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29화 (129/149)

< 역풍 (5) >

*

고 사장은 4개의 주식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그중 핵심은 ‘주식회사 플라톤호텔그룹’이며, 나머지 3개의 회사는 호텔과 관련한 2차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다.

고 사장은 적은 양의 자본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순환출자’라는 지배구조를 채택했다.

때문에 4개의 회사를 모두 지배하는데 드는 비용을 절반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예전엔 모든 재벌들이 이 순환출자 지배구조로 회사를 장악했는데, 2가지 치명적 단점 때문에 현재는 대부분이 ‘지주회사’ 구조로 옮기는 추세다.

줄도산의 위험과, 경영권 방어가 힘들다는 점.

이 두 가지가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회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에, 부실 계열사 하나만 파산해도 우량 계열사까지 연쇄붕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전 동양그룹이 이렇게 파산했다.

게다가, 경영권 방어에도 불리하다.

적대적인 M&A로 한 기업만 빼앗기더라도, 전체 회사의 지배권을 모조리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예전 SK그룹이 한 외국기업에게 이 꼴을 당할뻔한 이후로, 재벌들 대부분이 지주회사 시스템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황룡도 현재는 금융지주회사가 꼭대기에서 기업을 지배하는 피라미드식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 사장은 순환출자를 선택했다.

리스크가 있지만, 어쨌든 순환출자라는 건 “꼼수”로 분류되는 방법.

그만큼 얻는 것도 크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성이 큰 만큼, 고 사장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현재 고 사장이 보유한 플라톤 호텔의 지분은 고작 3%.

그럼에도 그가 호텔을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대주주로 있는 모회사가 호텔의 지분을 무려 48%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합 51%.

누가 끼어들더라도 경영권은 절대로 빼앗을 수 없다.

“YD금융투자? 여기 지분은 몇 퍼센트인데?”

주주총회장으로 들어가는 고 사장이 보좌관을 향해 물었다.

“28%입니다.”

“많이도 먹었네.”

“주가 폭락했을 때, 할인찬스로 여기고 죄다 사들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2대 주주라지만, 너무 나대는 거 아니야?”

“존재감 보여주려는 심산 아니겠습니까?”

플라톤 호텔 내부에 위치한 주주총회장.

그곳에 들어온 고 사장은, 처음 보는 얼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저놈 맞아?”

“예. 맞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젊은 편에 속하는데, 저 남자는 자신보다 더 젊어 보였다.

트렌디한 수트를 빼입고 있었는데, 볼 성 사납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쪽쪽 빨아 먹고 있었다.

다리는 거만하게 꼬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 사장이 남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처음 뵙는군요. 이 호텔의 주인. 고장혁이라고 하외만.”

“반갑습니다. 하하, 이런 곳에서 처음 뵙게 돼서 정말 유감이군요.”

악수를 나누는 김강률은 2대 주주답지 않게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고 사장은 이 남자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헤프닝 아니겠소? 그 웃음 언제까지 가나 두고 봅시다. 이런 장난은 딱 오늘까지만 받아 주지요.”

“장난 아닌데.”

말은 그렇게 하지만, 김 비서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

왕호는 요즘 피해자 모임의 사람들과 자주 만난다.

그들이 오랜 시간 방송국과 싸우며 모아온 증거들은, 방송국을 무너뜨리고 관련 기업에게 철퇴를 날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때문에 왕호가 욕을 먹은 시간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실추된 명예를 되찾았지만, 경제적인 피해까지 복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빚에 허덕이고 있다.

“몇 년을 싸워도 안 되던 것이, 왕호 씨 덕에 하루 만에 뒤집혔네요.”

모임의 회장인 라이언 셰프는 무언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도 가만히 있었다면 억울하게 눈물을 삼켜야 했겠죠. 다 여러분들이 오랜 시간 싸워 온 덕분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합니다. 아무리 준비를 하고 있었더라도 어떻게 이런 결과가······.”

라이언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여론은 그렇다 쳐도, 기자들의 재빠른 행동은 그들이 생각할 때 이해되지 않는 정도였다.

게다가, 엉덩이 무겁기 그지없던 공권력도 그렇게나 신속할 수 없었다.

들고 있는 자료는 같았지만, 그 자료를 대하는 온도 차이가 냉탕과 온탕차이였다.

“저 혼자 싸운 것이 아니거든요.”

“예?”

왕호의 대답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실, 황룡그룹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네? 대기업 황룡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사람들이 왜···”

왕호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기업이라 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에게 당한 입장이라, 같은 대기업인 황룡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제가 그쪽에 도움을 좀 줬거든요. 도움이라고 할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헙! 정말이십니까? 와··· 역시 안 셰프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황룡이면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이 아닙니까. 글로벌한 기업이기도 하고.”

“제가 도움을 준 것도 있지만, 황룡도 떨어지는 떡고물이 있으니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왕호는 황룡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무엇인지, 김 비서에게 전해 들었다.

왕호가 듣기엔 고물 수준이 아니라 무슨 떡 그 자체였다.

왕호가 황 회장의 체면을 띄워 주었다지만, 그것만으로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일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철저히 이득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이다.

만약, 오로지 왕호의 부탁만 있었더라면 그저 플라톤과 방송국을 압박하는 선에서 그쳤을 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뒤집어버리진 않았다.

이 PD와 거래를 나눈 프랜차이즈들.

그들이 전부 까발려진 것은 아니다.

황룡과 사이가 좋지 않은 업체들만 폭탄을 얻어맞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황룡이 얼마나 약아 빠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재계 순위 4위는 화투 쳐서 딴 것이 아니었다.

왕호는 고개를 돌려, 피해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절로 짠해진다.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동자는 퀭하다.

아마,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모임의 숫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스무 명 남짓.

카페의 회원 수는 천 명이 넘어가지만, 대부분 중간에 싸우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 남은 사람들은 땅에 떨어진 명예와 자존심이라도 되찾으려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요리사 출신이다.

돈만 좇는 장사치였다면 중간에 포기했을 거다.

요리사이기에, 셰프이기에 명예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왕호는 같은 요리사로서 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공감의 결과는,

[치유력 스탯이 400을 돌파하였습니다.]

[힐링 요리사의 스킬이 해금됩니다.]

[스킬 “적탐안”의 영향으로 새로운 스킬이 생성됩니다.]

[스킬 “진후안 診候眼”이 생성되었습니다.]

[진후안 診候眼 – 숙련도 0% 마나 소모량 : 300]

[대상을 힐링하는 데 있어서, 진찰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자를 진단하듯이, 눈으로 대상의 상태를 진찰할 수 있다.]

[지금의 숙련도로는 아주 간단한 병의 원인과 예후 상황을 눈으로 탐지할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다양한 병의 진찰이 가능해집니다.]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깊이 숨어있는 병의 탐지가 가능해집니다.]

[치유력의 영향을 받습니다.]

새로운 스킬의 생성이었다.

눈으로 환자의 병을 진단한다?

이쯤 되면 거의 요리사가 아니라 의사다.

힐러에게서나 찾아볼 법한 스킬이 새로 등장했다.

‘뭐, “힐링” 요리사이니, 힐러라고 봐도 무방한가?‘

뭐가 되었든, 새로운 스킬의 생성은 나쁠 것이 없다.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 눈앞의 사람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적탐안을 사용했을 때는 왕호의 눈이 무지갯빛으로 변했지만, 진후안을 사용하자 왕호의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X레이 투영되듯이, 사람들 몸 내부의 장기를 어렴풋이 관찰할 수 있었다.

‘아주 성한 곳들이 없으시네······.’

우울증, 편두통, 고혈압, 변비, 장염, 위궤양, 치루, 역류성식도염, 간경화, 대사증후군, 대상포진, 원형탈모, 공황장애 등등···

속칭 울화병으로 인해 다들 심신이 지쳐있었다.

가만 놔두다가는 큰일 날 성싶었다.

잘못하다간 암으로까지 번질 기세다.

“그래도 일이 좋게 마무리됐으니, 오늘은 제가 보양식 한 그릇씩 대접하겠습니다.”

“아이고, 보양식은 저희가 대접해야죠.”

“나중에 잘 되시면, 그때 비싼 거 얻어먹겠습니다.”

지금 힐링 요리를 먹이지 않으면, 정말로 나중에 비싼 거 못 얻어먹을 것 같았다.

*

주주총회가 있기 며칠 전,

김강률은 오랜만에 황 회장과 독대를 가졌다.

“갱률아.”

단둘이 있자, 황 회장은 경남 특유의 고향 어투가 살짝 새어나왔다.

“예. 회장님.”

“니 비서실에 얼매나 있었누?”

“올해로 딱 10년 되어갑니다.”

“허허, 벌써 글케 됐나? 니도 옛날이 더 그립제? 여서 내 못난 자슥놈들 뒤치다꺼리하는 거 쪼매 그럴 거 아이가?”

“아닙니다.”

“이번 작품 말이다··· 그거 니가 쫌 맡아봐라.”

“예?”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김 비서지만, 이번엔 놀란 눈으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호텔 말이다. 거 니가 함 운영 해보라꼬.”

“제가··· 말입니까?”

“니가 다 설계한 거 아이가. 유능한 인재 10년씩이나 부려먹었음 댔다 고마. 니가 맡아 단디 키워보그라. 니 전공이 그거아이가.”

“···알겠습니다. 헌데,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뭐꼬?”

“호텔은 누구에게 줄 생각이십니까?”

김 비서는 실로 오랜만에, 몸쪽 꽉 찬 돌직구를 날렸다.

“하하하하하!!!”

김 비서의 돌직구에, 황 회장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갱률이 닌 실력만큼이나 눈치가 빨라서 좋다. 그러니 이 늙은이가 10년이나 붙잡고 있던 거겠지. 이건··· 우리 막둥이 줘야겠다. 형들 눈살에 챙겨준 것 하나 없고 참으로 미안타. 이번 건 거의 꽁으로 들어오다시피 했으니 이만한 것도 없겠지.”

“최대한 불려보겠습니다.”

김 비서는 황 회장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황 회장은 막내아들 출신으로, 형제들의 피까지 보아가며 권좌를 차지했다.

자신의 아들들은 그런 비극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연스레 장남을 밀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받지 못한 막내아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도 막내아들이었으니 오죽하겠나.

“갱률아.”

“예.”

“네가 보기에 안 셰프 그 친구 어떤 것 같노? 니는 내보다 오래 봤다아이가.”

“실력도 있고··· 또,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습니다.”

“허허, 역시 내 아직 사람 보는 눈 죽지 않았제? 근디 성격이 쪼매 문제야.”

“너무 무르단 말씀이십니까?”

역시 김 비서는 척하면 척이다.

“착해서 탈이지. 이 험한 세상 착해 빠지가꼬 어찌 헤쳐나가겠노. 정도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착하긴 한데, 그 정도로 물러 터지진 않았습니다.”

“그래?”

“약간은··· 착해 보이려 노력하는 것 같았습니다. 착한아이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지만, 상황이 격해진다면 의외의 모습도 보여줄 겁니다.”

“허허, 의외의 모습이라··· 어쨌든 그 친구가 어떻게 각성하게 됐는지 틈틈이 계속 알아보고.”

“예. 그날 애산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는 기록까지는 확인했습니다. 제가 곁에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호텔 사업이니 곁에 두고 보기 더 편하겠지.”

원래부터 인재 발굴하는 데, 꽤나 흥미를 보인 황 회장이다.

장학재단을 설립해 김강률을 찾아냈을 때처럼, 짜릿한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왕호는 파면 팔수록 무언가 특별했다.

김강률을 처음 팠을 때보다 더욱!

‘다 늙으니, 악취미가 점점 심해지는군 껄껄!’

< 역풍 (5)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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