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유의 힘 (3) >
“끄응, 이게 뭡니까?”
왕호가 매트 위로 힘겹게 앉으며 물었다.
“녹용, 당귀, 산수유, 사향을 포션에 반죽해 만든 환약이다. 1세대 힐러 한테 배워서 내 직접 만든 것이지. 몬스터와의 전쟁통엔 포션보다 이게 직빵이었다. 맛대가리 없으니, 대충 씹고 물과 함께 삼키거라.”
왕호는 허용이 건내준 황금색 환약을 뚫어지게 살폈다.
‘설마 이거 먹으면 감각이 개방되서 더 아프다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관장님은 충분히 그럴만한 SM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혹시 몰라서 감정 스킬을 사용했다.
[대보공진단 大補拱辰丹]
[허한 기력을 단숨에 회복시켜주는 환약이다.]
[최고급 포션을 사용해 제작됐다.]
[빈혈이나 발기부전 같은 가벼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효과가 있다.
[최대 체력의 20%가 빠르게 회복됩니다.]
‘헙! 진짜 몸에 좋은 거네?’
특히 정력에도 좋단다.
물론, 아직 팔팔해서 필요 없다만 이 귀한 것을 주시다니······.
왕호는 거침없이 환약을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으엑!”
맛대가리가 정말 하나도 없다.
쓰고, 떫고, 시큼하고, 역겨운 향이 코로 뿜어져나온다.
좋은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하하, 포션이 들어갔으니 맛이 있을 수가 있나.”
왕호의 표정이 꾸깃꾸깃해지자, 허용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왕호는 물컵에 있는 물을 원샷해, 씹은 환약을 그대로 삼켰다.
꿀꺽-
“와, 대박 구린맛이었습니다. 아직도 위에서 구린내가 올라옵니다.”
그래도 고통이 사라지고, 체력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이제 조금 살 것 같았다.
“끌끌, 포션이 왜 맛대가리 없는 줄 아느냐?”
“글쎄요? 포션 만드는 과정은 아직 모릅니다.”
“포션은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용액에, 힐러나 위치가 마법을 부여해서 만들어지지. 핵심은 마나 캐퍼서티를 가지고 있는 용액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나 용량이라······.
‘버프 요리 같은 거네.’
버프 요리도 마찬가지다. 기본 버프가 아닌, 스탯의 상승이나 힐링 버프를 부여하려면 마나 캐퍼서티가 있는 몬스터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포션은 대부분 몬스터의 피로 만든다.”
“피요?”
“1세대 힐러들이 처음 개발한 방식인데, 몬스터에게서 피를 추출해 힐러들이 마기를 제거한 후에 만든다. 자체적인 재생력을 가진 몬스터의 피를 이용하면 효과가 더 좋지. 그러니 맛이 있을 수 있겠느냐?”
“피의 비린 맛인가요? 그것보다는 시큼함이나 구린내가 더 큰 것 같은데······.”
“피비린내는 향신료나 합성착향료를 이용해 잡을 수 있지만, 부여된 마법 특유의 꼬릿꼬릿한 내음은 잡을 수 없었지. 마법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렇군요. 어쩐지 포션에서 발냄새가··· 헙!”
얼마 전 먹어본 마나포션의 꾸릿함을 떠올리던 왕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기똥 찬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포션의 꼬린내는 마법으로 인해 발생한 향이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고, 같은 마법으로 구린내를 상쇄시킨다면?
‘“맛깡패”처럼, 향미를 증진시키는 버프를 부여해 1차 적으로 구린내를 없앤다음에···’
꼬린내를 제거한 포션을 요리의 재료로 사용한다면?
육체적인 힐링 버프의 효과가 아마 배로 늘어날 것이다.
애초에 포션을 만들 때, 몬스터의 피를 이용하니 향미를 증진시키는 버프를 가볍게 부여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만 된다면, 포션을 이용해 기본적인 육수를 제작하는 거다. 다른 육수에 비해 맛은 떨어지겠지만, 육체적 힐링 버프의 효과는 더욱 뛰어나게 된다. 만들어 놓고, 상황에 맞게끔만 사용하면 된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왕호는 허용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귀한 약도 받고, 좋은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스킬도 새로 얻었고.
[중검 - 브로드 스마이트broad smite : 숙련도 0% 마나 소모량 : 450]
[함무라비 단검술의 중검 제1식.]
[극도로 파괴적인 중검. 무척이나 강력합니다.]
[검에 마나를 입혀 강하게 공격합니다.]
[우주를 쪼개버릴 듯한 무거운 검식.]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위력이 높아집니다.]
[둔기를 이용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초급 함무라비 단검술의 영향을 받습니다.]
마나 소모량이 엄청난 초식이다. 일도양단의 마나 소모량이 300이다. 그것보다 1.5배나 더 높은 양이다.
허용은 ‘일도양단’이 마나를 비효율적으로 낭비한다고 쓴소리쳤다. 함무라비 무예는 극도로 효율만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마나 소모량이 450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파워를 내제하고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거의 필살기로 사용해야 겠네.’
쾌검은 피하기가 무척 힘들지만, 이 중검은 쾌검보다는 훨씬 느리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사용해야 한다. 대신 한 대 맞으면 곧바로 염라대왕과 상견례자리 만들어 버릴 거다.
“3주 안에 마스터해오거라!”
“예? 언제 그렇게 결정됐습니까?”
왕호가 당황했다.
“방금 그렇게 결정했다.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아, 예··· 안 맞으려면 해와야겠죠. 이럴 시간 없으니, 저는 수련하러 가보겠습니다.”
까라면 까야지 뭐.
터덜터덜-
왕호는 힘 없는 발 걸음으로 도장을 빠져나갔다.
그런 왕호의 뒷모습을 허용이 눈을 빛내며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진국이야.’
강력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처음엔 그저, 스스로를 지킬 정도로만 가르치려고 했다. 하지만 지도하면 지도할수록 탐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비로소, 완전히 결심할 수 있게 됐다.
‘강력한 힘은 올바른 사람이 지니고 있어야 이치에 맞다! 왕호 네녀석처럼 말이다.’
재능도 뛰어나다. 다희처럼 악마의 재능은 아니지만, 끈기가 엄청나다. 독종이다. 게다가 무슨 수를 쓰는지, 체력을 금방금방 회복시켜 오니 성장 속도에 불이 붙지 않을 수가 없다.
허용은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왕호를 채찍질 중이다. 스파르타식으로 말이다. 이 방법이 제일 빠르다. 그리고 왕호는 정말로 다희의 3배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
“그 약 때문인가? 오늘은 좀 낫네. 이따가 버프 요리로 체력 좀 더 올리면 끄떡없겠다.”
부르릉-
운전대를 잡은 왕호의 표정이 나쁘지 않다.
원래 도장 수업이 끝나면 매번 어깨가 축 쳐졌었는데, 오늘은 약빨로 기운이 조금 생겨났다.
부스럭부스럭-
조수석에서는 덕구가 주전부리를 손으로 집어먹고 있다. 왕호가 간식으로 만들어 놓은 버프 요리다.
그나저나 강아지 주제에 앉아서 손으로 집어먹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 짝이없다. 귀엽기도 엄청나게 귀엽다.
쓰담쓰담-
“많이 먹고 마법 많이 배워라. 다 써먹을 곳이 있으니까 크크.”
덕구가 강해지면 요리에도 도움이 된다.
익숙한 길이라 네비를 따로 켜지 않았다.
대신, 예세코 전 시즌을 틀어서 시간날 때마다 보는 중이다.
-자, 에셰코 오늘의 미션은~ 채식대첩입니다!!! 요리사라면 응당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요리도 할 줄 알아야겠죠? 오늘은 특별 심사위원들을 모셨습니다. 전부 비건Vegan 베지테리언 분들입니다!
“헐, 채소만 사용해야하는 미션도 있네. 이러면 내 장점이 완전히 사라지는데 쩝.”
왕호가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몬스터 재료를 사용할 수 없으니, 기본 버프 정도만 부여할 수 있다. ‘활력 증진’이나 ‘피로 회복’같은 자잘한 것들 말이다.
비건 베지테리언이면 고기 육수도 사용할 수 없다. 만능 소스를 이용한 드레싱도 언감생심이다.
“아쉽지만 절대미각도 많이 올랐고, 이건 내 실력으로 뚫어봐야지.”
왕호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자, 덕구가 먹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마스터! 우리 채소를 쓰면 된다! 우리 채소도 마나 담을 수 있다!”
“엉? 무슨 소리야? 우리 채소?”
“웅! 우리가 고향에서 먹었던 채소다! 던전에서 키울 수 있다!”
“뭐라고? 그런 게 있었어? 못봤는데?”
왕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던전에서 채소는커녕, 과일 열리는 것도 본 적이 없었다. 봤으면 진작에 사용해봤을 거다. 그냥 잡초 잔디나 잎이 무성한 나무가 전부였다. 다 못먹는 것들이다.
“그건, 농사를 따로 안 지어서 그런다! 우리 채소는 손이 많이간다! 농부가 필요하다!”
“농부? 따로 키우는 방법이 있어?”
“웅! 고블린이 농사 잘 짓는다!”
“고블린? 얀센 고블린 말하는 거야?”
왕호의 눈에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얀센 고블린? 키 작고 녹색 몸에, 흉측한 얼굴 말하는 거면 맞다!”
“어! 걔네들 맞아! 레벨 30대 몬스터! 근데 몬스터인데 어떻게 농사를 지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다. 인간만 보면 눈 뒤집어 까고 달려드는데, 농사는 무슨···
“내가 먹었던 요리를 먹이면 되잖나! 마기만 제거하면 제정신 찾는다! 흉측하게 생겼지만 사실은 착한 애들이다! 농사 짓는 거 좋아한다! 걔네들도 채식만 먹는다! 그래서 몸이 녹색이다! 농사 달인들이다!”
“헙! 구사일생 버프 말하는 거지? 그거 먹어서 너도 정신 돌아오긴 했으니까···. 그럼, 테이밍이 가능하다는 소리야? 말도 안 통할 텐데?”
“마스터 바보다! 나 통역 마법 쓸 수 있다! 고블린 언어도 사용할 수 있다구!”
“세상에!”
왕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로 놀라운 이야기다. 테이밍이 가능하다니, 게다가 농사를 시켜서 몬스터채소(?)를 구할 수도 있다?
당장 뉴스 1면을 장식하고, UN에서 조사나올 법한 사건이다. 그렇게 되면 협조를 요청하겠지. 강제적으로라도 협조시킬 거다 아마.
그렇기에 더더욱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농사를 시킬 수가 없지 않나. 게다가 얀센 고블린 던전은 공용 던전이다. 불가능 그 자체.
“덕구야. 기똥찬 제안이긴 한데, 사람들이 알면 큰일 난다. 던전에서 어떻게 농사를 시키겠어, 보는 눈도 많은데.”
“아하! 그게 걱정인가 마스터? 그건 걱정 마라! 던전은 무~지 무지 무지 무지하게 넓다. 농사 지을 땅은 충분하다! 각종 야채 전부 심을 수 있다!”
“그렇긴 한데, 땅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보면 안 돼.”
“꺄하하하! 마스터! 나 그동안 마법 많이 되찾았다! 스페이스 마법이랑 일루전 마법 사용하면, 절대 들키지 않는다!”
끼이이익--!
덕구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왕호는 갓길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히 설명해봐.”
“메이즈 마법을 설치하면, 농사짓는 땅을 밟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거기에 일루전 마법을 더하면, 보이지 않게도 할 수 있다. 나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아니면 저얼때! 눈치 못챈다!”
덕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협 소설의 한 장면처럼 진법을 설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환상의 독립된 공간!
“와, 소름돋았다 지금. 그럼, 네 실력은 지금 어느 정돈데? 레벨 몇 정도야?”
“레벨? 그런 건 잘 모른다! 우움··· 그 예쁜 누나 있잖나!”
“예쁜누나? 다희? 아니면 여름이?”
“더 이쁜 누나! 다희 누나! 그 누나보다 약간 약한 정도다! 나 능력 많이 회복했다!”
“헉! 덕구 너가 그렇게 강하다고?”
“쿠헬헬헬, 마스터! 나는 위대한 존재라고 하지 않았나! 마스터의 힐링 요리 먹고 금새 강해졌다!”
“이 녀석! 이렇게 기특할수가!”
와락-
왕호는 조수석에 있던 덕구를 품속으로 강하게 끌어않았다.
쪽쪽쪽-
손으로 덕구의 털을 마구 헝클며, 뽀뽀를 사정없이 날렸다.
이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꺄하하!”
햝짝-
덕구도 나쁘지 않은지, 혀로 왕호의 얼굴을 햝았다.
‘미쳤다 미쳤어!’
왕호네 농장을 만든다?
거기서 몬스터채소를 길른다?
자신의 요리가 한 층 더 진화하는 셈이다.
얀센 고블린 던전은 레벨 30대의 초급 던전이다. 여기에 레벨 3, 400대의 고랭커가 올리는 만무하다. 길드 매니저들도 고작해야 레벨 100이 겨우 넘는다. 아주 으슥한 곳에 농장을 만든다면, 절대 들킬 리가 없는 것이다.
“안 되겠다. 말 나온 김에 당장 농장 만들자!”
뚜루루루-
왕호는 핸드폰을 꺼내,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단은 ‘구사일생’ 힐링 버프 요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 요리가 있어야, 테이밍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육체적 힐링 버프를 만드는 데 아주 좋은 재료가 있다. 왕호는 심지어 그 재료를 싸게 구할 수 있다.
< 치유의 힘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