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80화 (80/149)

<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4) >

*

김명수는 구로소방서 소속 소방교다.

그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는 정찬우 소방위다. 그의 밑에서 소방대원으로 수많은 인명을 구조해냈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

1년 전, 정찬우는 각성했음에도 소방관 옷을 벗지 않았다. 박봉에 불과한 직업이지만, 자신이 남아있어야 더 안전하댄다. 오히려 더욱 커진 신념을 가지고 소방수로 임했다.

국가에서는 이런 선배를 기특히 여겨, 한 단계 진급시켜줬다. 간부직책인 소방위에 올랐지만, 선배는 계속해서 현장을 고집했다. 각성해서 2인분 3인분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왜 책상머리에 앉아 있겠냐는 것이 선배의 대답이었다.

“명수야! 출동 전에 이거 꼭! 먹고 가라! 불길 속에서도 널 지켜줄 거다.”

선배가 쿠키를 하나하나 대원들에게 나누어줬다.

‘하, 대장님도 참.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고 이런 미신을···’

레이드 뛰는 유명한 힐러한테 받아온 쿠키라고 했지만,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아마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고 이렇게 말한 듯싶었다.

“휴가나 잘 다녀오슈 대장. 해외는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 가본다며요!”

김명수는 불안해하는 정찬우를 재빨리 차에 태웠다.

매번 대형 화제가 발생할 때마다 다른 거 다 내팽겨치고 달려온 인물이다. 어렵게 시간 맞춘 가족 여행을 혹시나 취소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싸이렌이라도 울렸다간, 당장에라도 여행 취소할 위인이다.

“무슨 일 터지면 바로 연락해라 명수야! 당장 달려올테니까!”

“아, 걱정말고 여행이나 잘 다녀오슈! 올 때 면세점에서 선물 사오고!”

부아앙-

결국 정찬우는 공항으로 떠났고, 김명수는 정찬우가 건네준 쿠키를 바라보았다.

‘형수님께서 만드신 거 같은데, 이거 먹으면 잘도 대장님 빈자리 채워지겠네.’

그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쿠키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위이이이이이잉--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이 소방서 곳곳을 울렸다.

“야! 화재신고다.”

그의 동기가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어딘데?”

“고층 빌딩이야. 대형이다. 용산인데 우리도 지원나가야 돼. 빨리 움직여!”

김명수는 방화복을 대충 낑겨 넣은 채, 소방차에 탑승했다. 옷이야 차 안에서 잘 여미면 된다.

차에 탑승한 김명수는, 자신이 이끌어야할 후배 대원들을 쭉 바라보았다. 지원까지 나갈 정도면 상당한 대형화재.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들이다.

“도착하기 전에, 대장님이 준 쿠키나 먹자. 이거 먹으면 화상 안 입는댄다!”

“정말입니까?”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그냥 먹어라. 혼자 휴가가니까 미안해서 그런거겠지.”

김명수는 말을 마치고 쿠키를 한 입 베어물었다.

바사삭-

바삭하니 식감은 좋다.

우물우물-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무척이나 촉촉하다. 겉바속촉의 정석! 게다가 촉촉한 속살 사이사이에 달콤한 초코칩이 박혀있다.

‘헉! 대박 맛있네. 형수님 솜씨가 이정도였나? 제과점 쿠키보다 배는 맛있어.’

포장지를 보니 사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쿠키 하나를 뚝딱하니, 어느덧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구로소방서에서 지원나왔습니다.”

“아이고, 빨리 와서 다행이구만.”

용산소방서장이 버선발로 마중나왔다.

서장까지 나올 정도면 보통 화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고개를 들어 화재가 발생한 건물을 보니,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20층이 넘어보이는 까마득한 위치해서 계속해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온다.

“발화점이 어딥니까?”

“22층일세. 너무 높아서 물대포가 닿지 않아. 빌딩숲이라서 헬기도 뜨지 못하는 상황이네. 옥상에서 구조 정도만 가능해.”

“직접 들어가는 수밖에 없군요.”

“18층까지는 사다리를 통해 창문으로 접근하고,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 되네.”

“구조 인원은 파악 됐습니까?”

“대부분이 대피 하고 남은 인원은 옥상에서 구조 중일세. 하지만··· 두 명이 지금 22층 오피스텔에 갇힌 상황이야. 동료 직원이 미처 대피하지 못했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

“저희가 당장 들어가서 구하겠습니다.”

“아직 생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네. 자칫하다간 대원들의 목숨도 위험해지니 발화점 못 잡겠으면 바로 나오고! 그나저나, 정찬우 소방위는 어디있나? 보이질 않는구먼.”

“대장님께서는 휴가가셨습니다.”

“허! 그 친구만 믿고 기다렸는데 이걸 어쩐담······.”

“저희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쇼!”

김명수는 10년차 소방관 답게, 대원들을 잘 통솔해 건물로 들어갔다.

.

.

.

“먼저 내려가 있어!”

김명수가 악에 받혀 소리쳤다.

“하, 하지만······.”

“반대쪽 뚫어서 나갈 거니까 먼저 내려가라고! 여기 있으면 다 죽어 인마!”

“아, 알겠습니다! 저희가 내려가서 어떻게든 반대편으로 구해내겠습니다!”

대원들은 이를 악물며 등을 돌렸다.

‘하, 어쩌다가······.’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미처 대피하지 못한 두 사람을 구했다는 점이다.

‘구하다 죽었으니 천국 가겠지?’

피식-

믿지도 않는 사후세계가 생각나자, 실소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시민들을 구한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서 고립될 줄은 누가 알았겠나.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다행이 행렬의 후미에 있던 자신만 고립된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나머지는 무사할 수 있으니까.

김명수는 반대편을 뚫어서 나가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불가능한 사실임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두터운 철근콘크리트 벽을 부술만한 장비는 다른 대원이 가지고 있고, 설사 벽을 뚫는다 해도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없다.

올라오기전에, 건물의 설계도를 샅샅이 훑고 들어왔다. 뒤쪽에는 비상계단이 없다.

‘덧없다 덧없어. 근데···’

왜 이렇게 안 덥지?

저승사자가 코앞에 있는 것 같았지만, 이상한 의문을 도저히 감출 수가 없었다.

여기는 발화점 근처다. 후끈한 열기가 사방을 뒤덮고 있다. 산소 마스크를 빼버린다면, 폐가 타들어갈 수도 있다.

10년의 경험이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게 뜨거워야 정상이라고.

근데 이게 뭐람?

마치 노천탕에 몸을 담근 것 마냥 뜨뜻하기 그지없다.

‘죽을 때가 되니, 감각도 맛탱이가 갔나?’

이상했으나, 더 이상 이러한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후아아아악---!!!

눈 앞에 있던 장애물이 무너지며, 화마가 자신의 몸을 덮쳐왔다.

마치 화염방사기가 불을 내뿜듯, 자신에게 불덩이가 쏟아져왔다.

‘아, 안 돼!’

제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 한들, 불길을 정통으로 얻어맞으면 방화복도 녹는다. 방화복이 조금이라도 녹으면, 연약한 단백질 살덩어리는 채 1초도 버티질 못한다.

그러나···

‘뭐, 뭐야?’

불길이 자신의 몸을 뒤덮고 있는데, 살짝 뜨거울 정도의 감각만이 느껴진다. 방화복은 분명 녹았다. 피부로 바깥의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니까.

하지만 불에 타는 고통도, 살이 타는 매케한 향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죽은 건가?

아니면···

설마, 대장님이 주고 간 그 맛있는 쿠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그 때,

펑-!

벽이 터져나가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수야! 괜찮냐?”

대장이었다.

“헛! 서, 선배! 아니 대장님! 여긴 어떻게···?”

“연락 받고 유턴했다. 나 아니면 우리 애들 보나마나 뻔하지. 지금도 강아지마냥 낑낑대고 있잖냐.”

“하, 형수님 또 엄청 화내셨겠네. 수정이 얼굴은 안 봐도 뻔하고.”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옷은 다 흐물흐물해졌네. 멀쩡한 거 보니, 내가 준 쿠키 잘 먹었나보네?”

“예? 그, 그럼 대장님 말이 정말 사실···”

“내가 언제 대원들한테 헛소리 한 적 있냐? 빨리 업혀, 샤워하러 가자.”

“전 멀쩡합니다!”

“그럼, 먼저 내려가있어. 불길 마저 잡고 갈게.”

이날 김명수는 깨달았다.

대장님의 말은 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사실이고.

이 믿을 수 없는 쿠키는, 맛도 맛이지만 정말로 불길 속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구원의 요리”라고.

*

홍홍홍-

왕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능숙하게 주차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흥겹다.

왜?

거실 쇼파에 앉아, 정산하는 맛이 기가 막히니까! 현금 다발을 만질 때만큼 좋은 감촉도 없다.

“덕구야 가자!”

부들부들한 덕구의 털을 쓰다듬을 때보다도 더 좋을 정도니 말 다 했다.

주차장을 막 나왔을 때, 왕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마주칠 수 있었다.

“오빠!”

여름이가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어? 나 기다린 거야?”

“그럼요!”

“많이 기다렸어?”

“아뇨. 50분 밖에 안 기다렸어요.”

“겁나 많이도 기다렸네. 왜?”

“으음··· 그, 그게 그러니까··· 대표님한테 들었는데, 내일 오빠 에셰코 촬영하잖아요!”

“어.”

“저도 오늘 첫 주연작품 계약했고, 저도 오빠도 방송타면 유명해질 거고 하니까··· 이제 많이 못 만나잖아요.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할까 해서요. 소주는 오빠 낼 촬영하니까 다음에 하는 걸로 하고···”

한여름은 쑥쓰러운지, 새하얀 스니커즈화로 땅바닥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어?! 작품 계약했어? 그것도 주연? 와 대박인데? 이제 한여름 배우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헤헤··· 다 오빠덕이죠. 오빠 아니었으면 봉 감독님 영화에도 못나갔을 거고···”

“아니야. 여름이 네가 연기를 잘해서 된 거지. 맥주 좋지! 요 앞에 감자튀김 맛있게 하는 펍집이···”

왕호는 하려던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멀리서 왕호를 부르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 오빠!”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희영이가, 왕호를 보고 반갑게 달려왔다.

다가온 희영이는 한여름의 모습을 보고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오빠! 이 예쁜 언니는 누구야? 흐음··· 짠돌이 안왕호 씨가 여자친구를 사귈 리는 없고··· 단골손님?”

“아, 그, 그게···”

왕호는 적잖이 당황했다.

여름이가 누구인지 설명하려면, 자신이 레이드를 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희영이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알면 위험하다고 난리 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떻게 소개해야하지?’

생각하고 있을 때, 여름이가 먼저 입을 열고야 말았다.

“안녕! 네가 희영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한여름이라고 해, 오빠 레이드 파티원이었어. 직업은 소서러구, 지금은 같은 소속사 배우라고 해야 하나?”

“에? 뭐, 뭐라구요? 레이드?!”

깜짝 놀란 희영이가, 왕호 쪽으로 눈을 부라렸다.

‘하, 골 때리네······.’

.

.

.

결국 왕호는 펍집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한여름을 데려와야 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뾰루퉁해진 희영이가 왕호를 세차게 노려보았다.

“뭐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그거야 네가 걱정할 까봐 그랬지. 수능도 이제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하, 어쩐지 요새 돈 잘 벌린다고 싱글벙글하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구만?”

“어차피 조만간 말 하려고 했어, 내일 나가는 에셰코에서도 던전 가는 푸드트럭 요리사로 소개될 거거든.”

예상보다 희영이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왕호가 다쳐서 온 적이 한 번도 없기도 했고, 옆에서 여름이가 엄청나게 쉴드를 쳐준 것도 한 몫 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희영아. 왕호 오빠 엄청 강해! 몬스터들 쨉도 안 되는 수준이야. 그리고 어찌나 안전민감증인지, 무조건 약한 던전만 골라서 간다니까! 게다가 달빛여제라고 엄청 고랭커 언니 있는데, 틈만나면 푸드트럭에 붙어 있으니까 다칠 일

은 추호도 없어!”

여름이는 왕호에게 미안했는지, 아까부터 열변을 토해냈다.

희영이는 왕호가 레이드를 뛴다는 사실을 이제 어느 정도 납득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덕구가 말을 하는 강아지였다는 점이다.

세상에!

이때까지 귀여워 하며 기른 강아지가 사실은 말하는 몬스터였다니!

“덕구야! 그럼, 저번에 말귀 못알아 듣는 척 하면서 내 속옷 물고 도망갔던거 설마···”

“헉! 아, 아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하고 궁금했을 뿐이다!”

“덕구야! 그리고 말버릇이 그게 뭐야! 주인님! 이래야지!”

“그럴 수 없다! 난! 위대한 존재다!”

“뭐? 오늘부터 밥 안 주고 사료만 준다?”

“안 된다! 주, 주인!”

희영이는 무척이나 신난 표정을 지으며, 덕구를 조련했다.

그렇게 한참을 덕구와 놀더니, 다시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앞으로 생채기라도 나서 오면, 절대 안 돼! 지금도 충분히 장사 잘 되니까,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나 수능 끝나면 과외라고 해서 앞가림 할 수 있으니까! 알았지?”

“내가 덕구냐? 이제는 오빠까지 교육시키려 드네···”

“싫어? 꼬장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봐?”

“아, 아니 누가 싫대··· 털 끝 하나 안 다치마.”

“좋아. 그럼 내일 녹화도 잘 하고. 몬스터 요리 한다며, 우승 정도는 해야겠네?”

“우승은 좀···”

“왜? 나도 수능 만점 받을 테니까, 가서 우승하고 와.”

“아니, 어차피 우승은···”

‘정해져 있다니까.’

이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아직 순수한 고3에게, 더러운 사회의 맛을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추악한 진실은 수능 끝나고 말해도 늦지 않을 거다.

*

왕호는 평소 차림 그대로, 트럭을 몰고 녹화장으로 향했다.

주차를 마친 왕호는, 마법 배낭에 조리 도구와 재료들을 넣고는 여유있게 녹화장으로 들어왔다.

스태프의 1차 검증을 통과한 수많은 참가자가, 긴장감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왕호는 고개를 돌려, 참가자들의 면모를 빠르게 훑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이 둘씩이나 있었다.

강력한 우승후보, 아니··· 우승 예정자인 김성오가 있었다. 얘는 애초부터 나올 줄 알고 있었고.

다른 한 얼굴은···

< 영웅은 가까운 곳에 있다 (4)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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