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수미식회 (5) >
세상엔 주워 담을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흘러간 시간과 잃어버린 건강.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살 수 없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억만금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런 억만장자들이 헛바람들 들이켰다.
“헛!”
“저, 정력에?!!!”
“요새 아침마다 기운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스테미너’ 하면 눈 돌아가는 것이 아재들과 아지매들의 심리 아니겠나.
심지어, 이들은 무수히 쌓아둔 돈으로 밀회까지 즐기는 자들.
욕망에 가득 사로잡힌 이들에게, 왕호가 건넨 말은 마치 악마의 유혹처럼 다가왔다.
“자, 자네 장난하는 건 아니겠지?”
“그곳에 좋다는 건 이미 죄다 챙겨 먹고 있네!”
“설마 비아그라 가루를 섞는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그건 이제 안 먹힌 지 오래··· 크흠!”
반신반의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목소리 속에는 ‘절박함’이 절로 묻어나왔다.
왕호는 눈이 헤까닥 뒤집어진 군상들의 모습에, 마음속으로 실소를 터트렸다.
지혜의 모범이 되어야 할 노인들이 아니던가.
그곳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렇게나 우스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추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고개를 돌리니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저 몸에 좋다니 관심을 슬쩍 가질 뿐, 그보다 맛을 더 기대하는 자들의 시선도 없진 않았다.
여러 군상들의 모습을 보니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재벌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구나.’
좌중의 기대를 잔뜩 받은 왕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비아그라 같은 약품이나 화학적 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방 재료들은 조금 들어가겠지만, 전부 천연 재료들입니다.”
비아그라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에 사람들이 안심했다.
스테미너에 집착하는 이들 대부분은 이미 이 약품의 효과에 의지하고 있다.
심지어 내성이 생겨 약빨이 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비아그라.
이 약이 어떤 약인가.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효능 덕에 전 세계적으로 대박 친 히트상품 아닌가.
얼마나 효능이 좋았으면, 청와대에서도 ‘고산병 치료제’라는 되도 않는 명목으로 구비해놓았겠는가.
고산병 치료 상비약품이라니, 지나가던 네팔인이 코웃음 칠 변명이다.
여기 와 있는 재벌들에게 비아그라는 없어서 못 구하는 물품은 아니다.
“제가 오늘 만들 요리의 이름은··· 용궁해신탕입니다.”
“해신탕?”
“용궁이라는 말을 붙일 정도로 거창한 요리인가?”
“해신탕 같은 건 자주 먹네만···.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단, 보양 목적으로 먹는다고 봐야지.”
왕호는 요리의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갔다.
이곳은 미식회다.
맛과 효능의 평가뿐만 아니라, 요리의 재료와 과정에도 관심이 많은 자들이다.
“다들 아시는 재료로는 전복과 굴, 그리고 바다장어 꼬리가 들어갑니다.”
모두 스테미너에 좋은 재료들.
하지만 여기까진 평범 그 자체다.
“여기에 별육 鱉肉을 더할 것입니다.”
“별육? 자라 고기를 말하는 건가?”
“예. 역시 다들 잘 아시는군요. 자라 고기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해구신도 넣을 것이구요.”
“해구신 海狗腎!”
해구신은 바다물개의 부랄··· 아니, 고환이다.
정력에는 최고로 좋다는 바로 그 재료.
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귀해서 가격도 하늘을 찌른다는 보양 재료!
아무리 싸게 구한다고 해도 개당 300은 훌쩍 넘긴다.
“해구신은 신장을 따듯하게 하고 생식기능을 높이죠. 여기 계신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정精과 수髓를 보익補益하고, 허손노상虛損勞傷, 음위陰萎, 정쇠精衰에 좋습니다. 그리고 허리와 무릎까지 탄탄하게 해주는 고마운 재료죠."
“하하, 맛대가리 없는 재료들만 골랐군.”
하지만 맛이 없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다.
비리고 짜기만 하다.
“같이 들어갈 채소로는 부추와 루콜라가 들어갈 겁니다. 부추는 다들 아실 테고, 루콜라는 지중해산 에루카속의 일년초이죠. ‘아루굴라’라고도 불리고, 1세기 때부터 흥분제로 사용할 만큼 효과가 좋습니다. 예전 수도원의 뜰에서 재배가 금지될 정도죠. 이
탈리아 요리에 주로 쓰입니다.”
“맛은 어찌 끌어낼 생각인가? 아무리 몸에 좋아도 여기는 미식회일세. 맛이 없으면 자네를 쫓아내도 할 말이 없지.”
“토마토를 사용해 맛을 올릴 겁니다. 여기에 구기자도 들어가죠. 본초강목에 따르면 객혈을 없애고 자양강장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죠. 독신 남자에게는 먹이지 말라고 할 정도로 강장효과뿐만 아니라 풍미도 뛰어납니다.”
“달랑 두 개가 끝인가? 그걸로 해물의 비린 향과 보양 재료의 쓰디쓴 맛을 잡을 수 있겠나?”
역시, 세계의 각종 진미를 경험한 미식가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복분자를 사용해 달콤한 맛을 끌어낼 겁니다. 요강이 소변 줄기에 뒤집어질 정도로 효과가 뛰어나기도 하고, 풍미도 강하게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한방 재료와 맛의 밸런스를 잡아줄 여러 향신료들을 사용할 겁니다.”
“허헛, 설명만 들어서는 힘이 당장이라도 불끈불끈 솟는 것 같구먼. 헌데··· 해신탕이라고 하지 않았나? 해신탕에는 닭이 필수가 아닌가?”
“이곳은 ‘괴수미식회’잖습니까. 닭 대신 몬스터 고기를 주재료로 사용할 겁니다. 육수도 이것으로 낼 겁니다. 육수를 우리고, 깨끗이 손질한 재료를 넣어 탕으로 끓여낼 생각입니다.”
“호오, 그렇다면 오늘의 괴수는 무엇인가?”
재벌들의 얼굴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왕호의 설명은 매끄러웠다.
오늘을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다.
그럼에도, 왕호가 밑바닥 출신이라는 편협한 생각은 전부 지워낼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확실히 달라진 눈초리다.
왕호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비장의 재료를 공개했다.
“오늘의 메인 재료는 바로··· 켄타우로스입니다.”
“켄타우로스!!!”
켄타우로스.
상체는 마치 오우거를 연상시킬만한 우락부락한 괴수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하체는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말의 형상이다.
키가 무려 4m 정도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크기이며, 네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칠듯한 속도는 차마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다.
게다가 창과 같은 병장기까지 사용하니, 사냥하기가 여간 까다롭고 무서운 게 아니다.
왕호가 얼마 전 잡았던 아즈모데우스보다는 거의 세 단계나 높은 상위 몬스터.
레벨 400대들의 레이드로 잡아야 하는 무시무시한 녀석이다.
왕호의 입꼬리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켄타우로스의 생식기를 사용할 겁니다.”
“새, 생식기?!”
생식기라는 말에 재벌들이 웅성거렸다.
이제껏 괴수미식회 사상 몬스터의 생식기를 주재료로 사용한 셰프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의 생식기는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벌겋게 눈이 뒤집어진 몬스터들은 생식 활동을 일절 하지 않는다.
몬스터들이 어떤 식으로 생식하는지, 어떤 식으로 생명을 잉태하는지는 알려진 바가 일절 없다.
하여, 생식기가 있다는 사실도 확실치 않다.
다만, 이 켄타우로스의 생식기는 누가 보더라도 생식기처럼 생겼다.
말의 그것을 닮았다.
게다가 우람하다.
할배들이 눈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
예상대로, 재벌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인다.
기대 반 의심 반이었다.
“켄타우로스라면 반인반수의 모습이 아닌가?”
“맞아! 하체가 분명 말이었으이!”
“그, 그렇담 말 거시기?!”
“말!!!”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의 그것은 무척이나 거대하다는 것을.
심지어 켄타우로스는 키가 4m가 넘는 거대 말이다.
관심을 제대로 끌어냈으니, 이제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때다.
“그럼 요리 시작하겠습니다!”
왕호는 조리대 아래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꺼냈다.
켄타우로스 고기(?), 해구신, 전복, 별육, 바다장어, 굴과 같은 고기류부터,
루콜라, 부추, 구기자, 토마토, 복분자 같은 채소과일류.
마지막으로, 각종 약재들과 향신료들을 주섬주섬 꺼내 올렸다.
쏴아아-
먼저 재료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빡빡 씻는다.
‘윽, 기분이 묘하네······.’
켄타우로스 고기(?)를 씻을 때는 약간 께름칙했지만, 요리사가 어찌 이것에 굴하리오!
잘 씻기지 않는 부분은, 밀가루에 조물조물 묻혀가며까지 완벽하게 씻어냈다.
씻은 재료들은 곧장 손질에 들어갔다.
켄타우로스의 그것에 달린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한다.
해구신과 별육, 바다장어 꼬리도 손질한다.
서걱-
쓴맛을 강하게 내는 부분은 알맞게 도려냈다.
쩌적-
굴은 껍질을 까서 우윳빛깔 알맹이만 꺼냈고, 전복은 껍질 채 사용할 거라 그냥 놔뒀다.
달그락-
이제 육수를 우릴 넓은 냄비를 꺼내 올렸다.
켄타우로스 고기를 냄비 위에 올린다.
육수 우릴 때 쓰는 천 주머니를 꺼내, 각종 고체 향신료를 담는다.
팔각을 비롯한 향신료들이 쓴맛과 텁텁함을 없애줄 거다.
빵빵해진 육수 주머니를 고기 옆에 놓는다.
콸콸콸-
이제 고기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황기 수삼 같은 약재도 잘 잠기게 넣는다.
마지막으로 단맛을 살려줄 마늘, 대추, 감초.
그리고 구기자를 가득 넣는다.
팔팔팔팔- 끓인다.
다 끓으면 육수 완성.
“호오, 황 회장이 자신한 대로 실력 하나는 봐줄 만 하구려.”
“껄껄걸, 맛보고 나면 더 놀랄 거요!”
“하핫, 제가 뭐랬습니까! 한번 믿어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 친구 제가 다음에 또 데려올 터이니 기대하십쇼!”
“손이 아주 빠르구먼. 거침없으이! 각성자라서 그런고?”
재료를 손질하고 육수에 불을 올리는 데까지 채 2분이 걸리지 않았다.
유려한 손질 솜씨가 마치 해신탕만을 30년 동안 해온 장인의 수준 같았다.
원래 한 시간은 푹 우려야 하지만,
마도구 냄비이기에 육수가 우려지기까지는 대략 5분 정도가 걸린다.
왕호는 그동안 토마토 베이스의 또 다른 스톡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직- 콰직-
잘 익은 복분자를 마구 으깬다.
휘적휘적-
그리고 만능 토마토 페이스트와 으깬 복분자를 섞는다.
맑은 국물에 같이 우려야 하기에, 채에 걸러 좀 더 부드럽게 해준다.
주르륵-
육수가 다 끓자, 켄타우로스 고기만 따로 건져내고 나머지는 채에 걸러 육수만 남겼다.
새로운 고급 팬냄비를 꺼내, 손질된 재료를 차곡차곡- 예쁘게 담았다.
각종 해산물들이 테두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켄타우로스 고기가 늠름하게 자리 잡았다.
콸콸-
아까 우려놓은 육수를 붓는다.
재료들이 살짝 잠긴다.
화르륵-
불을 세게 올려 끓이기 시작한다.
보글보글-
육수가 끓자, 거품이 재료들 사이사이를 뚫고 올라온다.
여기에 방금 만들어 놓은, 복분자 페이스트를 주르륵- 넣었다.
루콜라도 예쁘게 올리고 화력을 높인다.
화르르륵-
이제, 팔팔팔- 끓이기만 하면 완성.
부글부글-
국물이 거칠게 끓어오르자 그 위로 부추를 얇게 올려 마무리했다.
완성.
[보양 힐링 요리 “솟아오르라! 켄타우로스 용궁해신탕”을 제작했습니다.]
[레시피 데이터베이스에 “보양식” 목록이 형성되었습니다.]
[보양식의 특성상 버프가 기본 1.5배로 적용됩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실력 이상의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고급 요리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요리의 마나 캐퍼서티가 상당합니다.]
[힐링 버프 두 가지가 함께 적용됩니다.]
-솟아오르라! 켄타우로스 용궁해신탕-
[강력한 스테미너의 소유자, ‘켄타우로스’로 만든 보양식.]
[어느덧 활력을 잊어버린 나이든 자들을 위한 요리다.]
[각종 고급 재료와 고급 약재가 듬뿍 사용됐다.]
[켄타우로스 생식기, 해구신, 전복, 별육, 바다장어, 굴, 루콜라, 부추, 구기자, 토마토, 복분자까지! 스테미너에 좋다고 하는 재료들은 모조리 들어갔다.]
[맛깡패의 기운이 가득 담겨있다.]
[켄타우로스 육수에, 토마토와 복분자로 맛을 더했다.]
[맛이 일품이다. 최고의 보양식이다.]
[효과 : 몸을 강하게 보양합니다. 면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힘이 50% 상승합니다. 최대체력이 50% 상승합니다.]
[버프 : “가루지기”, “맛깡패”가 발동됩니다. 주 버프는 “가루지기”입니다.]
[가루지기 – 현재 지니고 있는 발기부전 질병이 완벽히 치료됩니다. 양기를 마구 북돋아 줍니다. 남성 호르몬이 크게 분비됩니다. 음경해면체 내에 혈류량이 증가합니다. 버프가 지속되는 동안 혈류량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최대 100%(Full)입니다. 이 버프
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맛깡패(보조) – 환상의 맛을 섭취하여, 황홀경에 빠집니다. 엔돌핀과 도파민이 뿜어져 나와,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감소합니다. 거식증이 100% 치료됩니다. 투지가 100%로 상승합니다. 이 버프는 평균 30분, 최대 3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비싸디비싼! 그리고 몸에 좋으디좋은 보양식!
왕호표 용궁해신탕이 완성됐다.
솟아오르라!
“허허허···”
“생긴 것이 좀··· 대단하구려!”
“흠칫하긴 하지만··· 플레이팅의 밸런스는 합격이오!”
오랜 시간을 금수저··· 아니, 플래티넘수저로 살면서 얼마나 화려한 요리들을 즐겨왔을까?
그럼에도, 왕호의 요리는 그들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고급 재료가 잔뜩 들어간 점.
요리 과정이 매끄러웠던 점.
플레이팅이 뛰어났던 점.
이제 맛만 뛰어나면 완벽한 합격이다.
쥐뿔도 없다고 무시했던 저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효능까지 완벽하다면, 저들의 호감까지 잔뜩 살 수 있다.
용궁해신탕을 처음 마주한 송 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아니···!’
고급스러운 냄비.
그 속에 각종 보양 재료들이 아름답게 반신욕을 하고 있다.
국물은 마치 태국의 전통 스프인 ‘똠얌꿍’을 연상케 하는 옅은 빨간 국물이다.
허나, 결코 맵진 않은 빨간 국물이다.
요리과정은 자신이 똑똑히 지켜보았다.
분명 고추가 들어가지 않았다.
토마토와 복분자를 베이스로 했기에 나타난 아름다운 색이다.
해물을 넣어 끓였기에 국물은 시원하고,
켄타우로스 육수의 걸쭉한 향과 풍미는 아마 고소할 거다.
코로 느껴지는 깊은 향기가 말해준다.
허나, 그 무엇보다도 송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냄비 중앙에 놓여있는 그것(!)이였다.
“크, 크고 아름다워!”
살면서 보지 못한 가히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 괴수미식회 (5) > 끝
ⓒ 신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