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의 규율 (1) >
*
각종 기사가 터져 나왔다.
11월 중순의 핫이슈는 언제나 수능이었다.
올해 수능은 만점자가 단 두 명일 정도로 어려운 불수능.
<올해 수능 역대급 불수능, 만점자 단 두 명!>
<원서접수 치열해질 요망, 학원가 초비상!>
<논란의 수학 30번. 고교과정 벗어났나?>
<수많은 이의제기, 평가원의 입장발표는 언제쯤?>
희영이는 단숨에 유명인사가 됐다.
친한 친구들은 희영이를 향해 엄지를 연신 추켜세웠고,
몇몇 친구들은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진학부장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이 학교의 위상을 드높인 희영이를 칭찬했다.
학교에서는 희영이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려 추진 중이었다.
당연히 현수막도 제작했다.
아직 공식적인 성적표가 나오지 않아 걸지 못했을 뿐, 12월 초에 성적표가 발부되면 정문에 당당히 걸릴 예정이다.
아직 성적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 신문사와 방송사 인터뷰도 진행하지 않았다.
그저 성적발표일에 맞춰 스케줄만 잡아놨다.
‘돈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헤헤.’
왕호와 판박이가 따로 없었다.
공돈 생기는 일은 마다하지 않는다!
다녔던 종합학원에서도, 수기를 써주는 것을 대가로 장학금을 얻어냈다.
아직 성적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희영이는 자신했다.
‘실수는 없어!’
물수능인줄 알고 답안지 검토만 세 번을 했으니, 실수했을 가능성은 1%도 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실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불수능이니 입학에 영향은 거의 없을 거다.
수능 만점.
희영이는 기뻤다.
원하는 의대에 무조건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수석으로!
수석의 대가는 전액 장학금이다.
이제는 오빠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
‘내 약값도 과외해서 벌어야지!’
자신 있었다.
의대는 6년제다. 예과 2년에 본과 4년.
예과 2년은 아주 기초적인 과목을 배우는데, 수련병원을 선택할 때 예과 성적은 거의 있으나 마나다.
즉, 유일하게 놀 수 있는 시절이라는 뜻이다.
희영이는 이 시간을 다른 예과생들처럼 허비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과외를 해서 약값을 벌 거다.
수능 만점자가 과외를 하니, 다들 안심하고 맡기지 않겠나?
희영이가 기뻐하는 이유 중엔 수능 만점도 있었지만, 오빠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이유도 있었다.
-오빠! 약속대로 수능 만점 맞았으니까, 오빠도 꼭! 우승해! 그때 약속했잖아?
-희영아 우승은 좀··· 힘들다니까?
-에이, 수능 만점은 뉘 집 개 이름이야? 나도 힘들었는데 해냈잖아! 그 어려운 걸 안중근 후손의 순흥 안씨 집안이라면 해내야 하지 않겠어? 우승 못 하면 호적에서 파라고 엄마한테 얘기해봐야지.
-알았다 알았어. 대신,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푸흣!”
오빠의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희영이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오빠가 우승을 하던 못하던 그리 상관이 없다.
왕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자랑스런 자신의 오빠니까.
그냥 놀리는 것이 재밌었을 뿐이다.
눈누난나-
수능이 끝난 고3만큼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까?
내년 3월까지는 그야말로 자유시간!
무려 4개월!
희영이는 그동안 못해본 것들을 하기 위해, 친구들의 팔짱을 끼며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다.
학교도 오전수업만 하고 끝이다.
아니, 수업이라기보다는 그냥 학교에 도장 찍으러 나와서 각종 문화생활을 즐긴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번쩍번쩍- 찰칵찰칵-
정문을 나오자마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를 얻어맞아야 했다.
“뭐, 뭐예요?”
어리둥절했다.
“안희영 학생 맞으신가요?”
“명찰 보니까 맞네, 맞아!”
“오빠가 에이스 셰프 코리아 출연하는 안왕호 참가자 맞죠?”
“수능 만점 맞았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잠시,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오빠의 컵케이크 어땠습니까?”
가십거리를 쫓아다니는 기레기··· 아니, 기자들이었다.
안희영은 당황했다.
수능 만점 인터뷰는 이미 약속을 다 잡아놓은 상태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수능 만점 인터뷰는 아닌 듯싶었다.
오빠의 이름을 자꾸 꺼내는 것을 보니, 오빠와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담 도망쳐야지!’
괜히 입 열었다가 오빠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희영이는 소미와 혜진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친구들은 그 눈빛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눈빛만으로 대화가 가능할 만큼 소울 메이트인 그들이었다.
“에잇!”
희영이가 갑자기 기자들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어어! 학생!!!”
기자들이 쫓아가려 했지만, 소미와 혜진이가 길을 막아섰다.
그렇게 기레··· 기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낼부터는 쪽문으로 나와야겠네.’
*
인터넷을 달군 기사 중에는 불수능과 수능 만점자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뜻밖의 훈훈한 기사도 존재했다.
아니, 기사가 아니라 사진 한 장이었다.
제목은 <수능 지각생을 태워 준 푸드트럭!>
입실 2분 전, 푸드트럭이 여학생 하나를 실어다 준 사진이었다.
부끄러운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고사장을 향해 뛰어가는 여학생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댓글]
[-와, 훈훈하네요! 트럭 사장님 짱!]
[-요즘 시국에 보기 드문 의인이십니다!]
[-ㅋㅋㅋ 위에 틀딱인가? 의인이래ㅋㅋ]
[-하, 급식충 나대네. 의인 뜻은 알고 말하는 거냐? 의인 얼마나 좋냐?]
[-의인이 무슨 뜻인가요? 의리 있는 사람인가요? 으으으리!! 으으으인!! 의인?!]
[-잠깐! 근데 저 로고, 왕호네 밥차 로고 맞죠?]
[-헐! 진짜네? 와, 안왕호 참가자 인성까지 미침···]
[-인성갑 사냥갑 요리갑 삼위일체 지렸다······.]
[-ㅋㅋㅋㅋ그럼 의인 요리사네. 의인이다! 의인이 나타났다!]
졸지에 ‘의인’이라는 말이 왕호의 별명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방송을 켜도 녹화한 영상을 편집해 올려도, 항상 [-의인이다!]라는 댓글이 유행처럼 올라왔다.
아마, 사진에 찍힌 구희선 학생이 문과 수능 만점자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면 더더욱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왕호의 호감도가 더욱 상승했다.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호감도 없어 보였다.
이런 상태에서, 본선 1차 2차 3차 미션의 김성오 3연속 1등은 크나큰 파장을 낳았다.
1차 미션의 결과도 수긍하지 못하고 게시판이 난리가 났는데, 2차 3차 연달아 왕호가 2등을 하니···
아주 제작진과 심사위원은 욕이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있었다.
물론, 1차 때의 격한 반응으로 재빨리 4차 미션에서 왕호에게 정상적인 심사를 했지만,
이미 녹화는 3차까지 진행되어 있어 돌이킬 수 없었다.
다행히, 4차 미션에서 왕호가 1등을 해서 거의 궐기와도 같았던 시청자들의 의견을 조금 잠재울 수 있었다.
근데, 이 4차 미션의 방송 내용이 기가 막혔다.
가족애가 물씬 느껴지는 동생을 위한 따뜻한 컵케이크.
심금을 울리는 감동적인 인생 스토리.
지친 수험생들을 격려하는 마지막 멘트!
그리고··· 약자들을 조원으로 뽑아내는 미덕까지!
시청자들도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존속살인 같은 흉흉한 뉴스만을 접하던 대중들에게, 이런 따뜻한 가족애는 차가워진 날씨마냥 얼어붙은 마음을 살살 녹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그 요리를 먹은 동생이 수능 만점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니, 기자들이 희영이의 학교까지 찾아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
방송국 회의실 안.
예능국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똥이라도 씹은 것 같은 꾸깃한 표정을 지으며 문 PD를 바라보았다.
문 PD도 골치가 아픈지, 한 손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국장이 무거운 투로 말을 꺼냈다.
“아주 안왕호 그 친구 거의 우승확정 분위기야? 엉? 대체 연출을 어떻게 하길래, 이 정도도 수습을 못 하나?”
국장의 윽박에 문 PD의 표정도 잔뜩 구겨졌다.
“안왕호 그 친구도 박하진이 속한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처음부터 악마의 편집을 배제했었는데, 워낙 실력이 압도적인 터라······. 대신 시청률은 최고를 찍었습니다. ppl도 더 많이 들어왔고요.”
“하, 그건 호재지만 약속은 어찌할 건가? 플라톤과 연결된 계약이 몇 갠 줄은 아나? 게다가 이미 돈까지··· 크흠!”
“일단, 이번 주 결과로 시청자들의 불만이 줄어들긴 했지만 다음번에도 납득 못할 1위가 주어진다면, 역풍이 심하게 불 것입니다. 하여··· 지금이라도 공정함을 찾는 것이··· 안왕호 그 친구 심성도 괜찮고 실력은 더 볼 것도···”
쾅-!
열 받은 국장이 테이블을 내리쳐, 문 PD의 말을 끊었다.
“공정함?! 그 참가자 자질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자네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몰라? 방송국에 이득이 되는 연출을 하라고 있는 거네! 지금은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대중들 성향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레밍이나 다름없네. 다른 관심 건네주면 다 식게 되
어 있단 말이야!”
“여론이 더 나빠지면, 그게 방송국에 더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심사위원들도 더 이상은 편파판정 못 하겠다고 성화를······. 자기들 레스토랑의 손님도 줄어들고 이미지도 안 좋아진다고···”
“허! 다 알고 수락했으면서 이제 와서 딴소리를······. 그 친구들한테는 내가 따로 언질하겠네. 자네는 자네 일에나 집중하게.”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반응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서, 녹화 텀을 조정했습니다. 비축분을 만들지 않고 최대한 실시간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문 PD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방송계가 더럽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도 그곳의 일원이었으니까.
그 추악함을 견뎌냈기에, 이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무조건 자신들 호주머니 챙기기에 바쁘지.’
뭐 그건 어딜 가나 그러니, 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 불어오는 안왕호 신드롬의 불꽃이 심상치 않았다.
왠지 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만약··· 계속해서 활활 타오른다면 방송국도 생각을 바꿔야 할 거다.
‘바꾸는 게 이득이라면 말이지.’
심란해진 문 PD는 수명과 맞바꾼 쾌락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딸깍-
담배로 옮겨붙은 이 라이터의 불은 담배가 다 태워지면 꺼질 거다.
“후우우~”
신드롬의 불꽃이 담뱃불처럼 꺼지는 불꽃인지, 백린처럼 꺼지지 않을 불꽃인지는 PD인 그도 예측할 수 없었다.
*
왕호는 요새 날아갈 것 같이 기뻤다.
희영이의 수능 만점 덕분이다.
당연히 기특했다.
게다가 동생이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 다름없다.
기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왕 갈 거면 서울대 의대지!’
만점이니, 희영이가 쓰는 원서는 자유 이용권이나 마찬가지!
어디든 쓰면 합격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최고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지금은 장사도 미친 듯이 잘 되니, 뒷바라지는 절대 걱정 없다.
물 들어올 때 노를 확확- 저어서, 나중에 희영이 대학원까지 보내줄 수도 있다.
존스 홉킨스 같은 곳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
히죽-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마치 자신이 세계 최고가 되는 것만 같았다.
왕호 자신은 유학도 못가고, 미슐랭 별도 구경하지 못했다.
‘물론, 아직 늦지 않았지.’
그래도 남들에 비해서 출발이 좋지 못했다.
희영이만은 그런 시행착오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기뻐 죽는 왕호에게도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하아~.”
왕호가 자신의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에셰코 게시판···
그 어느 곳을 들어가도 칭찬 일색이다.
원색적인 악플도 많았지만, 관심종자들의 그런 행동에 상처 입을 멘탈이 아니다.
왕호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온 인물이다.
강철 멘탈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제발 일반인들도 푸드트럭 가게 해주세요!]
[-맞아요 사장님! 제발 던전 밖에서도 장사하세요ㅠㅠ]
[-하, 너무 궁금하다 그 맛······.]
고민에 빠졌다.
지금은 던전에서 장사가 잘 된다.
그것도 무지 잘 된다.
게다가 ‘버프’라는 부가적인 요소도 있어서, 비싸게 팔린다.
같은 요리의 5배, 10배, 심지어 스무 배의 가격을 지불할 수 있겠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버프가 YES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일반인들 상대로는 불가능하다.
일반인들은 스탯이나 스킬형 버프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뛰어난 맛만을 찾아다닐 뿐이다.
벌떡-!
결심한 왕호가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래! 까짓거 일반 메뉴 팔면 되지 뭐.”
팬들이 이렇게나 원한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스타의 자질이 아니다.
싸인 거부하고 줄행랑치는 야구선수와 무슨 차이겠는가.
‘주말에만 밖에서 장사하자.’
왕호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주말에는 던전에 사람이 확! 줄어든다.
지금 왕호가 가는 던전의 레이더들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나쁘지 않다.
주말까지 레이드에 할애하지 않는다.
밖으로 놀러 다닌다.
즉, 주말에는 일반인들 상대로 장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소리다.
비각성자들은 오히려 주말에 외식하러 나오니 말이다.
결심한 왕호는 여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르- 딸깍-!
-오빠!
“여름아 뭐해?”
-저, 촬영 중이요! 지금 제 씬 아니라서 잠깐 쉬고 있어요. 헤헤, 무슨 일이세요?
“아, 내일은 강남역 가서 장사하려고. 공지 좀 올려달라고 전화했어.”
-오! 던전 밖에서 장사하게요?
“응, 하도 원하니까 해보려고.”
-대박! 강남역이면 저도 놀러 갈게요! 알았어요 지금 올릴게요!
“촬영하느라 힘들지? 페이지 관리 내가 할까? 아님, 희영이보고 관리하라고 할까? 걔 수능 끝나서 이제 시간 넘쳐나니까···”
-아니에요! 저 이거 재밌어요! 이것도 못할 정도로 바쁘진 않아요!
“매번 고맙네······. 지금 찍고 있는 거 개봉은 언제 해?”
-음··· 이거는 CG작업 거의 없어서 금방 나올 거예요. 정확한 날짜는 저도 몰라요! 촬영은 거의 막바지!
“하하, 시사회 하면 무조건 갈게! 당연히 초대할 거지?”
-그럼요! 어, 감독님이 저 부르네요! 나중에 또 통화해요!
통화를 마친 왕호는, 내일 있을 장사를 위해 준비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이 조금 많이 몰려올 것 같았다.
준비를 많이 해놔야 한다.
비각성자의 숫자는 각성자에 비해 월등히 많다.
*
다음 날 아침.
“뜨억······!”
강남역으로 나온 왕호의 입가가 쩍! 벌어졌다.
우글우글--
사람이 많았다.
엄청 많다. 진짜 많다.
좀비 떼마냥 우글거린다.
그리고 그들은···
“어! 밥차 떴다!”
“꺄악! 왕호 오빠! 저 7시부터 나와서 기다렸어요!”
“저는 6시요!”
모두가 왕호를 기다리는 손님들이었다.
< 주방의 규율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