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될놈은 그냥 되지 않는다 (1) >
장 클로드 카셀Jean Claude Cassel
프랑스 출신의 권위 있는 요리 평론가이자 맛칼럼니스트다.
그가 하나의 칼럼을 게재했다.
플라톤 측의 개수작을 단번에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칼럼을 말이다.
그동안 플라톤 호텔에서는 왕호네 밥차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장해왔다.
영향력 있는 파워 블로거들, 다수의 요리 평론가들을 매수해 플라톤과의 비교 칼럼을 기고했다.
왕호의 요리를 직접 먹어본 플라톤 호텔 측 입장에서는, 이러한 여론몰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성오로는 게임이 안 돼! 아니, 우리 플라톤 수준에서도 게임이 안 돼!
실력으로는 비빌 수 없으니, 들끓는 여론이라도 뒤바꿔보려는 속셈이었다.
에셰코를 시청하는 사람 중, 왕호네 밥차에 직접 가보는 이들은 극히 일부다.
그네들이 아무리 왕호네 밥차의 클래스를 플라톤보다 높게 평가해도, 권위 있는 맛칼럼니스트들의 말 한마디면 깨갱하게 되어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있다.
일반인들은 속칭 ‘좆문가’이며, 자기네들이 섭외한 이 칼럼니스트들은 ‘전문가’이니까.
그런데···
그 맛칼럼니스트들의 위신이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다.
장 클로드 카셀 때문이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으아아아!!!”
분노를 참지 못한 고효광이 무선 마우스를 거칠게 집어 던졌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이지만, 거하게 취한 술기운이 그의 자제력을 저지했다.
콰작-!
벽에 부딪힌 마우스가 단번에 깨져나간다.
후두둑-
그 여파로, 마우스 안에 있던 AAA알칼라인 건전지 두 개가 힘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 클로드 카셀의 권위는, 이제까지 글을 기고했던 평론가들을 모두 씹어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압도적 권위.
압도적 위신.
애초에 카셀은 대한민국에만 국한된 평론가가 아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요리 평론가다.
아시아에서 그가 해야만 하는 역할이 있기에, 대한민국에도 가끔 들르는 것이다.
그런 그가 왕호네 밥차의 요리를 ‘호평’했다?
어거지로 왕호를 내리 까던 모든 블로거들과 자칭 평론가들의 글은 이제 죄다 쓰레기통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씨바······.”
장 클로드 카셀의 의견에 반대해 악플을 달았던 자신도, 졸지에 수준 미달로 내려앉게 생겼다.
갑자기 술이 확! 깬다.
‘들키기 전에 지워야 해!’
누가 구글링이라도 해서 자신의 계정인 걸 밝힌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개망신이다.
이상한 꼴 나기 전에 수많은 악플을 다 지워야 했다.
고효광은 컴퓨터 의자에 다시 앉아, 악플을 지우려했다.
그러나···
“으아아아악!!!”
마우스가 없다.
*
장 클로드 카셀은 도쿄에서 소문난 레스토랑과 숨어 있는 맛집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맛집 탐방.
그리고 칼럼 게재.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업무였다.
남들이 들었다면, 호오 그것 참 꿀 빠는 직업이오? 라고 하겠지만 이것도 고충이 상당한 직업이다.
따르르릉-
카셀의 전화기가 울린다.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국제전화다.
코리아.
“미스터 킴?”
-헬로 카셀!
수화기 너머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허나, 발음만큼은 상당히 한국적이다.
“어쩐 일이오? 어디 좋은 레스토랑이라도 발견 했소?”
-하하, 아주 화젯거리인 식당 하나가 있습니다. 와서 칼럼 하나 쓰시지요.
“오호, 그곳이 어딥니까? 한국에는 가본지가 꽤 오래된 것 같소이만.”
-왕호네 식당이라고 있습니다.
“왕호네 식당? 흐음···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저번에 제가 말씀드린 몬스터 요리 파는 푸드트럭 기억하시죠?
“아! 당연히 기억하오만. 몬스터 요리를 푸드트럭에서 판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소.”
-바로 거깁니다.
“허나, 거기는···”
전화를 받은 카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전에도 미스터 킴이 이 푸드트럭을 추천해줬다.
하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긴 식당이 아니다.
카셀은 요리 평론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요리가 만들어지는 식당 자체를 평론한다.
요리의 맛 뿐만 아니라, 식당의 분위기와 종업원, 심지어 요리사의 상태까지 확인한다.
푸드트럭에서 괴수를 요리한다는 것은 매우 신선했으나, 식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평론할 수가 없었다.
“거기는 식당이 아니지 않소.”
-하하, 식당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이제는 엄연한 ‘식당’입니다. 보면, 깜짝 놀라실겁니다.
“호오, 정말이오? 그럼 내 당장가겠소.”
재빨리 전화를 끊은 카셀은 곧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갑시다.”
--------
흠칫-!
식당의 외관을 확인한 카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트레일러?’
푸드트럭 뒤에 딸린 트레일러가 바로 그 식당이었다.
마나석으로 공간을 확장시켰다는 문구가 영어로도 쓰여있었기에, 발걸음을 되돌리는 수고는 하지않았다.
줄은 꽤나 길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줄과, 테이크 아웃을 기다리는 줄 두 개가 있었다.
테이크 아웃을 기다리는 줄은 무척이나 길었는데, 줄어드는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엄청난 회전율이야.’
덕분에 식당으로 들어가는 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은, 테이크 아웃을 해가면 됐으니 말이다.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자 카셀의 눈이 이채로 반짝 빛났다.
‘정갈하군.’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내부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애초에 외관이 트레일러라서 기대를 안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조명은 은은했지만, 내부 장식이 빈약했다.
그리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다.
허나, 나쁘지 않다.
바꿔 생각해본다면 언제든지 고급스러워질 수 있다는 소리기도 하다.
‘자본이 그리 많지는 않았나보네.’
그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아무래도 이 트레일러 자체를 인챈트 하는 데 비용이 많이 소모됐을 거다.
고작 푸드트럭의 수입으로는, 내부까지 호화스럽게 만들기란 요원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어설프게 고급화 하려는 것보다는 점수를 더 주고 싶었다.
인테리어야 수익이 많아지면 그 때 하나씩 업그레이드 해도 충분하니까.
카셀이 들어오자, 한 종업원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웰컴~!”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낯선 서양인을 보고 살짝 놀라하더니, 망설임 없이 어설픈 영어를 내뱉었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깔끔하게 정리된 테이블에 착석했다.
“메뉴 초이스! 앤 콜미! 오케이?!”
어설프지만 자신감 있는 웨이트리스의 귀여운 행동에, 카셀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웨이트리스가 떠나자, 카셀은 품속에서 노란색 수첩을 꺼내 들었다.
여기에 자신이 느낀점을 기록할 거다.
메뉴의 종류와 조합의 상태.
식당의 분위기와 종업원의 친절도.
요리의 맛과 플레이팅.
마지막으로 요리사의 청결까지도 전부.
메뉴판을 펼치니, 수많은 메뉴가 눈앞으로 쏟아졌다.
영어로 메뉴가 적혀있어서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다.
‘럭셔리 코리안식 코스라. 코스가 상당히 길군, 오늘은 이걸로.’
맛있으면 또 올 거다.
칼럼 기고 말고도 할 일이 하나 더 있으니까.
카셀은 아까 그 웨이트리스를 불러 이 메뉴를 주문했다.
만약 카셀이 한글도 읽을 수 있었다면, TV프로그램에 나왔던 그 코스 메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거다.
카셀이 주문한 메뉴는 에셰코 미션으로 개발했던 바로 그 코스 메뉴였다.
.
.
.
“으흐음···”
카셀은 계속해서 나오는 코스를 맛보며, 은은한 미소를 내지었다.
그리고 노란 수첩에 맛을 느낀 그대로 적어내려갔다.
코스는 화려했으며, 길었다.
그리고 이국적이었다.
한국 전통의 맛을 그대로 맛볼 수 있었다.
화려하다는 것은, 평론가가 보기에 단점이 되지 않는다.
화려함을 쫓으려다 맛을 버리지 않는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코스는 맛까지 확실히 사로잡았다.
코스가 길다는 것은, 프랑스인인 카셀에게는 무엇보다도 칭찬거리였다.
정통 프렌치 코스의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요즘 점점 간편화되는 코스에서는 느끼기 힘든 그런 프렌치 감성이다.
먹는 내내 불편한 점도 그리 없었다.
손님들은 식당 안에 꽉꽉 들어차있었으며 그들이 내뱉는 소리는 시끄러울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사일런스 마법까지 인챈트했다니, 정성까지 대단하군.’
테이블 사이사이로 대화 소리가 거슬리지 않게 마법이 인챈트 되어있었다.
공간 확장까지는 그러려니한다.
몇몇 식당들도 그렇게 하니까.
하지만 이런 소소한 부분은 칭찬해줄만 했다.
인챈트 비용이 더 소모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인챈터를 부려야 한다. 당연히 마나도 더 많이 소모된다.
이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오너 셰프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정도 사소함이야 그냥 무시하면 되니까.
후식까지 깔끔하게 먹은 카셀은 종업원을 다시 호출했다.
“맛있게 드셨나요?”
이번엔 소녀가 웃으며 완벽한 문장을 구사했다.
어디서 번역기라도 돌리고 온듯싶었다.
카셀은 그런 소녀를 바라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막내 딸의 모습을 모는 것만 같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요리사를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카셀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영어 듣기는 기가막히게 잘하는지, 소녀는 바로 알아듣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깔끔한 차림의 남자 셰프 하나가 카셀 앞으로 찾아왔다.
왕호였다.
요리의 신선함, 그리고 주방의 청결함은 요리사의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왕호가 입고 있는 새하얀 요리사복과 모자는, 방금 드라이클리닝을 한 것마냥 뽀얗기 그지없었다.
청결까지 군더더기 없다.
“맛있게 드셨습니까?”
왕호의 입에서 믿을 수 없을만큼 완벽한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억양이며 뉘앙스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순간 눈앞의 낯선 동양인을 자신의 고향인 리옹 출신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맛있게 먹었소. 프랑스어가 완벽한데 혹시, 프랑스에서 유학했었소?”
“그건, 아닙니다. 유학은··· 저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군요.”
“허, 거참 신기하오. 타지 사람이 이렇게나 우리말을 잘 사용하다니······.”
“하하, 편법 좀 사용했습니다. 헌데, 저는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혹시 요리가 마음에 안드셨나요?”
“어이구, 그건 아니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소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준 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불렀소이다.”
카셀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아시아 문화를 잘 아는 터라,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는 것을 잘 안다.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다 고맙습니다.”
“시간 뺏어서 미안했소. 그럼, 다음에 또 오리다.”
악수까지 나눈 카셀은, 기쁜 마음으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맛없는 요리를 먹고나서 평론하는 것은 그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맛대가리 없는 요리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맛깔나는 요리를 먹었다.
게다가 배까지 부르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카셀은 노란색 수첩을 집어 넣고는, 품속에서 또 다른 수첩 하나를 꺼냈다.
이번엔 빨간색 수첩이었다.
슥슥-
그리고 그 수첩에 왕호네 식당의 이름을 적었다.
‘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자주 와야겠군.’
이 리스트에 적힌 식당은 오랜시간 관찰해야 하는 식당이다.
이것이 그가 하는 두 번째 업무였다.
---------
장 클로드 카셀이 기고한 칼럼은 간단했다.
종업원이 친절하다.
분위기는 나쁘지않다.
요리는 기깔나게 맛있다.
플레이팅도 훌륭하다.
조합 또한 괜찮다.
요리사도 몹시 청결했다.
끝.
허나 이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카셀은 자신이 만났던 이 젊은 요리사가 요리경연 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사인 줄도 모르고 이 글을 작성했다.
화젯거리라는 것은 들었지만, 많은 요리 평론가들이 뒷돈을 먹고 왕호를 까내리고 있는 지는 몰랐다.
당연히 플라톤 호텔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카셀이 예전에 작성했던 칼럼을 찾아냈다.
플라톤 호텔을 겨냥한 혹독한 혹평.
자연스레 왕호를 칭찬하는 칼럼과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평론가들과의 권위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안봐도 비디오였다.
장 클로드 카셀이 올린 이 하나의 칼럼은, 왕호가 옵티머스를 업그레이드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하나의 나비효과였다.
*
인터넷 최대 포털 사이트 메인에, 한 영화의 배너광고가 올라왔다.
마우스를 갖다대면, 큼지막한 프로모션 영상이 틀어지는 그런 광고다.
이런식으로 영화를 홍보하는 방식은 으레 있어온 방식이다.
이번에 올라온 영상은, 내년 여름에 개봉할 블록버스터 영화의 선공개 장면이었다.
<던전 베테랑2 액션 시퀀스 선공개! - 무편집, 무보정, 원테이크!>
배급사에서 널리 홍보를 해주니, 사람들 또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오! 던전 베테랑2 선공개 영상 떳네?”
“역시 던전 베테랑은 액션 씬 아니냐? 몬스터 상대로 원테이크? 미쳤다···”
“와, 이 사람 뭐야? 액션 진짜 멋있네. CG 안 쓰고 저런다고? 각성자들은 원래 다 저래?”
“각성자들이 다 저러겠냐? 전문 액션 각성자 배우인가 보지. 어디 액션스쿨 원장님 아냐?”
“잠깐! 저 사람 복장이 요리사 같은데···”
“어? 진짜네? 요리사, 식칼, 프라이팬··· 헉! 설마?”
“설마?”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다.
< 될놈은 그냥 되지 않는다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