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스가 다르다 1 (6) >
“우와, 우와 대박!!!”
“핵존맛탱이야~!”
“이런 음식을 희영이는 맨날 먹는 거야? 졸부럽다 진짜······.”
친구들은 연신 젓가락을 놀리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메뉴가 40가지가 넘는다. 거의 출장뷔페를 먹는 느낌!
양도 낭낭한 터라, 반 친구들 전체가 먹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조현아도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희영이의 도시락 옆에 자리했다.
그리고 젓가락을 조심스레 움직여 아까부터 먹고 싶던 김말이 튀김을 집어 들었다.
떡볶이 국물에 푹- 찍고는 그대로 앙-!
바사삭-!
“······!!!”
현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맛있어···!’
겉은 바삭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겉만 바삭하다.
겉만 바삭할 뿐이지 튀김 자체는 부드럽기 그지없다.
김말이는 탱글탱글 쫄깃쫄깃 그 자체다.
마치 어묵을 먹는 것만 같다.
익숙하다.
분명 익숙한 맛이다.
조현아는 한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용돈 카드를 들고 다닌다.
그 돈으로 싱가폴이나 일본에 자주 놀러 가긴 하지만, 어쨌든 그녀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여고생.
친구들과 학교 앞에 있는 분식집에서 노닥거리며 떡순튀를 자주 먹곤 했다.
호텔에서 구워준 스테이크도 무척 맛있지만, 어떨 때는 잘 만든 떡볶이가 더 생각난다.
원래 익숙한 맛이 가장 무서운 법!
괜히 전국적으로 분식집이 퍼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맛있는 메뉴이니 온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왕호의 요리에는 특유의 버프가 걸려 있어, 감칠맛이 상당하다.
현아는 젓가락을 옮겨, 찢어진 닭 다리 고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우물우물-
‘헛!’
그녀의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얘지며 노랫가락이 들리기 시작한다.
육즙이 차올라서 고갤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삼켜~
자기 전에 자꾸자꾸 생각날 것만 같은 맛이다.
조현아는 자신의 특제 달팽이 도시락도 내팽개친 채, 희영이의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그래도 양심이 있었는지 고개를 돌려 희영이의 눈치를 살폈다.
‘어?’
희영이는 고개를 팍 숙인 채 머리를 자신의 손으로 꾹꾹 누르고 있었고, 소미와 혜진이가 그런 희영이를 안절부절못하며 옆에서 토닥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어디 아픈가?
“희영아··· 너희 오빠 요리 진짜 맛있다. 너도 좀 먹어, 이러다가 얘네들이 다 먹고 없겠다 야······.”
“고맙다··· 웬···일로 다 칭찬···이야···”
“이거 사진 찍어서 내 인스타에 올려도 될까···?”
“그럼, 그렇지··· 맘대로 해··· 우리 오빠 이름은··· 꼭··· 넣고···”
“얘는~ 당연하지! 근데 너희 오빠 요리 진짜 특별한가 봐! 나 아침부터 생리통 심했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프네. 버프? 그런 거 달려 있어서 그런가?”
“어?”
현아의 마지막 말에, 푹 숙이고 있던 희영이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올라갔다.
급격하게 머리가 아려오는 터라 식욕이 뚝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도시락을 한 입도 못 먹고 있는 상태.
하지만, 현아의 말을 듣자 왠지 도시락을 먹으면 통증도 사라질 것 같았다.
‘맞아. 오빠가 그냥 요리만 넣어 놨을 리가 없어.’
분명 예전처럼 체력 향상 버프라도 꽉꽉 채워놨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희영이는 억지로라도 나무젓가락을 들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우물- 우물-
음식을 씹는 입에는 힘이 없었지만, 왕호의 정성을 느끼며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맛있네.’
먹으니까 또 입맛이 살긴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음식을 집어넣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희영이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자, 옆에 있던 소미가 물었다.
“응! 이제 덜 아프다. 근데 너네는 왜 안 먹고 있어?”
“네가 죽을상을 하고 있는데,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 물론, 왕호 오빠 거니까 먹으면 맛있게 들어가겠지만···”
“나 이제 괜찮으니까 먹자!”
“좋아! 나 오늘 봉인 풀었다. 다 흡입해주겠어!”
희영이와 친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텐션이 올라갔다.
우적우적-
“도시락에 정말 버프가 걸려있는 거야?”
혜진이가 물었다.
“나야 각성자가 아니니까 모르지. 오빠도 말 안 해줬고. 다 먹으라고만 했지.”
“근데, 머리 이제 안 아프다며. 진짜 치유 버프라도 걸려 있나 봐!”
“그러게. 다행이다. 약도 잃어버렸는데 헤헤.”
“그럼, 이거 먹고 후룸라이드 타러 가자~!”
“콜! 나는 맨 뒷자리! 물은 네가 다 맞아라!”
“헐··· 양심 출타한 것 좀 봐봐. 정정당당하게··· 키순으로 해야지!”
“응? 키순이 왜 정정당당이야?!!!”
희영이는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도시락을 하염없이 흡수했다.
이제 통증은 약을 먹었을 때보다 더 느껴지지 않았다.
샤아아-
기분 좋은 청량감이 머릿속을 휘감는다.
시원하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기분이 상쾌하다. 날아갈 것만 같다.
그렇게 평생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으로 가득 차 있던 희영이의 머릿속에, 난생처음으로 알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띠링-!
[힐링 버프 “구사일생”이 적용됩니다.]
[힐링 버프 “펜잘큐, 땡큐!”가 적용됩니다.]
.
.
[유니크 힐링 버프 “아프지 말아요(안희영)”가 적용됩니다.]
[유니크 힐링 버프 “포텐 폭발!(안희영)”이 적용됩니다.]
[당신은 요리를 먹고 감동했습니다.]
[각성하셨습니다.]
[내재된 힘이 개방됩니다.]
[클래스 “힐링 마도사”로 전직하셨습니다.]
투둑-
너무 놀란 나머지, 희영이는 들고 있는 젓가락을 그대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희영아 왜 그래?”
“···오빠한테 당장 전화해봐야겠어······.”
희영이가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친구들한테 떠벌릴 수도 있었지만, 오빠한테 먼저 알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 도시락을 먹고 벌어진 일 같으니까.
.
.
.
“잘했어.”
전화를 받은 왕호는, 먼저 잘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공론화돼서 좋을 것이 없다.
미소지기 박주혁이 각성했을 때와 너무도 흡사했다.
희영이도 포텐 폭발! 버프의 영향으로 각성한 듯싶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희영이는 기절하지 않았다는 점뿐.
“머리는 이제 안 아파?”
-응! 이것 때문에 내 머리가 아팠던 걸까? 각성을 못 해서?
“일단, 힐링 버프 효과 때문에 통증이 가신 걸 수도 있으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
-알았어! 내가 각성하다니··· 너무 신기해!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알았지?”
-응! 도시락 고마워! 친구들 완전 난리 났어 맛있다구!
왕호는 고심에 빠졌다.
‘힐링 마도사라······.’
일단, 처음 들어보는 클래스다.
앞에 ‘힐링’이 붙은 클래스는 자신 말고 보고 들은 적이 없다.
‘나, 주혁이 그리고 희영이까지···’
오리진이라는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할 클래스다.
그리고 둘은 전부 자신의 힐링 요리를 먹고 각성했다.
아직은 힘이 없는 터라, 혹시나 벌어질 일에 주혁이와 희영이를 보호할 수 없다.
아마 스스로의 몸조차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밀로 하며, 최대한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길드라도 만들어 놓아야 하나···?’
사람들을 모아 힘을 키워야 하나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소풍은 제대로 즐기고 와. 이따 집에 와서 마저 얘기하자.”
-응~!
통화를 끊은 왕호는, 곧바로 박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주혁이 힐링 버프로 각성한 이후, 왕호는 주기적으로 박주혁과 연락하며 그의 상태를 체크 중이다.
당연히 박주혁은 비밀로 하라는 왕호의 말을 철저히 지키는 중이다.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형, 동생 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어, 주혁아!”
-왕호 형!
“뭐해?”
-지금 렙업 중이죠!
“소속사에서 붙여준 사람들하고?”
-네, 50까지는 지원 붙으니까요.
“뭐, 따로 특별한 거는 없고?”
-저번에 말했던 거에서 크게 바뀐 건 없어요. 사냥 안 하고 스킬만 잘 써도 레벨이 오르고, 또 스킬 중에 몇몇은 오리진에 등록이 안 됐다는 거?
“계속 비밀로 하고, 새로운 스킬 배우면 바로바로 전화 줘!”
-넵! 형 아니었으면, 평생 각성도 못했을 건데 충성충성해야죠.
“충성은 개뿔··· 아, 대표님이 저번에 하는 얘기 살짝 엿들었는데 너 레벨 50되면 영화 하나 들어갈 거 같더라.”
-헉! 정말요?
“이제 각성자 됐으니 굴려야지. 마스크도 되고 연기도 되는 몇 안 되는 각성자잖아. 너 잘 됐다고 나 막 생까고 그럼 안 된다?”
-어후 당연하죠. 엑스트라 때 초심 그대로! 안왕호 리멤버 포에버!
짠내 나는 영혼에 날개를 달아준 것까지는 뿌듯했는데, 자꾸 신경 써줘야 해서 귀찮은 점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나비가 되어 날아다닐 모습을 생각하면, 사람 하나 구했다는 생각도 같이 찾아온다.
단순 요리사가 아닌, ‘힐링’이라는 접미사가 붙은 요리사.
그런 왕호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힐링 요리.
요리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오빠오빠! 그럼, 나도 레벨 올려서 던전에서도 일하면 되겠다!”
“위험해 이것아!”
“조심하면 되지. 나는 힐러잖아. 뒤에서 힐만 슉슉!”
희영이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손동작까지 곁들여가며 말을 내뱉었다.
“레벨 올리는 건 보류하고 계속 알바하고 싶으면 그건 상관없겠다. 던전에는 들어올 수 있으니까.”
“앗싸! 알바비 세 배로 올려주시오!”
“하는 거 봐서.”
“에이! 이 사람이 진짜 진상 알바생을 못 만나 봐서 그러네. 나 같은 SSS급 알바생은 거의 없다구!”
“뉘예뉘예~”
“헐··· 그 말투는 뭐야?”
“너한테 배운 거지. 스킬들은 그럼 전부 다 힐 스킬 뿐이야?”
“응! 일단은? 오빠 말대로 확인해봤는데 오리진에 검색해도 안 나오는 스킬이 대부분이야!”
희영이의 설명을 들은 왕호는 내심 안도했다.
그래도 ‘힐러’라서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뭔가 색다른 힐러 같지만, 그래도 힐 스킬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귀족 인증이다.
그리고 원래 의사가 되려고 했던 희영이와 너무도 잘 맞는 클래스다.
힐러로 각성한 의사는 국제적으로도 찾기 드물고, 그 몸값은 상상을 초월하니 말이다.
게다가··· 주혁이의 말대로라면 희영이도 스킬만 사용해서 레벨을 올리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즉, 굳이 목숨을 걸고 레이드를 할 이유가 없다는 소리다.
물론, 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스킬 숙련도가 어느 선에서 막히겠지만 동생을 위험한 곳에 집어넣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만에 하나 레이드를 뛴다고 해도 뒤에서 힐만 슉슉- 던지면 안전하긴 할 거다.
그래도 사고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와, 얘 봐라······.”
그새, 핸드폰을 확인한 희영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내뱉었다.
“왜?”
“아까 내가 말했던 관종있잖아. 현아.”
“유명 셰프 도시락 싸 와서 너 무시했다가 큰코다쳤다는 애?”
“응 걔가 인스타에 글 하나 올렸는데, 내용이 가관이야 좀 봐봐.”
<왕호 오라버니가 나를 위해 특별히 싸준 도시락~ 오빠! 고마워요! 하트 뿅뿅~!
#역대급도시락 #아기상어주먹밥 #피카츄밥소름 #떡순튀최애 #12간지너무귀여워 #존맛 #세젤맛 #버프는덤 #완전이쁨 #여심저격 #출장뷔페온줄 #먹스타그램 #왕호오빠사랑해요>
왕호는 희영이가 보여준 글을 읽고 귀여운 웃음을 터트렸다.
“나, 얘 처음 보는데 ‘나를 위해’는 뭐야?”
“말했잖아. 얘 관종이라고.”
“나 인스타 계정 있는데, 댓글 달까? 누구세요라고?”
“그럼 얘 계정 삭제해야 돼. 욕 엄청나게 먹을걸? 안 그래도 관종인데 얼마나 슬프겠어. 그건 너무 심해. 이미 점심때 애들한테 쪽 많이 샀는데.”
“오~ 안희영 많이 컸다? 대인배 다 됐네~.”
왕호가 희영이를 기특하게 쳐다봤다.
“이제 명색이 힐러인데, 마음도 넓게 써야지. 의료봉사 나가려면 지금부터 마음 고단히 수행해야 돼. 그리고 오빠가 말 안 해도 곧 글 내려야 될걸? 오늘 뻥은 너무 많이 갔거든.”
희영이의 예상대로, 서로 팔로우하고 있던 반 친구들의 극딜이 시작됐다.
[-이번 건 너무 심했다. 이거 희영이 도시락이잖아.]
[-현아야 미안하다··· 이번 건 도저히 쉴드 못 치겠다.]
[-존나ㅋㅋㅋ 허언증도 정도가 있어야지.]
[-허언증 말기환자다 진짜.]
[-현아야;;; 빨리 글 내려! 이거 박제되면 영원히 흑역사로 남는다;;;]
다행히, 반 친구들의 재빠른 욕설 덕에 조현아는 글을 고쳐 다시 올려야 했다.
‘나를 위해’는 빼고 ‘단짝친구 희영이 도시락’이라는 문구를 추가해서 말이다.
단짝친구도 약간 허언이긴 하지만, 이건 애교로 넘길 만 했다.
새로 올린 조현아의 글은 팔로워들을 타고 널리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프로 관종답게, 조현아가 찍은 요리 사진은 아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디테일한 줌샷부터 완벽 그 자체인 항공샷까지!
보정을 하지 않아도 역대급인데, 화사한 필터까지 넣어 더더욱 맛깔나 보였다.
게다가 프로 관종답게 그녀의 랜선 친구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순식간에 SNS는 왕호의 도시락으로 물들었다.
각종 미사여구와 엄청난 감탄사들이 댓글을 지배했다.
미쳐버린 11단 도시락!
특이점이 온 도시락!
결국에는 이 하나의 말로 축약됐다.
[-클래스가 다른 도시락!]
클래스가 달랐다.
그리고 이 클래스가 다른 도시락은 왕호에게 있어 뜻밖의 결과로 다가왔다.
< 클래스가 다르다 1 (6) > 끝
ⓒ 신쌤