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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5화 (125/149)

< 역풍 (1) >

*

플라톤 호텔은 전국에 7곳이 넘는 호텔을 소유한 호텔계의 프랜차이즈 업체다.

플라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럭셔리한 캐빈도 아니고 감동적인 서비스도 아닌, 바로 환상적인 맛의 레스토랑.

5성 이상의 특급 호텔로 분류되고 있긴 하지만, 후발 주자로 나선 입장에서 신라, 백제, 하얏트 같은 유수한 업체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략이 필요했다.

그 특별한 전략이 바로 레스토랑 사업의 집중.

해외의 유명 셰프들을 영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셰프 육성 시스템까지 만들어 요리사를 양성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제 플라톤 호텔 하면, 조식과 레스토랑.

뛰어난 고급 레스토랑 하면, 플라톤 호텔이 빠지는 일이 없다.

고 사장은 그런 플라톤 호텔의 사장이다.

고 사장은 젊다.

젊지만 수완이 좋다.

젊은 만큼 야망 또한 팔팔하다.

레스토랑에 집중하는 전략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다.

뛰어난 수완과 야망이 합쳐지니, 플라톤 호텔의 성장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나섰다.

플라톤 호텔의 레스토랑은 ‘고급’ 레스토랑이다.

단가가 강해 마진율은 높으나,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플라톤의 이름을 건 보다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요식 채널을 구상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쌓아온 플라톤의 이미지!

그 이미지는 자연히 고급과 맞아 떨어질 것이고, 가격만 대중적으로 낮춘다면 성공은 보나마나였다.

그 첫 시작이 바로 에이스 셰프 코리아의 우승이었다.

에이스 셰프 코리아.

여기가 어떤 곳인가.

대중들의 눈이 집중되는 곳 아니던가!

비록 아마추어들이 실력을 뽐내는 곳이지만, 대중들에게 있어선 두바이 출신 셰프보다 에셰코 우승자가 더 대접받는다.

SNS가 발달한 지금은 더더욱!

“그런데 다 망쳐버렸어!!!”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사장실을 울렸다.

쾅-! 쾅-!

고 사장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분을 참지 못하고, 고급 원목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부들부들-

손보다 책상이 단단하기에, 내려친 손이 몹시 아려온다.

허나, 손이 아픈 것은 중요치 않다.

가슴이 더 아프니까.

고 사장은 김성오를 에셰코 우승자로 만들려 했다.

그리고 그런 김성오를 필두로 체인점을 쭉쭉 늘릴 생각이었다.

일명 큰그림.

헌데, 안왕호라는 놈이 등장하더니 빅픽쳐를 다 망쳐버렸다.

내정되어있던 우승자 자리를 압도적 실력으로 홀라당 채 간 것이 아닌가!

“으으, 생각만 해도 골이 땅기네······.”

고 사장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치과의자에 눕는 것처럼 몸을 푹! 기댔다.

시장의 흐름은 범람하는 계곡과도 같다.

‘사업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에셰코라는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실패했다.

방송국에서는 내년에 다시 우승자를 내정시키겠다고 했지만, 1년 뒤면 상황이 어찌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준우승자를 데리고 계속 진행할 수는 없지 않나.

우승자가 버젓이 장사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쪽 홍보해주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사업 구상에만 몇 년이 걸렸고, 예리한 타이밍을 잡기 위해 무려 6개월을 더 기다렸다.

연쇄폭발하듯 체인을 빠르게 늘리기 위해, 물밑으로 10억 이상의 비용이 소모됐다. 미리 길을 다 닦아놓은 것이다.

예정대로 김성오만 딱 우승했으면 됐는데···

다 날리게 생겼다.

이게 다 그 새끼 때문이다.

“아놩흐오···!”

안왕호.

이를 악물고 발음한 터라, 제대로 발음조차 되지 않는다.

10억의 손실.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사업 크게 하는 입장에서야 저 정도 손해는 언제든지 발생가능한 금액이다.

플라톤 전체의 수입에 비교해보면 조족지혈임에도 틀림없다.

푼돈이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

투자금의 손실에서 감정이 상한 것이 아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안왕호 그 새끼!

그 새끼가 요즘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더욱 배가 아려온다.

‘보통 놈이 아니야······.’

고 사장은 우연을 믿지 않는다.

우연이 겹치면?

반드시 필연이기 마련!

그놈은 여론을 등에 업어 결과를 뒤바꿨다.

안왕호 그놈이 여론을 바꾸는 과정!

그 과정은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한 설계였다.

파도 파도 미담만!

파파미 시리즈 열풍이 불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꽈악-!

고 사장이 주먹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어찌나 힘을 빡세게 줬는지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톱이 손바닥 살을 따끔하게 눌러 깊은 자국을 만들어냈다.

“나한테 엿을 던져줬는데, 가만있으면 호구지.”

보복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

암, 그렇고말고.

만에하나, 우연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저놈의 잘못은 아마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젠 상관없다.

이미 자신은 손해를 봤고, 이득은 그놈이 모조리 챙겨갔으니까.

“요리로 흥했지? 어디, 요리로 한번 망해 봐라.”

고 사장은, 수트 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헛! 고 사장님?

“아이고~ 이 PD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지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고 사장님. 이제야 연락을 다 주시고, 저 아주 섭섭합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제가 공사다망한 터라··· 그나저나, 요새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던데요? 저번 작품도 아주 예술이었습니다.”

-하하하! 저야 뭐 대중들이 듣고 싶은 말만 들려줄 뿐이지요.

“저도 한 작품 의뢰하고 싶은데···”

-흐음··· 밀린 의뢰가 많은 터라···

“하하, 이번 아이템은 PD님도 솔깃하실 겁니다. 요새 아주 핫하거든요. 그리고··· 당연히 걸작에 걸맞는 대우를 해드려야죠. 이러지 말고 만나서 자세히 얘기 나누시죠. 제주도에서 갓 잡아 온 다금바리 한 접시, 아니 세 접시 대접하겠습니다.”

-아이고, 좋지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뚝-

통화를 끊은 고 사장의 얼굴 위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론으로 흥한 자! 여론의 철퇴를 맞고 쓰러질 것이니!

*

고 사징과 은밀한 대화를 나눈 이 PD는 촬영 아이템의 순서를 변경했다.

다음 타깃은 요새 SNS를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왕호네 밥차!

몬스터 요리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이 PD는 휴대용 카메라 하나만 들고, 왕호네 식당으로 향했다.

‘이거, 의뢰 안 받았어도 할 만하겠는데?’

이 PD는 식당 뒤로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보고는 눈을 번쩍 빛냈다.

이렇게 인기 있는, 게다가 긍정을 넘어 느님화 되어버린 이미지를 박살 낸다면 그 여파는 더더욱 커질 거다.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에 대한 인기와 시청률은 높아지기 마련!

당연히 PPL도 많이 들어올 것이고, PD로서 커리어도 더 좋아진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있는 놈들의 융숭한 대접이고.

회전율이 빨라,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식당 내부에 들어온 이 PD는 고개를 돌려 식당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깔끔했다.

‘작가들 말 그대로네.’

이 PD는 자신이 직접 이곳에 오기 전, 작가들과 평론가들을 먼저 식당으로 보냈다.

그들의 보고로는 깔 건더기가 한 군데도 없었다.

분위기 : 은은하고 좋음.

위생 : 깔끔을 넘어선 완벽.

재료 : 신선 그 자체. 직접 공수해온 느낌.

맛 : 깡패 수준.

가격 : 적당함. 버프 요리는 비쌈.

종업원 : 친절함. 심지어 풋풋하고 귀여움.

깔 곳이 없다?

만들면 된다.

이 PD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주문했다.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것으로 주세요.”

“예.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이윽고,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테이블 위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일반인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고프로 카메라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진 않았다.

이 PD의 얼굴은 아는 사람은 알만한 얼굴이었으나, 연예인 수준으로 유명하진 않았다.

세팅을 마친 이 PD가 드디어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그가 내뱉은 말은, 범국민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유행어,

“이 몬스터 요리.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먹거리 르포 프로그램의 1인자.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이자 메인 MC.

그가 바로 이인규 PD였다.

그리고, 이 녹화를 진행한 날은 왕호가 김 비서를 처음 만난 그날이었다.

*

음식 고발 프로그램인, ‘먹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때까지 전파를 탄 ‘부적격’ 먹거리들.

파라핀으로 만들었다는 벌집 아이스크림부터,

설탕을 마구 넣었다는 무가당 그릭요거트,

심지어는 음식은 아니지만 중금속이 들어간 황토팩까지!

사람들은 양심 없는 업체들에게 속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방영되었다고 하면 항상 검색어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각종 기사들이 쏟아져나온다.

당연히 여기에 저격된 업체들은 도산을 피할 수 없었다.

TV에서 이 PD의 잔잔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먹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이인규 PD입니다.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한다는 카스테라 빵. 요새는 대만에서 넘어왔다는 ‘대왕카스테라’가 인기를 끌고 있더군요.

-이 대왕카스테라!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으음~ 참 촉촉합니다. 촉촉함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대왕카스테라는 밀가루, 우유, 계란만을 사용해 만들어진다고 해서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방영된 방송은, 대왕카스테라 편.

역시나 방송의 후폭풍은 8월의 태풍처럼 매서웠다.

거의 들이붓다시피 대량으로 들어가는 식용유!

썩은 달걀로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액상가짜달걀의 사용!

심지어 각종 화학첨가물의 투입!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가 보았을 때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뒤통수가 아닐 수 없었다.

인터넷은 이 대왕카스테라에 대한 얘기로 불바다를 이뤘다.

[-어멋! 어제두 울 딸램이랑 맛나게 먹었는데··· 넘흐 충격적이어용ㅠ]

[-제발! 먹을 거 가지고 장난 좀 치지 맙시다!!!]

[-쒸~~~뿔!!!!,,,이,,,이,,,써글넘들이!!! 감히,,,소비자를,,,우롱하다니,,,고오얀넘들!!! 다~~망해부러라!! 우이,,,쒸,,,!!]

[-대왕카스테라 주작질 오지구요 지리구요 곧 당뇨각이구요~ 완전 에바 쎄바 참치 꽁치 넙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삼각 사각 오각 죽는각 아님? 동의? 어, 보감~]

[-님들 한 달 연봉 5억 vs 무기징역 5년 뭐가 더 이득?]

[-위에 어그로 적당히 끌어라! 찾아가서 뚝배기 부숴버린다!]

[-와, 진짜 충격적이네요 당장 보이콧합시다!!!]

여론은 심각하게 악화됐다.

보이콧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엄청난 인기를 등에 업고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대왕카스테라의 대리점들.

이 방송이 나가고 나서 매출의 90% 이상이 감소했다.

억울했던 그들은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제빵 해보신 분들은 아실 테지만, 원래 빵 만들 때 버터랑 식용유 진짜 많이 사용합니다ㅠㅠ 안 들어가는 빵은 없다고 봐야 해요······.]

[-액상달걀은 살균처리까지 마친 안전한 달걀입니다. 가짜달걀이 아니에요ㅠ 제발 정정 방송 부탁드립니다. 이 방송으로 억대 빚 떠안게 생겼습니다······.]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도 같은 잣대로 함 방송해보시죠? 왜 불쌍한 서민 업체만 죽이려 드시나요?]

[-조작 방송 적당히 하세요 진짜!]

허나, 어찌 어린아이의 물장구로 거대한 해일의 방향을 뒤집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 많던 대왕카스테라 빵집들은 큰 빚을 지고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하하하하!!! 역시 이 PD 실력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군.”

대왕카스테라의 몰락을 지켜본 고 사장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실로, 어마어마한 여론 조장이었다.

대중들을 컨트롤하는 솜씨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사람들의 무지는 공포를 낳았고, 공포라는 무기를 지닌 이 PD는 대중들을 가히 ‘지배’하고 있었다.

고 사장이 웃음을 터트린 이유는 대왕카스테라의 몰락이 웃겨서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타깃이 안왕호라는 점이었다.

“모래성을 쌓는 건 오래 걸리지만, 몰락은 순식간이지.”

네 놈도 절망을 한 번 맛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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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인터넷 기사를 훑던 희영이가,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왕호를 불렀다.

“응?”

“이거 읽어봐봐! ‘먹거리! 그것이 알고싶다’가 대왕카스테라 매장의 90%를 망하게 했대!”

“음··· 그 정도야? 되게 억울하겠네 다들······.”

“어떡해 어떡해! 오빠 말대로라면, 여기 방송이 억지로 트집 잡은 거잖아!”

“그렇지.”

“그럼, 이 사람이 우리 식당 와서 트집 잡으면 어떡해?”

“트집? 괜찮아.”

왕호는 혹시나 하는 희영이를 안심시키려 환한 미소를 지었다.

트집을 잡는다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몰락하는 것은 결코 이쪽이 아닐 것이다.

누구든 작은 하마를 건드리면 아주 엿 되는 거다.

왕호는 겉으로 보기엔 귀여운 작은 하마 같지만, 이제 그의 뒤에는 든든한 칼날이 있다.

< 역풍 (1)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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