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오급 (1) >
*
“셰프! 꼭! 우승하고 와요!”
이제는 상당히 친해진 강산이가 응원을 보냈다.
그의 눈은 정확히 왕호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하, 고마워. 눈은 좀 어때?”
“아직 흐릿흐릿한데, 셰프 있는 곳은 확인할 수 있어요. 물론, 사람 구별은 아직까지 목소리로 해야 하지만.”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내가 뭐랬어, 완전히 손상된 게 아니라서 회복할 수 있댔잖아.”
“고마워요 솊. 이 은혜는 평생 갚겠습니다. 충성충성충성!”
강산이가 오바스럽게 경례 모션을 취하자, 왕호는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충성은 무슨··· 랭커 힐러였으면 한 방에 고쳤을 거야. 물론, 돈이야 많이 들었을 테니까··· 그 돈값 뽕 뽑을 때까지 부려먹을 거다.”
“흐흐, 여기서 일하는 거 재밌는데 솊이 나가라도 해도 껌딱지처럼 붙어있을 겁니다. 밖에서 장사하는 날 좀 더 늘려주세요. 주말만 하려니까 심심해서 원······.”
“재료 구하고 나도 레벨 올려야지.”
“그나저나, 무조건 우승이겠네요. 김성오 그 친구보다 셰프 실력이 10배는 더 좋으니까.”
“우승은 실력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산이야. 다 운이 좋아야지.”
왕호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강산이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우승을 기원하고, 응원했다.
희영이, 다희, 여름이, 나동수, 상문이, 김점례 아주머니 등등···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지원이와 강창모도 응원메세지를 보냈다.
종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아들~! 가서 맛있는 요리 재밌게 만들고 와!
청주에 있는 어머니하고도 통화를 나눴다.
아마 요새 새벽기도도 나가시는 것 같았다.
수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냈지만, 그 누구에게도 진실을 알려주지 못했다.
추악한 뒷얘기를 알려주는 것보다, 차라리 실망감을 안겨주는 것이 더 나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아마··· 이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을 거다.
이미 자신을 충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으니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머니 말처럼 하고 싶은 요리나 실컷 하다 오자!’
*
결승전은 라이브로 진행된다.
악마의 편집에 의한 조작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소린데, 어차피 애초에 우승자를 정해놓으면 되는 아주 의미 없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티비 속에 나오는 음식을 직접 맛볼 수야 없으니,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믿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문자투표도 어불성설이다.
노래처럼 시청자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그래도,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100명의 국민평가단이 심사위원들과 함께 심사를 진행한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아, 남녀노소 연령별로 정해진 숫자만큼 랜덤으로 샘플링된 사람들이다.
심사위원 결과 70%, 현장 국민평가단 결과 30%를 합산해서 우승자를 뽑는다.
결승전을 위해 설치된 화려한 세트장.
왕호는 200개가 넘는 눈이 지켜보고 있는 그 세트장 위로,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즐기는 마음으로 나오긴 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생각한 대로만 하자.’
계획한 대로만 이끌어가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요리.
그 요리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잘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미션의 내용은 문 PD에게서 이미 들었다.
‘내 이름을 걸만한 고급 코스요리라······.’
조별 미션과 별다를 것이 없는 미션이다.
다른 점을 굳이 꼽자면, 오직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것과 스스로의 이름을 걸 만큼 퀄리티 있는 요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미션의 컨셉 자체가 “고급”이다.
고급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어차피 우승은 못 하니, 제대로 즐겨주지.’
메시지 있는 요리를 만들 생각이다.
고급의 허상을 그대로 부숴버리는 요리.
요리에 대한 환상,
요리에 대한 편견,
요리에 대한 착각을 그대로 산산조각낼 작정이다.
맛과 비주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말이다.
아직 생방송에 불이 켜진 상태가 아니라, 준비를 먼저 마친 김성오가 왕호 쪽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후~ 긴장되는 구만. 야! 잘 해보자!”
김성오의 표정이 상당히 비장하다.
잔뜩 굳어있는 김성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긴장했어? 어차피 네가 우승할 텐데. 수상 소감은 잘 짜왔냐?”
“응? 뭔소리야··· 아, 문 PD님이 얘기 안 해주디?”
“얘기? 무슨 얘기?”
“하, 진짜 모르나 보네. 하긴, 모르는 게 더 서프라이즈겠다.”
김성오의 맥없는 소리에 왕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왕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공정한 심사를 진행할 거라는 것을.
반면에, 김성오는 그 사실을 이미 전해 들은 상황이다.
실력 차이가 워낙 극심하니,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쨌든 성오 너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내가 괜히 널 여기 끌어들인 것 같다. 그때 동문회에서부터 이미 진 게임인데······. 너 안 왔으면 내가 당연히 우승··· 에이, 아니다!”
“괜히 끌어들이긴, 나 없었으면 너 분명 SNS에 똥글 싸서 중도하차했을 수도 있다. 누가 말했잖냐, SNS은 인생의 낭비라고.”
“크크. 하긴, 너 땜에 요새 클럽도 못 가고 자중하고 있다. 내 애마도 안 탄 지도 꽤 됐고.”
“인생 즐기는 것도 좋은데, 요리할 수 있을 때 많이 해둬라. 내가 볼 땐 네 성장 가능성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상인 것 같으니까.”
왕호가 김성오의 어깨를 토닥였다.
김성오에 비하면 왕호는 여유가 흘러넘치는 수준이었다.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김성오가 말을 걸어준 탓에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김성오가 제자리도 돌아가고, 메인 심사위원인 케빈 오가 마이크를 잡으며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오늘! 올해의 대한민국 에이스 셰프가 선정됩니다. 미래의 에이스 셰프의 요리를 맛보기 위해, 100분의 국민 심사위원들도 몹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네요. 과연 어떤 참가자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자신의
이름을 건 고급 코스요리입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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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생방송으로 요리경연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또다시 놀란다.
“이번엔 또 뭐야?”
“생닭 꺼냈어!”
“설마 치킨?”
“치느님? 와 리얼 서민 대표시네!”
“무슨 코스요리에 치킨이야. 아니겠지.”
“지금까지 나온 거 보면 충분히 가능한데? 완전 서민 스타일이여!”
왕호가 꺼낸 것은, 생닭.
고급 코스요리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재료다.
닭은 명백하게 서민 음식이다.
특히 치킨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요리.
호불호를 가르면 전부 호로 넘어간다는 요리.
요새 치킨값이 점점 비싸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닭값이 비싸서가 아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횡포일 뿐이다.
왕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말로 치킨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것도 순살 치킨.
고급 코스요리에 치킨이 나온다?
호텔 레스토랑에선 볼 수도 없는 메뉴다.
‘치킨이 얼마나 맛있는데!’
솔직히 맛으로 따진다면, 가히 천상계의 요리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얼마나 맛있으면 숱한 명언들이 존재하겠는가.
-인생은 치킨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믿음, 소망, 치킨. 그중에 제일은 치킨이다.
-웬만한 슬픔은 치킨으로 승화된다.
-치킨을 먹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치킨을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icken)이다.
하지만, 서민 음식이라고 폄하 당한다.
그렇다면 ‘고급’의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세계 3대 진미라 일컬어지는, 트러플, 캐비어, 푸아그라.
이것들이 치킨보다 맛있을까?
결코 아니다.
풍미가 뛰어나긴 하지만, 엄청난 ‘희소성’으로 인해 부풀려진 환상에 불과하다.
인간의 허영이 만들어낸 거짓부렁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15만 원이 넘는 푸아그라 요리가, 퇴근하는 아버지가 사 오는 통닭 한 마리보다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연 그럴 수 있는가?
만약, 닭이 저것들보다 귀한 재료였다면 치킨이 당당히 3대 진미에 들었을 거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왕호는 이 고급의 허상을 그대로 부숴버리고 싶었다.
어차피 우승은 물 건너갔으니,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충분히 주변에 있는 재료들로도 고급스런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오히려 맛까지 더 뛰어난 고급 요리가 탄생할 거라고 말이다.
왕호가 만든 에피타이저들부터가 그 취지에 걸맞았다.
‘단호박 스프’와, ‘유자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
누구나 쉽게 만들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물론, 이것만 달랑 내놓았다면 천하의 왕호라 할지라도 우승은 물 건너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법!
왕호는 자신의 높은 손재주를 사용해, 역대급 플레이팅을 이끌어냈다.
한 접시 한 접시에 담긴 양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올법하게 매우 소량이었다.
적게 담아야 예쁜 모양이 나온다.
또한, 배가 부르지 않아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
대신에, 데코레이션은 가히 예술이라 느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먼저, 단호박 스프.
눈처럼 하얀 스프 잔 속에 담긴, 제주의 유채꽃처럼 샛노란 단호박 스프.
그 위로 예쁘게 잘린 빵조각과, 솔솔 뿌려진 녹차 가루의 녹음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샐러드는 더욱 압도적이었다.
마치 오월의 신부가 들고 있을 법한 부케!
그 부케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플레이팅이었다.
형형색색의 각종 샐러드 채소가, 꽃꽂이 된 것마냥 완벽한 하모니를 내뿜는다.
그 위에 살짝 뿌려진 향긋한 유자 드레싱까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너무 맛있는데?”
“익숙한데, 진짜 맛있어!”
맛까지 기가 막혔다.
달달한 단호박 스프는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고,
상큼달콤 그 자체인, 향긋한 샐러드는 입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단호박과 유자청.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재료다.
어설프게 고급재료로 에피타이저를 구성했다면, 오히려 입맛을 망쳤을 거다.
참고로 김성오는 제주도산 뿔소라에 어린 산삼을 곁들였다.
상당한 고급재료이긴 한데, 당연하게도 호불호가 갈렸다.
100인의 심사위원들에게 익숙한 재료가 아니었으니까.
왕호는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을 메인 요리.
한국식 양념치킨을 만들 생각이었다.
‘매콤하게 간다!’
먼저, 꺼낸 생닭 위로 칼을 들이밀었다.
‘마장 발골!’
스윽- 스윽-
부드러운 닭다리살이 뼈에서 분리되어 나온다.
왕호는 이 닭다리살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튀겼을 때 예쁜 모양이 나오도록 동그랗게 손질했다.
조물조물-
손질된 순살 닭다리살을 소금과 후추, 그리고 갈릭 파우더로 염지한다.
마리네이드 된 다리살을 걸쭉한 튀김반죽에 풍덩-! 배터링한다.
걸쭉한 물반죽이 입혀진 다리살 위에, 한 번 더 곱게 간 튀김가루를 발라 브래딩까지 마쳤다.
그리고 달궈진 까놀라유에 퐁당- 빠트린다.
지글지글-
치킨 튀겨지는 장면이 전국으로 생중계된다.
“진짜 치킨이었네.”
“헉! 치멘······.”
“믿습니다! 치렐루야~!”
카메라가 튀겨지는 장면을 줌으로 당기자, 사람들의 침샘에서 침이 마구 폭발한다.
아는 맛을 보는 것만큼 고문도 없다.
그 악마 같은 맛을 알기에, 더더욱 참을 수가 없다.
“여보! 오늘 저녁은 치킨이야!”
“좋았어! 우리가 어떤 민족이야! 바로 시킬게!”
“우와~ 아빠짱!”
에셰코를 시청하는 가정에서 치킨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왕호는 노랗게 잘 튀겨진 치킨을 건져 올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양념 소스를 바를 차례다.
웍 비슷한 팬을 꺼내올린 왕호는, 빠르게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하다 할 소스 재료는 없었다.
올리고당, 다진 마늘, 딸기잼, 토마토케첩, 설탕, 왕호표 만능 소스.
가정집에 있을법한 재료들이다.
참고로, 전 세계인들이 다 좋아하는 한국식 양념에는 딸기잼이 필수다.
왕호는 황금비율을 맞춰 양념 소스를 만들었다.
슉- 슉-
중불 위에 올라간 팬에서 재료들이 완벽히 융합된다.
왕호는 여기에 매콤함을 더하기 위해, 청양고추와 페퍼론치노를 살짝 가미했다.
보글보글-
걸쭉해진 소스가 끓어오르자, 왕호는 만들어놓은 순살 치킨을 팬에 바로 집어넣었다.
휙- 휙-
그리고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버무렸다.
매콤한 양념치킨 완성.
꿀꺽-
치킨의 고소한 향과, 양념의 달콤한 향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강하게 자극했다.
100인의 눈은 모조리 왕호의 치킨을 향하고 있었다.
“저 입 벌렸어요! 빨리 치킨 들여보내주세요!”
“금강산도 칰후경이라는데······.”
“근데, 설마 치킨만 달랑 내놓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플레이팅하겠지. 고급 코스요리잖아.”
사람들의 예상대로 요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접시 위에 치킨 두 조각을 예쁘게 올린 왕호는,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칼을 꺼내 들었다.
“저건···?”
왕호가 꺼낸 칼은 다름 아닌 조각칼이었다.
< 고오급 (1)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