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원 요리 (3) >
*
한상진은 ‘두유노우’ 길드에 소속된 공대장이다.
두유노우는 한국 랭커 2, 3, 6위가 소속되어 있는 국내 최대 길드.
규모가 워낙 큰 탓에, 꾸려진 공격대의 숫자 또한 스무 개가 넘어갈 정도였다.
한상진은 그 중에서도 레벨 300대 중반으로 이루어진 공격대를 떠맞고 있었다.
그가 이끼는 공격대가 주로 뛰는 던전은, 아즈모데우스 던전.
이 아즈모데우스의 공략법을 처음 정립한 것도 두유노우였으며, 독점 던전이던 시절 쌓아온 데이터베이스의 양과 질은 가히 엄청난 정도였다.
이제는 공용 던전으로 바뀌었다 할지라도, 여기서는 타 길드가 두유노우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공용 던전이기 때문에 매일 이곳에서 레이드할 순 없지만, 한번 예약을 하면 하루 종일 이곳에서 뛴다.
하루에 젠 되는 아즈모데우의 숫자는 단 두 마리.
오전과 오후 뿐이다.
딱 두 타임 뛰고, 다른 공격대에게 넘겨줘야 한다.
오전 타임을 앞두고 있는 한상진은, 던전에 모인 대원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동작이 굼떠? 빨리빨리 움직여! 뭐야? 너희들 왜 땀을 뻘뻘흘려?”
“흐읍! 매운 요리를 먹고와서 말입니다. 크으~ 스트레스 완전 쫙! 풀립니다.”
“갑자기 매운 요리는 왜 먹어?”
한상진이 입에 대고 부채질을 마구 일삼는 대원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모르셨습니까? 지금 밖에 왕호네 밥차 와있습니다.”
“왕호네 밥차?”
한상진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헐, 대장 안왕호 몰라요?”
“누군데? 내가 들어본적 없으니 랭커는 아니고··· 연예인이야?”
“아, 맞다. 대장 TV안 보죠? 연예인··· 이라고도 볼 수 있죠. 버프 만드는 요리사에요.”
“버프 요리···? 아! 그건 오리진에서 들어 봤지. 그게 지금 여기 던전에 와 있다고?”
“네. 그냥 부가적으로 버프 받으러 간 건데 진짜 미친 맛입니다. 대장도 빨리 먹고 와요!”
“난 아침 먹고 왔어. 그리고 곧 젠 되는데 먹을 시간 없어. 이거 뛰고 점심이나 먹어봐야지.”
한상진은 대원들 사이들 돌아다니며, 그들의 장비와 컨디션을 꼼꼼히 점검했다.
이들과는 수도 없이 호흡을 맞춰본 터라, 그리 걱정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준비! 이제 곧 나온다! 공략 대로 깔끔하게 가자고! A포메이션!”
“예! 대장!”
아즈모데우스 던전에서 만큼은 최강 공격대다.
그 명성에 걸맞게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최전방엔 다섯 탱커들이 특이한 형태로 자리를 지키고, 뒤에는 원거리 딜러와 힐러들이 진을 쳤다.
주술사인 한상진은 가장 뒤에서, 대원들을 조율하고 있었다.
우우웅--
시간이 되자, 게이트가 마구 진동하며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아즈모데우스.
쿠어허엉--!!!
무지막지한 덩치의 뚱땡이가 괴성을 지른다.
정말 거대했다.
아니, 단순히 거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무슨 빌딩 수준이다.
키가 족히 15m는 되는 듯보였다.
하지만 키 보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무게.
허리에 둘둘- 둘린 지방은 무슨 챔피언 벨트마냥 축 늘어져있다.
육중함 그 자체!
왕호가 잡았던 자이언트 플레임 오거가 무지막지한 근육돼지 였다면, 이 놈은 그냥 무지막지한 돼지새끼다.
육중한 괴물의 모습에 당황할 법도 한데, 공격대원들은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귀를 후비고 있었다.
“쏟아부어!”
한상진이 공격의 시작을 외치자, 원거리 딜러들이 정교한 마법을 쏟아부었다.
목표는 녀석의 약점이라는 세 겹의 두툼한 턱살!
퍼버버벙---!!!
“꾸에에엑!!!”
각종 마법과 수리검을 얻어맞은 아즈모데우스가 고통스런 비명을 쏟아냈다.
게이트를 넘자마자 공격을 당했으니, 아마 더 충격이 컷으리라.
아즈모데우스는, 자신에게 고통을 선사한 마법사들을 시뻘건 눈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코끼리 몸체만한 두 다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어그로!”
최전방에 있는 다섯의 탱커가 녀석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공략법과 같았다.
순조로웠다.
이대로 한 시간 정도 뚜드려 패면, 저 북쪽의 돼지놈을 닮은 녀석은 힘없이 쓰러져내릴 거다.
“힐러들은 피 50% 아래인 탱커한테만 힐을··· 헉! 뭐, 뭐야?!!!”
힐러들에게 마나를 아끼라고 강조하려는 찰나, 갑자기 탱커들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탱커들이 입을 쩍! 벌리더니,
부아아아-- 화르륵-!
용가리마냥 입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하는 거야 이것들아!”
당황했다.
한상진도 당황했고,
원거리 딜러들도 당황했고,
직접 불을 뿜어낸 탱커들도 뜻밖의 위력에 당황했고,
불길을 얻어맞는 아즈모데우스도 황당해했다.
공략에는 없는 탱커들의 돌발행동이었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어차피 탱커들의 역할은, 적의 시선을 끄는 일과 딜러들을 향한 공격을 대신 맞아주는 것.
초근접에서 같이 공격하긴 하지만, 딜러들의 공격에 비하면 효자손으로 등 긁는 수준이다.
그런데 홍염의 숨결로 효과적인 딜 뿐만 아니라, 녀석의 시선까지 제대로 끌고 있다.
놈은 불길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멀리있는 적들을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너네들 새로운 스킬 배웠어?”
한상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아뇨! 버프 효관데요?”
“버프? 야, 버퍼! 너가 걸었어?”
“제 버프 아닙니다. 아무래도 그 버프 요리 효과 같네요.”
“이글이글 열매라도 먹었어? 무슨 요리길래 저런···”
잠시 놀라하던 한상진은 순간, 손가락을 딱-! 튕기며 감탄했다.
‘이거, 바로 근딜 투입해도 되겠는데?’
이렇게 되면 공략대로 가는 게 더 손해다.
“작전 변경이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가자! 칼잡이들 들어가!!!”
한상진은 결단력 있는 대장이었다.
새로운 개념의 버프.
새로운 차원의 레이드.
한상진은 왠지 정형화된 지금의 공략법이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잘하면, 우리 공격대 레코드도 갈아 치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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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의 예상대로 레코드가 갱신됐다.
자신이 공격대장을 맡은 이후로 최단 기록이다.
49분 58초. 아즈모데우스 처치.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거의 30분이나 단축했는데?”
“탱커들이 진짜 잘 버텨줬어.”
“홍염숨결 효과 미쳤다··· 내일도 트럭 있겠지?”
“내일은 우리가 던전 옮기잖아.”
“아··· 그러네······.”
수군거리는 대원들 너머, 한상진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안왕호라고 했나? 한 번 만나봐야 겠어.’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고.
*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한창 런치를 팔고 있던 왕호의 귓가로, 남성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호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살폈다.
오전에 만난 사람처럼 팔에 완장을 찬 남자.
한상진이었다.
“예. 어서오세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하하하, 메뉴가 참 많습니다.”
“천천히 고르셔도 됩니다.”
“아, 저게 그 요리군요? 홍염숨결 칠리!”
“오늘 만든 요린데, 아십니까?”
“그게 사실은···”
주저리주저리-
한상진은 방금 레이드 때 있었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역시, 완장을 보고 예상한 것처럼 그는 공격대장이었다.
“제 요리를 먹고, 신기록을 세우셨다고요?”
“예. 탱커들이 브레스까지 사용하니 더 수월하더군요.”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상상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에너지도 많이 아꼈습니다. 부상자도 없구요. 정말 고맙습니다.”
“비싼 돈 받고 판 건데, 고맙긴요. 돈값은 했다니 다행입니다.”
왕호는 시종일관 웃으며 대답했다.
한상진이 칭찬을 던진 것도 좋았거니와, 그가 공대장인 부분도 매우 흡족했다.
안 그래도 레이드 하는데 꼽사리 낄 수 있을까, 공대장을 만나보려 했는데 이렇게 제발로 찾아왔다.
게다가 첫만남부터 호감이 가득가득하다.
원래 손님들에게 잘 웃어주는 왕호지만, 더더욱 환한 웃음을 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장님 혹시 소속된 길드 있으십니까?”
한상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이제 본론이다.
“아뇨. 프리랜서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저희 길드는 어떻습니까? 저희 두유노우 길드는 규모로만 따지면 전국 1등입니다. 계약조건은 업계 최고로 해드리고, 들어오시면 저희 공격대에 넣어서 빠르게 키워드리겠습니다!”
한상진은 왕호를 자신의 공격대로 영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매번 레이드할 때마다, 버프 요리를 먹일 수 있다.
버프 요리의 효과는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공략법을 바꿔버릴 정도!’
이 아즈모데우스 던전 뿐만아니라, 다른 던전의 몹들도 더욱 수월하게 잡아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왕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길드에 소속될 생각은 아직 없습니다.”
“허··· 그러시군요. 아쉽습니다.”
한상진이 입맛을 쩝- 다셨다.
사실, 그가 인터넷이나 오리진을 자주 들락날락했더라면 왕호가 프리랜서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텐데··· 한상진은 지독한 미디어고자였다.
영입제안이야, 초보때부터 흔하게 겪어왔던 것이라 크게 놀랍지 않았다.
허나, 이어진 한상진의 제안은 구미가 당겼다.
“사장님. 레이드는 직접 뛰십니까? 홍염숨결 요리도 보니까, 플레임 오거를 사용하셨던데······.”
“예. 제가 잡은 겁니다.”
“오, 그럼 이따 오후에 저희가 또 레이드뛰는데 한번 함께 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한상진이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제안했다.
그가 이끄는 공격대는 오랜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
헌데, 오늘 처음 본 낯선 이를 그냥 껴준다?
무슨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한상진도 생각이 있어서 건넨 제안이다.
‘공격대의 완벽한 호흡을 본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
한상진은 왕호가 공격대의 일사분란한 모습과 완벽한 연계 플레이를 보면, 생각을 고쳐먹을 거라 자신했다.
그만큼 프리랜서들이 모여서 파티를 이룬 것과 상위 클래스의 공격대는 수준 자체가 다르니까.
“끼워주신다구요? 정말이십니까?”
“예. 수익은 1/n로 정확히 나눠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무조건 해야죠!”
‘나이쓰!’
왕호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원래, 왕호가 먼저 꺼내야 했던 이야기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한상진이 먼저 제안했다.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몬스터를 잡으면 사체는 바로 나눠가지나요?”
“아뇨. 저희와 계약된 업체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해체를 맡깁니다. 거기서 부산물들을 다 판매하고 수수료를 뗀 금액을 입금하는 방식이죠.”
“음··· 저는 돈 보다는 사체로 가져가고 싶은데···”
“그럼, 사장님 페이는 업체에 말해서 처분하지 않고 사체로 드리는 방식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그냥 제가 제 부분만 따로 떼가면 안됩니까? 제가 해체는 조금 하는 편이라···”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왕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라, 골똘히 생각에 잠기느라 나타난 표정이었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다니, 존중해줘야 한다.
‘해체하고나서 나눠준다고 하니까···’
시간이 흐르면 살코기는 얻게 될 거다.
허나, 욕심이 생긴다.
바로 요리하고 싶다는 욕심!
‘혹시···?’
무언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왕호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공대장님··· 레이드 도중 떨어져나간 살점은 보통 어떻게 합니까?
“살점이요?”
“예. 막 사정없이 휘두르다보면, 살점이 떨어져나갈 수도 있잖습니까.”
“음··· 그런경우가 있긴 한데, 뼈만 안 붙어 있으면 보통 버립니다.”
“그럼, 그것들은 제가 챙겨도 될까요?”
“아, 예··· 그러십쇼.”
한상진의 표정은 ‘왜 이런 걸 물어보나?’ 하는 표정이었다.
임시지만, 왕호가 공격대에 합류했다.
왕호의 실력을 모르는 한상진은 대충이나마 파악하기 위해 질문 몇 개를 던졌다.
“사장님. 여태까지 잡은 몬스터 중에 가장 강했던 녀석이 누굽니까?”
“가장 강했던 녀석요?”
두말 할 것 없이.
“자이언트 플레임 오거였죠.”
“하하, 그러시군요.”
한상진의 입에서 그럼 그렇지 하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높아야 레벨 200초반 애들이나 모여서 잡는 몬스터다.
‘그 정도 실력이니, 더더욱 우리 공격대를 보면 들어올 수밖에 없다!’
설마 솔플을 했다고 추호도 생각지 못하는 한상진이었다.
솔플은 공대장인 자신이라도 힘드니 말이다.
< 4차원 요리 (3)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