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8화 (128/149)

< 역풍 (4) >

기사에는 조작에 관한 내용만 적혀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송국에서는 의도적인 조작을 통해 시청률을 이끌어냈습니다. 허나, 과연 시청률만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왜 프랜차이즈는 건드리지 않았을까요? 굳이 왜 소상공인들만을 골라 핍박한 것일까요? 저희 취재팀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낼 수 있

었습니다. 몇몇 프랜차이즈 기업과 이 PD 사이의 끈끈한 유착관계가···>

조작방송의 실태는 물론이고, 요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에 관해서도 낱낱이 적혀 있었다.

이 기사는 단순 의혹기사가 아니다.

엄청난 수의 증빙자료를 첨부한 “진짜” 르포 기사다.

여태까지 이 PD가 저질러 온 조작들에 대해 조목조목 완벽한 반박이 이루어졌다.

오피셜과 전문가의 의견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조작에 희생당한 소상공인들의 가슴 아픈 사연까지 구구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사업은 망하고 빚만 남았다.

방송국 측에 소송을 걸어보았으나, 질질 끄는 탓에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고작 500만 원 정도.

수억 수천을 들여 가게를 열었는데, 법의 보호가 미치는 영역은 실로 쥐방울만 했다.

명예라도 회복하나 싶었는데, 정정 보도는 꼴랑 3초짜리 자막 한 줄이 전부.

약자는 파멸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분노했다.

[-약자멸시인가요? 오늘부터 뒷돈 준 모든 업체 보이콧 합시다!]

[-저기 써 있는 기업들 모조리 코렁탕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 PD는 사형~]

[-진짜 개 같은 헬조선··· 잘 사는 놈들은 버젓이 나쁜 짓 하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애꿎은 서민들만 죽어 나가니 에휴······.]

[-오늘 저 새끼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미친놈아! 저 새끼 죽이면 바로 천국행 프리패스야!]

“아닐 거야··· 이건 꿈일 거야······.”

두 시간 전까지만 해도, 들뜬 마음에 함박웃음을 짓던 고 사장.

그의 좋았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마냥 내리막 치고 있었다.

원래, 내려갔으면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이건···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이다.

가슴이 먹먹하다.

팔다리가 저려온다.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이빨이 딱딱 부딪힌다.

이 PD와 기업들 간의 은밀한 거래.

찌라시라 하기에는 증거가 너무도 명확했다.

그들이 몰래 만나는 사진이, 파파라치에 의해 적나라하게 찍혔다.

트렁크에 사과박스를 옮겨 담는 사진.

방송국 PD 월급으로는 꿈도 못 꿀 사치를 부리는 장면까지!

고 사장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있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으아아!!!”

쾅-!

분을 참지 못한 고 사장은 핸드폰을 탁자 위로 내리쳤다.

다행히 부딪힌 곳이 뒷면이라 액정은 멀쩡했다.

“후우- 후우-”

고 사장은 심호흡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일단, 침착해야 한다.

이 PD의 인생은 오늘부로 종 쳤지만, 플라톤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고 사장의 짱구가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그는 뛰어난 사업가다.

먼저, 현재의 상황부터 파악했다.

‘아직 플라톤이 연루됐다는 증거는 없어.’

기사에는 ‘플라톤’이라는 글자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기업의 이름들만 적혀 있었다.

크게, 불안해할 건 아니다.

이 PD만 죽고 끝날 가능성이 현재는 더 농후하다.

그러나,

우우우웅---

아까 탁자에 내리꽂았던 핸드폰이 거칠게 진동했다.

‘불길한데······.’

왠지 자신의 직감이 안 좋은 소식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여보세요.”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기사 떴습니다!

“하, 나도 봤으니까 호들갑 떨지 마······.”

-그, 그게 아니라··· 새로 뜬 기사 말하는 겁니다. 이번 방송의 배후가 플라톤이라는 기사가···

“뭐?!!!”

벌떡-

고 사장이 스프링 튕기듯, 소파에서 일어났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끊지 말고 있어! 확인해볼 테니까!”

고 사장은 브라우저창을 다시 켜서 관련 기사를 확인했다.

<이번 조작 방송의 가해자는 플라톤 호텔? (단독)>

“씨이···”

고 사장은 애꿎은 입술을 쥐어뜯으며, 한 글자 한 글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사를 정독했다.

<···그렇다면 이번 왕호네 식당을 물고 늘어진 건 어떤 기업이었을까? 안왕호 셰프 때문에 ‘에이스 셰프 코리아’ 1등의 자리를 놓친 플라톤 호텔일 가능성이 현재로선 가장 높아 보입니다···>

천만다행이다.

증거 자료 하나 없는, 일명 “찌라시”였다.

[-역시 플라톤일 줄 알았다.]

[-에셰코 할 때도 여론 조작 오지게 하더니, 클라스 어디 안 가네. 파도파도 괴담만!]

[-근데, 이거 찌라시잖아요. 여긴 사진 하나 안 찍혔구만.]

[-진짜 국민성 미개한 거 봐라. 증거 나올 때까지 그렇게 깝치지 말자니까······.]

댓글들은 난리 났지만, 이 정도는 수습 가능하다.

“빨리, 우리도 성명 발표해! 명백한 찌라시라고. 허위사실 유포하는 사람에겐 법적대응 하겠다고 엄포 놓아! 여기 신문사는 바로 고소 때리고!”

-예··· 근데, 일단 여론 사이로 들어가 버려서··· 주가 하락은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씨벌··· 일단 주주들한테는 안심하라고 얘기해둬! 괜히 주식 던지다가 깡통 차지 말라고.”

풀썩-

전화를 마친 고 사장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제발···”

이 폭풍이 안전하게 지나가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가 그렸던 빅픽쳐는 이제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

조작방송의 더러운 실태.

뜨거운 감자가 따로 없었다.

방송은 폐지 수순을 밟았고, 이 PD는 자취를 감췄다.

경찰에서는 곧바로 수사를 진행했다.

관련 기업들은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보이콧을 피할 순 없었다.

방송국은 개국 이래 최악의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무려, 1시간에 달하는 정정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질질 끌던 민사소송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물론, 배상액이 쥐꼬리 정도라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그저 명예를 되찾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쓴 왕호의 이미지도 오히려 반등했다.

게다가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피해자들을 도와주었다는 증언 또한 잇다르며 “파파미” 시리즈가 다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심지어 자료를 정리한 파파미 웹사이트까지 개설될 정도였다.

예상대로 플라톤의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별다른 증거가 없는 찌라시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플라톤의 해명을 믿는 눈치였다.

“젠장! 얼마나 떨어졌어?”

고 사장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임원에게 물었다.

“30% 정도 감소했습니다.”

“니미럴!”

“그래도 다행입니다. 이사회 대부분이 사장님 말씀 믿고 던지진 않았습니다.”

“그럼 개미들만 쭉 빠진 건가?”

“예.”

“불행 중 다행이구만.”

“그래도··· 지금 진행하는 리조트 사업은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 상황 유지만으로도 벅찹니다.”

“자금 줄어드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

“헌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외국물까지 먹고 온 경제학 박사 출신의 말에, 고 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뭔데?”

“사건 터지기 전에, 저희 모회사에 투자한 ‘소피아자산운용’ 말입니다.”

“아아, 거기?”

“그쪽에서는 이번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덥니다. 누명이 풀리면 반등할 거라고··· 투자를 더 하고 싶다는데······.”

“그래? 어떤 식으로?”

“유상증자로 주식을 더 사겠답니다.”

“흐음······.”

고 사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급하다지만, 이건 좀 고민해야 할 문제다.

고 사장은 상황이 뒤집어질 줄 꿈에도 모르고, 빅픽쳐를 다시 준비시켰다.

워낙 대형 프로젝트라, 시작하는 데 자금이 많이 필요했던 상황.

게다가 동시에 진행하는 리조트 사업 건도 자금을 많이 필요로 했다.

운 좋게 한 투자회사를 만나 투자받을 수 있었다.

모회사의 주식을 넘기는 형태로 투자금을 유치했다.

여기서 증자를 통해, 소피아자산운용의 파이를 더 키워준다?

당장에야 손해를 메꿀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좋을 것이 없다.

증자 자체가 보기에 썩 좋은 그림도 아닐뿐더러, 혹시나 저들이 경영권에 딴지를 걸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1%도 없다.

아직 회사의 주식 대부분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으니까.

“그건, 일단 보류하자고. 차라리 사업을 조금 멈추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사장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우우웅---

고 사장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깜짝아!”

요새는 핸드폰 진동에도 가슴이 철렁한다.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이 많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보세요?”

-아이고오~ 고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저 스포츠고조선 박 사장입니다.

찌라시 언론사다.

“아, 잘 지내셨습니까? 헌데, 어쩐 일로 전화를···”

-요새 찌라시 때문에 맘고생 심하시죠?

“하하, 어차피 유언비어 아니겠습니까. 액땜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흠, 마냥 헛소리만은 아닌 것 같던데···

“그게 무슨 소리···”

-사진 하나 전송할 테니 함 보시지요.

띠링-!

곧바로 사진 하나가 전송됐다.

고 사장은, 박 사장의 의미심장한 말에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확인하자마자, 그의 눈동자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벌어진다.

“으아아니! 챠! 왜! 나! 고장혁은 행복할 수가 없어!”

고 사장이 한 맺힌 절규를 내뱉었다.

갑자기 악을 빼애액 지르는 사장의 모습에, 곁에 있던 임원은 흠칫 놀라야 했다.

찌라시 언론사 사장이 보낸 사진 속에는, 고 사장이 활짝 웃으며 이 PD와 즐거운 시간을 가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고 사장은 심호흡을 하며, 다시 전화를 귀에 가져갔다.

“후우- 원하는 게 뭡니까?”

-일단 만나서 얘기하시죠.

.

.

.

“그러니까··· 제가 진행하는 리조트 사업에 숟가락을 얹고 싶다는 말입니까?”

고 사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저희도 언제까지 찌라시 전문 업체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도약해야죠.”

“하, 그 사진··· 박 사장님만 가지고 있는 것 확실하죠?”

“하하하하, 그럼요! 그러니 이렇게 딜 하러 나온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도 아주 우연히 찍은 겁니다. 이렇게 될 줄 어디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들어드리고 싶긴 한데··· 회사의 손실이 너무 심한 터라 리조트 사업 건은 현재 무기한 중단 상태입니다.”

“흐음··· 그럼, 저희도 어쩔 수 없죠. 이거 그냥 독점 기사로 터트리는 것이 얻을 게 더 많은 것 같군요. 식사는 제가 대접하는 걸로 하지요.”

박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한다.

만약, 저 사진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그대로 끝이다.

꼴랑 주식 하락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덥석-

고 사장이 나가려는 박 사장의 다리를 붙잡았다.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하하, 농담이었습니다. 리조트 사업 당장 진행해야죠. 우리 박 사장님 몫도 단단히 챙겨드리겠습니다.”

“허헛! 자알~ 생각하셨습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오늘 식사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

.

식당을 나온 고 사장은 곧바로 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투자··· 받자.”

*

“크하하하! 역시, 대한민국 냄비 근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고 사장이 호쾌한 웃음을 내뱉었다.

플라톤 측은 찌라시를 유포하는 사람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고소했다.

유일한 증거를 막았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플라톤의 당당한 행보에, 사람들은 플라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제, 플라톤을 욕하는 이들은 쏙 들어갔다.

오히려 누명이 풀린 탓에, 주식이 반등해서 매일 상한가를 찍을 정도였다.

매출도 상승했다.

비록, 큰 그림을 다시 되살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크나큰 위기를 극복해내서 그런지, 고 사장의 입가엔 다시 웃음꽃이 활짝 폈다.

“고진감래라는 옛 어른들의 말, 하나도 틀린 것이 없구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기쁨에 겨워 훌라춤이라도 추려고 하는데···

벌컥-!

노크도 없이 사장실이 격하게 열렸다.

“뭐야?! 얌마! 노크 몰라?”

“죄송···흐압니다. 헥헥, 큰일 났습니다 사장님!”

임원 하나가 거친 숨을 내쉬며 힘겹게 말을 꺼냈다.

헐레벌떡 달려온 듯싶었다.

“뭔데? 진정 좀 하고 얘기해 봐.”

“···임시주주총회가 소집됐습니다!”

“뭐? 왜? 누가 소집했어!”

“2대 주주인, YD금융투자입니다!”

“2대 주주? 처음 듣는데 언제 바뀐 거야?”

“원래는 보유 주식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저번에 주가 폭락했을 때 죄다 사들인 회사입니다. 사모펀드를 주로 운용하는 회사인데···”

“그건 됐고, 주총은 왜 소집한 거야?”

“그, 그게··· 투명 경영을 위한 현 경영진의 퇴진. 그니까··· 사장 해임 안건이 올라왔습니다······.”

“뭐?! 이거 완전 미친 새끼들 아냐! 대주주가 떡 하니 살아 있는데!”

어이가 없다.

놀라움보다 헛웃음이 먼저 터져 나올 정도다.

허무맹랑한 수준이다.

그래도 기분 나쁜 건 지울 수 없었다.

“제정신인가? 거기 사장은 누군데?”

“급하게 알아보니까, 생긴 지는 얼마 안 된 신생 회사고 CEO는 김강률이라는 사람입니다.”

“김강률?”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 역풍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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