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2화 (122/149)

< 괴수미식회 (4) >

“그냥 여름이 네가 말만 해줘.”

손녀딸의 애교면 껌뻑 죽는 것이, 할아버지들 특성 아니겠나.

어설프게 만났다가 괜한 오해만 살 수도 있다.

그냥 애교 한 방이면 사르르 녹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것이 딸이다.

심지어 손녀딸면 말 다했다.

생판 처음보는 사람의 영업질보다야 효과가 월등할 거다.

예전에도 그랬다.

여름이의 말 한마디만으로, 몬스터 조리 라이센스 제도가 뙇! 하고 생겨나지 않았나.

“움··· 알았어! 진짜 착하고, 능력있고, 나도 많이 도와주고, 잘생긴 오빠라고 잘 봐달라고 말해줄게!”

“잘생긴이랑 오빠 얘기만 좀 빼면 좋겠다. 괜히 노하시지 않을까?”

“음··· 그러시려나···? 알겠어! 그건 나중에 말 해도··· 헤헤. 나만 믿어! 대신, 이거 해주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줘야 돼!”

“당연하지. 뭔데?”

“나중에 말해줄게. 아껴둘 거야.”

같이 있으면 매번 잊어먹는다.

여름이가 재벌집 손녀딸이라는 것을.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는 것 같네.’

여름이와 만난 것.

왕호에게 있어서 크나큰 행운이나 마찬가지었다.

여름이가 있었기에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었고, 오늘처럼 이런 부탁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다.

여러모로 고마운 것이 참 많다.

오늘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름이의 부탁은 웬만하면 거절할 수가 없다.

여름이와는 도란도란 노가리를 까고 헤어졌다.

듣는 것 위주였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재균 앞에서 영업질 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편했다.

여름이를 집에 보낸 왕호는, 전화기를 또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벌집 딸내미는 여름이 말고도 또 있다.

김지원.

제약 업계 2위인 우한양행 딸내미다.

지원이는 따로 만나지 않고, 간단히 전화로 부탁했다.

아마, 내가 말 안 해도 여름이가 지원이에게 따로 전화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래도, 직접 부탁하는 게 도리 아니겠나.

-뭐, 어려운 건 아니네요. 오빠 부탁은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오빠 없었으면 우리 창모 오빠도 못 만났을 테니까요.

“고마워! 근데, 창모님하고는 어쩌다가···”

-제 이상형이 원래 듬직한 남자잖아요. 커다란 방패를 들고 저를 지켜주는데 어찌나 심쿵했던지······.

“음··· 넌 혼자서도 몸 간수 잘 하잖아. 입만 열면 다 나가 떨어질 텐데···”

-···오빠도 한번 나가 떨어져 볼래요?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해줘? 배때지를 가른 다음 창자를 뽑아다 젓갈을···

“하하, 고마워! 담에 보자!”

뚝-

‘잘못하면 일주일 내내 악몽꿀뻔 했네.’

지원이의 섬뜩한 욕지거리를 한번 들으면, 일주일은 잊혀지지 않는다.

재벌가 출신이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는 욕쟁이 할미넴급 스웩.

‘외적인 요소는 다 됐고.’

이제 실력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제대로 된 전략을 짜서 말이다.

*

괴수미식회는 은밀한 모임이다.

처음 만들어 질 때는 불법이었기에 은밀했다.

지금은 합법이 되었음에도, 은밀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은밀한 모임이니 은밀한 이야기를 나눈다.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밖으로 새어나가서 좋을 것이 없는 모임이다.

그것이 지속되어 왔기에, 섣불리 양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괴수를 먹는다는 본연의 취지는 그대로 유지 중이다.

재벌들 사이에 다른 은밀한 모임은 이것 말고도 많다.

이들은 ‘미식’이라는 공통 분모하에 모인 이들이다.

부아앙--

일반인들은 200년을 모야아 살 수 있다는 고급 차량들이 한 별장 안에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럭셔리한 별장의 정문은, 검디검은 양복을 빼입은 경호원들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지키고 있었다.

떡대가 장난 아니다.

족히 일천평은 넘어보이는 고급 별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속칭, 재벌이라 불리우는 자들이다.

“이야~ 한 달만인데 이 사장님 신수가 훤해지셨소.”

한 전자회사의 송 사장이 이재균과 악수를 나눴다.

서로 웃으며 악수를 나누긴 했지만, 송 사장의 말 속에는 약간의 조롱이 담겨 있었다.

배임 혐의로 꽤나 고생하고 있던 이재균이다.

겨우 무죄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은 이재균에게 축하 아닌 축하를 건네는 말이었다.

“하하, 이제 걱정거리는 사라졌으니 두 발 뻗고 잡니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겠소이다. 내부 고발자는 어쩌실 생각이시오?”

“뼈도 못추리게 당연히 보복해야지요. 그나저나, 우리 송 사장님 요새 스마트폰 사업이 적자라는데··· 그러게 배터리 관리 좀 철저히 하시지. 펑펑 터지고 그게 뭡니까 볼성 사납게.”

“크흐흠!”

송 사장은 괜한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찾았다.

황 회장의 차를 타고 온 왕호는 멀리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각성한 왕호의 귀에는 생생하게 들렸다.

‘보복을 당연시하게 여기네··· 저게 재벌의 본모습인가?’

피도 눈물도 없으니, 여기까지 온 것이려나?

내부 고발자 입장에서는 정의로운 일을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정의가 잘 통하는 사회는 아니다.

그래서 플라톤 사장이라는 사람도 보복을 하려는 것 같았다.

딱히 왕호가 잘못한 건 없지만, 플라톤 입장에서는 왕호때문에 큰 손해를 봤다.

억울하긴 했지만, 그래도 미리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오랜만에 만난 재벌들은 도란도란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가볍게 나누기 시작했다.

가볍게 나누는 대화였지만, 듣는 왕호의 표정은 절로 찌푸려졌다.

각종 불법에 관한 얘기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과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인가?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래도 이곳에 있으니, 의도치 않은 고급 정보들을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어찌됐든 이곳에 모인 이들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 초빙된 셰프들은 반드시 ‘선서’를 해야만 한다.

혹시나 듣게된 정보들을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말이다.

왕호의 표정을 읽었는지, 황 회장이 왕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허허, 재벌의 민낯을 오늘 제대로 보고 가겠구만? 대부분이 불법으로 일구어낸 것들이지만, 황룡처럼 정상적으로 일궈낸 기업도 있다네. 만약 황룡도 지름길을 택했다면, 재계 서열 4위가 아닌 1위가 되었을 걸세 껄껄껄.”

시간이 흐르자, 본격적인 괴수미식회가 시작됐다.

회원들은 준비된 곳으로 모여들었다.

구조가 특이한 방이다.

마치 요리 방송 녹화하듯 큰 조리대가 놓여 있고, 그 앞쪽으로 회원들이 쭈르륵 앉는 구조다.

누구나가 요리사의 요리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무어라 할 것 없는 완벽한 구조.

오늘의 호스트인 황 회장이 입을 열었다.

“누추한 이곳에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오. 차린 건 부족하지만, 편하게 즐겨주시구려.”

짝-!

황 회장이 박수를 한번 내리치자, 앞문이 열리며 왕호가 걸어나왔다.

“그럼, 소개하리다. 오늘의 괴수 요리를 만들어줄 요리사. 올해 에이스 셰프 코리아의 우승자 안왕호 셰프요!”

꾸벅-

왕호는 허리를 숙여 좌중에게 정중히 인사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맛있는 요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대가 재벌이건 꼬마아이건, 자신의 요리를 맛봐주는 손님이다.

최선을 다 하는 건 요리사로서 당연한 일이다.

왕호가 인사하자, 좌중에서 각종 잡음이 터져나왔다.

“이번 달 셰프는 히로 셰프 아니었나? 오사카의 초밥 장인 히로.”

“그러게 말이오? 저자는 처음 보는데 혹시 누구인지 아시는 양반?”

“에이스 셰프 코리아? 거기는 아마추어들이나 나가는 곳이잖소! 에잉, 셰프를 못 구하겠으면 나한테 말을 하지. 미슐랭 투스타 정도는 하루만에 섭외할 수 있겠구만.”

에이스 셰프 코리아 우승이라는 타이틀은, 여기선 아무 짝에도 쓸모 없었다.

저들 말대로 에셰코는 아마추어들이 자웅을 겨루는 곳이다.

유명 셰프들이 나와 자웅을 겨뤄도,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까 말까인데 고작 아마추어?

대부분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그래도 한 번 기회를 줘보지? 자네, 혹시 어디 식당 소속인가? 내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데, 혹시 외국에서 왔나? 영국? 프랑스? 두바이?”

송 사장이 왕호에게 물었다.

“식당 딸린 푸드트럭 하나 하고 있습니다.”

“뭐, 푸드트럭? 설마, 길거리에서 토스트나 구워 파는 그 푸드트럭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 하지만 제 트럭에서는 토스트 뿐만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요리를 맛보실 수 있습니다.”

푸드트럭?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냉기마저 느껴질 정도.

잠시 후, 송 사장의 입에서 박장대소가 튀어나왔다.

“하하하하하!!! 그럼 우리보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라는 말이오? 황 회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이거 완전 우리 골탕먹이는 거 아니오? 내 중식대가 이연걸 셰프와 친하니, 지금이라도 내가 데려오겠소이다!”

푸드트럭 출신이라는 말에 송 사장을 비롯한 많은 수의 재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분위기는 점점 송 사장의 제안 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황 회장은, 자신이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했다.

이정도 반응이야 이미 예상했던 수준.

일단 먹어보면 다들 놀랄 터이니, 초반엔 자신의 영향력으로 잠깐만 잠재우면 된다.

하지만,

“하하, 송 사장님 답지 않게 너무 편협한 거 아닙니까? 저 친구 요리는 내가 먹어본 적 있는데, 맛 하나는 기가 막히니 한 번 맡겨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다들, 소싯적엔 도전 좋아하신 분들 아닙니까! 이번에도 도전 한 번 해보시지요.”

상성 중공업의 이 사장이 왕호를 두둔하고 나섰다.

“허! 이 사장 입맛이 많이 저렴해졌나보오? 이젠 저런 길거리 음식이나 먹는 것을 보니. 난 오늘 아침에도 베이징에 가서 호텔 요리를 먹고 왔는데, 저 친구는 호텔은커녕 길거리 노숙자들이나 퍼먹는 음식을 만들지 않소이까!”

“송 사장님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지금 내 입맛을 못 믿겠다는 거요? 고급 음식이야 내가 더 좋은 걸 먹으면 먹었지, 싸구려는 먹지 않아! 시가 총액으로 함 붙어볼까?”

원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두 사람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자, 호스트인 황 회장이 나서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황 회장도 당연히 그러려 했으나,

“흠흠! 맛있는 요리를 먹는 이 좋은 날 어찌 그런 걸로 싸우십니까. 저흴 초대하신 황 회장님 입장과 요리 해주려 온 저 친구의 입장도 생각해야지요. 제가 길드 관련 사업 크게 하시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요새, 각성자들 사이에서 저 친구 인기가 장난 아

닙니다. 한 번 믿어보시지요.”

우한양행의 김 회장이 느닷없이 나섰다.

송 사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평소에 잘 나서지 않는 양반까지 자신의 의견에 딴지를 거니,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부화가 치밀어 오른 송 사장이 당장 반박하려 했으나, 또 다른 이가 끼어들었다.

“다들, 제가 몬스터 요리를 합법화 한 건 알고 있을 겁니다. 저 친구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어쩔 수 없었죠. 그 때도 분명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 보십시오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몬스터 요리를 접하게 됐지만, 쉽게 구할 수 없어

그 가치가 더욱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저 친구야말로 몬스터 조리 라이센스 1호 취득자이니, 믿고 맏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제약 업계의 1위.

한대약품의 한 회장이 나섰다.

쐐기다.

송 사장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무어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송 사장은 회장으로 거의 확정된 거나 다름 없는 존재.

재계 서열 2위 그룹의 차기 회장이다.

황 회장과 이 사장이 두둔하고 나섰지만, 절대 꿀리진 않는다.

이곳의 영향력 Top5 중에 고작 2명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푸드트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 둘까지 입을 열었다?

이제는 다르다.

비록 저들이 10대 그룹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영향력이 결코 낮진 않다.

게다가 말 속에 명분까지 가득 있으니, 어찌 반박할 수 있겠는가.

‘저 친구 뭐하는 녀석이야?’

사실, 황 회장이 계속 밀고 나가도 막을 방도는 없다.

그냥 괜한 딴지를 걸면서 자존감을 높이려 했는데, 이렇게 되니 졸지에 치졸한 이미지만 뒤집어쓰게 생겼다.

황 회장은 왕호를 놀라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호오~?’

의외였다.

‘역시 사람 보는 눈 죽지 않았구만,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으이 껄껄껄.’

며칠의 시간밖에 없었지만,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들의 호감을 사서 돌아왔다.

일반인이라면 감히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만나는 것만 하더라도 칭찬해 마지않을 건데, 호감까지 사 왔다?

진국도 이런 진국이 없다.

맛으로까지 저 인간들 입을 싹 닫게 만든다면, 부탁이야 두 개라도 못들어 주겠는가.

“허허허, 이렇게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직접 먹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만. 내가 괜히 이 친구를 초빙했겠소이까? 이 늙은이의 안목 한번 믿어 보시오들.”

황 회장이 중재하자, 하나둘 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멍석이 깔렸다.

준비한 것을 보여줄 시간이다.

“감사합니다. 일단, 제 요리를 대접할 수 있어 영광이란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혹시나, 여기서 우연치않게 듣는 모든 말들은 일절!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오늘 제가 만들 요리는···”

일단, 기본적인 선서부터 한 왕호는 살짝 뜸을 들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이곳에 모인사람들은 전부 식도락을 좋아하는 미식가들.

그리고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돈도 많다.

그렇다면 당연히 좋아하지 않겠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것.

세월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그것.

제아무리 진시황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순리는 역행할 수 없다.

“···정력에 좋습니다.”

< 괴수미식회 (4)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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