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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08화 (108/149)

< 고오급 (5) >

진상 보존의 법칙.

여기에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만큼 거스를 수 없는 역학이 하나 있다.

어느 그룹에 들어가더라도 진상은 존재한다.

그 비율이 차이 날 순 있겠지만, 다섯 이상이 모이면 100%의 확률로 존재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빈민가에도 또라이가 존재하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법조계에도 또라이가 존재한다.

오죽하면 판사 부부가 해외에서 갓난아기를 차에 가둬놓은 채 쇼핑하다 국제망신까지 당하겠나.

다 미꾸라지가 한 마리씩 껴있기에 그렇다.

박희란은 이 진상 보존의 법칙을 피부로 경험했었다.

가정주부로 지낼 적엔 맘충이라 불린 아지매들을 보아왔고,

장사를 할 적엔 무수한 진상 손님을 경험했다.

급식 아주머니로 일하는 지금은, 이영자라는 진상과 함께 일하고 있다.

물론,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진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룸메이트를 비롯한 많은 동료들이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한다.

다만, 이영자라는 동료만 유별날 뿐이다.

인생의 황혼기를 놓쳐버린 중년의 아줌마들.

스스로를 자랑할 수 없는 그네들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바로 자식새끼다.

특히나,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적엔 다들 꿈을 꾸던 사람들이다.

지금은 비록 급식 아주머니로 일하고 있지만, 그들도 한때는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격지심이 심해졌나 보다.

다들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다.

누가 더 자식농사를 잘 지었나가 서열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스스로를 자식농사 하나만큼은 No.1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이영자였다.

“응? 희란언니 아들도 공무원 준비 시켜~. 내가 노량진에 좋은 학원 하나 소개시켜줄게~. 우리 아들내미는 장학금 타면서 공짜로 다녔다구우!”

“평안감사도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제 하고 싶은 일 해야지. 요리하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어릴 때부터 나한테 요리 알려달라고 그렇게나 성화를···”

“에이~ 좋아하는 일이랑 먹고 사는 일은 별개의 문제지. 우리가 뭐 좋아서 급식 만드나?”

이영자가 어깨를 쓰윽 올리며 말했다.

우월스런 감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이영자는 이때다 싶어 박희란을 공격하듯 몰아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영자는 박희란에게 평소에도 열등감을 진하게 가지고 있었다.

큰언니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박희란의 성품은 주위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저절로 따르게 만들었고,

기본적인 요리 실력도 박희란이 압도적이었다.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자식몬 배틀이었다.

그동안 꾹꾹 참고 있다, 얼마 전 아들이 7급 공무원에 합격한 탓에 고삐가 풀린 것이다.

이영자가 자꾸 몰아치자, 보다 못한 희란의 룸메이트가 다시 나섰다.

“공무원도 박봉이라는데?”

“그거야 9급 이야기지, 7급은 꽤 나와~. 그리고 공무원이 어디 봉급보고 하는 직업인가? 철밥통이지, 복지 좋지, 스트레스 안 받지, 대기업처럼 365일 야근하는 것도 아니지. 얼마나 좋아. 명절 때 무조건 쉬고, 명절 휴가비까지 따로 나온다구 오호홍.”

“좋긴 좋네······.”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디 그뿐이야? 아주 온 동네 처자들이 우리 아들 꼬시려고 줄을 서 있다니까? 결혼정보회사에 물어보니까, 사짜 직업만큼은 아니더라도 등급이 엄청 높더라구~ 20대 초반 참한 여식으로 붙여주겠대. 근데, 여자친구 있다고 우리 아들이 사양해서 어쩔 수

없었어 호호홋. 합격하니까, 바로 여자친구가 생기더라니까? 어찌나 예쁘고 싹싹하던지···”

“좋겠네··· 근데 희란언니 아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요식업에도 성공한 사람 많잖어. 백주부 봐봐, 15살 어린 연예인 마누라도 만났잖아.”

일리 있는 말이었지만, 이영자는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요식업에서 성공한다?

서울대 들어가는 것보다 힘든 일이란 것을 이영자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성공했으면, 어머니를 이런 촌구석에 고달픈 일 하게 그냥 놔두겠나?

어불성설이다.

“호홋, 그렇긴 하지. 이번 에이스 셰프 코리아 우승자처럼만 되면 그럴 수도 있겠지. 희란언니 아들도 요리 잘하면 거기 나가보라고 해~. 이번 우승자 보니까, 훤칠하게 잘 생긴 것이 우리 아들 또래 같더라구. 상금도 3억이나 되고 그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호호홍!”

이영자의 말에, 박희란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우승자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웃겼거니와, 왕호를 칭찬하는 모양새도 너무 재밌었다.

그렇다고 비웃음은 아니었다.

박희란이 보기에 이영자는 상처가 많은 여자였다.

배려보다 자존심이 우선인 사람이다.

역지사지를 이해할 만큼 정신이 성숙하지 못했다.

몸은 훌쩍 늙어버렸는데 말이다.

어리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더 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설거지를 다 마쳤다.

이제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잠깐의 달콤한 휴식이 지나면, 다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고무장갑을 벗어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찰나,

똑똑똑-

주방의 문을 두드리고는 누군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리고 그 누구가를 확인한 이영자의 눈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말았다.

*

왕호는 옵티머스를 몰고 그대로 고등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운동장 근처에 있는 교직원 주차장에 트럭을 주차했다.

“어?!”

“헐! 저거 왕호네 밥차 맞지?”

“실화냐?”

우르르르-

점심시간을 맞아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던 남자 고등학생들이 트럭 주위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꺄아아~!”

“에셰코 왕호 오빠?”

“꺅!”

매점에서 나오던 여학생들도 비명을 지르며 몰려든다.

차에서 나온 왕호와 유다희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헉! 얘, 얘들아······.”

“형! 매드무비 개씹오졌어요! 다음 매드무비 언제 나와요?”

“B형 던전은 언제 가심? 헐 근데 형 옆에 여친? 와, 오진다··· 지리는각 인정?”

“어 인정~.”

먼저 도착한 남학생들은 요리보다는 매드무비, 왕호보다는 옆에 있는 다희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꺄아아~ 오빠~ 우승 축하해용~!”

“요리방송이랑 먹방 잘 보고 있어요!”

“어?! 먹방에 나온 여신 언니다! 와 진심 존예보스··· 시강쩐다······.”

“심멎, 심쿵, 심장폭행··· 넘나 예뻐요 언니! 세젤예에요!”

“고, 고마워.”

여학생들은 매드무비 보다는 요리, 역시나 왕호보다는 옆에 있는 다희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아니, 여학생들까지 저러니까 상처받잖아······.’

“사진 찍어도 돼요?”

“저두요! 사진은 팬아저 할 거예요!”

“저는 오늘부터 언니가 최애!”

“팬아저? 최애? 그게 뭐야?”

왕호가 묻자,

“헐··· 아재다!”

“아재라니··· 내 동생이 아직 고딩이야.”

“헐 동생 불쌍······.”

“이것들이··· 사진 찍어 줄 테니까 한 명씩 줄 서요.”

“앗싸~ 언니! 팔짱 껴도 되죠?”

“으, 응.”

“나는? 나도 팔짱 껴도 되는데···”

“오빠는 됐어요. 그냥 웃기나 하세요.”

“요것들이······.”

찰칵- 찰칵-

그렇게 한 명씩 사진을 찍어주는데,

줄이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학생들이 소문 듣고 튀어나와 더 길어지고 있었다.

띵동~ 댕동~

다행히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하지만···

종이 쳤음에도, 학생들은 돌아갈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너희들 수업 안 들어?”

“에이, 오빠가 여기까지 왔는데 수업이 중요해요? 셀카 하나 찍고 가야죠.”

“학생이 수업을 들어야지! 안 되겠다. 얘들아 한 방에 끝내자. 모여 봐.”

“헐··· 싫어요. 셀카 찍을 건데요?”

“안 찍어준다? 저녁까지 있을 거니까, 저녁 먹고 찍어줄 게. 아, 그리고 오늘 저녁 급식 진짜 맛있을 거니까 매점 가는 애들 좀 말려줘 알았지?”

“넵!”

찰칵-

결국 잔뜩 몰려서 한 방 찍고 나서야 학생들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활력 넘치네······.”

왕호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고등학생들한테도 인기 많네요. 이제는 달빛여제보다 유명한 거 같은데요?”

“아냐··· 외모지상주의를 오늘 다시금 체험했다. 다 너랑 찍고 싶어 난리더만. 달빛여제도 아닌 이름도 모르는 유다희랑.”

“그게 뭐 제 탓인가요? 이렇게 낳은 부모 탓이지.”

“···셀프 패드립?”

“뭐 어때요. 둘 다 저 버리고 도망갔는데.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요 급식실?”

“아니, 영양사실 먼저 들려야지.”

주섬주섬-

왕호는 트럭에서, 각종 선물세트를 바리바리 싸 들고 먼저 영양사실을 찾았다.

“계시나요?”

“예. 들어오세요!”

담당 영양사가 웃으며 왕호를 맞이했다.

“어제 전화드린 안왕호라고 합니다.”

“예. 깜짝 놀랐어요. 희란 아주머니 아들분이 그 유명한 왕호 씨였다니······.”

“하하, 제가 말씀드린 거는···”

“어머님들 도와드린다니 뭐, 마다할 것도 없죠.”

“그럼 저녁 식단표 좀 볼 수 있을까요?”

“예. 잠시만요.”

왕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전화로 미리 양해를 구했다.

자신이 박희란 여사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밝히고, 내일 어머니를 보러 갈 거라고 말이다.

어머니께서 급식일을 그만둘 수 있다고도 미리 언질해놓았다.

그만두더라도 아마, 겨울방학 전까지는 계속 일 할 거다.

어머니의 성격상,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니 말이다.

그나마 한가한 겨울방학 때, 대체자를 구하라는 배려 정도는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어머니의 동료들을 보는데 빈손으로 갈 수야 없지 않나.

선물 세트와 더불어, 반나절 정도의 휴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저녁 급식은 왕호가 손을 거들 생각이었다.

식단표를 확인한 왕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잡곡밥에, 제육볶음, 햄김치국, 오이 무침··· 어제랑 메뉴가 비슷비슷하네요?”

“예산이 적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3일 치 재료를 한 번에 사 오거든요. 도매로 살수록 저렴하니까.”

“그럼 오늘 저녁은 제 트럭에 있는 재료 합쳐서 특식으로 가도 될까요? 영양 밸런스는 영양사님이 맞나 봐주시구요. 메뉴는 제육볶음말고 다 바꾸면 좋을 것 같아요.”

“신선한 재료야면야 감사하죠. 학생들이 급식 부실하다고 자꾸 매점으로 가서 저도 속상했는데.”

“마나석 냉장고 사용하니, 신선도는 걱정 마세요.”

“헉! 그 비싼 걸······.”

왕호는 영양사와 상의해서 메뉴를 새롭게 바꿨다.

제육볶음만 빼놓고.

이제 제육볶음은 진짜 맛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

오늘 저녁은 아마 대단할 거다.

학생들 말투로 표현하면···

클라스 오지는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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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사에게도 선물을 하나 나눠준 왕호는, 남은 선물 세트를 다시 들고 급식실 주방으로 향했다.

“어째 나보다 더 긴장했다?”

다희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하, 제가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

“괜찮아. 외모지상주의잖아. 활짝 웃기만 해도 싹싹해 보일걸?”

“옷도 청바지에 캐주얼 코트인데······.”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걱정 마.”

다희를 한번 안심시킨 왕호는 주방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안에서 별다른 대답이 없자, 그대로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머님들!”

왕호가 싹싹하게 외치며 들어가고, 다희도 어색하지만 활짝 웃으며 들어갔다.

아주머니들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젊은이들의 등장에 어리둥절했다.

오직 한 명만이 환한 웃음으로 왕호를 반겼다.

“어?! 아들~! 말도 없이 이게 뭐야.”

박희란이 반가움에 문 앞으로 달려나갔다.

“서프라이즈죠.”

왕호는 들고 있던 선물 세트를 바닥에 내려놓고 박 여사와 포옹을 나눴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영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영자는 에셰코를 1화부터 쭈욱 봐왔다.

그녀도 요리를 직업으로 삼고 있었고, 아줌마들에게 TV란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

왕호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말도 안 돼!!!’

< 고오급 (5)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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