌끌. 예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는 오리진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할 때까지 고레벨 몬스터를 막아야 했다. 지금이야 뭐 공격대를 만들어 레이드하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수가 부족해 일대일로 대적해야 했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희생해야 했다. 우리 프로

젝트 인원도 예외는 아니었지.”

“차라리··· 도망가지 그러셨습니까. 결혼까지 했다면서요···”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나 그녀나 등을 돌릴만한 깜냥은 없었다. 그때는 우리의 목숨보다, 이 세상이 더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덕분에 지금의 평화가 생긴 거네요.”

“허허, 그렇지. 나는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 했지만, 내 능력이 너무도 미천했다. 딱 지금만큼만 강했더라면··· 지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자벨의 희생이 있었기에, 네 말마따나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거지. 그렇기에 내 눈엔 지금의 세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구나. 그녀의 목숨과 맞바꾼 소중한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 소중함을 느껴야 할 텐데요.”

“그러게나 말이다. 요새는 몬스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탐욕스럽기 그지없더구나. 이젠 그저 몬스터를 황금알 낳는 거위로 보게 된 것이지. 그러니, 너는 더욱더 실력을 정진해야 할 것이야!”

“예? 그게 제가 실력을 키우는 거랑 어떤 상관관계가···”

“세상이 또 어지러워질지 누가 아느냐? 내일이라도 세상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 압도적인 몬스터들이 밀려들어 올 수도 있지. 이자벨이 목숨 걸고 지킨 이 아름다운 세상을, 네가 지켜야 할 것이 아니더냐. 나는 이제 늙었다.”

아뇨!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라고 말했다가는 말짱 도루묵이 될 것만 같았다.

왕호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기를 프라이팬에 올렸다.

치이이익-

달궈진 프라이팬에 숙성된 새우살이 닿자, 기분 좋은 하모니가 흘러나온다.

왕호는 적탐안을 이용해, 고기의 익힘 정도를 조절했다.

고기 굽는 데는 정말 사기 스킬이 따로 없다.

레어와 미디움 레어의 중간 정도로 알맞게 굽기만 하면 된다.

“저는 일개 요리사에 불과한테 세상을 어찌 지킵니까. 그냥 제 요리나 사람들만 지키겠습니다.”

“예끼!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단 말이냐. 우리 때는 그 클래스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요리사든 깍새든, 명함은 강함의 척도가 되지 못하는 법이다.”

“예······.”

이제 보니, 이 영감님이 왜 이렇게 자기를 굴리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예 자신이 익힌 모든 것을 알려주려는 십상인 듯싶었다.

‘1년만 배우고 바로 때려치워야겠다.’

굳이 다 배울 필요는 없다. 내 몸과 내 사람, 내 요리 하나 지킬 힘만 가지면 된다. 딱, 달빛여제 정도로만 말이다.

지글지글-

버터도 넣고 마늘향도 입히며, 정성스레 고기를 익혔다.

“거의 다 구워졌습니다. 이거 먹고 힘내십쇼 관장님! 저는 관장님 마음 이해합니다!”

“껄껄껄, 젊은 네가 어찌 이해한단 말이냐?”

“저도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보고 싶죠.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아픔을 모르진 않습니다.”

“허허, 그래서 네가 동생을 그리 아끼는 것이냐?”

“저라도 아버지 역할 해야죠. 저는 그래도 다 컸지 않습니까.”

“짠돌이처럼 돈을 아끼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하하하, 집만 장만하면 이제 펑펑 쓸 겁니다. 희영이 수능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수능 끝나면 이사해야죠.”

어느덧 고기가 알맞게 구워졌다.

왕호는 촉촉하게 구워진 고기를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가져온 명이나물도 꺼내, 기다란 접시에 예쁘게 펼쳤다.

“자, 완성됐습니다! 한 번 먹어보시죠. 숙성시킨 거라 더 맛있을 겁니다.”

“허허, 이 새우살도 이자벨덕에 알게 된 것인데 신기하구나. 립아이란 부위를 그녀 덕에 처음 먹어보았더랬지.”

[힐링 요리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레드혼 카우 숙성 새우살 스테이크”가 완성되었습니다.]

[전 스탯이 1씩 상승합니다.]

[지금까지 완성한 힐링 요리의 숫자 : 6]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레드혼 카우 숙성 새우살 스테이크-

[1세대 영웅 “허 용”을 위한 요리.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드라이에이징 공법으로 알맞게 숙성한 고기다. 육향이 뛰어나다.]

[본 인 립아이 부위의 새우살만을 구워 만든 스테이크다.]

[레어와 미디움 레어 사이로 알맞게 구워졌다. 매우 부드럽다.]

[같이 제공된 명이나물과의 궁합이 기가 막히다.]

[부드럽고 촉촉하며, 육즙이 가득하다.]

[효과 : 상실의 아픔이 치유됩니다. 체력이 최대체력의 15%만큼 즉시 회복됩니다. 최대체력이 20% 상승합니다. 체력회복속도가 100% 상승합니다. 대상이 감동할 시, 효과는 2배로 증가합니다. 버프의 효과는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버프 : “인사이더”가 발동됩니다.]

[인사이더 – 파티원의 체력이 한 명이라도 5% 이하로 내려가면 발동됩니다. 주위 몬스터들의 어그로가 전부 끌립니다. 맷집 스탯이 2배로 상승합니다. 회피율이 2배로 상승합니다. 적용받는 모든 충격량을 20% 감소시킵니다. 이 효과는 6시간 동안 발동됩

니다. 원하면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한 번 해제하면 다시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24시간 동안 발동되지 않으면, 이 버프는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힐링 요리가 생겨났다.

이번엔 더욱 뜻깊었다. 그래도 자신과 꽤 가까운 사람에게 힐링 요리를 만들어줬다.

‘인사이더 버프라···’

아무래도 파티 사냥을 위한 버프 같았다. 그것도 탱커전용. 한 명의 파티원들이라도 상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버프다.

스윽-

허용은 젓가락을 들어, 잘려진 새우살 하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턱을 딱! 두 번. ‘우물-’ ‘우물-’ 움직였을 뿐인데, 육즙이란 것이 유전 터지듯 뿜어져 나왔다.

육질은 촉촉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다.

풍미 작살이다.

“흐으음···”

허용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마르세유 해변가의 한 식당이 떠올랐다. 이자벨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레스토랑. 그곳에서 처음 먹었었다. 립아이 스테이크란 것을 말이다.

메르시 보꾸merci beaucoup!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허용의 가슴을 적셨다.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해졌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군.’

이것이 요리의 힘인 것인가.

허용은 실로 오랜만에, 요리를 먹고 감동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힐링 요리를 먹고 감동했습니다. 요리의 효과가 2배로 상승합니다.

아마, 허용이 오리진에 접속했었다면 이런 알람이 떠올랐을 것이다.

허용은 고기 한 점을 다시 집어, 이번엔 명이나물에 싸서 입으로 가져갔다.

우적우적-

명이나물의 새콤함이 고기의 담백고소함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쥬뗌므Je t'aime!

“정말 맛있구나! 내가 먹어본 고기 중에서 가장 부드럽고 가장 촉촉하고 가장 식감이 좋았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줘서 고맙구나.”

허용이 왕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바뀌었다.

애정이 가득 생겨났다.

왕호의 의도가 어디에서 시작됐든, 늙은이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던가. 그 마음이 참으로 애틋하기 그지없다.

왕호도 허용의 애정어린 눈빛을 그대로 읽어냈다.

‘됐다! 됐어!’

계획의 완벽한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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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줄 알았다.

짜악-!

허용의 효자손이 왕호의 볼기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끄아아아악!!!”

왕호가 그대로 앞으로 구르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눔아! 자세가 완전 엉터리구나! 쾌검과 다르게, 중검은 힘을 있는 힘껏 실어야 한다 하지 않았더냐! 어떤 괴물이 나오더라도 힘대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중검을 익힌다면, 검이 아닌 그 프라이팬으로도 적을 뭉개버릴 수 있을 것이다!”

허용이 누워있는 왕호를 향해 윽박질렀다.

‘애정은 개뿔! “징크스 브레이킹”버프를 먹고 왔는데도 이정도야?’

왕호는 허탈감에 더더욱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새로운 초식을 배운다길래, 미리 힐링 버프를 섭취하고 올라왔다.

징크스 브레이킹.

버프를 발동시키면 컨디션이 100%로 올라간다. 체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긴 하지만, 어차피 맞으면서 배우니 감소하기는 매한가지다.

컨디션이 100%이니 덜 맞고 잘 익힐 줄 알았다.

‘엉엉! 한치의 어설픔도 용납 못 할 줄이야······.’

부우웅-

누워있는 왕호의 얼굴로, 효자손이 날아온다.

벌떡-!

왕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회사에 지각한 신입사원마냥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자세를 잡거라!”

맞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

.

따악-!

“끄악!”

.

.

퍼억-!

“꺼억!”

.

.

찰싹-!

“아악!”

.

.

그렇게 수십번을 처맞고 나서야,

[스킬 “중검 – 브로드 스마이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스킬이 만들어졌다.

털썩-

스킬을 생성한 왕호는 그대로 매트 위로 고꾸라져,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흐어어억···”

고통스러워하는 왕호를 허용이 애처롭게 쳐다본다.

원래 진짜 사랑을 가득 담아 때리는 ‘사랑의 매’가 더욱 아픈 법이다.

자식 잘되라고 회초리 드는 부모님의 매가 어찌 아프지 않겠나.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도 있었다.

“고생 많았다. 많이 아프더냐? 이것 좀 먹어 보아라, 체력을 올리고 상처를 아물게 해줄 것이다.”

허용이 환약 하나를 물과 함께 건넸다.

달라진 것은, 사랑의 매를 휘두르는 부모님들처럼 약을 발라준다는 점이다.

예전엔 그냥 병 病 만 줬지만, 지금은 병 주고 약 주고로 바뀌었다.

< 치유의 힘 (2)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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