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스의 출현 (1) >
왕호가 5년 동안 개고생한 곳에서 마주치던 그 얼굴.
다니엘 킴 셰프였다.
왕호가 다니엘 킴의 얼굴을 확인한 것 같이, 다니엘 킴도 왕호의 모습을 보더니 왕호쪽으로 다가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왕호 아니야!”
“오랜만입니다 셰프님.”
왕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다니엘 킴을 응시했다.
다니엘 킴은 옆에 참가자로 보이는 사람을 데려왔는데, 왕호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다니엘 킴과 같이 온 참가자가 왕호를 잔뜩 얕잡아보며 말했다.
“안왕호, 레스토랑 뛰쳐 나가더니 고작 한다는 게 푸드트럭이냐? 게다가 여긴 어쩌자고 도전했어. 네 실력이면 바로 예선 탈락일 건데.”
자신의 예전 동료였던 고효광이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 상사였다. 실력은 왕호보다 낮았지만, 각성자였던 탓에 왕호보다 한단계 높은 퍼스트 쿡이었다. 왕호를 예전에 이리저리 굴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 푸드트럭 하는 사실도 알고 계시네요.”
“크크, 인터넷에서 조금 유명해졌다고 콧대 높아진 거 봐라. 잘 봐둬, 여긴 동네 포차 수준이 아니야. 5성급 셰프가 될 자질을 뽑는 자리라고.”
왕호는 고효광을 크게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지 않았지만, 고효광은 한 때 자신의 밑에 있던 이와 같이 심사를 보려니 베알이 꼴리는 듯싶었다.
고효광은 덤덤한 왕호의 표정에 더더욱 열이 받았다.
그런 고효광을 다니엘 킴이 나무랐다.
“넌 저기 가서 예선 준비나 하고 있어. 재료 손질도 덜 끝났잖아.”
“쳇, 결과가 말해줄 거다.”
괜히 왕호에게 짜증을 부리는 고효광이다.
왕호는 그런 고효광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자격지심이 심해 저러는 것이라,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하였다.
‘실력이 부족한데, 각성자라는 버프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으니 저러는 것도 이상할게 없네.’
“그래도 한 때 내 레스토랑에 일했던 직원을 보니 반갑네. 왕호 네가 높이 올라가면 나도 나쁠 건 없으니, 뒤에서 응원하마.”
다니엘 킴은 웃으며 왕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왕호는 다니엘 킴에게 나쁜 감정은 없다. 어쨌든, 5년을 일한 가게의 사장이다. 그 때의 다니엘 킴은 왕호와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는 레스토랑에 잘 붙어있지도 않았고, 왕호의 직책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니엘 킴을 존경하는 것도 아니다. 실력보다는 외모와 인기빨로 스타 셰프에 반열에 올랐다. 오히려 다니엘 킴 보단, 수 셰프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는 각성자 셰프도 아니고, 진짜 실력만으로 올라간 사람이니까 말이다. 왕호에게 다니엘 킴이
란, 전 직장의 사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기서 셰프님을 뵙다니 의외네요. 작년에 우승자 배출해서 안 나올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냥 효광이 인지도 쌓을 겸 해서 왔지 이번 트로피는 아마 플라톤 호텔이 가져갈 거다. 2년 연속 우리가 받으면 업계 관례에도 맞지가 않지. 우승 상금이 3억인데, 쟤네도 아마 10억은 여기저기 돌렸을 거다. 너도 탑10 까지만 어떻게 노려봐. 각성
했다고 들었는데,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다니엘 킴은 웃으며 녹화장을 빠져나갔다.
왕호가 높이 올라가면 그에게도 손해가 아니다. 다니엘 킴 레스토랑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레스토랑 이미지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지진 않을 거다.
왕호의 동기 김성오는 멀지않은 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성오는 왕호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고효광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휴 저 병신··· 지금의 왕호는 옛날의 그 왕호가 아니라고! 실력만 보면 다니엘 킴 이상인데, 예선에서 떨어진다고? 웃기는 소리!’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김성오는 터져나오는 헛웃음을 겨우 참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집중해야 한다. 호텔에서 투자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밥상이 차려졌으니, 엎지 말고 잘 먹으면 된다.
동기 모임에서 왕호를 보지 않았다면, 기고만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왕호의 실력을 얼핏 안다.
‘절대 방심해선 안 돼!’
*
예선은 간단하다.
한 시간의 조리시간이 주어진다. 요리가 완성되면, 만들어진 요리를 가지고 세 명의 심사위원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된다.
세 명 중에 두 명 이상 합격을 주면, 앞치마를 받고 나오면 된다.
왕호가 예선에서 선보일 첫 요리는··· 맛깡패 버프가 적용된 스퀴드맨 먹물 파스타다. 나동수와 함께 정한 메뉴다.
나동수는 첫 임팩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못을 박았었다.
나중에 더 맛있는 요리를 못보여주니 손해가 아닌가도 싶었다.
-어차피 상대평가니까 상관 없습니다. 초반에 이름을 각인시키는 게 더 중요하죠. K팝이나 힙합 오디션도 우승자 보면 다 똑같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점은,
-어째, 사장님은 요리 실력이 갈수록 발전하는 거 같습니다? 계속계속 맛있어 지는데요?
왕호의 성장이 멈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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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은 총 세명. 셋 다 스타 셰프이자, 해외 유명 호텔에서 명성을 쌓은 이들이다.
그 중 메인 심사위원은, 두바이 유명 호텔에서 총주방장까지 역임했던 ‘케빈 오’ 셰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이자, 가장 실력있는 셰프다. 스타 셰프 중에 유일하다시피한 비각성자이기도 하다.
그를 비롯한 세 명의 심사위원은 계속 되는 심사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 어떻게 이번 시즌에는 제대로 된 애가 하나도 없냐.”
중앙에 앉아있던 케빈 오가 투털거렸다.
“몇 시즌째 뽑아먹으니 그렇겠죠.”
“아직 절반도 안 지났으니 좀 더 두고 봅시다. 문 PD가 그러는데 실력자들은 다 뒤로 배치했다고 하더라고요.”
나머지 심사위원은 케빈 오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다음 참가자 김성오씨 들어오십니다!!!
조연출이 외쳤다.
“김성오? 아! 플라톤 호텔에서 밀어준다는 애구나. 다들 맛 없더라도 맛있는 척 합시다.”
케빈 오가 양옆을 번갈아보며 신신당부했다.
“아이고 저희가 시즌 하루 이틀 맞춰봅니까?”
“그래도 기본은 하겠죠.”
케빈 오는 씁쓸했지만 이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잘 알고 있다. 방송은 짜고 치는 조작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심사위원직을 수락한 것은, 조작판에 희생되는 젊은 친구들 때문이다.
어차피 이러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억울하게 희생되는 친구들을 자기라도 키우려는 속셈이다.
실력은 있지만 빽이 없어서 떨어지는 친구들을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성오라고 합니다.”
카메라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김성오가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그래요. 오늘 준비한 요리는 뭡니까?”
“신선한 생연어로 만든, 연어 파피요트를 준비했습니다. 마법을 사용해서 특별하게 조리했습니다.”
“호오, 아주 기대되는군요.”
김성오가 오븐용 종이로 둘둘말린 파피요트 요리를 예쁘게 다시 세팅했다.
플레이팅이 끝나자, 심사위원들은 김성오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요리를 시식했다.
쩝쩝--
요리를 먹는 심사위원들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케빈 오가 속으로 살짝 놀랐다.
‘저번 시즌 우승자보다는 낫군.’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나온 참가자 중에 제일 훌륭하군요.”
“저도 잘 먹었습니다. 합격입니다. 앞치마 받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극찬해 마지않았다.
‘됐다! 성공이야!’
김성오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부러 이 파피요트 메뉴를 선택했다. 왕호가 파스타를 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파스타는 무조건 피해야 했다.
그리고 어차피 심사평은 좋게 나올 거라 했으니, 비주얼도 좋고 쉽게 접하기 힘든 고급 요리를 만들었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점수를 따기 위해서다.
김성오는 자신의 성격과는 다르게, 연신 꾸벅거리며 앞치마를 가지고 나갔다. 겸손 코스프레가 따로 없었다.
김성오가 나가자, 심사위원들이 방송용 멘트를 몇 개 추가했다.
“선순데?”
“그러게요. 완전 프로에요.”
“그냥 3억 주고 돌려 보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우승자를 만들기 위한 준비된 멘트였다.
-다음 참가자 안왕호씨 들어오십니다!!!
드디어 왕호의 차례다.
심사위원들은 카메라의 불빛이 돌기 전에, 왕호의 프로필을 자세히 살폈다.
“얘도 각성자네?”
“근데 좀 특이하네요. 던전에서 직접 재료를 가지고와서 몬스터로 요리한다는데요?”
“SNS에서도 조금이나마 인기 끌었고요.”
“근데, 다니엘 킴 레스토랑 출신이네? 다니엘 킴한테 딱히 들은 소리는 없는데··· 오히려 문 PD가 이친구 좀 좋게 봐달라고 해놨지.”
“그러게요. 다니엘 킴 레스토랑 다녔던 건 굳이 언급하지 마라고 적혀있네요.”
“던전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그런거겠지.”
이윽고, 카메라의 불이 들어오고 왕호가 입장했다.
꾸벅-
“안녕하십니까! 던전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안왕호라고 합니다!”
“호오, 던전 위의 요리사라··· 몬스터로 요리를 하신다고요?”
“예. 다들 흉측하게만 생각하시는데 의외로 맛이 좋습니다. 저는 마기도 해독할 수 있구요.”
“재료는 직접 잡으시나요?”
“예. 직접 공수해옵니다.”
“그럼 오늘 준비한 메뉴도 혹시 몬스터 요리?”
“그렇습니다. 스퀴드맨 숙회를 곁들인 스퀴드맨 먹물 파스타입니다.”
“이야, 몬스터 요리는 처음 먹어보는데 정말 기대되는군요.”
세팅이 끝나자, 세 사람은 포크로 시커먼 먹물 파스타를 말아올렸다.
“면은 직접 만드신 겁니까?”
“예. 먹물을 넣어, 방금 만든 생면입니다.”
호로록-
새까만 면이 심사위원들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우물우물-
“으헉!”
파스타를 먹자마자, 세 심사위원의 눈이 다들 휘둥그레진다.
방송의 극적 효과를 위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지만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음식들만 계속 먹다가, 맛깡패의 기깔나는 맛을 경험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심사나온 요리를 싹싹 긁어서 비워버렸다.
“졸라 맛있네 씨발···”
케빈 오는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입을 굳이 틀어막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현직에서 활동하는 셰프라서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어차피 방송에서는 삐 처리가 될 거다.
자리로 돌아온 세 사람의 의견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세 사람이 상의했다.
“진짜 미쳤는데?”
“이런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 우리 레스토랑에 영입하고 싶을 정도예요.”
“그러니까요. 이 요리는 당장 베껴다가 메인으로 가져다 팔고 싶을 정도로···”
상의는 그리 오랜시간 걸리지 않았다.
“안왕호씨! 정말 맛있었습니다. 여기로 와서 앞치마 받아가세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맛있는 몬스터 요리 부탁드립니다.”
왕호가 빠져나가자,
“여기서 그냥 녹화 끝내자, 괜히 다른 거 먹었다간 입맛 버릴 거 같아.”
“역대급 파스타였어요 정말.”
“아니, 저게 푸드트럭에서 파는 요리 수준이에요? 당장 아부다비 호텔 요리랑 블라인드 테스트 해도 이길 거 같은데?”
세 사람은 PD가 주문하지도 않은 멘트를 마구 내뱉었다.
진짜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이었다.
-다음 참가자 고효광씨 들어오십니다!!!
하지만 참가자는 많고, 녹화는 계속 진행해야 한다.
“고효광? 얘는 다니엘 킴이 부탁한 얘네.”
“방금 푸드트럭 걔는 부탁안하고 얘를요?”
“그러게 의외네.”
불이 켜지고,
“안녕하십니까! 강남에서 온 고효광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무슨 요리를 준비하셨나요?”
“쉬림프 루꼴 파스타를 준비했습니다.”
“파스타라··· 아까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는데, 이것도 무척 기대됩니다.”
파스타라는 소리에 세 사람의 눈이 번뜩였다.
왕호의 파스타를 먹은 직후라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루룹-
하지만, 파스타를 입에 넣자마자 세 사람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진다.
‘아까 역대급 맛을 경험해서 그런가? 진짜 거지같은 맛이군.’
케빈 오의 성격상, 당장에라도 쓰레기 통으로 뱉어버리고 싶었지만 다니엘 킴을 생각해서 차마 그러진 않았다.
다니엘 킴은 그의 밑에서 요리를 배운 제자나 마찬가지다. 처음과 다르게 겉멋이 잔뜩 들어 조금 안타깝긴했으나,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다.
이윽고, 세 사람의 혹평이 이어졌다.
“솔직히··· 그다지 올리고 싶지 않은 맛이네요. 저는 불합격 드리겠습니다.”
“음··· 평균은 하는 거 같은데 이거 참······. 저는 합격 드릴게요.”
어쩔 수 없이 준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제 남은 건 케빈 오의 결정 뿐.
케빈 오는 한참을 고민하다, 갑자기 제작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카메라 좀 꺼 봐봐.”
카메라의 불이 꺼지자, 그는 고효광을 향해 독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야이 종간나 새끼야! 방금 네가 만든 오염물질은 진짜 쓰레기통으로 쳐 넣으려다가 겨우 참았다. 다니엘 생각해서 붙여주긴 할 건데, 앞으로 다시는 파스타 만들지 마 이 버러지 새끼야! 아니면 네 앞에 나온 안왕호 참가자한테 한 수 배우고 오던가. 그 친
구는 역대급 파스타를 만들었던데, 같은 레스토랑 출신이 이렇게 수준이 달라서야 씨발.”
케빈 오는 불 같은 성질을 참지않고 죄다 쏟아냈다.
그런 심사위원의 모습에, 고효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안왕호한테 배우고 오라고?’
조금 전까지 무시했던 그 안왕호 한테? 고작 푸드트럭 장사하는 그 놈 한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 에이스의 출현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