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텐 폭발! (1) >
*
장사를 끝낸 왕호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배낭 속 재료들을 정리했다.
후두두둑-
정체를 알 수 없는 각종 살덩이들이 쏟아져나온다.
양이 많기도 하다.
‘육중한 녀석이라 다행이었네.’
질펀할 정도로 뒤룩뒤룩 살이 오른 녀석이라서, 살을 발라내기가 쉬웠다.
게다가 떼어낸 살점의 무게도 상당했다.
살점을 떼어낸 만큼, 공격대원들의 몫도 줄어드는 셈이지만 중요한 뼈는 단 1그램도 건들지 않았다.
뼈에 비하면 거저다시피 하는 살점은, 대원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해서, 아무도 왕호가 살점을 챙기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호의 민첩함과 검술 실력에 놀랐지, 설마 왕호가 일부러 녀석의 살점을 회친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강제적인 다이어트!
누구나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있을 거다.
누가 내 뱃살 좀 떼어 가라!
왕호는 실제로 녀석의 뱃살을 잘라냈다.
칼로리를 칼로 잘라낸 것이다.
그야말로 칼로커트!
배에 두른 챔피언 벨트를 지방흡입 당한 녀석은, 홀쭉이까진 아니지만 조금은 늘씬해진 채로 업체의 손길로 넘어갔다.
해체가 완료되고 이틀 정도 후면 왕호의 몫이 배달될 거다.
n분의 1로 나눈다 하더라도, 워낙 덩치가 큰 녀석이기 때문에 떨어지는 양이 상당하다.
거기에 따로 꿀꺽한 살덩이까지 더한다면, 일주일 치 장사는 거뜬하다.
허나, 왕호가 녀석의 살점을 회떠낼 생각을 떠올린 건 장사 때문이 아니라 내일 있을 중요한 행사 때문이었다.
‘내일 당장 쓸 수 있겠어.’
왕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자리했다.
내일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이다.
감사한 분들이 많이 온다.
그들에게 최고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고 싶었다.
‘혼자서는 절대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지금의 위치에 자리하기까지, 여러 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왔다.
절대로 스스로의 힘만으로 올라왔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왕호가 도움을 받을 만 했기에,
혹은 먼저 도와줬기에 얻어낸 것들이지만, 어찌 됐든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고마움이 큰 것만큼, 많이 대접하지 못한 미안함도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일은 바로 왕호의 집들이가 있는 날.
왕호는 자신의 첫 집들이를, 남들처럼 대충 보낼 생각은 없었다.
각종 배달음식으로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든 진수성찬으로 상을 수놓을 요량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 역량을 발휘한, 최고로 맛있는 산해진미 말이다.
그리고 오늘 얻어낸 이 아즈모데우스 고기가 한몫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다다다닷-
왕호는 집과 주차장을 계속해서 왕복했다.
손에는 음식이 가득 든 접시가 들려 있었다.
집에 달린 부엌만으로는 많은 양의 요리를 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하여, 옵티머스에 들락날락거리는 중이다.
‘마지막 접시!’
철컥-
왕호는 트럭의 문을 잠구고는, 마지막 접시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식탁 위로 보기 좋게 접시를 올리자,
푸짐~.
엄청난 한 상이 완성됐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길쭉길쭉한 탁자.
그 위에는 여태까지 왕호가 개발한 메뉴들,
그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메뉴들이 간추려서 세팅되어 있었다.
간추렸다 하더라도 메뉴의 숫자가 무려 40가지가 넘는다.
그야말로 뷔페가 따로 없다.
그것도, 특급 호텔에서나 볼법한 고급 뷔페.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말이 절로 공감될 정도의 푸짐한 상이었다.
아니, 이걸 과연 ‘푸짐’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결혼식 출장뷔페 업체를 불렀다고 착각할 만한 규모였다.
‘이 정도면 다들 만족하겠지?’
상을 바라보는 왕호의 표정은 흐뭇함으로 잔뜩 물들어있었다.
이번엔 산이와 김점례 아주머니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
오늘은 그들 또한 손님 중 하나다.
이 모든 요리는 왕호와 박 여사님 둘이서만 만든 요리다.
박희란은 아파트 부엌에서 왕호가 주문한 작업을 맡았다.
전체적인 요리의 컨트롤은 물론 왕호의 몫이었다.
즉, 총괄 셰프는 왕호. 어시스트는 박희란이었다.
띵동-!
초인종이 청아하게 울린다.
예전 반지하의 아날로그식 초인종이 아니라서, 아직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약속 시간은 30분 정도 남았건만··· 벌써 등장한 무리가 있다.
인터폰으로 확인하니, 희영이와 희영이 친구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왕호가 문을 열어주자,
“안녕하세요오!!!”
소녀들이 여고생들 특유의 발랄함으로 환하게 인사했다.
희영이, 소미, 혜진이, 그리고 수능만점자 희선이까지 네 명이었다.
얘네들은 희영이가 직접 데리고 왔다.
“우와! 대애박! 희영이 집 진짜 좋다~.”
“새 건물이라서 최첨단이야 진짜!”
“희영이랑 희선이 미래의 대학인 서.울.대! 랑도 가깝네. 좋겠다. 나는 고작 한예종인데······.”
“한예종도 엄청난 곳 아니야? 이년들이 나만 빼고 아주 기만 질이네?”
네 명의 소녀들은 들어오자마자 시끄럽게 오디오를 메꾸기 시작했다.
왕호는 피식 웃으며, 그녀들이 사 온 집들이 선물을 받아들었다.
“학생들이 돈이 어딨다고 이런 걸 사와.”
“어라? 오빠··· 아니, 사장님 저희들 무시하는 거예요? 이거 월급 받은 거로 산 거예요!”
소녀들이 내민 것은 두루마리 휴지였다.
잘 풀리는 집.
지금도 충분히 잘 풀리는데, 더 술술 풀리라고 사 온 듯싶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는 있어가지고···
기특함에, 왕호는 소녀들의 머리를 하나하나씩 헝클어뜨렸다.
희선이뿐만 아니라, 소미와 혜진이도 주말에 왕호네 식당에서 알바 중이다.
워낙 바쁜 탓에 홀 서빙을 4명까지 늘린 것이다.
‘근데 사 올 거면, 휴지 말고 다른 것도 사 오지 휴지만 무슨 세 개를······.’
한 개에 두루마리가 30롤이니, 무려 90롤이나 쌓아두게 생겼다.
왕호와 박 여사에게 휴지를 건넨 소녀들은, 왕호가 차린 진수성찬을 보자 괴성을 감추지 못했다.
“꺄아아아!!!”
“헉! 뭐, 뭐야 저 퀄리티는?! 이거 다 오빠가 만드신 거예요? 진짜 맛있겠다! 핵존맛!”
“뷔페야? 아니 무슨 돌잔치 났어?”
“사진 찍자! 무조건 찍어야 해!”
소녀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발을 동동 굴렀다.
찰칵- 찰칵-
소녀들이 사진 찍는 데 정신 팔려 있는 사이,
띵동-!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강산이와 김점례 아주머니다.
“새집 축하해요 셰프님!”
“오메~ 집이 허벌나게 아늑하구마잉! 우리 셰프님이 집 보는 안목도 솔찬했구만!”
“헉! 아니 저 상은 대체 뭐예요? 설마 혼자서 다 만드신 거예요?”
이제는 어느 정도 사물을 분간할 줄 아는 산이가, 테이블을 보고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는 아니고, 어머니가 조금 도와줬어. 배부르게 먹고 가.”
“배부른 게 아니라, 배 터져서 죽을 것 같은데요? 아, 이거 받으세요! 집들이 오는데 빈손으로 올 수가 있어야죠.”
왕호는 산이와 김점례가 들고 온 선물을 받아들었다.
역시 요리사다운 선물.
예쁜 식기 세트였다.
“오메, 희란이랑 둘이서 만들었다고야? 호호홍. 희란이 손맛도 기가멕히제잉~! 식당하던 손맛 어디 가것어?”
김점례는 구수하게 웃으며, 박희란을 추켜올렸다.
두 어머니들은 벌써 서로 말을 놓는 관계가 되어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둘 다 사기를 당해 식당을 접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게다가 두 분 다 지방에서 올라온 터라, 가족을 제외하면 대화를 나눌 사람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왕호가 그런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켜주자, 아주 언니 동생 하며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두 사람이 가깝게 지내는 것은 왕호가 그린 빅픽쳐 중 하나였다.
나중에 두 분이서 장사하시라고 식당 하나 투자하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친해졌다.
지금은 김점례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하고, 아주머니께 한식에 대한 각종 비법들을 흡수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옵티머스는 김점례에게 어울리는 옷이 결코 아니다.
김점례가 있어야 할 곳은 한식당.
3개월이면 식당 밑천을 충분히 모을 수 있다.
‘어머니도 딱 3개월만 쉬기로 약속했으니···’
완벽한 시간 계산이 아닐 수 없다.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모이기 시작했다.
띵동-!
상문이와 나동수.
“형! 오늘은 카메라 안 들고 왔어요! 맛있는 거 차려준다고 했죠? 맘 편히 먹을 겁니다!”
“하하하하! 사장님 집도 다 사시고, 출세하셨슴다? ···헉! 저게 다 뭐야! 거 상다리 부러지겠네······. 하하하! 제가 싹 다 먹어 치울 겁니다. 푸드 파이터가 뭔지 함 보여드리겠슴다!”
곧이어 강창모와 김지원도 서로 손깍지를 낀 채로 들어왔다.
‘응? 손깍지?’
“왕호님! 놀라셨죠? 저희 오늘이 딱 투투입니다. 투투!”
“왕호 오빠 표정 좀 봐봐. 완전 놀란 토끼 눈이네. 크크.”
안 놀라면 이상하지.
“아니, 언제부터······.”
“파티 해체했을 때부터 따로 만나고 있었죠! 몰랐죠? 그동안 썸만 타다가 저번 달부터 사귀기 시작했어요! 오빠도 썸 아니에요?”
“썸?”
“여름이가 저만 보면 맨날 오빠 얘기만··· 읍!”
지원이는 말을 다 끝마칠 수 없었다.
강창모가 눈치 제로인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재빨리 왕호의 곁을 빠져나갔다.
“하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왕호님.”
‘여름이?’
여름이에 대한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매일 보는 얼굴이 도착했다.
다희가 허용을 데리고 나타났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아이고~ 우리 딸내미 왔어? 차린 건 별로 없지만, 맛있게 먹고 가! 에고공 몸이 이게 뭐야. 삐쩍 말라가지고······.”
딱 모델 수준의 보기 좋은 몸이었지만, 아주머니들이 보기에는 스켈레톤 수준이다.
박희란은 다희를 정말로 딸내미 취급하고 있었다.
왕호에게 다희가 조실부모했다는 말을 듣고,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보다 자세하고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굳이 얘기하지 않았다.
그건 프라이버시이면서 동시에, 둘만의 비밀이 아니겠는가.
아니, 관장님까지 하면 셋이네······.
“껄껄, 욘석이 요새 사랑의 매가 좀 맞을 만 하다고 요리를 통 안 해주더니만··· 오늘은 아주 푸짐하구나!”
“그러니까 요리 자주 드시고 싶으시면 이제 그만 좀···”
“응? 뭐라고? 더 강하게 지도해달라고?”
“아뇨··· 앞으로 꾸준하게 대령하겠습니다!”
“좋은 자세구나! 기어오를 생각은 꿈도 꾸지 말거라! 너와 나의 차이는 아직은 제트기와 달팽이 정도의 차이니 말이다 끌끌끌.”
그리고···
오랜만에 은인의 얼굴도 마주칠 수 있었다.
“칠우 아저씨!”
왕호가 반가운 나머지, 박칠우의 차가워진 손을 두 손으로 꼬옥 쥐었다.
“하하, 안 사장님 제가 뭐랬습니까! 사장님은 꼭 성공할 거라 했죠? 이렇게 성공하고 집까지 마련하다니 제가 다 자랑스럽습니다.”
“아저씨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죠!”
“하하하, 요리 방송 자주 챙겨보고 있습니다. 아, 매번 보내주는 반찬도 잘 먹고 있습니다! 집사람이 맛있다고 아주 좋아합니다.”
왕호는 자신을 기꺼이 도와준 박칠우 변호사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조금이지만, 매달 찬 몇 개를 싸서 보내주고 있었다.
수임료 비싸다는 김앤박 로펌 변호사를 거저 쓰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덜 미안했다.
박칠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건넸다.
“안 사장님. 좋은 소식 하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요?”
“예. 소송 결과 나왔습니다.”
박칠우가 선물과 함께 가져온 서류봉투를 흔들며 웃었다.
왕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은 담담히 회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충격에 의해 가슴이 찢어지던 그 경험.
지옥불 같은 화마가 자신의 모든 것을 삼키는 장면을 손 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참담한 경험.
포장마차 방화사건의 재판 결과가 지금 박칠우의 손에 들려있었다.
< 포텐 폭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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