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오급 (4) >
*
“따라오게? 오늘은 장사 쉴 거야.”
껌딱지처럼 조수석에 붙어 있는 다희를 쳐다보며 물었다.
“천하의 짠돌이가 장사를 쉴 정도라니 엄청 대단한 일이겠죠?”
다희는 내릴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오늘은 평일이라 던전에 가서 장사해야 한다.
던전에는 주방보조인 다희만이 출입 가능하다.
장사하는 줄 알고 따라왔더니 느닷없이 오늘은 쉰단다.
돈귀신 착 달라붙은 왕호가 장사를 쉬고 어딜 간다?
호기심이 일어야 정상이다.
가뜩이나 다희는 호기심이 많은 처자다.
“모처럼 쉬는데 레이드라도 뛰지? 프리랜서라고 너무 띵가띵가 노는 거 아냐?”
“띵가띵가 놀다뇨? 엄연히 주방보조로 노동을 하고 있구만!”
“그니까 왜 시급 만 원짜리 일을 사서 고생하냐구. 쉬는 날 레이드 한탕 뛰면 수백 수천 들어오는 거 아냐?”
“돈은 은행에 평생 놀고먹을 만큼 쌓아 놨어요. 제 걱정은 노놉!”
“거 좋겠다! 돈 많아서!”
왕호는 장난식으로 투덜거렸지만, 다희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있잖아요. 왕호님을 만나기 전까진 그놈의 돈 벌려고 하루에 4시간 자며 레이드 뛰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잃어버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열심히 뛰었죠.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어요.”
“갑자기 진지해지고······. 지금은 하고 싶은 일 생겼어?”
덩달아 왕호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지금은··· 디저트 만드는 거 배워서 달달한 디저트 왕창 만들어 먹는 거?”
“···그래 열심히 배워. 성심성의껏 알려줄 테니까. 빨리 배워서 디저트 담당 네가 맡아라.”
다희의 지속적인 요청에 왕호는 얼마 전부터 다희에게 디저트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왕호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근데, 돈이야 많이 벌어놨다 쳐도 레벨은? 레벨 안 올려도 돼? 요새 소문 들으니까 랭킹 6위한테 따라잡힐 것 같다던데?”
“따라 잡으라 해요. 어차피 랭킹 1위나 5위나 다 레벨 고만고만해요. 한국에서는 더 이상 올리기 힘드니까.”
“응? 한국에서는 힘들다고?”
“한국 최고 던전이 레벨 400대거든요.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만 가도 500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한국에선 이제 레벨 올리기가 조금 힘들죠. 아무래도 땅덩이가 좁잖아요.”
“그럼, 우리나라 랭커들보다 외국 랭커들이 더 강하겠네?”
“음··· 강함의 척도를 레벨만으로 정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제가 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투 센스가 하나같이 다 좋았어요. 머리가 똘똘해서 그러나? 그래도 평균을 내면 아무래도 레벨 높은 중국 애들이 더 쎄겠죠?”
“그래? 그럼, 다희 너도 레벨 올리려면 외국으로 나가야겠네?”
“왕호님처럼 요리만 해도 레벨이 오르면 좋겠지만, 저는 전투직이라 아무래도 해외에 있는 고렙 던전에 들어가야 해요. 근데 굳이 타지까지 가서 그러고 싶진 않네요. 세계 랭킹 1위가 레벨 500대 중반인데 저랑 다이다이까도 비슷할 걸요?”
“오~ 자신감 좋다? 다희니까 다희다희까도 이긴다는 건가?”
“으··· 부장님급 아재개그 소름 돋았다. ···함무라비 스킬이 그만큼 강하다는 거예요. 열심히 배워요.”
새삼 관장님이 다시금 대단하게 느껴진다.
정확한 레벨은 측정할 수 없지만, 다희가 느끼기로는 레벨 600대 이상이란다.
어찌하여 저 정도 실력까지 성장했는지 궁금해진다.
생과 사를 넘나들었기에 초월할 수 있었던 걸까?
왕호는 다희와 이런저런 노가리를 까며, 계속해서 트럭을 몰았다.
그래도 다희가 동행한 덕에 심심하지는 않았다.
한참을 노가리 까던 다희가 이제야 묻는다.
“근데,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청주.”
“청주요? 거긴 왜···?”
“어머니 보러 가는데?”
“엥?!! 오빠··· 아니, 왕호님 어머니요?”
“응. 무슨 문제 있어?”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다희의 모습에, 왕호도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아, 아뇨. 아··· 대충 입고 나왔는데 어떡하지······.”
덜덜덜-
급작스런 불안감에, 갑자기 다리까지 떨기 시작한다.
“대충 입었다고? 예쁘기만 하구만 뭘. 그리고 친구 엄마 보러 가는데 무슨 그렇게 신경을 써. 편하게 생각해. 외형 같은 거 신경 안 쓰시는 분이야.”
“안 쓸 수가 있어야죠······. 청주에도 백화점 있겠죠?”
“지금 지방 무시 발언?”
“아니, 무시하는 게 아니라··· 가서 제대로 꾸미고 가려고······.”
갑자기 다희가 고개를 팍 숙인다.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니까? 그리고 지금 고등학교 갈 건데, 다희 네가 너무 꾸미고가면 고딩들 심장 터질 수도 있어.”
사실이다.
왕호는 다희를 안심시키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충분히 존예보스였으니까.
이번엔 다희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그래도··· 왕호님 어머니 보는데 최대한···”
“안 돼. 그럴 시간도 없어. 시간 딱 맞춰서 가야 돼. 우린 점심만 먹고 바로 갈 거야. 고딩 애들 저녁 준비해야 하거든.”
“그렇군요······. 그럼 점심은 어디서 먹어요?”
“제육볶음 진짜 잘하는 맛집 있어. 예전에 우리집이 분식집 할 때, 그 비법 좀 알아내려 했는데 알아낼 수가 있어야지. 내가 무슨 대장금도 아니고.”
한참을 고속도로를 달려 청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시내에 위치한 제육볶음 맛집으로 향했다.
왕호가 보증하는 맛집답게 간판에서 전통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정우기사식당>
간판이 낡았다는 것은 오랜 시간 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인테리어도 오래된 걸로 보아,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 같았다.
“들어와. ···이모! 여기 제육 2인분이요~!”
“예에~.”
왕호는 식당으로 들어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메뉴를 주문했다.
이 이외의 다른 메뉴는 일절 생각하지도 않고 왔다.
“기사식당이네요?”
다희가 의외라는 듯이 반문했다.
“기사식당 중에 은근히 맛집이 많아. 불백도 잘하는데 진짜는 제육볶음이지.”
“그렇게까지 강조하니 조금 기대되네요.”
이윽고, 김이 모락모락 풍기는 제육볶음 백반이 테이블 위로 세팅됐다.
반찬은 어디서나 보는 기본적인 반찬뿐이었다.
김치, 콩나물무침, 간단한 쌈 채소, 기타 나물들······.
“먹어봐.”
왕호가 기대에 찬 눈으로 재촉하자, 다희가 제육 하나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평소 먹는 제육보다 살짝 색이 빨갛다.
고기 끝에는 살짝 탄 부분도 있었다.
앙-
젓가락을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우물우물-
“······!”
두어 번 씹자 다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엄청난 감칠맛이 혀를 진득히 감싼다.
색만 봐서는 엄청 매울 것 같았으나, 매콤함은 살짝이다.
허나, 달콤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더니 이어 고소한 맛이 달달함을 확 잡아준다.
그리고··· 불맛.
불맛이 육향을 확 살렸다.
“와··· 진짜 맛있네요.”
“그치, 대박이라니까.”
다희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자, 그제야 왕호도 고기 한 점을 입으로 야무지게 가져갔다.
우적우적-
맛있는 제육을 야무지게 씹는데,
[“이터블 감정”으로 섭취한 요리를 파악합니다.]
[보성 녹차를 먹여 기른 보성녹돈의 앞다리 살이 사용됐습니다.]
[고급 요리사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레시피를 파악합니다.]
[사용된 재료 중에 모르는 맛은 없습니다. 100% 파악할 수 있습니다.]
[들어간 재료와 레시피는···(중략)···마지막으로 직화를 통해 불맛을 입혔습니다.]
느닷없이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으로 파도치듯 들어왔다.
‘뜨헉···!’
왕호는 입을 쩍 벌린 채, 충격에 잠겨야 했다.
이것이 고급으로 진화한 요리 스킬의 위력인가?
그토록 알아내고 싶던 황금 제육볶음의 레시피를 단순히 고기 한 점 먹는 것만으로 알아냈다.
들어간 재료.
재료의 원산지.
재료의 배합비율.
특별한 조리법.
만드는 순서.
조리 시간까지.
40년 요리 장인의 레시피가 한순간에 들어온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기서 좀 더 깊은 맛을 끌어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 방법이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이것이 고급의 영역인가?
절대미각과 절대후각이 한 단계 더 상승한 기분이다.
‘보성 녹돈이 비밀이었구나.’
재료에 특이점은 없었다.
그저, 좋은 돼지를 사용하고 일반적인 부재료들의 배합 비율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직접 담근 고추장과, 직접 말린 태양초 고춧가루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직화로 불맛을 입혔다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했다.
‘잠깐.’
먹는 것만으로 재료와 레시피를 알아낼 수 있다?
그렇담, 국내에 있는 각종 맛집을 돌아다니면서 ‘맛’을 증진시킬 방법을 전부 알아낼 수도?
아니, 국내를 넘어 해외에 있는 미슐랭 가이드 맛집까지 전부!
‘모르는 재료만 아니라면 다 가능한 건가?’
정확한 발동 전제는 잘 모르겠다.
아직 고급 요리 스킬을 얻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이런 대단한 능력이 터져 나온다.
왕호도 요리사인 만큼 뛰어난 ‘맛’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하다.
과연 고급 요리의 끝에 다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고추장 대신에 내가 만든 만능 고추장 양념을 넣으면 더 맛있어지겠네.’
한입 먹는 것만으로도, 벌써 이 맛집의 수준을 넘어설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야 진정한 절대미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뭐해요? 안 먹고?”
“아, 먹어야지.”
다희가 충격에 빠진 왕호를 상념에서 꺼냈다.
왕호는 잡생각을 떨치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에 집중했다.
*
박희란은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한다.
급식 아주머니.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쑥쑥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맛있고 영양가 넘치는 밥을 만들어 준다는 것.
그것이 박희란을 비롯한 다른 동료들의 자부심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다.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으니까.
요즘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복덩이 같은 두 자식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니까.
늦둥이 딸래미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마냥 보기 힘들다는 수능만점에, 듬직한 아들은 제 하고 싶은 요리를 하면서 경연대회 1등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요새는 장사가 무척 잘 된다고, 계속해서 좋은 소식만 들려주고 있다.
점심 배식을 마친 박희란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거지했다.
슥삭슥삭-
“기분 좋은가 봐 희란언니?”
기숙사 룸메이트가 말을 걸었다.
“호호, 안 좋을게 뭐 있어~.”
박희란은 아들 때문에 웃음이 나온다고 떠벌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수능 만점 딸, 요리 깡패 아들이 그녀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그저, 고3 딸래미 하나에 요리 하는 아들 하나 있다는 것만 겨우 말했을 뿐이다.
박 여사는 그만큼 자식얘기하는 것을 꺼려했다.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다.
‘사기만 안 당했으면··· 좋은 옷 입히고, 따순 밥 먹이고, 편하게 공부시킬 수 있었을 건데······.’
그녀도 피해자의 입장이었지만, 자신의 욕심이 불러온 참사였다고 계속해서 자신을 채찍질했다.
박희란의 생각엔 자신은, 제 역할도 하지 못한 면목 없는 어미새였다.
룰루랄라-
또 다른 아지매, 이영자가 박희란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어찌나 즐거운지 어깨춤까지 들썩인다.
“오호홋, 우리 아들이 이번에 용돈 하라고 100만 원을 부쳤다니까? 어찌나 기특하던지 호호홋.”
그 아지매는 박희란과는 다르게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는 아주머니였다.
“이번에 7급 공무원 합격했다는 그 아들?”
룸메이트가 되물었다.
“공무원 월급 얼마나 된다고, 그걸 다 부쳤지 뭐야. 호호홍. 합격하느라 고생했을 건데, 그 돈으로 여행이나 가지. 너도 알지? 공무원 경쟁률 엄청난 거?”
“어휴, 귀 닳겠어 영자 언니. 알지. 요새 9급 공무원도 몇백대 일이라는데 언니 아들은 7급이잖아. 대단해 아주~.”
박희란의 룸메이트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영혼없는 칭찬을 날렸다.
이영자가 자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 공무원 합격 소식은 현수막을 걸 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9급도 아닌, 7급 공무원에 붙었으니 오죽했을까?
이영자가 이번엔 박희란을 쳐다보며 물었다.
“희란 언니 아들은 요새 어때? 요리한다며? 거기도 살기 빡빡하지? 공무원 준비하라고 해~ 똑똑하면 금방 붙는 다더라. 우리 아들도 딱 1년 공부했어.”
세상엔 여러상의 군상들이 있다.
이영자는 남을 깎아내리며 스스로의 위상을 올리려는 군상이었다.
< 고오급 (4)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