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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1화 (121/149)

< 괴수미식회 (3) >

왕호는 어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괴수미식회에 관심 있으면 연락 주세요.

칠우 아저씨와 나눴던 대화다.

자신이 맡고 있는 의뢰인이 바로 이 ‘괴수미식회’의 회원이라고 그랬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분명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도 했다.

뭐, 아직까진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연락해봐야겠다.’

황 회장도 만났는데 못 만날 것이 어딨겠나.

게다가, 먼저 의사를 물어봤다는 것은 황 회장같은 오픈 마인드의 부류라는 뜻.

어차피 다음 주에 바로 나갈 거면, 미리 만나보는 게 큰 힘이 되지 않겠나?

“그나저나 자네는 내 눈을 피하지 않는군.”

황 회장이 왕호의 눈을 정확히 응시하며 말했다.

왕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황 회장의 말에 흠칫 놀라야 했다.

이번엔 또 무슨 뼈가 담겨 있는거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좀 말해주지, 늙은 재벌의 악취미인가?

“음··· 무슨 의미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만나는 이들 대부분은, 찔리는 거라도 있는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더군. 그에 비해 자네는 피하기는커녕, 반짝반짝 빛나고 있지 않나.”

“그거야··· 저는 회장님의 부하직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직장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어느 부하직원이 상사가 두 눈 부릅뜨고 쳐다보는데 똑바로 마주볼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껄껄껄.”

왕호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아니면 웃음을 터트릴만큼 웃겨서일까?

황 회장은 박장대소를 멈추지 않았다.

아주 빵 터졌다.

“하하,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야 뭐, 자네를 자를 수 없지 않겠나. ···허나, 나는 일평생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왔네. 사람 만나고 다루는 일이 내 직업이지 않나. 자네 눈빛 속에서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 느껴지는군.”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 다른 의미의 근자감인가?

“내가 느끼기엔 아주 좋은 눈빛이야. 자네가 요리사가 아니었다면 우리 회사에 채용했을 걸세.”

황 회장의 칭찬에 왕호도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게다가, 독한 뱀술까지 마셨으니 기분이 업되는 것은 당연지사.

홀짝-

황 회장은 술잔을 한 번 털어놓더니,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이번에 내뱉은 말에서는 한기가 잔뜩 느껴졌다.

“허나! 그런 눈빛은 조심해야 할 걸세. 특히나 이번 모임에 나가면 말이지. 그들 중엔 그런 눈을 좋아하지 않는 이도 많으니.”

이제야 황 회장이 내 뱉은 뼈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비위를··· 맞춰주라는 말씀입니까?”

“첫 만남인데 그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잖는가. 시간이 흐르면 다들 자네를 진국으로 여길 걸세. 어찌됐든 다들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형 톱니바퀴들이 아니겠나. 껄껄, 자네와는 대화가 잘 통하는군 생각보다 똘똘해. 아니, 똘똘한 건 아니겠군 학창시절 성

적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

‘헙!’

왕호의 동공이 넓어졌다.

넓어짐과 동시에 파르르 떨렸다.

황 회장이 마지막에 내뱉은 말.

이번엔 뼈가 아닌 날카로운 가시가 담겨 있었다.

“그, 그게 무슨···”

“똑똑하다기 보다, 눈치가 좋다고 해야 맞겠군.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사회로 일찍 뛰어들어서 그런가?”

“그걸 어찌···”

자신의 예상이 맞자, 술잔을 쥔 왕호의 손이 미약하게나마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런 조사도 없이, 자네를 여기 들인 것 같나? 대학에선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으나, 레스토랑에서의 실적은 별볼일 없었군. 동생에겐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이 있고, 작년에 각성했구먼? 클리닉 소견을 보면 각성 유전자가 없는데, 아주 특이하

군. 학회 보고 감이야.”

“······.”

왕호는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뒷조사 내용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 외로 깊은 정보까지 알고 있었다.

“중간에 프레이 길드와의 마찰도 있었구만. 불법체류자를 도와줬다지? 그걸로 프레이 길드는 거의 와해되다시피 되었고. 그 이후 경연대회에나가 1등을 먹었다. 이건 조사해보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지? 헌데 그거 알고 있나?”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원래는 플라톤 호텔측에 내정된 자리였으나, 여론에 의해 자네 품으로 돌아갔군. 덕분에 플라톤 사장이 아주 이를 갈고 있어. 아무래도 보복하려는 것 같군. 조심하게나.”

보복이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건 꽤나 고마운 정보였다.

“그리고 두유노우 길드? 여기도 자네의 뒤를 캐고 있더군. 여기와도 무슨 마찰이 있었나?”

“···그렇습니까? 마찰은 딱히 없었습니다만······. 아! 한 번 같이 레이드 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럼, 단순 호기심일 수도 있겠군. 보아하니 자네도 무언가 사연이 있는 것 같구먼. 각성 유전자가 없는데 각성한 것도 그렇고, 달빛여제라는 랭커가 계속 붙어 있는 것도 그렇고. 뭐, 더 이상 캐묻지는 않겠네.”

“거기까지 알고 계셨습니까? 이미 다 캐신 거 같은데······.”

“허허, 어쨌든 잘 이해 했으리라 보네. 기억하게나. 자네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아군이면 그 어떤 배경보다 든든하지만, 적으로 두었을 때는 그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다는 것을.”

무섭다.

눈 앞의 사람은 무서울 정도로 사람을 다룰 줄 아는 이었다.

황 회장 자신의 이름을 걸고 데려가는 것이니 만큼, 그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단단히 하려는 것 같았다.

미리 만나고자 했던 이유를 이제 명확히 깨달았다.

‘황 회장님 가오 살려드려야겠네.’

황 회장이 내뱉은 말.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괴수미식회의 일원들은 죄다 대한민국에서 한 따까리 하는 사람들.

아군일 땐 든든하지만, 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다닥다닥 돋는다.

플라톤 사장이 보복을 준비하고 있고,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두유노우 길드는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괴수미식회 일원들을 아군으로 만든다?

혹시나 있을 상황에서 든든한 힘이 될 거다.

가볍게 생각하고 왔으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왕호는 자신의 술잔에 담긴 독주를 독한 마음으로 들이켰다.

홀짝-

독한 마음을 먹어서일까?

아까까진 그렇게도 독했으나, 지금은 부드럽게까지 느껴졌다.

*

다음 날, 왕호는 바로 칠우 아저씨와 연락했다.

박칠우는 ‘상성 중공업’ 사장의 변호를 맡고 있었다.

배임 혐의 사건인데, 아마 무죄가 나올 것 같다나?

여기 사장이 괴수미식회 회원인데, 왕호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

황 회장만큼 깊게 지켜본 것은 아니고, 그냥 약간의 관심만 있는 정도?

칠우 아저씨는 왕호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만남을 주선했다.

청담동의 한 고급 한식당.

VIP룸 안에 왕호와 50대 쯤으로 보이는 기업가가 앉아 있었다.

기업가의 정체는 상성 중공업의 사장이자, 재계 서열 1위 “상성 그룹”의 3남.

이재균이었다.

회장은 아니지만, 차기 회장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람.

지금이야 장남이 유력하지만, 황 회장도 막내로 태어나서 회장자리를 꿰차지 않았는가.

사람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일이다.

하여, 괴수미식회에서의 영향력은 거의 황 회장에 비견할만 했다.

2세라고 해도 어쨌든 재계 서열 1위 아닌가.

승계 서열 1, 2위의 두 형제들은 미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에, 미식회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 괴수미식회가 그에게 있어서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곳의 인연이 승계를 뒤집어버릴 기회를 창출할 거라,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하핫, 안 셰프가 우리 박변과 아는 사이인 줄은 몰랐지. 박변이 이번에도 날 살려주고, 덕분에 안 셰프도 만나고 아주 좋아.”

“제가 다 영광입니다. 이토록 유능하신 ‘차기 회장’님을 직접 뵙다니요. 저에게 큰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이것보다 더한 영광이 어딨겠습니까.”

왕호는 이 사장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레스토랑 시절, 직장 상사와 거래처 사장님들을 상대로 갈고 닦은 영업실력을 총 동원했다.

황 회장의 조언이 없었더라면, 아마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을 거다.

허나, 지금은 영업질이 더 필요한 상황.

이 사장은 왕호의 말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회사 사람들이야 아부를 자주 해주지만, 이렇게 대놓고 차기 회장이라 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들 어디에 줄을 설까 아직까지 눈치를 보는 입장이고, 줄을 섰어도 회사에선 보는 눈이 많으니 감히 얘기할 수 있겠나.

“하하하, 차기 회장이라니 누가 들으면 경을 칠 소리네.”

“까짓것 들으라 하지요. 팩트잖습니까. 능력만 보면 우리 이 사장님이 으뜸 아니겠습니까?”

“하핫,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황 회장 그 능구렁이가 안 셰프를 먼저 섭외했다고 들었네만.”

“예. 맘 같아서야 우리 이 사장님 차례에 나가는 것이 저도 좋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접근해 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해하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하는데 크으, 아쉬워라···. 그 노친네가 직접 나설 정도면··· 안 셰프의 잠재력이 상상 이상인가 보군.”

이 사장은 황 회장이 왕호를 섭외했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왕호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다.

황 회장은 상상 이상의 정치9단이 아니던가.

그런 노친네가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셰프가 평범하진 않다는 소리다.

유일하게 께름칙 했던 왕호의 밑바닥 출신은 이제 크게 중요치 않았다.

대화는 물흐르듯이 술술 흘러갔다.

이재균은 왕호에게 호감이 있었으며, 왕호는 이재균의 아무말 대잔치를 죄다 웃으며 받아줬다.

화기애애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왕호는 이재균의 차례에 미식회에 또 나올 것을 약속했고, 이재균도 왕호의 서포트를 단단히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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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는 이재균과의 만남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괴수미식회 영향력 Top 5 중에 두 사람의 호감을 샀지만, 더더욱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왕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여름아!”

-어, 오빠!!!

한여름이었다.

“시간 있어? 잠깐 만날래?”

-당연하지!

두 사람은 자주 만나는 카페에서 만났다.

.

.

“에? 정말? 오빠가 그 사람들을 만났다구?”

민트초코 프라푸치노를 쪽쪽 빨던 한여름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어. 나도 얼떨떨했다니까?”

“와, 우리 오빠 클래스 점점 올라가는데?”

‘잘하면 우리 부모님한테 소개도···’

여기까지는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여름아 근데, 왜 갑자기 말을 놔?”

“하~ 놓으면 안 돼? 내가 응? 덕구도 자주 봐주고 어! 희영이하고도 맨날 놀러다니고 어! 생사고락을 함께 했는데 어! 그까짓 말 놓는 것도 안 돼?!”

그냥 물어봤는데, 여름이는 어울리지 않게 사나운 고양이마냥 발톱을 팍팍 세웠다.

왕호가 당황했다.

사나운 컨셉은 다희만으로도 골치 아픈데······.

“아, 아니. 왜 이제 놓나 싶어서······. 난 진작 놓을 줄 알았지. 놓을 때 됐지 암, 하.하.하.”

순간 당황했으나, 임기응변으로 탈출했다.

한여름은 왕호의 집들이에 가서 크나큰 충격을 경험했다.

희영이하고는 친해서 상관 없었지만, 왕호 오빠의 어머니를 본다는 생각에 잔뜩 힘을 주고 나갔다.

그런데 세상에! 어머님이 다희 언니를 딸내미 취급 하는 것이 아닌가!

선수 놓쳤다.

갑작스런 위기의식(?)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야자를 터버렸다.

친근감을 극대로 형성하기 위함이었다.

왕호의 어머니에게도 싹싹함을 마구 뽐냈다.

다희 언니는 왕호와 매일 붙어있지만, 자신은 배우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와, 근데 여름이 넌 볼 때마다 취향이 1%구나. 민트초코라니··· 너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도 좋아하잖아.”

왕호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여름이를 바라보았다.

“하~ 이상해? 어? 민트초코가 어때서? 오빠도 막 피스타치오 극혐하는 그런 노답 부류야? 요리사가 그래도 돼? 엉?!”

“아, 아니 상위 1%라는 뜻이었어. 진정 맛을 아는 부류구나! 근데 오늘 따라 상당히 앙칼지네?”

“어?! 아··· 미, 미안. 요새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서, 그냥 나가도 되겠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음··· 그래서 염치 없지만 부탁 하나 하려고······.”

“부탁? 나한테? 염치 없다니 무슨 소리야! 말해 말해! 다 들어줄게!”

“네 할아버지 있잖아.”

“우리 할아버지? 한 회장님? 아~ 우리 할아버지도 만나보게? 알았어 내가 당장 주선···”

“아니.”

왕호는 당장 전화하려던 여름이를 멈춰 세웠다.

직접 만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 괴수미식회 (3)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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