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맛있는 버프를 만들어 드립니다-135화 (135/149)

< 클래스가 다르다 1 (5) >

*

희영이의 소풍이 있는 날, 왕호는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했다.

간단히 쌀 도시락이 아니다.

요즘 애들 언어로 말하면 클라스 오지고 지리는 도시락?

“덕구야. 사일런스 좀 걸어 줘.”

왕호는 덕구에게 사일런스 마법을 주문했다.

지금은 희영이와 박 여사가 곤히 자고 있는 시간이다.

요리한답시고 깨울 순 없었다.

“웅!”

덕구가 사일런스 마법을 시전하자, 주방 바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왕호는 가져온 각종 재료들을 식탁 위로 쫘악- 펼쳤다.

상당히 많다.

덕구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마스터! 오늘 무슨 날인가? 재료가 산더미다!”

“희영이 놀이공원으로 소풍 간대.”

“놀이공원? 그게 뭔가?”

“음··· 심장 떨리는 곳 있어. 나중에 데려가 줄게.”

사람들 앞에서 맘 편히 덕구를 공개할 때가 온다면.

“오오옷! 여기 강력한 고기들이 많다!”

“느껴져?”

“쿠헬헬헬! 당연하닷!”

덕구는 왕호가 가져온 새로운 살코기들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왕호가 준비한 재료들 중엔 고레벨 것들이 상당했다.

해독이 미리 되어 있는 터라,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강력한 마나 캐퍼서티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느꼈다는 것은, 덕구의 능력도 범상치 않다는 소리였다.

“마스터가 직접 잡은 건가?!”

“그건 아닌데··· 전부 요리 가능한 거야.”

김 비서를 통해 얻어낸 것들이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직접 조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오늘 만들 도시락은 평범한 도시락이 아니다.

새로운 힐링 버프들을 죄다 집어넣을 거다.

싱싱하게 직접 조달하는 방법이 가장 좋긴 했지만, 일단은 요리할 수 있는 모든 고레벨 재료를 수급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걸 다 쓸 건가 마스터?”

“웬만하면 다 쓰려고.”

“오오오! 엄청나게 많은 양이 나오겠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부른 거 아니겠냐.”

“그럼, 나도 먹을 수 있는 건가 마스터? 쮸쀼쮸쀼!”

기대감에 잔뜩 부푼 덕구가, 두 발로 일어서서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었다.

앞발을 공손히 모으고 활짝 웃는 모습이 심장을 마구 폭행한다.

하지만 덕구의 응큼한 의도를 아는 지라, 왕호는 곧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갑자기 귀여운 척이야··· 쮸쀼쮸쀼는 또 뭐고···”

“훔··· 누나들은 이러면 껌뻑 죽던데 역시 마스터는 다르군!”

“네가 말만 안 했으면 나도 넘어갔을 거야. 당연히 줄 거니까 파이팅 하자.”

“쿠헬헬헬! 당장하잣!!!”

단순하기 그지없는 덕구의 행동에, 왕호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 이제 재료를 다 꺼냈으니 요리를 시작할 차례다.

아무리 손이 빠른 왕호일지라도, 이 많은 요리를 다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덕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던가.

“주인! 몇 가지나 만들 건가?”

“음··· 한 스무 가지는 넘지 않을까?”

“쿠쿠쿠! 엄청나군! 오늘은 포식이다!”

덕구가 도와주면 불조절, 물조절 심지어 얼음조절까지 뚝딱이다.

먼저, 샐러드를 만들기 위해 각종 채소를 씻는다.

물로 씻는 것보다 더 완벽한 방법이 있다.

“덕구야 클린마법!”

“알았따아! 클린!!!”

덕구를 부려먹으면 된다.

마법 덕에, 채소의 주름 사이사이에 있는 미세한 먼지까지 깨끗하게 제거된다.

왕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벌레가 먹어서 모양이 틀어진 부분과 변색된 부분을 거침없이 도려냈다.

예쁘게 담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꽃다발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샐러드를 꽃꽂이했다.

[버프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힐링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우오옷! 예쁘다! 예쁜 누나들이 좋아할 거다!”

“그치? 이제 1단 완성이다.”

“2단은 뭔가?!”

“한국인은 밥심이지.”

“밥!”

이번에도 그냥 만들지 않았다.

최대한 귀엽게!

마치 이제 갓 초등학교 입학하는 막냇동생 도시락 싸주는 느낌으로 아기자기한 캐릭터 모양을 빚어냈다.

여고생들이니 분명 좋아할 거다.

[새로운 버프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쿠헤헤! 나만큼이나 귀여운 밥이다!”

“이제 2단 끝!”

“몇 단까지 있낫?”

“그건··· 다 만들어 봐야 알겠네.”

“3단은 무엇인가 마스터!”

“채소랑 밥만 넣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고기를 집어넣어야지!”

“고기고기고기!”

왕호는 닭다리와 비슷한 모양의 육중한 다리고기를 자메시카식으로 바베큐했다.

자메이카식 통다리 구이!

와규와 비슷한 식감의 몬스터 고기는, 불고기로 자박하게 구워냈다.

광양식 몬스터 불고기!

마지막으로 장어 몬스터의 꼬리에, 달콤한 데리야끼 소스와 매콤한 고추장 양념 소스를 붓으로 발라내어 직화구이 했다.

풍천 몬스터 장어구이!

[새로운 힐링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3단 끝.

“4단도 궁금하다아!!!”

“음식은 항상 골고루 먹어야 하니까, 4단은 건강식!”

몬스터 채소로 만든 프랑스식 채소스튜 ‘라따뚜이’.

거기에, 몸에 좋은 연어를 종이에 덮어 요리한 ‘살몬 파피요트’를 더했다.

[새로운 힐링 요리가···]

“5단은?!”

“소풍 도시락에 유부초밥이 빠지면 섭하지!”

어디, 유부초밥뿐이랴?

초밥집에서나 볼 수 있는, 광어, 고등어, 연어, 달걀, 오징어, 문어, 장어, 가리비, 참다랑어, 연어 알, 새우, 그리고 해산물 몬스터 초밥까지!

아주 그냥 모듬초밥 세트를 구성해놓았다.

‘초밥은 조금 어설프네···’

결과물이 약간은 아쉽다.

전공이 아니라 어설프게 따라 하는 수준이었다.

나중에 시간 내서 한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생겨났다.

[새로운 힐링···]

“켈켈! 마스터의 요리 능력은 끝도 없다! 6단도 빨리 만들자!”

“6단은 소풍 그 자체라는 김밥!”

김밥은 초밥과 다르게 정말 자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분식집에서 일했을 때부터 줄창나게 만들어왔다.

그냥 김밥, 몬스터 김밥, 누드 김밥, 심지어 캘리포니아 롤까지!

도시락 위로 줄줄이 예쁘게 눕혀냈다.

[새로운 힐···]

“이제 7단인가? 점점 헷갈린다 마스터···”

“7단 맞아. 7단은 겉바속촉의 튀김 요리!”

“겉바속촉!!!”

겉은 바삭! 속은 촉촉!

튀김은 언제나 진리다.

심지어 신발 밑창을 튀겨도 맛있다고 그랬다.

다만, 칼로리가 깡패일 뿐이다.

프라이드치킨, 두툼한 돈까스, 해쉬브라운, 오징어링은 물론이고.

새우튀김, 김말이, 고추, 고구마, 만두 등등···

여고생들이 분식집에서 환장한다는 튀김은 모조리 넣었다.

[새로운···]

“쿠헬헬! 드디어 8단이다!”

“튀김엔 떡볶이 국물이 빠지면 큰일 나지!”

분식 삼대장이라는 떡순튀.

떡볶이, 순대, 튀김.

튀김은 이미 나왔으니, 8단은 떡볶이와 순대로 가득 채웠다.

일반 순대도 넣었지만, 점례 아주머니께 배운 전라도식 암뽕순대도 만들어 넣었다.

배웠으니 써먹는 거다.

[새로···]

“이제 구구단! 아니, 9단까지 왔다 마스터!”

“슬슬 마무리해야지.”

9단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채소를 라이스페이퍼에 말아 만든 월남쌈과, 식용꽃을 살포시 올린 오색 송편으로 마무리했다.

흰색, 노란색, 핑크색, 쑥색, 자주색의 송편과 아름다운 꽃의 조화가 너무도 수려했다.

마치, 당장에라도 황진이가 튀어나와 시조를 읊을 것 같았다.

[새···]

“9단이 끝인가?”

“과일로 입가심 해야지.”

“그럼 10단?!!!”

입가심을 위한 각종 과일들이 왕호의 손에서 무장해제된다.

수많은 과일을 예쁘게 잘라냈다.

단단한 과일은 조각칼을 꺼내 아름답게 조각까지 했다.

치킨무로 봉황까지 만든 왕호다.

뭔들 못하리.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십이간지를 조각해냈다.

간지라는 것이 폭발했다.

멋있게 만들기보다는 귀여움에 치중했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이름까지 따로 붙여야 할 정도였다.

“꾸러기 수비대로 하면 딱이겠네.”

[···]

“10단이라니! 대단하다 마스터!”

“아니,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우오오옷! 그럼 11단인가아!!!”

“진정한 마무리는 달달한 디저트로!”

빨주노초파남보.

왕호는 총 천연 무지개색으로 마카롱을 구워냈다.

직접 머랭까지 쳐가며 말이다.

게다가 찐득한 커스터드 크림을 잔뜩 넣은, 달콤한 에클레어도 넣었다.

하트 모양 틀에 넣어서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새로운 힐링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왕호의 회심의 역작.

역대급 11단 도시락이 완성됐다.

“수고했다. 덕구야!”

왕호는 덕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훗! 대단한 경험이었다!!! 근데 이거 다 버프 요리인가?!”

“어디 보자··· 일반 버프 요리가 27개. 힐링 버프 요리가 15개네. 기존 힐링 버프가 6개고 새로 만들어진 힐링 버프가 9개! 그중 유니크 힐링 버프 2개는 희영이한테만 적용되는 거고.”

“우오오옷! 엄청나다!!! 이걸 다 먹으면 내 실력도 더 올라갈 거닷!!!”

“네 실력도 오르고, 희영이 병도 고쳐졌으면 좋겠다. 치유 위주로 만들긴 했는데······.”

“꼭! 고쳐질 거다아!!!”

온 맘 다해 만들었으니 효과가 없진 않겠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희영이를 깜짝 놀래주려는 마음도 있었다.

세 명이서 먹을 거랬지만, 반 친구들 전부와 나눠먹어도 될 만큼 엄청난 양이다.

*

왕호의 바람대로, 여고생들은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주먹밥의 귀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늘···

그다음에 튀어나온 3단의 고기고기한 비주얼은, 학생들의 침샘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터트려버렸다.

“헉! 왕 닭다리다!!!”

“넘나 고기고기해! 여기가 바로 천국?”

“저거 장어야? 나 장어 완죤 좋아하는데···”

“자메이카 통다리··· 저거 먹방할 때마다 진짜 먹고 싶던 건데······.”

“빨리, 다음 것도 까봐~”

친구들의 재촉에, 소미는 라따뚜이와 연어 파피요트가 들어 있는 4단을 개봉했다.

“와~ 건강 그 자체다!”

“이 향기 뭐야 대체! 야채인데 군침 돌잖아!”

“나 채식주의자인데 감동해서 눈물 나와 어떡해······.”

“영양 밸런스까지 지렸다···”

그다음은 초밥의 5단.

“헉! 오사카야?”

“이럇샤이마세~!”

“이따다끼마스~!”

“다이어트 식은 죽 먹기라며···! 왜 내 죽은 안 식는데!”

김밥의 6단.

“김밥 클라스도 대애박!”

“역시 야유회엔 마약김밥······.”

“와, 누드김밥 자태 농염한 것 좀 봐봐··· 다이어트는 진짜 인생의 낭비인가 봐.”

튀김의 7단.

“치느님이다! 영접하자! 치렐루야!”

“나 오늘 말리지 마! 우리 엄마가 저거 다 키로 간댔어!”

“살로 갈 거 같은데?”

“김말이다~ 아, 떡볶이 국물 있음 딱인데···”

학생들의 염원대로 8단은 떡순튀.

“세상에··· 진짜로 떡순튀야······.”

“희영이네 오빠 진짜 튀잘알이네.”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신 듯.”

“근데 저 순대는 뭐야? 개특이해!”

“나 저거 알아! 티비에서 봤어! 암뽕순대!”

“와, 이름부터가 뽕에 취해버리네~”

“그 뽕 아니거든요~”

수려함의 8단.

“어머머머!!! 완전 예쁘다 진짜!”

“너무 예뻐서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고 싶어.”

“근데, 언제까지 튀어나오는 거야?”

“저거 왠지 그거 같아. 러시아 그 인형 있잖아.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거!”

여학생의 표현대로, 희영이가 가져온 도시락은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끝이 보이질 않았다.

드디어, 꾸러기 과일 수비대의 10단.

“꺄아아~! 완전 귀여워!”

“깨물어 주고··· 아니, 깨물어 먹고 싶어!”

“설마··· 이거 다 과일이야?”

“에셰코 보니까 치킨무로 조각하시던데, 어디 조소과 출신이세요?”

“이거는 진짜 먹지 말자. 피규어로 전시해야 할 각이라구~!”

대망의 마지막!

디저트의 11단.

“마카롱이다아앗!!!”

“하트 빵까지 있어! 세심함에 감동해서 무릎을 탁! 치고 빠지고 오지고 지리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여자 마음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여심 킬러야 무슨··· 이거 받고 안 넘어갈 여자 세상에 없다궁!”

“11단··· 실화야? 인터넷에서도 못 봤어! 이거 페북에 올리면 나도 오늘부터 페북스타?”

“희영이 넘나 부럽다··· 나 이제 희영이 고모라고 부를 거야! 말리지 마!”

“왜?”

“오늘부터 왕호 오빠 자식 할 거니까!”

조현아가 야심 차게 가져왔던 그 명품 도시락.

그것은 이미 학생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프랑스식 고급 요리보다, 왕호가 푸짐하게 담아준 떡순튀와 귀여운 데코레이션에 심장이 움직이는 것은 여고생들 입장에선 어찌 보면 당연했다.

조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이었으나, 그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당황에서 놀람.

놀람에서 감탄.

감탄에서 경악.

경악에서 패배감.

마지막으로, 패배감에서 부러움으로 돌아섰다.

조현아가 허세 부리기 좋아하고 친구들의 관심에 병적으로 집착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그녀도 여고생이다.

희영이가 싸온 저 도시락에 그녀도 정말이지 한 젓가락 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저 귀욤귀욤한 요리들을 만들어 낸 희영이의 오빠와도 친해지고 싶었다.

아빠가 어렵게 가져온 도시락보다, 저것이 더 맛있어 보였으니까.

미슐랭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게다가, 저걸 자신의 인스타에 올린다면 얼마나 댓글이 많이 달릴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강타했다.

당장 희영이에게 부탁하고 싶었으나, 괜한 자존심 때문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현아의 단짝 중 한 명이 희영이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희영아··· 나도 먹어봐도 돼···?”

정확히 조현아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응. 양 되게 많···다. 다 같이 먹···자······.”

희영이는 친구의 말에 힘겹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지끈지끈을 넘어 마치 망치로 쿵쿵 때리는 것 같이 너무나도 아파오고 있었으니까.

< 클래스가 다르다 1 (5) > 끝

ⓒ 신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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