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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97화 (97/149)

< 빛이 있으라 (1) >

*

왕호는 새로이 태어난 옵티머스를 몰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에셰코 조별 미션을 위해 두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동안 간간이 짬을 내서 만나왔었다.

김점례 아주머니와 강산이.

이 둘과는 미션을 위해 여러 번 만난 상황이다.

“오메오메! 겁나 신기하네요이~ 주방이 허벌나게 넓어져브써!”

김점례가 옵티머스의 내부를 둘러보고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전남 담양 출신의 김점례 아주머니는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잘나가는 한정식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었다.

아주머니의 손맛이 어찌나 좋았던지, 어느 날 식당을 프랜차이즈화하자며 양복 멀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접근했다.

자고로 겉이 번지르르한 사람은 잘 믿지 말라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무려 아들만 넷인 터라, 욕심이 동했다.

아들내미들 장가 밑천은 톡톡히 벌어놔야 하지 않겠나.

손주들 장난감도 사주고 노후 들어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려면 돈을 많이 벌어놔야 했다.

잘 되면 식당도 하나씩 물려주고 말이다.

그 욕심 때문에 크나큰 경험을 겪어야 했다.

인생경험.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당한 뼈아픈 경험.

그동안 장사하면서 모은 모든 돈과, 식당을 저당으로 잡아놓은 대출금을 모두 날려버렸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래 불행은 연달아서 찾아오는 법.

아주머니의 사정이 어려워진 것을 안 식당 건물주가, 아주머니를 쫓아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식당을 새로 차렸다.

마치 리모델링하듯이 속여, 원조 맛집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 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왕호는 이 사연을 듣고 무척이나 가슴이 아려왔다.

왕호네 집안이랑 상황이 얼추 비슷했다.

왕호네 어머니도 분식집을 운영하다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했다.

그래도 김점례 아주머니는 잘나가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자식 교육만큼은 철두철미하게 챙겼다.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 아주머니의 철학이었다.

해서, 지금은 서울에 있는 큰아들 집에서 생활 중이다.

잘 배운 아들들은 어렵지 않게 생활한다.

덕분에 아주머니는 자식들이 주는 용돈을 받으며, 편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어머니 입장에서 그게 과연 편하겠나?

금쪽같은 새끼들 장가 밑천은 하나도 못 해주고, 며느리 불편하게시리 아들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물론, 장인의 손맛을 살려 밥을 맛있게 차려주고는 있지만 그것 가지고는 마음의 짐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자존감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예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분식집 아지매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아들들도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에셰코에 지원했다.

운 좋게 1등 하면 상금 3억으로 식당을 다시 차리면 되고,

설령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높이 올라간다면 자존감이라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김점례 아주머니에게 지금 에셰코 Top6는 가히 행운과도 같았다.

지금 당장 떨어지더라도 여한이 없을 정도였다.

“왕호 총각 참말로 대단허이! 우리 착한 총각 장사 잘 돼서 주방도 넓히고 참으로 보기가 좋네요잉!”

김점례 아주머니가 마치 자신의 막내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왕호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지금의 조별미션 전에도, 왕호가 솔찬히 도움을 많이 줬었다.

카메라에 비춰지지 않았을 뿐,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왕호의 도움도 한몫 있었다.

“넓어졌으니까 연습하기 더 편할 거예요. 열심히 해서 유학파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죠!”

“오호홍! 내가 딸이 있었으면 딱! 사우 삼고 싶은데 겁나 아쉬워라잉.”

구수한 아주머니의 웃음에, 옆에 있던 강산이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주방이 넓어진 것을 그리 체감할 수 없었다.

“하핫, 주방이 넓어졌으니까 이제 덜 부딪히겠네요!”

강산이는 시각장애인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완전한 전맹은 아니다.

왕호도 처음엔 강산이가 앞이 아예 안보인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아주 뿌옇게나마 빛을 식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안내견은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

엄청 가까이서 봐야 하긴 하지만, 실루엣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만약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다면, 요리를 깔끔하게 접었을 거다.

왕호는 이들과 다가올 미션을 위한 메뉴를 개발하고 있었다.

“오늘 메인 메뉴만 기똥차게 만들면 끝나겠네요.”

주섬주섬-

소매를 걷어붙인 왕호가, 식재료들과 도구들을 안전하게 배치했다.

“근데, 왕호 총각이 말한 그 고급 코스요리 미션이 안 나오면 워떡한다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조건 나올 거예요. 딱 지금 나올 타이밍 됐으니까요.”

왕호는 웃으며 조원들을 안심시켰다.

다가올 조별 대결의 미션은 고급 코스요리다.

왕호는 문 PD에게 들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이거, 뭐 문 PD가 알려줬다고 사실대로 알려줄 수도 없고······.

여튼, 앞선 만남에서 코스의 메뉴를 모두 정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메인 요리만 빼고.

사실, 이 미션은 플라톤 측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간 미션이다.

김점례는 한식 이외는 젬병.

그래서 고급 레스토랑 요리로 압박을 넣었다.

강산이는 눈이 불편한 터라, 음식을 빠르게 조리할 수 없다.

그래서 그 미션에 코스요리를 더했다.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왕호는 발상을 전환했다.

한식이라고 해서 고급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못하리란 법이 있나? 고급 한정식집도 버젓이 있는데.

그래서 고급스런 한식 메뉴로 코스를 개발했다.

속도가 느린 것도 그리 문제 되지 않는다.

왕호가 손이 빠르다. 왕호가 2인분을 맡으면 된다.

거기에 고급 플레이팅까지 도맡기로 했다.

대신, 미각이 뛰어난 강산이는 간을 보기로 했다.

철저한 역할분담!

한정식은 한 상에 차려지는 반찬의 수가 엄청나다.

특히 남도 한정식은 상다리 그냥 부러진다.

반찬만 50가지가 넘는다.

왕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했다.

코스요리는 코스요리인데, 그 코스를 말도 안 되게 늘려버렸다.

무려 15번의 코스!

한꺼번에 음식을 내오는 한정식이 아니라, 코스요리처럼 차례차례 내오면서 모든 반찬에 두루두루 힘을 싣게 하려는 속셈이다.

먼저, 연녹색의 미나리즙으로 속을 편하게 한 다음

육회말이로 입맛을 돋운다.

이어서 토마토 절임을 곁을인 문어 숙회가 나오고,

굴찜.

임금님이 먹던 타락죽.

게살 냉채.

전복찜.

연근을 곁들인 금태구이.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숙성한 굳힌밤꿀.

배 물김치.

매실 무 장아찌.

명이나물과 배추겉절이가 차례대로 나온다.

여기까지가 열두 번의 코스다.

남은 것은 두 개의 메인 코스와, 한 번의 디저트 코스뿐.

디저트 코스도 저번에 정해놓았다.

단팥양갱과 잣을 올린 약밥. 그리고 전통약과와 생강청을 뿌린 두유묵. 마지막으로 뜨뜻한 연근차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것까지 해서 15번의 코스 완성.

아마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입도 쩍! 벌어질 거다.

상상도 못 한 압도적 코스임이 분명하니까.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김점례가 제공했다.

왕호도 처음 보는 한식들이 많았다. 눈이 다 돌아갈 지경이었다.

아주머니에게 많이 배웠다.

‘역시, 재야에 고수들이 많구나.’

세 사람은 음식을 마구 만들면서, 서로서로 아이디어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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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야 하는 메인 코스는 두 가지.

“첫 번째 메인은 떡갈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님 노하우도 있고, 비주얼도 좋죠. 이거만 나오면 심심하니까 더덕구이를 곁들이구요.”

“저도 찬성! 이때까지 먹어본 것 중에서는 떡갈비가 제일 맛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머님이 빚으시니까 완전 고급스럽던데요?”

강산이가 왕호의 의견에 동조했다.

“오호홍. 젊은 총각들이 칭찬해주니 솔찬히 좋구마잉. 역시 떡갈비는 담양이제! 그럼 두 번째 메인은 뭐로 하는 게 좋을까다냐?”

그건, 왕호가 생각해둔 아이디어가 있었다.

“저희가 그동안 한식을 코스화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잖아요. 근데 한식 하면 우리가 평소에 먹는 가정식을 빼놓으면 안 되죠. 그래서 메인 요리는 가정식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가정식?”

두 사람이 흠칫 놀랐다.

고급 코스요리에 가정식을 융합한다?

“한국인은 밥심! 그동안 개발한 메뉴를 잘 버무리면 확실히 승산 있습니다.”

“따로 생각한 메뉴가 있습니까?”

강산이가 물었다.

“밥은 곤드레밥으로, 국은 날이 점점 추워지니 따뜻한 황태콩나물국으로! 그리고 정갈한 반찬과 두부조림을 내는 겁니다.”

“오! 조합은 진짜 어머니가 해준 집밥 느낌 물씬 풍기네요.”

“오호홍. 그럼 싸게싸게 맨들어 봅시다잉!”

김점례는 잽싸게 밥을 지으려고 했으나, 왕호가 흥분해 있는 아주머니를 멈춰 세웠다.

“만들기 전에 잠시 제안드릴 게 있습니다. 오늘이 저희가 따로 만나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잖아요. 내일 있을 녹화가 끝나면 저희 조의 누군가가 탈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안요? 나? 아니면 산이 총각한테?”

“두 분 모두요.”

왕호의 대답에 두 사람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주방을 넓힌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주말에는 던전 밖에서 장사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서였죠. 주방보조를 쓰고 있긴 한데, 좀 더 전문적인 셰프가 필요합니다. 두 분께서 이 옵티머스··· 아니, 왕호네 밥차의 셰프가 되어주세요!”

“잉? 셰, 셰프요?”

아주머니는 눈을 똥그랗게 뜨며 놀랐고, 강산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다.

“지금은 주말에만 일하시면 됩니다. 두 분 다 아직 일하는 곳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드리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푸드트럭 요리만 판매하고 있지만, 이동식 식당을 달아 고급 메뉴도 팔 생각이에요! 식당은 조만간 추가될 예정이구요!”

“오메오메···”

“시급은 제가 일했던 레스토랑 셰프 수준으로 쳐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커나갈 왕호네 밥차 비전이 작지 않습니다. 어머니와 산이 씨와 함께 이루고 싶습니다.”

“왕호 총각······.”

김점례는 상당히 감동한 듯한 눈빛이었다.

비록 예전에는 한식당 사장이었다지만, 지금은 늙어버린 주부에 불과하다.

그런 자신에게 같이 일하자니.

그것도 셰프로서······.

김점례는 도저히 거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아니, 거부는커녕 정말로 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요리 장사를 다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에게도 떳떳해질 수 있다.

다시 예전처럼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꼬옥 쥐어줄 수 있다. 지금은 다 커서 받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에는 한없이 챙겨주고 싶은 새끼들이다.

어미새는 언제까지고 어미새다.

아주머니의 자존감은 이 제안을 받는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승했다.

“총각! 아니, 사장님! ···해야제! 당연히 해야제. 참말로 고맙지라······.”

김점례가 왕호의 손을 꼬옥 쥐며 말했다.

“고맙긴요! 제가 다 고맙죠. 어머님 손맛은 남도 제일··· 아니, 한국 제일 아닙니까!”

왕호도 아주머니의 손을 살포시 맞잡았다.

아주머니께서 힘을 보태준다면,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다.

다희가 주방보조로 도와주긴 하지만,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타워 디펜스 하듯 몰려오는 손님들을 꼼꼼히 케어할 수 있고, 트레일러까지 붙는다면 요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김점례는 한식에 관해서라면 왕호보다 한 수 위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양식은 가르치면 된다. 아주머니는 손맛이 깡패라서 배우기만 한다면, 맛은 보장이다.

왕호는 고개를 돌려 강산이의 대답도 기다렸다.

강산이는 아직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산이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 했다.

‘왜? 나 같이 쓸모없는 요리사한테 왜?’

한참을 생각하던 강산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저한테 왜 그런 제안을··· 저는 앞도 잘 안 보이고, 도울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잖습니까······.”

“대신 미각이 뛰어나잖아요.”

왕호는 강산이의 미각에 혀를 내둘러야 했다.

강산이는 시력이 망가진 대신, 미각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애초에 요리사일을 할 만큼 뛰어났던 미각이었지만, 눈을 다치고 나서 미각의 경지가 더 올랐다.

뇌의 보상작용이었다.

그렇다.

강산이는 처음부터 소경이 아니었다.

사고로 인해 시신경이 손상됐다.

현대의학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는 시신경의 손상.

하지만 고레벨의 힐러라면 고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왕호는 그동안 강산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잘하면··· 고칠 수도 있다!’

< 빛이 있으라 (1)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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